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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탄 로드 1(23화)
chapter 8. 얻어 걸린 대박(3)


루인이 하려는 것. 그것은 바로 의지로 상처를 치유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본래 루인의 정신에 기생한 렉토-헬리온-쿠브린의 능력이었다. 렉토-헬리온-쿠브린은 그 능력으로 완전히 박살 난 루인의 몸을 정상으로 되돌렸다.
루인은 그 정도의 능력까지 발휘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상처 치유는 가능했다.
루인이 킨델베르 숲에서 무사했던 것은 바로 이 치유 능력 때문이었다. 아무리 윌포스가 있다고 해도 경험이 부족한 루인이 상처를 입지 않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렇게 의지로 상처를 치유할 수 있었기에 무사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자신의 몸을 치유하는 방법이었다. 타인의 몸을 치유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고, 된다고 해도 자신의 몸을 치료할 때만큼 효과를 발휘할지 알 수 없었다.
그렇지만 당장 아라사의 치료를 할 방법이 존재하지 않았기에 이 방법에 걸어 볼 수밖에 없었다.
루인은 최대한 의지를 모았다. 그럼에도 상처에서 흐르는 피는 줄어들 줄을 몰랐다. 아라사의 얼굴은 점점 창백하게 변해 갔다.
루인은 이를 악물고는 간절하게 바랐다.
‘제발, 제발, 제발, 멈춰!’
그 순간 흘러나오는 피가 조금 줄어들었다. 루인의 치료가 효과를 보인 것이었다.
루인은 계속해서 간절히 열망했다.
상처 난 내장이 원래대로 돌아가고, 찢어진 피부가 다시 붙고, 끊어진 피부가 다시 이어진다.
루인의 의지에 따라 아라사의 몸은 조금씩 치유되기 시작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피가 흐르지 않기 시작했다.
“하아.”
그제야 루인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는 어느 정도 안정세에 접어들었다.
루인은 치료를 중지했다.
계속 의지를 불어넣는다고 해도 이전과 같은 효과를 볼 것 같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언제까지 하르에게 맡겨 둘 수는 없었다.
루인이 하르를 향해 말했다.
“하르, 이제 내가 할게.”
“히잉. 왜 이렇게 늦었어? 1시간이나 걸리고. 어쨌든 이제 유니온할 수 있는 거지?”
“응.”
“당장 저 건방진 놈들 해치워 버려!”
루인은 유니온하겠다고 생각했다. 그 순간 루인은 하르실리온과 하나가 되었다.
몸 곳곳에서 화끈한 통증이 느껴졌다.
유니온하면 하르실리온과 감각을 공유한다. 통증이 느껴진다는 것은 그만큼 당했다는 걸 뜻했다.
루인은 하르에게 새삼 미안한 마음을 느꼈다.
‘내가 너무 이기적으로 생각했구나. 하르, 앞으로 되도록 자주 부를게.’
루인은 그렇게 다짐했다.
하르실리온이 알았다면 방방 뛰며 좋아했을 일이지만, 하르실리온은 루인의 마음을 눈치채지 못했다.
하르실리온은 아라사를 경계하느라 바빴다.
‘얼굴이 제법 예쁘장하잖아. 이씨.’
루인은 침착하게 상황을 살폈다. 세 기의 센티넬이 하르실리온을 포위하고 있었다.
슈론토로 달려가던 센티넬이 뒤늦게 상황을 알고는 추적에 합류했기에 숫자가 세 기였다.
루인은 그러한 사실을 알 수 없었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눈앞에 보이는 세 기의 센티넬을 쓰러뜨리는 일이다.
단장이 으르렁거리며 말했다.
“건방진 놈. 지금까지 잘도 도망 다녔겠다. 하지만 그것도 이제 끝이다. 슈론토 기사의 무서움을 똑똑히 보여 주마.”
하르실리온은 지금까지 센티넬과 전투를 벌이는 대신 도망 다녔다. 언제 잡혀도 이상하지 않을, 아슬아슬한 도주였다. 하르실리온의 전신에 생겨난 손상으로 그 치열함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렇게 간신히 도망 다니다 루인과 교대했다. 그때 약간의 틈이 생겼고 센티넬들이 하르실리온을 포위한 것이었다.
단장이 성난 목소리로 소리쳤다.
“공격!”
단장의 신호가 떨어지는 순간, 세 기의 센티넬이 동시에 공격했다.
윌포스를 사용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3대 1로 싸워 이긴다고 자신할 수도 없었다.
쌍검에 익숙치 않기도 했지만, 나이트암 전투를 경험해 보지 못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하르실리온은 쌍검을 어깨 위로 들어 올렸다. 그러고는 그대로 던져 버렸다.
