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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탄 로드 1(21화)
chapter 7. 센티넬(3)


아라사는 기사들의 공격을 기다리지 않았다. 센티넬의 공격을 정면에서 받아 낸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능동적으로 움직여 최대한 직격을 피해야 했다.
아라사는 앞으로 달려 나가며 수평으로 그레이트 액스를 휘둘렀다. 그 목표는 센티넬의 종아리 부분.
쾅!
아라사의 그레이트 액스에 담긴 힘이 얼마나 강했는지 센티넬끼리 격돌한 것 같은 폭음이 울렸다.
게다가 믿을 수 없게도 그레이트 액스와 충돌한 부분이 움푹 패이기까지 했다.
중병기의 무게에 훈볼트 족의 힘과 마나, 고도로 수련 된 도끼술이 결합되어 만들어진 결과였다.
사람이 센티넬에 상처를 냈다는 건 분명 놀라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런 놀라운 일을 한 아라사의 표정은 결코 밝지 않았다.
혼신의 힘을 담은 일격이었다. 그런데 고작 5세밀 정도의 손상을 만드는 것이 끝이었다.
5세밀은 분명 깊은 타격이었지만 그 대상이 센티넬이란 것을 감안하면 흠집에 불가했다.
장갑을 뚫지 못했기에 안쪽 구동부에는 아무런 손상이 없었다. 센티넬의 움직임에 아무런 방해가 없다는 의미였다.
약간 실망하기는 했지만 그 결과에 얽매이지는 않았다. 아라사의 목표는 기사들의 신경을 자신에게 집중시키는 것인데다, 실망하고 있을 여유가 없기도 했다.
“개 같은 년이!”
공격당한 기사가 분노하며 소리쳤다. 센티넬이 매서운 기세로 아라사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당장 몸을 반쪽 낼 기세였다.
나이트암도 아니고, 상급의 몬스터에게 당한 것도 아니었다. 사람을 상대하다 센티넬에 손상을 입었다는 것은 엄청난 굴욕이었다. 그렇기에 기사는 흥분해서 검을 휘둘렀다.
기사의 살기 어린 공격에 다른 기사들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반면, 공격당하는 아라사는 여유로웠다. 흥분한 만큼 공격의 형태가 단조로워지기 때문이다.
어차피 한 번 공격당하면 끝이다. 방어는 생각도 할 수 없다. 피하는 것이 유일한 대처법인데 그 피하기가 더 쉬워졌다.
아라사는 센티넬의 검격을 피한 뒤 다시 한 번 그레이트 액스를 휘둘렀다. 목표는 처음의 공격한 곳이었다.
중병기라는 것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아라사의 공격은 빠르고 정확하게 들어갔다. 처음보다 공격의 위력은 약했지만 이미 장갑이 손상된 상태였다.
아라사의 그레이트 액스는 장갑을 찢고 안쪽까지 박혔다.
퍽. 파박.
센티넬의 종아리 안쪽에서 무언가 끊어지는 소리가 나며, 센티넬의 몸이 흔들거렸다.
한 번 더 공격하면 완전히 고장 낼 수 있을 것도 같았지만 아라사는 미련을 버리고 뒤로 성큼 물러났다.
아라사의 판단은 옳았다.
쿵.
센티넬의 검이 아라사의 몸이 있던 곳을 지나 땅에 강하게 박혔다.
지금까지 다른 센티넬들은 포위만 유지할 뿐 아라사를 공격하지 않고 있었다. 한 기만 움직여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하지만 아라사가 센티넬의 다리를 손상시켜 기사들의 생각이 바뀌었다. 센티넬은 비싼 가격만큼 수리비도 많이 든다. 잘못하다간 그 수리비를 기사들 자신이 부담할지도 모른다.
다른 센티넬이 아라사를 공격하려 했다.
하지만 아라사가 한발 더 빨랐다. 미처 기사들이 대응하기 전에 아라사는 센티넬 한 기에 바짝 다가섰다. 처음 공격한 센티넬이 아니라 다른 센티넬이었다.
아라사의 그레이트 액스가 수직으로 떨어져 내렸다. 노리는 것은 센티넬의 무릎관절 부분이었다.
