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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부마경 1권(3화)
一章 배신(背信)(3)


가장 먼저 두각을 나타낸 세력은 조영이었다. 단청의 아홉 제자들 중 서열 이위이자 가장 두뇌가 뛰어난 조영은 단현의 어머니이자 단청의 부인인 진영의 지지 아래 천마신교의 부교주가 되었다.
하지만 천마신교에는 사천황이라는 절대 강자들이 버티고 있었다.
아무리 조영이 진영의 지지를 받고 있고 단청의 직계제자라 하여도 운신의 폭은 좁았다.
단청이라는 절대강자의 퇴진은 당장 사천황의 경쟁을 불러왔다.
만일 사천황이 단합했다면 아무리 조영이 진영의 지지를 받고 있다 할지라도 결코 부교주의 자리에 오르지 못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장로들을 비롯해 각각의 세력들이 지금은 자신들의 세력 확장을 위해서 치열하게 보이지 않는 암투를 전개하고 있었다.
물론 단현이 성장하면서 무력을 갖추게 된다면 다시 모든 힘은 단현에게 돌아가겠지만 그동안이 문제였다.
아직은 단현의 무력과 연륜이 받쳐 주지 못했기에 단현이 아직 완전히 천마신교를 장악했다고 볼 수 없었다.
물론 지금도 단현을 지지하는 정통파가 건재했다.
외부에서 평가하는 정통파의 그 상징적인 중심이 바로 한선과 일선연이었다.
하지만 한선은 애당초 세력 다툼에 관심이 없었다.
단현을 위해 목숨을 버릴 수 있어도 암투는 성정에 맞지 않았다.
일선연은 태생적으로 세력 확장을 할 수 없는 위치에 있었다.
만일 한선이 천마신교의 지위에 관심이 있었다면 지금 천마신교의 판도는 다르게 바뀌었을 것이다.
그런데 한선이 천마신교를 잠시 떠나려는 이때 단현은 일선연마저 내치려 하고 있었다.
한선과 일선연이 동시에 단현의 곁을 떠난다면 단현의 기반이 더욱 약해질지도 몰랐다.
때문에 한선은 단현의 곁을 잠시 떠나는 것을 고민했다.
하지만 한선의 결정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한선이 보기에 지금 단현의 마음은 많이 닫혀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단현은 마음을 먼저 안정시키는 것이 우선이었다.
일선연이 아무리 단현을 향한 충성심을 갖고 있다고 해도 그 존재 자체가 단현에게 심적 압박을 주고 있다면 차라리 일정 기간 떨어져 있는 것도 나을 듯싶었다.
“그럼 아예 패천마원을 전부 데리고 나갈까?”
느닷없는 한선의 제안에 단현도 잠시 고민했다.
하지만 단현의 생각에는 그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천마신교의 교주가 된 후 삼 년 동안 단현은 한시도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 보지 못했다. 그나마 단현이 유일하게 마음을 놓을 수 있는 시간이 한선과 함께하는 이때였다.
“그래 줄 수 있겠어?”
“뭐, 천마궁 내궁이 쓰레기 더미가 되더라도 불만이 없다면.”
단현이 피식 웃었다.
“그래만 준다면 나야 고맙지.”
“좋아. 나중에 딴소리하기 없기다.”
한선이 웃음 지었다.
그것으로 단현이 마음의 안식을 찾을 수 있다면 지금의 한선에게는 그것으로 족했다.
한선은 단현에게 한 가지 이야기를 더 하려다 관두었다.
사실 한선이 굳이 천산을 떠나려 하는 이유는 얼마 전 흥미로운 사실을 하나 알아냈기 때문이었다.
천외의 무학.
명확한 것은 하나도 없었지만 삼 년 전부터 한선의 마음을 흔들었던 전설 속의 무학 중의 하나.
처음에는 한선도 이를 하나의 헛소문으로 치부하고 있었다.
그러나 얼핏얼핏 한선에게 들어오는 고급 정보에 간간이 천외의 무학에 관한 내용이 언급되고 있었다.
그러다 한선은 우연히 조영의 밀담을 듣게 되었고 조영 역시 천외의 무학에 관심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은밀히 이를 조사하고 있음을 알아채게 된다.
한선은 대담하게 조영을 동태를 살피기 시작했고 한 달간의 노력 끝에 조영이 꽁꽁 숨겨 놓았던 천외무학의 정보를 입수하는데 성공한다.
한선은 이 사실을 단현에게 사실대로 말할까 하다 그만두었다.
정말 천외의 무학이 존재하고 자신이 얻게 된다면 그때 단현에게 알려주어도 무방할 것 같았다.