쌍검은 단장이 탄 센티넬과 다른 한 기의 센티넬로 날아갔다.
설마 무기를, 그것도 두 개 모두 던져 버릴 거라고는 생각 못했기에 단장과 기사는 다급하게 날아오는 검을 방어했다.
카캉, 캉.
단장은 그리 어렵지 않게 루인의 공격을 막아 냈다. 기사 역시 당황하기는 했지만 어렵지 않게 방어했다.
단장과 기사 한 명이 그렇게 방어를 하는 동안, 루인은 맨손으로 나머지 한 기의 센티넬을 공격해 들어갔다.
어차피 쌍검술은 아직 익숙치 않다. 그렇다면 두 개의 검으로 두 기의 센티넬을 견제하고 남은 한 기의 센티넬을 최대한 빠르게 처리하는 게 더 좋다.
그게 루인의 판단이었다.
루인에게 공격당하는 센티넬의 기사는 얼굴에 비웃음을 띠었다.
무기 두 개를 던져 버릴 땐 놀라기도 했다. 하지만 맨손으로 자신에게 공격해 오다니 정말 가소로웠다.
나이트암의 손에는 수많은 가동부가 몰려 있다. 그만큼 충격에 약하기도 했다.
“멍청한 놈. 그렇게 죽고 싶다면 내가 죽여 주지.”
센티넬의 검이 강한 힘을 싣고 하르실리온을 향해 찔러 들어왔다. 검의 진로에 있는 것은 하르실리온의 손.
기사는 자신의 검이 그 손을 부수고 가슴까지 도달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캉!
놀랍게도 검의 전진은 하르실리온의 손에 잡히는 순간 멈추고 말았다. 하르실리온의 손에는 아무런 파손도 발생하지 않았다.
기사의 두 눈이 놀람으로 부릅떠졌다.
수라타의 수법 중에는 신체를 강철보다 단단하게 만드는 방법도 있었다. 루인은 그 방법을 사용해 하르실리온의 손을 비약적으로 강화시켰다.
쉽지 않은 일이었고 마나의 소모도 많았다. 하지만 그만큼의 효과는 있었다.
기사는 상식적이지 않은 결과에 당황했고 그 덕분에 틈이 생기고 말았다.
센티넬의 검을 잡고 있는 것은 하르실리온의 왼손. 하르실리온이 왼손을 자신 쪽으로 끌어당기자 센티넬의 몸도 앞으로 딸려 왔다.
그제서야 기사는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지만 이미 늦은 상태였다.
손을 강철보다 단단하게 할 수 있다면, 방어뿐 아니라 공격에도 매우 효과적으로 쓸 수 있다.
빳빳하게 세운 하르실리온의 오른손이 센티넬의 검을 잡은 손을 향해 도끼처럼 내리꽂혔다.
콰드득!
하르실리온의 수도는 센티넬의 손을 부순다기보다는 아예 잘라 버렸다.
센티넬이 다급하게 왼손에 들고 있던 방패로 하르실리온을 후려치려 했다. 하지만 하르실리온은 이미 다음 동작을 수행하고 있었다.
하르실리온은 손을 내리꽂던 기세 그대로 몸 전체를 바닥에 드러눕듯 낮추었다. 그 덕분에 센티넬의 방패는 하르실리온의 등 위 허공을 지나가고 말았다.
방패는 검보다 훨씬 무겁고 부피도 크다. 공격에 사용했다가 실패했을 때의 빈틈도 그만큼 커진다.
방패가 휘둘러지던 관성 때문에 센티넬의 몸이 휘청하고 흔들렸다. 센티넬이 왼발을 앞으로 한 발 내디디며 다급하게 몸의 균형을 찾으려 했다.
하르실리온의 몸은 바닥에 눕다시피 한 상태로 풍차처럼 회전했다. 원심력을 잔뜩 받은 하르실리온의 다리가 센티넬의 왼발을 그대로 후려 찼다.
콰드득.
센티넬의 왼발이 충돌에 의한 타격으로 우그러지며 옆으로 완전히 밀려났다. 디딤발이 제구실을 못하니 결과는 자명하다.
센티넬은 균형을 잃고는 옆으로 그대로 쓰러졌다.
쿠웅!
6밀짜리 강철 거인이 넘어지며 지축을 울렸다.
낙하의 충격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6밀이라는 높이도 문제이지만, 센티넬과 땅이 충돌하며 발생한 충격이 기사에게 고스란히 전해진 것이 더욱 큰 문제였다.
