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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부마경 1권(2화)
一章 배신(背信)(2)


천마궁의 연공실에서 나온 단현은 오늘따라 뭔가 허무한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그것은 오늘 천마궁의 모든 비급을 다 외웠기 때문에 오는 허탈감인지도 몰랐다.
“교주님, 천마우사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맑고 듣기 좋은 여인의 목소리가 잔잔하게 흘러들어 왔다.
일선연.
패천마원의 원주이자 천마신교 최고위층 사이에 천마제일미로 명성이 자자한 여인.
천마궁의 내궁은 오직 천마신교의 교주만이 출입이 가능한 천마신교의 금역 중의 한 곳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금역이라 해도 내궁은 마도의 하늘인 천마신교의 교주가 기거하는 곳.
그 호화스러움과 화려함이 극에 달한 것이 당연했고 그러한 내궁이 청결하게 유지되기 위해서는 당연히 관리가 필요했다.
그래서 존재하는 곳이 바로 일하는 여인들만이 존재하는 패천마원이었다.
평생을 천마내궁에 갇혀서 잡일이나 하면서 보내야만 하는 가혹한 운명을 지닌 여인들.
하지만 이는 역으로 천마의 피를 이어받은 후손을 가장 많이 배출하게 된 필연적인 이유도 되었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지나면서 패천마원은 천마신교 내에서도 상당히 묘한 위치에 놓이게 되었다.
분명 가장 최하층에 놓인 독립적인 세력인데도 불구하고 천마신교의 최고위층일지라도 쉽게 범접하기 힘든 곳.
그런 패천마원을 총괄하는 여인이 일선연이었다.
언제나 단현의 곁에 머무르며 단현의 모든 것을 보필하는 여인.
하지만 단현은 그런 일선연에 대해 상당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 이유는 일선연이 단현의 곁에서만은 자신의 재능을 감추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녀의 맑은 눈은 마치 단현의 마음을 읽어내는 듯 단현이 무엇을 필요로 하면 말하지 않아도 어김없이 단현의 앞에 그것을 가져왔다.
뿐만 아니라 그녀의 무공은 또 어떤가.
일선연은 틈틈이 무공을 수련했다.
아니, 일선연뿐만이 아니라 패천마원의 모든 여인들이 무공을 수련했다.
오직 내궁에서 외궁으로 연락책을 맡은 출입이 제한된 극소수의 인원을 제외하고.
그래서 단현은 패천마원의 무력 수위를 낱낱이 알고 있었다.
근자에 천마신교 내의 최강의 신성이라는 천마우사를 능가하는 절대적인 무위를.
아직 무공이 완성되지 못한 단현에게 그것은 상당히 불쾌한 경험이었다.
천마신교 교주 휘하의 독립 특수 집단으로 최강의 무력을 지니고 있었지만 대외적으로는 그저 시비에 불과한 존재로 각인된 천마신교 최후의 보루.
천하를 오시할 힘을 지니고도 그 대접을 받지 못하는 최강의 무력 단체 중 하나.
그런 상식을 벗어난 상황이 단현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지금 외궁으로 나가겠다.”
단현의 말에 일선연은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패천내원의 여인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그런 여인들을 보며 외궁으로 향하는 단현은 패천마원의 존재를 고민했다.
특히 일선연의 존재는 단현에게 있어 가장 큰 고민거리 중 하나였다.
그녀는 너무나 지혜롭고 또한 강했다.
일선연은 단현의 명에 절대복종했지만 단현은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패천마원의 전통성을 통째로 부정할 수는 없다고 해도 적어도 일선연만은 밀어내야 한다. 지금의 패천마원에서 일선연만 덜어낸다면 패천마원의 힘은 절반으로 깎일 것이다.’
그만큼 지금의 패천마원에서 일선연이 갖는 비중은 절대적인 것이었다.
내궁의 굳건한 철문이 열리자 외궁으로 통하는 단 하나의 통로가 모습을 드러냈다.
웅장한 통로를 지나자 다시 거대한 철문이 열렸다.
“교주님을 뵈옵니다.”
