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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탄 로드 1(18화)
chapter 6. 헌팅(3)
두두두두두.
30명의 기마대가 일제히 달린다. 그들 중 선두의 4명은 단순한 기병이 아니라 마나를 적극적으로 이용하여 인간의 한계를 벗어난 힘을 내는 나이트다.
30명이 쫓고 있는 것은 한 명의 여인이었다.
여인의 속도는 기이할 정도로 빨랐다. 말을 타고 추적하고 있음에도 거리가 쉽사리 좁혀지지는 않았다.
나이트 중 한 명이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도대체 관리를 어떻게 했길래 저년이 도망친 거야? 저년 잡느라 뛰어다닌 시간이 한 달이다. 그런데 그걸 그대로 놓쳐 버린 거야? 어떤 병신 같은 새끼가 일을 이따위로 처리한 거야!”
다른 기사 하나가 그 말에 대답했다.
“루벤이 관리하고 있었습니다.”
“그 새끼 평민 출신이었지? 이래서 평민 출신은 쓰면 안 되는 거야. 주제도 모르고 나이트라고 나대니까 이런 일이 생기지. 슈론토로 돌아가면 그 새끼부터 당장 죽여 버린다.”
신경질적으로 소리치는 나이트는 크랄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슈론토의 실세 중 한 명이었고, 그 자신의 실력도 나이트 중급에 올라 있었다. 그 때문인지 성격이 상당히 오만하고 다른 사람을 아래로 보는 습성이 있었다.
슈론토 기사단의 같은 단원이면서 다른 기사에게 하대하는 것은 크랄의 이러한 성격 때문이다. 다른 기사들은 그에 불만을 가지고 있었지만 겉으로 표현하지는 않았다. 그랬다가는 기사단에서 쫓겨나는 것은 예사고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을 수도 있었다.
크랄의 눈 밖에 났으니 루벤이란 자의 기사 생활도 끝이라 할 수 있었다. 아무런 배경이 없는 평민이다 보니 그건 더욱 확실했다.
기사들 중 두 명은 크랄의 이러한 반응에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크랄과 함께 루벤이란 자에게 분통을 터뜨렸다.
하지만 남은 한 명의 기사는 표정이 어두워졌다. 크랄의 말에 대답했던 기사였다. 그의 이름은 힐슨, 루벤과 마찬가지로 평민에서 기사가 된 자였다.
씩씩거리던 크랄의 눈이 힐슨을 향했다. 힐슨은 애써 크랄의 시선을 무시하며 추적하고 있는 여인을 주시했다.
그때 크랄이 입꼬리를 비틀어 올리며 입을 열었다.
“어이, 힐슨. 네놈도 평민 출신이었지?”
“……예, 그렇습니다.”
“뭐해? 이 새끼야! 평민 놈이 잘못했으면 평민인 네놈이 처리해야지. 그걸 나한테까지 오게 만들어?”
“저 여인은 꼭 잡겠습니다.”
크랄이 으르렁거리며 소리쳤다.
“말만 하면 끝이야? 당장 가서 안 잡아? 오호라, 그러고 보니 이상해. 감옥에 갇혀 있던 년이 어떻게 그곳을 빠져나왔을까? 혹시 루벤 새끼가 일부러 놓아준 거 아냐? 네놈도 일부러 안 잡으려 하는 거고? 감히 영주님의 명령을 어기다니? 반란이라도 일으킬 셈이냐!”
힐슨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소리쳤다.
“그, 그렇지 않습니다!”
반란죄는 혼자 죽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만약 평민이 반란을 일으킨다면 그와 관련된 주변 인물들을 모조리 죽여 버린다.
힐슨의 얼굴에 당혹감이 깃들었다. 크랄이 분명 억지를 쓰고 있는 게 확실했다. 하지만 힘을 가진 것은 크랄이고 그가 작정하고 덤벼들면 힐슨은 반란죄로 체포될 수밖에 없다.
크랄이 다시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그럼 그 증거를 보여라. 당장 가서 저년을 잡아!”
