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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탄 로드 1(16화)
chapter 6. 헌팅(1)
베이디안 대륙에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가장 유명한 몬스터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세 가지 몬스터의 이름을 들을 수 있다.
그중 첫 번째는 바로 코쿤, 늑대의 외형에 이마에 뿔이 달린 야수 계열의 몬스터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헬릭스라는 몬스터다. 키가 1밀 정도에 직립보행을 하기에 멀리서 보면 인간으로 착각할 수도 있는 외형이다.
하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인간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다. 일단 피부색은 녹색이다. 게다가 코가 매우 커서 얼굴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어금니 두 개가 삐죽 튀어나와 있는 것 역시 특징.
코쿤과 헬릭스는 매우 약한 몬스터에 해당한다. 싸움이라고는 해 보지 않은 사람들도 여러 명 모이면 코쿤이나 헬릭스 하나 정도는 쉽사리 처리할 수 있다.
그들이 유명한 것은 전투 능력 때문이 아니라 발견되는 빈도 때문이었다. 코쿤과 헬릭스는 가장 흔하게 발견되는 몬스터였다.
아무리 약하다고 해도 몬스터는 몬스터, 홀로 있을 때 만나면 위험했다. 그러다 보니 인간에게 가장 큰 피해를 입힌 몬스터가 코쿤과 헬릭스이기도 했다.
세 번째의 몬스터는 프로운이다. 프로운은 코쿤이나 헬릭스와는 달랐다. 일단 전투 능력에서도 차이가 났다.
프로운은 나이트 정도는 되어야 일대일로 상대할 수 있었다.
게다가 쉽게 마주치기도 힘들었다. 일 년에 한 번씩 만났다는 사람이 나올 정도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몬스터가 바로 프로운이었다. 그럼에도 프로운은 유명했다.
프로운은 마치 곰처럼 생긴 몬스터였다. 하지만 누가 봐도 곰이라 착각할 리는 없었다. 신장 5밀짜리 곰은 없으니까.
이마에 버섯처럼 생긴 혹이 달린 것 역시 프로운의 특징이었다.
“프로운이군.”
루인은 눈앞에 나타난 거대한 곰 모양 몬스터를 보며 중얼거렸다.
루인은 홀로 슈론토를 향해 여행하는 중이었다. 길포드 용병단은 루인이 잠에서 깨어났을 때 이미 레실을 떠난 상태였다.
혼자서 하는 여행이었지만 위험한 일은 없었다. 몬스터 랜드와의 거리를 생각해 보면 당장 몬스터들이 덤벼들어도 이상하지 않을 일이었지만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간간이 코쿤이나 헬릭스가 덤벼들기는 했지만 루인의 상대가 될 리는 없었다. 그렇게 7일간 안전하게 여행한 후 슈론토까지 반나절 정도의 거리를 남겨 뒀을 때였다.
길을 가던 루인은 어디선가 달콤한 냄새가 흘러나오는 것을 느꼈다. 육포와 곡물 가루로 끼니를 때우는 것도 질려 가던 참이었다.
혹시 나타날지 모를 몬스터를 경계하며 루인은 냄새의 진원지를 찾아 움직였다. 그렇게 찾은 곳에는 벌집이 존재했다.
아무런 대비도 없이 벌집을 건드리는 건 매우 위험한 일이다. 루인은 아쉬운 마음을 접고 그곳을 떠나려 했다. 그런데 쿵쿵거리는 소리와 함께 땅이 울려왔다.
그리고 나타난 것은 신장이 5밀이나 되어 보이는 거대한 곰이었다.
루인은 혹시나 하며 곰의 이마를 살펴보았고 정말로 버섯처럼 생긴 혹이 달린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프로운이었다.
프로운은 앞발로 벌집을 헤집었다. 당연히 수많은 벌들이 벌집으로부터 날아올라서 프로운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벌들이 자신의 생명을 바치며 한 침 공격도 프로운의 두꺼운 가죽을 뚫을 수는 없었다. 프로운은 벌들을 무시하고는 앞발에 묻은 꿀을 혀로 핥아 먹었다.
루인은 그 모습을 바라보며 눈을 반짝였다.
‘아직 나를 발견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기회는 충분하다!’
프로운이 유명한 이유. 그것은 바로 프로운이 대박이기 때문이다.
딜스는 루인에게 말하고는 했다. 프로운의 웅담을 먹을 수 있다면 소원이 없겠다고.
프로운의 웅담은 경이적인 능력을 발휘했다. 그 능력은 오직 남성들에게만 효과가 있었는데, 프로운의 웅담을 먹은 남자는 일주일간 지치지 않고 그 일을 할 수 있다고 한다. 그것은 허풍이 아니라 공식적으로 확인된 사실이었다.
성관계에 혐오감을 느끼는 루인이 그런 목적으로 프로운의 웅담을 노리는 것은 아니었다. 루인이 노리는 것은 웅담을 팔아서 벌 수 있는 돈.
경이적인 능력만큼 프로운의 웅담을 원하는 자는 많은 반면 수량은 극히 적다. 대륙 전체에서 1년에 한 마리 정도가 겨우 발견된다고 하니 공급과 수요의 불균형이 얼마나 심한지는 극명하게 드러난다.
당연히 프로운의 웅담은 천문학적인 액수에 팔린다.
겨우 나이트의 경지에 턱걸이한데다 실전 경험 역시 지극히 적은 상태. 루인의 실력으로 프로운을 잡는 것은 매우 힘들다.
이길 수 있다고 해도 프로운이 도망친다면 루인이 잡기는 힘들다.
하지만 루인에게는 한 방 공격 기술 윌포스가 존재한다.
루인은 일단 몸을 숨긴 채 프로운을 지켜보았다.