아무리 나이트의 경지에 오른 자라도 그 정도의 충격에 무사하긴 힘들다. 기사는 순간적으로 의식을 잃었다.
하르실리온이 쌍검을 던지고 센티넬이 바닥에 넘어지기까지는 그야말로 한순간에 일어난 일이다.
그야말로 전무후무한 결과다.
나이트암끼리의 전투는 묵직하고 지속적으로 이루어지지 지금처럼 빠르고 격렬하게 행해지지 않는다.
상대가 센티넬이라고 해도 그건 마찬가지다.
덕분에 단장과 다른 기사는 아무런 손을 쓰지 못했다.
겨우 상황을 파악한 단장은 당장 하르실리온을 공격하려 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그의 입이 비명을 질렀다.
“멈춰라!”
루인은 멈출 생각이 없었다.
하르실리온의 손에는 센티넬에게 빼앗은 검이 들려 있었다. 하르실리온은 그 검을 센티넬의 머리 부분을 향해 망설이 없이 찔러 넣었다.
모든 나이트암의 머리 부분에는 구멍이 존재한다. 탑승하는 나이트가 바깥을 보기 위해서 만들어진 구멍이다. 하지만 그 구멍은 상당히 교묘하게 만들어져 있기에, 그 구멍을 통해 공격하는 건 그리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지만 기사가 정신을 잃어 아무런 움직임도 없다면 그런 어려움도 무의미하다.
푸욱. 콰가각.
기사의 몸에 비하면 센티넬의 검은 월등히 크다. 검은 기사의 몸을 절반으로 잘라 버린 것으로 모자라 나이트암의 안쪽까지 파고 들어갔다.
단장이 분노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무저항인 자를 죽이다니. 네놈이 그러고도 기사냐!”
루인은 실소가 지어졌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아라사를 향해 파렴치한 욕망을 뿜어내던 자가 그런 말을 하다니 우스울 뿐이었다.
“착각하신 것 같군요. 제가 타고 있는 건 나이트암이 아닙니다. 그리고 전 기사도 아니고요. 기사가 당신 같은 작자들이라면 되고 싶은 마음도 없습니다.”
“가, 감히 기사를 모욕하다니! 네놈을 절대 곱게 죽이지 않겠다.”
“모욕할 만하니까…….”
단장의 센티넬을 향해 하르실리온이 짓쳐 들어갔다.
갑작스러운 돌진에도 단장은 당황하지 않고 검을 들어 하르실리온의 공격에 대비했다.
기사의 센티넬도 하르실리온의 뒤쪽으로 다가섰다.
“……하는 거다!”
강한 힘을 담아 하르실리온이 검을 휘둘렀다. 앞으로 달려 나가던 힘까지 실려 있기에 그냥 휘두르는 것보다는 훨씬 강한 힘이 담긴 공격이었다.
단장의 센티넬은 지지 않겠다는 듯 정면으로 하르실리온의 공격을 받아 냈다.
기체의 성능은 하르실리온이 앞서고 탑승자의 실력은 단장이 앞선다. 하르실리온은 돌격이라는 이점을 가지고 있지만 단장은 경험이라는 무시할 수 없는 무기를 가지고 있다. 덕분에 두 기체는 팽팽하게 격돌했다.
쾅!
검과 검이 충돌하며 폭음이 울린다.
단장의 센티넬이 한 걸음 물러나기는 했지만 그건 하르실리온의 힘에 밀려서 그런 건 아니었다. 하르실리온의 공격에 담긴 힘을 흘리고 약화시키기 위해 일부러 한 걸음 물러난 것이었다. 덕분에 단장은 무난하게 하르실리온의 공격을 막아 냈다.
하르실리온과 단장의 센티넬의 기세는 백중세. 문제는 하르실리온의 뒤에서 검을 들고 달려드는 기사의 센티넬이다.
하르실리온의 검과 단장이 탄 센티넬의 검이 맞붙어 있는 상태. 하르실리온은 밀듯이 앞으로 검을 뻗었다.
기체의 힘 자체는 하르실리온이 강했기에 단장의 센티넬은 다시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 순간, 기사의 센티넬은 하르실리온의 등을 향해 막 검을 찔러 넣고 있었다.
하르실리온은 단장의 센티넬을 밀어내는 힘을 이용해 뒤로 물러났다. 동시에 무릎을 굽혀 몸을 낮추었다.
덕분에 등을 노리던 검은 하르실리온의 어깨 위 허공을 베고 말았다. 그건 정면이 비어 버리는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루인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하르실리온은 빠르게 뒤로 몸을 날렸다. 하르실리온의 등과 센티넬의 가슴은 거칠게 충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