단서를 얻었다고는 하나 아직 명확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지금은 이 정도로 충분할 것이다.
단현은 한선과 헤어지고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천마궁의 내궁으로 돌아왔다.
한선과 헤어지는 것은 아쉬웠지만 패천마원을 내궁에서 몰아낼 수 있다는 것은 여간 기꺼운 일이 아니었다.
그동안 단현은 무공의 섭렵과 암기에 중점을 둬 왔다. 물론 천마심법을 비롯해 기본적인 무공을 수련하고는 있었지만 한선처럼 상승무공을 위해 시간을 할애하지는 않았다.
단현 스스로도 정확히 기억나지 않았지만 단현은 언제부터인가 자신만의 독문무공을 만들고 싶은 꿈을 가슴에 품고 살았다.
천마 단휘의 무학은 역사상 전설의 반열에 올라선 절대의 무학이라고 했다.
천마의 무학을 두루 섭렵한 단현은 누구보다도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결국 천마 단휘는 죽었다.
천마의 최후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 전설이 분분했으나 지금은 어떤 것이 정확한 천마의 최후인지는 천하의 누구도 제대로 알지 못한다.
천마신교의 교주인 단현이 이를 모르고 있으니 천하의 그 누구라도 천마의 최후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이 오히려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서일까 단현은 천마의 무공을 넘어설 수 있을지 모른다는 막연한 상상을 하게 되었다.
소림사의 달마 대사처럼 기존의 무학과는 완전히 궤를 달리하는 새로운 무학을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단현은 지금까지 천마신교에서 모을 수 있는 모든 무학 서적들을 탐닉했다.
하지만 언제나 일선연이 신경에 거슬려 자신의 무학을 제대로 완성할 수 없었다.
그만큼 단현이 일선연에게 갖는 부담감은 상당했다.
“마천우사를 알고 있지?”
내궁으로 돌아오자마자 단현이 일선연에게 물었다.
“알고 있습니다.”
“이번에 그에게 비밀 명령을 내렸다. 그것을 패천마원에서 도와주었으면 한다.”
“천마내궁을 떠난 패천마원은 의미가 없습니다. 모두 천마신교에서 떠나라는 뜻입니까?”
단현의 검미가 조금 꿈틀거렸다.
말하지 않아도 이미 알고 있었다.
단현은 일선연의 힘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이번 일은 아주 중요한 일이다.”
“교주님 명을 받겠습니다.”
단현의 의지는 확고했고 일선연의 결정도 머뭇거림이 없었다.
단현은 일선연이 명을 받는 것을 확인하고 자리를 박차고 자신의 침실로 들어갔다.
일선연의 곁으로 패천마원의 여인 하나가 조심스럽게 다가섰다.
“원주님.”
일선연의 기도는 잔잔했다.
“패천마원은 당분간 천마내궁을 비우도록 하지요.”
일선연의 기운이 안으로 갈무리되기 시작했다.
“이제는 함부로 본신의 힘을 드러내면 안 된다는 걸 아이들에게 잘 알려주세요.”
여인은 근심스러운 표정을 떨쳐 내지 못했다.
“천마의 후손은 천재입니다. 단현 교주님 역시 마찬가지예요.”
일선연의 말에도 여인은 걱정했다.
“아이들의 동요가 제법 클 것입니다.”
“십 년을 생각하지요. 십 년 동안 단현 교주님이 다시 패천마원을 찾지 않는다면 그때 패천마원을 없애도록 하겠어요.”
단현은 잔잔히 흘러들어 오는 일선연의 목소리를 들으며 얼굴을 찌푸렸다.
지금 단현이 생각하기에는 내궁을 관리하는 일에 굳이 패천마원이 필요하지 않았다.
나머지는 한선이 알아서 처리해 줄 것이다.
한선은 마천우사다.
천마신교에서 마천우사의 자리는 부교주와 사천황과도 힘을 겨룰 수 있는 자리다.
단현은 억지로 잠을 청했다.
이제 눈을 뜨면 내궁은 바뀔 것이다.
진정한 단현만을 위한 안식처로.

단현이 잠에서 깨었을 때 천마내궁을 가득히 채우고 있던 부드러우면서도 강력한 기운이 사라졌다.
일선연이 떠난 것이다.
사실 일선연을 내궁에서 내보내는 일 자체가 어려운 것은 아니었으나 그에 따른 부담도 틀림없이 있었다.
일선연이 내궁을 떠나 반교주파에라도 가담한다면 단현으로서는 꽤나 큰 타격을 받는 셈이었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천마신교 외부로 일선연을 축출하는 것도 여의치 않았다.
