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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부마경 1권
천부마경 1권(1화)
서장
거친 황야 위에 고독함을 짙게 베어내는 한 사내가 적색으로 물든 창공을 하염없이 응시하고 있었다.
사내는 미칠 듯한 아름다움을 사위에 뿜어내고 있었다. 끝을 알 수 없는 깊은 흑색의 눈동자는 삼라만상의 혜안을 품고 있었다.
“천주께서도 이런 길을 걸으셨을까?”
사내의 속삭임은 마력과도 같은 흡입력을 갖고 있었다. 사내의 시선이 적색의 창공에서 자신이 심혈을 기울인 한 권의 서책으로 옮겨졌다.
“천하에 누가 있어 나의 심득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사내의 신형이 흐릿해져 갔다. 그리고 그곳에는 오직 한 권의 서책만이 사내의 존재를 대변해 주는 듯 바람에 팔랑이고 있었다.
서책은 특이하게도 흑색의 바탕에 적색의 글씨로 쓰여 있었다.
천부마경.
사내가 남긴 서책의 이름은 이러했다.
단휘.
그리고 사내가 서책에 새긴 자신의 이름은 두 자였다.
세인들은 사내를 이렇게 불렀다.
천마.
一章 배신(背信)(1)
대륙의 서쪽.
하얀 눈으로 뒤덮인 웅장한 산의 정상에는 흑색의 거대한 성이 자리 잡고 있었다.
천마성(天魔城).
마의 하늘이라 불리는 천마신교의 본거지였다.
천마성이 있는 천산에서도 최정상에 위치한 천마궁에는 한 명의 소년이 여유롭게 차를 즐기고 있었다.
소년은 뚜렷한 이목구비를 가지고 있었다.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깊은 눈은 감정을 느낄 수 없었고 굳게 다문 입술에서는 굳건한 의지가 느껴졌다.
범상치 않은 기운을 풍기는 소년의 이름은 단현으로 당대 천마신교의 교주였다.
단현의 나이는 아직 열다섯밖에 되지 않았다.
그런 그가 어떻게 마도의 정점에서 군림하는 천마신교의 교주가 될 수 있었을까?
그 이유는 의외로 간단했다.
천마신교의 창시자인 천마 단휘의 피를 이어받았기 때문이다.
천마를 숭배하는 천마신교에서 천마 단휘의 직계 후손이라는 것은 대단히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 천마의 피를 이어받은 자들은 특별했다.
불사에 가까운 능력을 지니고 있었으며 가공할 천마의 무학을 구현해 내며 언제나 강자존의 마도에서 절대강자로 군림해 왔다.
그렇기에 단현은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마교의 교주직을 이어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벌써 삼 년 전의 일이다.
‘어제는 천문이 어지러웠다. 오늘은 중원 어디에선가 불길한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겠군.’
겨우 십오세의 소년에 불과한 단현이 간밤에 읽은 천문의 혼란스러움을 떠올렸다.
그랬다.
지금까지 천마의 후손이 그랬던 것처럼 단현도 천마의 후손답게 특별했다.
하지만 그 속에는 오직 단현만이, 아니, 천마의 후손 중에서도 천마신교의 교주직을 이어 온 사람들만이 알고 있는 비밀이 있었다.
천마령혼(天魔靈魂).
천마령혼은 천마 단휘가 마공이라는 가공할 무공의 심득을 얻어 창조한 마령으로 신묘한 힘을 간직하고 있다고 했다.
천마령혼은 그것을 소유한 것만으로도 천마기라는 천마 고유의 내공을 사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천마의 힘이라 추측되는 상식을 벗어난 절대자의 힘을 사용할 수 있는 등 여러 가지 권능을 구현할 수 있게 된다고 했다.
천마령혼이라는 신물이 존재하고 있었기에 대대로 마교의 교주직을 이어받은 천마의 후손들이 마의 정점에 설 수 있었던 것이다.
단현 역시 천마신교의 전대 교주이자 아버지인 단청으로부터 천마령혼을 이어받았다.