간드러지는 여인의 목소리가 단현을 맞았다.
외궁은 내궁과는 분위기가 확연히 달랐다.
내궁이 적막감에 휩싸여 있다면 외궁은 활기찬 모습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내궁에는 오직 단현과 패천마원의 여인들뿐인데 반해 외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상주하고 드나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단현이 외궁의 별실로 들어서자 그곳에는 단현 또래의 소년이 의자에 비스듬히 기댄 채 책 한 권을 뒤적거리고 있었다.
“여어∼ 교주님∼”
단현이 들어서자 소년은 한 손을 번쩍 들어 올리며 반갑게 단현을 맞았다.
감히 마의 하늘이라는 천마신교의 교주인 단현에게 이렇듯 무례를 범할 수 있는 사람은 천하에 오직 두 명이었다.
그중의 한 명인 마천우사 한선이 바로 눈앞의 소년이었다.
불과 단현과는 한 살 차이로 하늘이 내려 준 무재라 했다.
오죽하면 단현의 아버지이자 천마신교의 전대교주였던 단청이 양아들로 맞아들여 직접 무공을 전수했을 정도였다.
단청은 모두 아홉 명의 제자를 두었는데 그중에서도 한선이 단연 최고의 재능을 보이고 있었다.
일각에서는 보기 드물게 천마신교 교주를 능가하는 무인이 탄생하는 것이 아니냐는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는 그야말로 기재 중의 기재였다.
하지만 이와 별개로 단현은 한선과 친했다.
비슷한 또래인 두 사람은 어려서부터 천산을 누비며 함께했고 또한 두 사람만의 비밀도 여럿 만들며 함께 유년기를 보냈다.
때문에 단현은 천마신교의 교주가 되자마자 한선을 마천우사라는 엄청난 특권을 가진 자리에 덜컥 임명했다.
물론 한선은 마천우사로서 본분을 전혀 지키지 않았고 단현 역시 이에 크게 개의치 않았다.
“이번에는 폐관 수련이 제법 길었네?”
단현이 한선의 맞은편에 앉으며 과자를 하나 입에 넣었다.
“그게 말이지… 이 신조마경이라는 것이 참 오묘하기 짝이 없더라고.”
“그래서 완성했어?”
“아니, 어림도 없었어.”
신조마경(神造魔經).
신조마경은 단현과 한선만의 비밀 중 하나였다.
두 사람이 어릴 때 언제나처럼 천산을 함께 뛰어놀다가 단현의 실족으로 우연히 동굴 하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천마신교의 전인으로 추정되는 고인의 유품을 발견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신조마경이었다.
어찌 되었든 한 사람은 천마의 후예이고 다른 한사람은 하늘이 내린 재능이라 했다. 그 두 사람이 신조마경의 대단함을 알아보지 못할 리 없었다.
단청에게 이를 알리는 것이 당연했지만 단현은 이를 거부했다. 우리 둘만의 비밀로 하자.
그렇게 신조마경은 단현과 한선만의 무공이 되었다.
그것이 벌써 오 년 전의 일.
그런데 천하의 기재라 불리던 한선도 천마의 후손인 단현도 아직까지 신조마경을 제대로 익히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말인데 천하로 나가 볼까 한다.”
뜬금없는 한선의 이야기에 단현의 표정에 살짝 변화가 묻어났다.
“나가서 뭐하게?”
“마검을 완성할 거야.”
“그거 꼭 나가야만 할 수 있는 거야?”
“몰라. 물론 시간만 허비하는 꼴이 될 수도 있겠지. 하지만 사부님도 안 계시고 그렇다고 다른 사람들한테 도움을 청하기도 그렇고.”
“나도 같이 가고 싶은데.”
한선이 은근히 놀리는 듯한 웃음을 입에 그렸다.
“꿈 깨라. 늙은이들이 알면 노발대발할걸.”
“내가 반대하면?”
단현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으나마나 한 것을 물었다.
“뭐… 도망가면 되지. 여차하면 소림으로 출가해도 되고.”
한선의 대답에 단현이 기가 막힌 듯 헛바람을 내쉬며 입에 한 가득 과자를 물었다.