힐슨은 좌절 어린 표정을 지은 채 침중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힐슨은 말이 달리는 것에 박차를 가했다. 그러자 말의 속도가 조금씩 빨라지기 시작했다. 당장은 조금 빨라졌지만 무리하고 있는 것이었기에 조만간 말이 지칠 것은 확실했다.
하지만 그렇게 지치기 전에 여인을 따라잡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아 보였다.
약간의 시간이 지나자 힐슨과 여인의 거리는 2밀 정도밖에 떨어지지 않게 되었다. 그러자 여인의 모습이 선명하게 힐슨의 두 눈에 들어왔다.
여인은 아름다웠다.
또렷한 이목구비에 약간은 갈색을 띤 피부가 건강미를 느끼게 해 주었다.
왼쪽은 푸른 눈동자, 오른쪽은 황금색 눈동자의 서로 다른 오드아이가 보석처럼 반짝거렸다.
얼굴에 그려진 푸른빛의 문양은 오드아이와 합쳐져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바람에 흩날리는 길게 자란 붉은 머리칼은 도발적인 자태를 뽐냈다.
하지만 힐슨에게 여인의 아름다움을 감탄할 여유는 없었다.
어디서 구한 건지 거대한 그레이트 액스 두 개가 여인의 등에 걸쳐져 있었다. 사람 몸통만 한 그레이트 액스는 그 크기만큼 무게 또한 무겁다. 그런 것을 두 개나 지고도 이처럼 빠른 속도로 달릴 수 있다는 것은 정녕 놀라운 일이다.
하지만 그건 여인의 종족을 생각하면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었다.
오드아이, 그리고 그녀의 얼굴에 푸른 염료로 그려진 주술문.
그 두 가지는 여인이 훈볼트 족이라는 것을 알려 주고 있었다.
최강의 전사 종족이라는 훈볼트 족. 그들은 기본적으로 힘과 속도가 인간보다 몇 배나 빠르다. 그렇기에 그레이트 액스라는 중병기는 훈볼트 족에게는 그리 부담되는 무기가 아니다.
힐슨과 여인의 거리가 조금 더 좁혀지고 공격 가능 거리가 되었다. 망설이던 힐슨은 결국 검을 들어 여인을 노렸다. 여기서 여인을 공격하지 않는다면 정말 반란죄로 몰려 처형될 수도 있었다.
힐슨의 검이 여인을 향해 떨어지자, 여인은 몸을 슬쩍 틀며 힐슨의 검을 피했다. 그러고는 계속해서 달려갔다.
여인은 훈볼트 족으로 월등한 신체 능력을 가졌을 뿐 아니라 그 경지가 나이트에 오른 실력자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힐슨의 공격에 살기가 담기지 않은 것을 눈치채고 그냥 피하기만 한 것이었다.
힐슨은 계속해서 여인을 공격했고, 여인은 그 공격을 상체만 살짝 움직여 피해 냈다. 그 때문에 여인의 달리는 속도는 여전히 빨랐다.
그렇게 시간이 조금 지나자 힐슨의 말이 지치기 시작했다. 조금씩 속도가 떨어지며 여인과의 거리가 벌어지려 했다.
그때 뒤쪽에서 크랄의 신경질적인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힐슨, 그딴 연극을 내가 알아보지 못할 거라고 착각한 거냐? 정녕 반란죄로 잡히고 싶은 거냐!”
힐슨의 얼굴이 사정없이 일그러졌다. 잠시 고민하던 힐슨은 말을 다시 한 번 혹사시켰다. 속도가 조금 더 빨라졌고 거리가 가까워졌다.
힐슨의 검이 여인을 향해 휘둘러졌다. 이번 공격에는 죽이겠다는 의지가 확실히 담겨 있었다.
여인은 더 이상 힐슨의 공격을 경시하지 않았다. 신중하게 검을 피한 후 등에 걸린 그레이트 액스를 손에 들었다.