천마령혼에는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여러 가지 특성이 존재했다.
그러한 특성 중의 하나는 천마령혼이 무형의 기운이라는 것과 오직 단가의 피에만 반응을 보인다는 것이었다.
지금도 천마령혼의 비상식적인 권능들은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다.
이러한 특성이 있었기에 천마령혼의 비밀은 오직 천마신교의 교주에게서 교주로 그 누구도 모른 채 지금까지 이어져 올 수 있었던 것이다.
차를 다 마신 단현은 신형을 일으켜 언제나처럼 천마궁의 연공실로 향했다.
천마궁은 천마신교의 오랜 역사와 함께 천마신교의 교주들이 머물러 온 곳이다.
천마궁이 언제 누구의 손에 의해서 만들어졌는지 확실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지만 천마궁은 천마성 속의 또 다른 하나의 요새였다.
천마궁은 크게 내궁과 외궁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천마신교의 역대 교주들은 보통 외궁에서 업무를 보고 내궁에서 생활했다.
천마궁의 내궁은 오직 천마신교의 교주만이 출입할 수 있는 금역이었다.
그리고 천마궁의 내궁에는 오직 천마신교의 교주만이 익힐 수 있는 천마기라는 특별한 내공에만 반응하는 기관이 다수 존재했다.
이 기관은 오직 천마기에만 반응하기에 천마신교의 교주가 아니라면 천하의 그 누구도 열 수 없었다.
그 기관 넘어 비밀스러운 공간에는 천마무학의 정수와 역대 교주들이 심혈을 기울여 모아 둔 각종 비급과 보물들이 가득했다.
단현은 연공실로 들어섰다.
단현은 아직 어렸고 그동안 천마신교의 전례에 따라 천마신교 내의 대부분의 업무는 부교주인 조영이 단현을 대신해 처리하고 있었다.
아직 단현이 천마신교 내의 업무를 직접 처리하기에는 어렸다. 단현뿐만이 아니라 그동안 천마신교의 역대 교주들은 교내의 업무를 처리하는 것에 대부분 무심했다.
사실 교 내의 업무라는 것들이 지력을 소모하는 막대한 노동과 같아서 천마신교의 교주들은 대부분 그러한 업무에 치중하지 않고 자신의 무공을 증진시키는데 시간을 할애했다.
때문에 천마신교의 교주들은 중요한 일들이 아니면 교 내의 업무들을 부교주에게 위임했고 그것이 어느 사이에 당연한 것처럼 이어지기 시작했다.
덕분에 단현은 하루의 대부분을 연공실에서 보냈다.
단현이 연공실에 들어서서 연공실 내의 한쪽 벽면에 손을 대고 천마기를 운용하자 드르륵 하는 소리와 함께 비밀 공간이 모습을 드러냈다.
단현이 안으로 들어서자 문은 다시 본래의 자리로 돌아갔다.
단현은 비밀 공간 안의 서고로 들어서서 몇 권의 책을 뽑아 읽기 시작했다.
단현의 암기력은 대단해서 서고 안에 있는 책을 거의 외우고 있었다.
단현이 크게 심호흡을 하며 마지막으로 읽지 않은 책을 꺼냈다.
천마신공(天魔神功).
천마 단휘의 마지막 심득이자 천마 무공의 최종 단계.
이제는 전설이 된 최강의 마공이자 당대에 존재하는 모든 무공을 통틀어 가장 강한 무공으로 공인된 절대무학.
하지만 역대 천마신교의 교주들 중 천마 단휘 이후로 천마신공을 완성한 무인은 없다고 했다.
단현이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천마신공을 펼쳐 사라락 넘겼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암기력이 특출한 단현은 단 한 번의 손짓만으로 천마신공의 모든 구결을 외워 버렸다.
마침내 단현은 천마궁의 비밀 서고 안에 있는 모든 비급을 외웠다.
천마신교 역사상 전무후무한 일이었지만 단현은 그것을 모르고 있었다.