쩡.
그레이트 액스는 센티넬의 무릎관절에 명중했다. 하지만 정작 공격 자체는 실패였다.
센티넬은 그레이트 액스가 강타하기 직전 무릎 부분을 앞으로 슬쩍 내밀었다.
공격해 오는 곳에 들이밀었으니 타격은 더 클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타점이 흐트러졌기 때문이다.
원래 공격이란 명중하는 순간 가장 큰 위력을 내게 된다. 그때의 명중 지점이 타점이다.
타점을 벗어나 공격이 이루어지면 위력이 현저히 줄어든다. 타점에 모든 힘이 집중되기 때문이다.
아라사의 공격 타점은 흐트러졌고 덕분에 위력은 반감되었다. 약한 위력은 강철 갑주에 아무런 타격을 줄 수 없었다.
도리어 반탄 된 힘에 아라사의 손아귀가 상처를 입었다.
센티넬은 아라사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아라사는 서둘러 검격을 피했다.
공격은 쉽게 피했지만 상황은 매우 다급했다. 또 다른 센티넬의 검이 아라사를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공격을 피하느라 아라사의 자세는 살짝 흐트러진 상태. 이 상태로 다시 한 번 센티넬의 검을 피한다면 자세가 완전히 흐트러져 버리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아라사는 무리해서 몸을 틀었고 겨우 피할 수 있었다.
완전히 자세가 흐트러진 아라사. 그런 아라사를 향해 또 검이 날아들고 있었다.
아라사는 혼자인데 반해 저들은 넷. 애초에 일대일로 싸워도 상대가 되지 않는데 4기의 센티넬을 상대로 이기는 건 불가능했다.
아라사는 필사적으로 몸을 틀었고 겨우 공격을 피해 낼 수 있었다. 하지만 또 거대한 검이 공격해 오고 있었다.
아라사는 피하고 또 피했다. 아슬아슬하긴 하지만 겨우 버티고 있었다. 그건 아라사의 능력이 뛰어나서이기도 하지만, 기사들이 아라사를 상처 입히지 않고 잡으려 하는 영향이 더 컸다.
아라사 역시 기사들의 목적을 눈치챘지만 어울려 주었다. 이렇게 어울려 주면 기사들의 신경을 집중시킬 수 있고, 조금씩 움직여 루인이 숨어 있는 곳과 멀어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라사의 목적과 기사들의 목적이 어울려 연극 같은 전투가 계속되었다. 하지만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무리하던 아라사는 결국 검을 피할 타이밍을 놓쳤다.
기사 역시 갑작스런 사태에 힘을 줄이지 못한 상황.
거대한 힘을 담은 검이 아라사를 향해 그대로 떨어졌다.
아라사는 그레이트 액스 두 자루를 교차시켜 센티넬의 검을 방어했다. 막는 것보다는 힘을 흘리는 것에 주력했다. 하지만 검에 담긴 힘은 너무나 컸다.
쾅! 쩌적. 쩡.
힘을 이기지 못한 그레이트 액스가 산산조각 났다. 원래 도끼를 주로 사용했던 아라사가 도망치며 장식용으로 걸려 있던 그레이트 액스를 챙긴 것이었다. 모양은 좋았지만 강도 자체는 그리 강하지 않았기에 결국 박살 난 것이었다.
그레이트 액스가 부러지는 순간 아라사는 튕겨 나갔다. 센티넬의 검에 담겨 있던 힘은 그것으로 상쇄되었지만 아라사의 상황은 결코 좋지 못했다.
그레이트 액스의 파편 하나가 아라사의 옆구리에 박혀 있었다. 꽤 깊게 박혀 있었는데 그 자리에서 피가 조금씩 새어 나왔다.
지금은 파편이 박혀 있어서 이 정도이지만 파편을 뽑는다면 피와 내장이 쏟아져 나올 정도로 큰 상처였다.
단장이 신경질적인 어투로 말했다.
“멍청한 놈! 죽으면 네놈이 책임질 테냐?”
아라사를 공격한 센티넬의 기사가 억눌린 어투로 대답했다.
“죄송합니다.”