하기야 한선의 저 대책 없는 자유로운 성격이 아니라면 오늘날의 단현과 한선의 관계는 불가능했을지도 몰랐다. 그때 문득 단현의 뇌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단현이 크게 만족스런 웃음을 터트렸다.
단현은 천마신교 내의 모든 사람 앞에서 자신의 감정을 숨겼다.
유일한 예외가 있다면 눈앞의 단 한 사람 한선이었다.
“왜? 갑자기 미치기라도 했냐?”
“아니, 부탁이 하나 생겨서.”
“뭔데? 어디 가서 뭐라도 사서 보내줄까?”
“아니, 여자 한 명을 데리고 나가 줘.”
“지랄! 무공에 여자가 얼마나 방해가 되는지 잘 아는 녀석이 지금 심득을 깨우치기 위해 웅대한 포부를 품고 있는 형을 방해할 궁리부터 하냐.”
“설마 그럴 리야 있겠어. 단지 형이 아니면 천하에 그 누구도 그 일을 해내지 못할 거 같아서.”
“지랄. 여자 하나 처리하는데 천하를 다 들먹이네. 도대체 누군데 그래?”
“일선연.”
단현의 대답에 한선의 표정도 굳어졌다.
패천마원의 여자는 오직 천마신교의 교주에게만 허락된 여자다.
아니, 그것을 떠나서 일선연은 그중에서도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었다.
패천마원의 지배자이자 천마신교의 숨겨진 혜안.
물론 한선이 알고 있는 것은 하나가 더 있었다.
단현이 평소부터 일선연을 곁에서 치우고 싶어 한다는 것.
단현은 그 정도로 일선연을 높게 평가하고 있었다.
한선은 고민했다.
단현과 반대로 한선은 일선연을 신뢰하고 있었다.
일선연은 이제 겨우 이십대 초입의 나이였다.
그 나이에 단현을 압박할 정도의 무력과 지혜를 갖추고 있다면 그것은 자신의 밑천을 다 드러낸 거나 다름없다.
만일 일선연이 다른 마음을 품고 있다면 결코 단현의 앞에서 모든 것을 꺼내 놓지 않을 것이다.
단현에게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기에 자신의 모든 것을 드러낸다.
그것이야말로 단현에게 절대 복종한다는 의미다.
그것은 만일 단현이 일선연을 제압하기로 마음먹는다면 정확하게 어느 정도까지 준비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잣대가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현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사실 단현의 성격은 최근 들어 많이 바뀌었다.
정확하게는 단청이 단현을 떠나간 시점을 기준으로 성격이 크게 바뀌었다.
한선도 단청을 이해하지 못한다.
물론 단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한선은 단청이 떠나기 전이나 떠나간 후나 바뀐 것이 크게 없다.
반면 단현은 다르다.
단현은 단청이 떠나간 후 천마신교의 교주가 되었고 모든 생활이 바뀌었다.
천마신교의 기틀은 강자존이다.
단청의 시대에는 단청이 절대강자였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단현은 아직 어리다.
한선의 재능이 천마신교에서 최고로 각광받고 있지만 단현의 재능도 결코 한선의 아래가 아니었다.
그것은 한선 스스로가 잘 알고 있다.
단현도 천재가 아니었다면 결코 한선과 단현은 가까운 사이가 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천재와 천재여서일까.
단현과 한선은 서로 마음이 통했다.
다른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단현과 한선은 함께 느끼고 공유했다.
그래서 고민했다.
지금 천마신교는 분열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천마의 정통후계자인 단현이 천마신교의 교주직을 이어받는데 아무런 반대가 없었다.
그리고 단현이 천마신교의 교주가 되는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아직 단현은 어렸다.
그리고 단청은 너무나 갑자기 천마신교를 떠났다.
이로 인해 천마신교의 실세가 바뀌는 것은 어쩌면 필연인지도 몰랐다.
적어도 단현이 성장해서 천마신교 최강의 힘을 갖추기 전까지 저마다 세력을 확장하기에 혈안이 돼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