외우기는 하였지만 단현은 아직 천마신공의 무공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다.
천마신공뿐만이 아니라 단현은 수많은 무공들을 외우고 있었지만 구현하지는 못했다.
무공이라는 것이 외워서 사용할 수 있다면 누구나 무공을 익히고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무공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다시 심득이라는 과정이 필요했다.
스스로 무공을 이해하고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
같은 무공이라도 심득의 차이에 의해 구현되는 무공의 위력은 판이하게 다르다.
문득 단현은 자신의 왼손 약지에 끼워진 흑색의 반지를 바라보았다.
흑색의 반지는 영롱하면서도 오묘한 흑광을 뿜어내고 있었는데 천마사환(天魔絲環)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천마사환은 천마신교의 교주를 상징하는 세 가지 신물 중 하나였다.
천마사환을 보니 단현은 자연스럽게 자신의 아버지인 단청의 모습이 떠올랐다.
“현아야. 천하에서 여인을 믿고 의지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단다.”
단현의 기억 속에 단청이 남겨 준 마지막 말이 떠올랐다.
하지만 단현은 지금도 단청의 이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아버님은 어찌하여 천하에서 여인을 믿고 의지하는 것이 어리석은 일이라 하셨을까? 모름지기 사람이란 남녀를 불문하고 믿어서는 안 되는 것인데.’
단현이 이런 생각을 가진 데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다.
천마신교에는 완전하지는 않아도 그동안의 대략적인 천마신교의 역사가 남아 있었다.
그리고 단현은 천마신교의 역사 속에서 강자존의 처절함과 비열한 인간의 군상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당장 자신에게 그런 말을 남긴 단청만 하여도 겨우 열두 살에 불과했던 단현을 버리고 천마신교를 떠났다.
지금도 단현은 그 이유를 모른다.
아니, 천마신교의 누구도 그 이유를 모르는 것 같았다.
이제 와서 단현에게 그 이유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단현은 유난히 조심스러운 점이 많았다.
단현은 천마궁을 손에 넣게 되면서 엄청난 무공과 재물을 함께 손에 넣었다.
어린 나이에 들떠서 누군가에게 이야기할 법도 했지만 단현은 이러한 사실을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심지어 자신의 어머니에게도.
그리고 단현은 단청에게서 물려받은 교주를 상징하는 세 가지 신물을 아직 제 것으로 만들지 못했다.
세 가지 신물은 모두 마의 힘을 내재하고 있는 마도 제일의 신물들이었다.
천마기로 신물들의 기운을 억제하고 제어하지 못한다면 역으로 주인을 공격하여 미쳐 버리게 만든다고 했다.
단현은 지금도 세 가지 신물을 제어하지 못한 날의 고통을 잊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나이가 어린 단현은 삼 년의 시간 동안 천마기를 쌓았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신물들을 다스릴만한 천마기를 가지지 못했다.
때문에 단현이 지금 끼고 있는 천마사환은 실은 아주 정교한 모조품이었다.
단현은 천마 단휘의 후손이고 아직 나이가 어린 탓에 온전히 천마의 무학을 잇지는 못했지만 교주의 상징인 신물을 제어하지 못한다는 것은 스스로 말도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에 단현은 아무에게도 이 사실을 알리지 않고 직접 심혈을 기울여 천마사환을 비롯한 세 가지 신물을 모조했다.
진짜 천마사환은 그 속에 보검과 비견되는 실검이 감춰져 있을 뿐만 아니라 외기를 순식간에 내기로 전환시킬 수 있는 신비한 힘이 내재되어 있다고 단현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천하에 단현과 단청 정도였고 단현이 만든 가짜 천마사환은 단지 겉모습이 눈으로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똑같다는 것뿐이었다.
물론 그 정도의 모조품을 만드는 것만 해도 단현은 엄청난 고생을 했고 그것으로 주위의 시선을 속일 수 있었으니 그것만으로 모조된 세 가지 신물은 제 역할을 다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천부마경 1권(1화)
서장
거친 황야 위에 고독함을 짙게 베어내는 한 사내가 적색으로 물든 창공을 하염없이 응시하고 있었다.