천마신교는 강자존의 세계이고 패천마원과 일선연이라면 단숨에 두각을 나타낼 것이다.
약간의 시간이 걸릴지 모르지만 결국 그녀들은 다시 천마신교의 핵심세력으로 자리 잡을 것이고 단현의 반대 세력으로 뿌리를 내릴지 모른다.
하지만 한선이라면 충분히 그녀들을 통제하고 견제해 줄 수 있을 것이다.
단현이 정말 오랜만에 가벼운 마음으로 연공실로 들어서서 무공을 수련하기 시작했다.

* * *

“마천우사가 밀명을 받고 떠났다고?”
청년이 알듯알듯한 미소를 지으며 되물었다.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마천우사가 내궁의 시비들을 대동한 채 함께 떠났다는 겁니다. 그나저나 교주님이 마천우사에게 내린 밀명이라는 것이 도대체 뭘까요?”
“밀명은 무슨.”
청년은 비웃었다.
“소민을 만나러 갈 것이다. 준비해라.”
그러자 청년과 대화를 나누던 중년인이 화들짝 놀랐다.
“부교주님 그분은 교주님의 정혼자입니다. 가뜩이나 교내에서 부교주님에게 흠집을 내려는 세력들이 많은데 이런 때 불미스러운 소문이라도 돌게 된다면.”
“괜찮다. 앞장서라.”
부교주라 불린 청년이 일어섰다. 그러자 막대한 기도가 청년을 감싸고 넘실거렸다.
바로 천마신교의 부교주 조영이 청년이었다.
조영이 일어서자 방 안을 가득 메우는 거대한 마기에 중년인은 숨이 턱 막히는 것 같았다.
한선이 나타나기 전까지 천마신교 최고의 재능이라고 불리던 조영이었다.
이제 이십대 후반으로 접어드는 조영은 패기와 함께 원숙미까지 넘쳐흐르고 있었다.
앞으로 시간이 흐르면 단현과 한선이 조영을 넘어설지 몰랐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그래서일까 조영은 유난히 한선을 싫어했다.
그런 조영이 한선의 이야기를 들으며 만족스런 표정을 지었다.
중년인은 그런 조영을 처음 보았다.
조영은 중년인만 대동한 채 천마궁으로 향했다.
조영이 머물고 있는 천마성에서 천마궁으로 향하는 길은 제법 거리가 있었다.
조영은 그 길을 걸으면서 우중충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런 조영의 눈에 이채가 감돌았다.
‘단현에게서 한선을 떨어트리는데 걸린 시간이 삼 년인가. 더구나 고맙게도 내가 천마신교를 장악하는데 최대의 난제였던 패천마원까지 알아서 치워 주다니 이거 경의라도 표해야 하나.’
조영의 가슴이 울렁거렸다.
무려 이날만을 위해 자신의 평생을 받쳐 왔다.
자신의 출생과 무력을 감춘 채 천마신교에 투신해서 가장 밑바닥부터 차근차근 올라왔다.
단청에게 비사를 흘려 그가 천마신교를 떠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천마신교의 교주가 된 단현의 가장 충실한 수하인 한선에게 위조된 정보를 흘려 그와 단현을 갈라놓았다.
또한 끊임없이 단현에게 천마신교의 피로 얼룩진 역사를 비롯해 현재 중원에서 벌어지고 있는 계략과 암투를 수시로 단현에게 보고하며 아직 어렸던 단현이 누군가에게 의지하기 어렵게 안배했다.
이 모든 일이 조영의 손에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결코 서두르지 않고 조금씩 그러나 은밀하게 진행해 왔던 일들이 이제야 빛을 보기 시작했다.
조영이 천마궁에 마련된 소민의 거처로 들어서자 여기저기서 뜨거운 눈빛이 조영에게 쏘아졌다.
소민은 단현의 정혼녀였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단현에게 올려진 영약과도 같은 것이었다.
소민에 관해서 자세히 알려진 내용은 없었다.
다만 은밀하게 떠도는 소문에 의하면 소민을 취하면 내공의 증진에 도움이 된다고 했었다.
소민은 처음부터 단현의 정혼녀로 내정된 채 천마궁으로 들어왔다.
몇몇 사람들은 그런 소민을 탐내기도 했지만 소문은 어디까지나 소문이었다.
더구나 천마신교 교주의 여자를 탐한다는 것은 너무나 위험한 생각이었다.
하지만 단청이 천마신교를 떠난 후 소민의 거처를 가끔 드나든 사람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조영이었다.
당연히 소문이 날 수밖에 없었고 그 소문의 내용이 좋지 않을 것 또한 자명했다.
그러나 조영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오늘 다시 소민의 거처로 들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