여인이 그레이트 액스를 잡는 순간 태산 같은 기세가 일어났다. 그 압박감에 힐슨은 작게 신음을 흘렸다. 하지만 물러날 수는 없었다.
“하앗!”
힐슨은 필사의 각오로 여인을 향해 공격을 시도했다.
여인은 그레이트 액스를 마치 방패처럼 사용해 힐슨의 공격을 막았다.
챙.
맑은 쇳소리가 울리며 힐슨의 공격은 그대로 막혔다.
여인의 그레이트 액스는 두 개. 하나는 방어에 사용되었지만 다른 하나가 아직 남아 있었다. 그 그레이트 액스는 이미 힐슨을 공격하고 있었다.
퍽!
육중한 소리와 함께 그레이트 액스가 힐슨의 몸에 그대로 꽂혔다. 마지막에 여인이 힘을 줄이지 않았다면 힐슨의 몸은 그대로 쪼개졌을 것이다.
여인의 오드아이에 의문이 감돌았다.
“어째서?”
여인의 공격은 분명 위협적이었다. 하지만 나이트의 경지에 오른 기사가 아무런 방어도 못한 채 그대로 직격당할 정도의 공격은 아니었다.
그녀의 실력이 모자란 것이 아니었다. 일부러 피할 수 있을 정도의 공격을 한 것이었다.
여인은 크랄이 소리치는 것을 들었고, 그렇기에 힐슨이 자신을 공격하는 것이 본의가 아니란 것도 알 수 있었다.
실제로 처음 힐슨의 공격에는 아무런 살기가 담겨 있지 않았다.
여인은 단순히 힐슨을 떨쳐 내려는 목적으로 한 공격이었다. 약간의 상처는 입겠지만 그걸로 끝날 일이었다. 그런데 힐슨은 피하지 않은 것도 모자라 아예 그레이트 액스에 스스로 몸을 가져다 댄 것이었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상황이었기에 여인은 빠르게 힘을 줄이지 못했고, 결국 힐슨은 사망에 이를 정도의 상처를 입게 된 것이었다.
힐슨의 입이 열렸다.
“미안하오. 그리고 고맙소.”
그 말을 마지막으로 힐슨의 눈이 감겼다. 말 위에 타고 있던 힐슨의 몸이 기우뚱하며 옆으로 기울어졌다. 그러다 이내 바닥에 떨어졌다.
훈볼트 족은 전사 종족. 그들에게 전투란 신성한 의식이다. 그런데 그 의식이 더럽혀졌다.
거짓된 승리는 훈볼트 족에게 가장 치욕스런 일이었다.
여인은 전투의 당사자였던 힐슨을 원망하지는 않았다. 그 원인이 크랄이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당장이라도 저 크랄이란 자의 몸을 두 개로 쪼개 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달려오고 있는 29명의 인간들이 두려운 것은 아니었다.
그중에 나이트가 3명이나 포함되어 있다고 해도, 시간이 걸릴 뿐 승리하는 것은 결국 자신일 것이라고 여인은 확신했다.
하지만 저 무리의 뒤에 따라오고 있을 나이트암은 상대할 수 없었다.
여인은 어제 이들에게 잡혔고 오늘 겨우 탈출할 수 있었다. 잡힌 것은 나이트암 때문이었다.
그 강철의 거인 병기는 아무리 훈볼트 족인 여인이라고 해도 상대할 수 없었다.
멈춰 있을 수 없었다. 저들에게 발이 묶이면 결국 나이트암에 따라잡힐 뿐이다. 여인은 차가운 눈빛으로 크랄들을 한 번 노려본 후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퉤!”
힐슨의 시신이 있는 곳을 지나며 크랄이 침을 뱉었다. 그 침은 정확하게 힐슨의 얼굴에 떨어졌다.
“그거 하나 제대로 못하나? 멍청한 새끼. 이러니까 평민 새끼들이 안 되는 거야.”
크랄은 그 한마디를 마지막으로 힐슨에 대한 신경을 끊었다.