사내는 미칠 듯한 아름다움을 사위에 뿜어내고 있었다. 끝을 알 수 없는 깊은 흑색의 눈동자는 삼라만상의 혜안을 품고 있었다.
“천주께서도 이런 길을 걸으셨을까?”
사내의 속삭임은 마력과도 같은 흡입력을 갖고 있었다. 사내의 시선이 적색의 창공에서 자신이 심혈을 기울인 한 권의 서책으로 옮겨졌다.
“천하에 누가 있어 나의 심득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사내의 신형이 흐릿해져 갔다. 그리고 그곳에는 오직 한 권의 서책만이 사내의 존재를 대변해 주는 듯 바람에 팔랑이고 있었다.
서책은 특이하게도 흑색의 바탕에 적색의 글씨로 쓰여 있었다.
천부마경.
사내가 남긴 서책의 이름은 이러했다.
단휘.
그리고 사내가 서책에 새긴 자신의 이름은 두 자였다.
세인들은 사내를 이렇게 불렀다.
천마.
一章 배신(背信)(1)
대륙의 서쪽.
하얀 눈으로 뒤덮인 웅장한 산의 정상에는 흑색의 거대한 성이 자리 잡고 있었다.
천마성(天魔城).
마의 하늘이라 불리는 천마신교의 본거지였다.
천마성이 있는 천산에서도 최정상에 위치한 천마궁에는 한 명의 소년이 여유롭게 차를 즐기고 있었다.
소년은 뚜렷한 이목구비를 가지고 있었다.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깊은 눈은 감정을 느낄 수 없었고 굳게 다문 입술에서는 굳건한 의지가 느껴졌다.
범상치 않은 기운을 풍기는 소년의 이름은 단현으로 당대 천마신교의 교주였다.
단현의 나이는 아직 열다섯밖에 되지 않았다.
그런 그가 어떻게 마도의 정점에서 군림하는 천마신교의 교주가 될 수 있었을까?
그 이유는 의외로 간단했다.
천마신교의 창시자인 천마 단휘의 피를 이어받았기 때문이다.
천마를 숭배하는 천마신교에서 천마 단휘의 직계 후손이라는 것은 대단히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 천마의 피를 이어받은 자들은 특별했다.
불사에 가까운 능력을 지니고 있었으며 가공할 천마의 무학을 구현해 내며 언제나 강자존의 마도에서 절대강자로 군림해 왔다.
그렇기에 단현은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마교의 교주직을 이어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벌써 삼 년 전의 일이다.
‘어제는 천문이 어지러웠다. 오늘은 중원 어디에선가 불길한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겠군.’
겨우 십오세의 소년에 불과한 단현이 간밤에 읽은 천문의 혼란스러움을 떠올렸다.
그랬다.
지금까지 천마의 후손이 그랬던 것처럼 단현도 천마의 후손답게 특별했다.
하지만 그 속에는 오직 단현만이, 아니, 천마의 후손 중에서도 천마신교의 교주직을 이어 온 사람들만이 알고 있는 비밀이 있었다.
천마령혼(天魔靈魂).
천마령혼은 천마 단휘가 마공이라는 가공할 무공의 심득을 얻어 창조한 마령으로 신묘한 힘을 간직하고 있다고 했다.
천마령혼은 그것을 소유한 것만으로도 천마기라는 천마 고유의 내공을 사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천마의 힘이라 추측되는 상식을 벗어난 절대자의 힘을 사용할 수 있는 등 여러 가지 권능을 구현할 수 있게 된다고 했다.
천마령혼이라는 신물이 존재하고 있었기에 대대로 마교의 교주직을 이어받은 천마의 후손들이 마의 정점에 설 수 있었던 것이다.
단현 역시 천마신교의 전대 교주이자 아버지인 단청으로부터 천마령혼을 이어받았다.