“당장 이동한다. 이년이 어떻게 되는 건 상관없지만 최소한 아이는 낳을 수 있어야 한다. 네놈은 당장 최고 속도로 슈론토로 달려가서 이년을 치료할 준비를 해 놓아라.”
“예!”
대답한 센티넬은 슈론토가 있는 곳을 향해 빠르게 달려갔다.
단장은 센티넬의 팔을 뻗어 아라사를 잡았다. 그러고는 들어 올렸다.
“돌아간다!”
센티넬들이 슈론토를 향해 한 걸음 내딛었을 때였다. 뒤쪽에서 낭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건 곤란하군요. 그녀를 내려놓으세요.”
단장이 몸을 돌려 뒤쪽을 바라보았다. 그건 다른 기사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곳에 있는 것은 흉악하게 생긴 소년, 루인이었다.
단장과 기사들은 기가 차서 콧방귀를 뀌었다. 하지만 그들은 이내 경악한 표정으로 눈을 부릅떠야 했다.
루인이 외쳤다.
“하르실리온!”
그 순간.
공간이, 열렸다.



chapter 8. 얻어 걸린 대박(1)


루인은 아라사의 말에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그러고는 첫 살인이라는, 어떻게 보면 매우 사소한 것이지만, 또 어떻게 보면 매우 중대한 행위에 대한 사색에 빠져들었다.
생각에 빠져 버렸기에 루인은 아라사가 이끄는 대로 끌려다녔다. 나무 아래에 들어간 뒤에도 계속해서 생각에 빠져 있었다.
루인이 생각에서 빠져나온 것은 아라사가 쓰러지는 모습을 보고 나서였다. 그녀의 상처 입은 모습을 보는 순간 자신의 고민이 너무나 사소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손에 피를 묻히는 것이 그렇게 두렵단 말이냐? 그런 식으로 거짓된 깨끗함을 유지하고 싶은 거냐? 눈앞의 상처 입은 여인을 방치할 정도로 그게 그렇게 가치 있는 것이냐? 한심하구나. 나란 놈은.’
루인은 바깥으로 나왔다. 그러고는 현실과 대면했다.
자신에게는 저들을 물리칠 힘이 있었다.
하르실리온이 박살 난 지도 어느덧 두 달이 넘게 지났다. 하르실리온이 완전히 수리되어 다시 나타난 것은 4일 전이었다.
그럼에도 함께 다니지 않은 것은 하르실리온의 존재를 숨기기 위해서였다. 하르실리온은 보통의 나이트암과 너무도 달랐다.
예전에는 그저 ‘머리 부분이 조금 다르구나.’라고 단순하게 생각했지만, 센티넬과 직접 대면하면서 그 차이를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새롭게 등장한 기이한 나이트암. 누구라도 호기심을 가질 것이다. 게다가 그 주인의 능력은 그리 강하지 않은데 나이트암의 능력이 월등히 강하다면 누구라도 욕심낼 것이다.
루인은 자신이 어느 정도 힘을 기를 때까지 하르실리온의 존재를 숨길 생각이었다. 그리고 만약 그전에 하르실리온의 존재를 들킨다면 본 사람을 모두 죽일 생각이었다.
“하르실리온!”
루인이 외치는 순간 아공간이 열렸다. 그 열린 공간을 통해 녹색의 날렵하게 생긴 강철 거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루인은 바로 심퍼사이즈를 시도했다.
허공으로 떠오른 루인의 몸이 흡수되듯 하르실리온의 몸 안으로 들어갔다.
기사들은 그 장면을 경악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건 센티넬의 손에 잡혀 있는 아라사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르실리온의 존재 자체도 놀라운 건 맞았다. 하지만 그들을 패닉에 빠뜨린 것은 다른 이유였다.
공간 마법.
분명 공간이 열리고 강철 거인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2000년 전, 마법시대가 끝나고, 마공학시대가 시작되며 사라졌다고 알려진 공간 마법이었다.
그게 아니라면 아무것도 없던 곳에서 6밀의 강철 거인이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말도 안 된다.
그 때문에 루인을 제외한 모든 이들은 패닉에 잠겨 있었다. 그 시간은 루인에게 매우 유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