크랄의 뒤를 따르던 기사의 말이 힐슨의 시신을 짓밟고는 그냥 지나갔다. 그 뒤를 따르던 기병들 역시 힐슨의 시신 위를 그대로 지나갔다.
기병들이 모두 지나가고 나타난 힐슨은 완전히 걸레 꼴이 되어 있었다. 으깨진 것은 기본이고 팔 하나는 1밀이나 떨어진 곳에서 굴러다니고 있었다.
그럼에도 힐슨의 얼굴은 웃고 있었다.
* * *
루인은 다급하게 나무 뒤로 몸을 숨겼다. 루인이 있는 곳은 숲과 평원의 경계 지점. 이곳을 나간다면 자신의 모습이 바로 드러나게 된다. 현재 여러 장의 몬스터 가죽을 짊어진 상태이기에 사람들 눈에 띄어서 좋을 건 없었다.
이곳은 평소 사람들이 오지 않는 곳이기에 루인은 별걱정 없이 숲에서 걸어 나가려 했다. 그런데 갑작스레 말발굽 소리가 들려온 것이었다.
그 숫자가 한둘이 아니었기에 단순히 말을 탄 여행자라고 생각할 수 없었다.
특정한 집단이 함께 움직이고 있는데 슈론토 근처에서 저렇게 대놓고 달릴 수 있는 자들이라면 슈론토 기사단밖에 없었다.
한 달 전 루인은 슈론토 기사단에게 프로운의 웅담을 빼앗긴 적이 있기에 이렇게 과민 반응하는 것이었다.
루인은 조심스럽게 고개를 내밀어 바깥의 모습을 살펴보았다.
기병들이 누군가를 쫓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처음에는 숲으로 달려오는 줄 알고 루인은 화들짝 놀랐다. 하지만 조금 더 살피자 그 궤도가 루인이 있는 숲 가까이를 지나쳐 간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루인이 슈론토 기사단에 안 좋은 감정이 있기는 했지만, 당장 그들에게 분함을 풀 힘을 가지고 있지는 못했다.
지금 쫓기는 자를 도와주었다가는 도리어 루인까지 위험해질 수 있었다.
루인은 결코 선인이 아니었다. 오히려 냉정한 편에 속했다. 비록 길포드 용병단과의 만남으로 그 기질이 조금 순해지긴 했지만, 본바탕이 어디 가는 것은 아니었다.
‘지금 구해 드릴 순 없지만 복수 정도는 해 드리죠.’
이것만 해도 루인으로서는 엄청 신경 쓴 것이었다. 만약 길포드 용병단과 만나지 않았다면 쫓기는 자에게 신경조차 쓰지 않았을 것이다.
루인은 숲 안으로 몸을 숨기려 했다. 그런데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쫓기는 자의 속도가 생각보다 빨랐기 때문이다.
루인은 호기심에 쫓기는 자를 살펴보았다. 체형으로 보아 여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거리가 가까워지자 여인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아름다웠다.
아름다움의 대명사 코로나 족과는 전혀 다른 아름다움이 여인에게는 존재했다.
하지만 루인의 관심을 끈 것은 여인의 아름다움이 아니었다.
오드아이와 주술문.
루인은 대번에 여인이 훈볼트 족이란 것을 알아챘다.
‘도와줄까?’
루인의 마음이 살짝 움직였다. 그런데 기사단 쪽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개 같은 년! 당장 멈춰라!”
찢어지는 듯 듣기 싫은 목소리는 루인에게 분명 익숙한 목소리였다.
“크랄이라고 그랬었지?”
프로운의 웅담을 강탈해 갔던 슈론토의 기사, 그의 목소리였다. 거리가 조금 더 가까워지자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여전히 먼 거리긴 했지만 수라타의 특별한 수법으로, 눈가에 흐르는 마나를 이용해 멀리 볼 수 있는 방법을 사용했다. 그렇기에 똑똑히 볼 수 있었다. 분명 한 달 전에 본 그 얼굴이 확실했다.
루인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오늘은 나이트암을 타고 있지 않군. 거리도 적당하고. 후후후.”
루인은 활의 시위를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