천마령혼에는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여러 가지 특성이 존재했다.
그러한 특성 중의 하나는 천마령혼이 무형의 기운이라는 것과 오직 단가의 피에만 반응을 보인다는 것이었다.
지금도 천마령혼의 비상식적인 권능들은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다.
이러한 특성이 있었기에 천마령혼의 비밀은 오직 천마신교의 교주에게서 교주로 그 누구도 모른 채 지금까지 이어져 올 수 있었던 것이다.
차를 다 마신 단현은 신형을 일으켜 언제나처럼 천마궁의 연공실로 향했다.
천마궁은 천마신교의 오랜 역사와 함께 천마신교의 교주들이 머물러 온 곳이다.
천마궁이 언제 누구의 손에 의해서 만들어졌는지 확실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지만 천마궁은 천마성 속의 또 다른 하나의 요새였다.
천마궁은 크게 내궁과 외궁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천마신교의 역대 교주들은 보통 외궁에서 업무를 보고 내궁에서 생활했다.
천마궁의 내궁은 오직 천마신교의 교주만이 출입할 수 있는 금역이었다.
그리고 천마궁의 내궁에는 오직 천마신교의 교주만이 익힐 수 있는 천마기라는 특별한 내공에만 반응하는 기관이 다수 존재했다.
이 기관은 오직 천마기에만 반응하기에 천마신교의 교주가 아니라면 천하의 그 누구도 열 수 없었다.
그 기관 넘어 비밀스러운 공간에는 천마무학의 정수와 역대 교주들이 심혈을 기울여 모아 둔 각종 비급과 보물들이 가득했다.
단현은 연공실로 들어섰다.
단현은 아직 어렸고 그동안 천마신교의 전례에 따라 천마신교 내의 대부분의 업무는 부교주인 조영이 단현을 대신해 처리하고 있었다.
아직 단현이 천마신교 내의 업무를 직접 처리하기에는 어렸다. 단현뿐만이 아니라 그동안 천마신교의 역대 교주들은 교내의 업무를 처리하는 것에 대부분 무심했다.
사실 교 내의 업무라는 것들이 지력을 소모하는 막대한 노동과 같아서 천마신교의 교주들은 대부분 그러한 업무에 치중하지 않고 자신의 무공을 증진시키는데 시간을 할애했다.
때문에 천마신교의 교주들은 중요한 일들이 아니면 교 내의 업무들을 부교주에게 위임했고 그것이 어느 사이에 당연한 것처럼 이어지기 시작했다.
덕분에 단현은 하루의 대부분을 연공실에서 보냈다.
단현이 연공실에 들어서서 연공실 내의 한쪽 벽면에 손을 대고 천마기를 운용하자 드르륵 하는 소리와 함께 비밀 공간이 모습을 드러냈다.
단현이 안으로 들어서자 문은 다시 본래의 자리로 돌아갔다.
단현은 비밀 공간 안의 서고로 들어서서 몇 권의 책을 뽑아 읽기 시작했다.
단현의 암기력은 대단해서 서고 안에 있는 책을 거의 외우고 있었다.
단현이 크게 심호흡을 하며 마지막으로 읽지 않은 책을 꺼냈다.
천마신공(天魔神功).
천마 단휘의 마지막 심득이자 천마 무공의 최종 단계.
이제는 전설이 된 최강의 마공이자 당대에 존재하는 모든 무공을 통틀어 가장 강한 무공으로 공인된 절대무학.
하지만 역대 천마신교의 교주들 중 천마 단휘 이후로 천마신공을 완성한 무인은 없다고 했다.
단현이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천마신공을 펼쳐 사라락 넘겼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암기력이 특출한 단현은 단 한 번의 손짓만으로 천마신공의 모든 구결을 외워 버렸다.
마침내 단현은 천마궁의 비밀 서고 안에 있는 모든 비급을 외웠다.
천마신교 역사상 전무후무한 일이었지만 단현은 그것을 모르고 있었다.
외우기는 하였지만 단현은 아직 천마신공의 무공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다.
천마신공뿐만이 아니라 단현은 수많은 무공들을 외우고 있었지만 구현하지는 못했다.
무공이라는 것이 외워서 사용할 수 있다면 누구나 무공을 익히고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무공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다시 심득이라는 과정이 필요했다.
스스로 무공을 이해하고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
같은 무공이라도 심득의 차이에 의해 구현되는 무공의 위력은 판이하게 다르다.
문득 단현은 자신의 왼손 약지에 끼워진 흑색의 반지를 바라보았다.
흑색의 반지는 영롱하면서도 오묘한 흑광을 뿜어내고 있었는데 천마사환(天魔絲環)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천마사환은 천마신교의 교주를 상징하는 세 가지 신물 중 하나였다.
천마사환을 보니 단현은 자연스럽게 자신의 아버지인 단청의 모습이 떠올랐다.
“현아야. 천하에서 여인을 믿고 의지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단다.”
단현의 기억 속에 단청이 남겨 준 마지막 말이 떠올랐다.
하지만 단현은 지금도 단청의 이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아버님은 어찌하여 천하에서 여인을 믿고 의지하는 것이 어리석은 일이라 하셨을까? 모름지기 사람이란 남녀를 불문하고 믿어서는 안 되는 것인데.’
단현이 이런 생각을 가진 데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다.
천마신교에는 완전하지는 않아도 그동안의 대략적인 천마신교의 역사가 남아 있었다.
그리고 단현은 천마신교의 역사 속에서 강자존의 처절함과 비열한 인간의 군상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당장 자신에게 그런 말을 남긴 단청만 하여도 겨우 열두 살에 불과했던 단현을 버리고 천마신교를 떠났다.
지금도 단현은 그 이유를 모른다.
아니, 천마신교의 누구도 그 이유를 모르는 것 같았다.
이제 와서 단현에게 그 이유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단현은 유난히 조심스러운 점이 많았다.
단현은 천마궁을 손에 넣게 되면서 엄청난 무공과 재물을 함께 손에 넣었다.
어린 나이에 들떠서 누군가에게 이야기할 법도 했지만 단현은 이러한 사실을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심지어 자신의 어머니에게도.
그리고 단현은 단청에게서 물려받은 교주를 상징하는 세 가지 신물을 아직 제 것으로 만들지 못했다.
세 가지 신물은 모두 마의 힘을 내재하고 있는 마도 제일의 신물들이었다.
천마기로 신물들의 기운을 억제하고 제어하지 못한다면 역으로 주인을 공격하여 미쳐 버리게 만든다고 했다.
단현은 지금도 세 가지 신물을 제어하지 못한 날의 고통을 잊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나이가 어린 단현은 삼 년의 시간 동안 천마기를 쌓았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신물들을 다스릴만한 천마기를 가지지 못했다.
때문에 단현이 지금 끼고 있는 천마사환은 실은 아주 정교한 모조품이었다.
단현은 천마 단휘의 후손이고 아직 나이가 어린 탓에 온전히 천마의 무학을 잇지는 못했지만 교주의 상징인 신물을 제어하지 못한다는 것은 스스로 말도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에 단현은 아무에게도 이 사실을 알리지 않고 직접 심혈을 기울여 천마사환을 비롯한 세 가지 신물을 모조했다.
진짜 천마사환은 그 속에 보검과 비견되는 실검이 감춰져 있을 뿐만 아니라 외기를 순식간에 내기로 전환시킬 수 있는 신비한 힘이 내재되어 있다고 단현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천하에 단현과 단청 정도였고 단현이 만든 가짜 천마사환은 단지 겉모습이 눈으로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똑같다는 것뿐이었다.
물론 그 정도의 모조품을 만드는 것만 해도 단현은 엄청난 고생을 했고 그것으로 주위의 시선을 속일 수 있었으니 그것만으로 모조된 세 가지 신물은 제 역할을 다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