프로운의 웅담은 프로운이 죽은 지 10분 이내에 피에 적신 가죽으로 감싸 주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상해서 못쓰게 된다.
딜스에게 들은 지식이었다.
그렇다면 지금 공격해서는 안 되었다. 오우거도 한 방에 죽인 윌포스다. 그보다 약한 프로운을 죽이는 것은 어렵지 않다.
문제는 벌 떼들. 프로운은 가죽 때문에 안전하지만 루인은 그렇지 않다. 벌들에게 방해 받다 보면 사체 처리에 시간이 걸릴 테고 기껏 건진 대박을 날려 버릴 수도 있다.
프로운은 10분 정도 꿀을 먹다가 자리를 떴다. 벌들이 쫓아오며 공격했지만 프로운은 여전히 무시했다. 결국 한참을 더 이동하자 벌들은 더 이상 쫓아오지 않았다.
숲 깊숙한 곳으로 이동하는 프로운. 숲이 깊어질수록 몬스터들의 위험도 커지기 마련이다. 더 이상 가만히 놔두다가는 눈앞에서 놓칠 상황이다.
루인은 윌포스를 담은 다음 화살을 날렸다.
쐐액. 가가각. 푹.
루인의 화살은 분명 프로운에게 명중했다. 하지만 프로운이 그 한 번의 공격에 죽지 않았다.
프로운이 오우거보다 강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프로운은 움직이는 중이었다. 그 때문에 화살의 궤도에 나무가 겹치게 되어 버렸다. 지금까지 제자리에 서 있거나 자신을 공격하는 몬스터만 상대하다 보니 이런 실수를 하게 된 것이었다.
루인은 의지를 움직여 화살의 궤도를 수정했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하려다 보니 잘되지 않았다. 나무를 완전히 피하지 못하고 껍질을 훑고 지나간 것이었다.
그 와중에 화살에 담긴 힘의 태반이 소실되어 버렸다.
“쿠아아아아앙!”
프로운의 포효가 숲 전체에 울려 퍼졌다.
힘이 줄었지만 윌포스의 위력은 여전히 강했다. 덕분에 죽이지는 못하고 화만 북돋은 것이었다.
사방을 두리번거리던 프로운의 얼굴이 대번에 루인이 있는 곳을 향했다.
“쿠아아아앙!”
프로운은 커다란 몸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속도로 루인을 향해 질주해 왔다.
루인은 첫 공격이 실패로 돌아가자 이내 두 번째 공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전 오우거를 상대했을 때의 경험이 도움이 되었다.
루인은 화살에 윌포스를 담았다. 그러고는 활에 화살을 걸고 시위를 당겼다.
루인과 프로운의 거리는 고작 한 걸음.
루인은 활시위를 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퉁.
화살은 정확하게 프로운의 가슴에 명중했다.
한 걸음만 더 전진했다면 프로운의 공격에 루인도 위험해졌겠지만, 결과는 루인의 승리였다.
거체가 달리던 힘에 의해 앞으로 엎어졌다. 즉사였다.
시간적 여유가 없어 화살에 담긴 윌포스는 그리 강하지 않았다. 하지만 먼저 어느 정도의 타격을 입혀 놓았기에 약한 공격으로도 사망에 이르게 한 것이었다.
루인은 서둘러 프로운의 사체로 다가갔다. 그러고는 해체를 시작하려 했다.
쿵. 쿵. 쿵…….
멀리서 대지가 울리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설마 프로운을 죽여서 다른 프로운이 몰려오는 건가?”
루인이 프로운을 죽일 수 있었던 것은 프로운이 한 마리뿐이었기 때문이다. 그 숫자가 많았다면 죽는 것은 루인이었을지도 모른다.
루인은 겁이 났지만 도망치는 대신 해체를 서둘렀다. 그냥 놔두기에는 웅담이 너무 귀했고, 프로운이 온다고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했다.
프로운은 단독생활을 한다고 알려져 있었다.
루인은 서둘러 프로운의 몸을 가르고 웅담을 끄집어냈다. 프로운의 웅담은 붉은색의 반투명한 모습이었는데 만지면 물컹거렸다. 마치 젤리 같았다.
루인은 미리 준비해 두었던 피 묻은 가죽으로 프로운의 웅담을 감쌌다.
루인이 가죽으로 감싼 프로운의 웅담을 품속에 넣는 순간 소리의 주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프로운은 아니었다. 하지만 루인은 마냥 즐거워할 수는 없었다.
신장 6밀, 기이한 형태의 투구를 쓴 거대한 강철 거인. 나타난 것은 나이트암이었다.
총 네 기의 나이트암이 포위하듯 루인을 감쌌다. 루인은 잔뜩 경계하며 나이트암들을 바라보았다.
네 기의 나이트암 중 한 기, 투구가 달린 곳에서 건들거리는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이. 너, 이름이 뭐지?”
“루인…… 시오레타.”
루인은 미리 생각해 두었던 가짜 성을 말했다.
베이디안 대륙에서 성을 가지지 않는 것은 노예뿐이었다. 평민은 성을 가지고 있었고 귀족은 미들네임까지 가지고 있었다.
귀족은 귀족패를 가지고 다니기에 사칭하기가 어려웠다. 반면 평민은 따로 신분을 증명할 만한 물건 같은 것은 없었다.
그렇기에 루인은 가짜 성을 만들어 평민으로 사칭한 것이었다.
루인은 기사가 자신의 거짓 신분에 넘어가길 간절히 바랐다. 그러면 무사히 넘어갈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루인의 착각이었다.
노예에게 평민이란 높은 사람이며 무서운 사람이었다. 주인인 귀족보다 어떤 면에서는 더욱 무서운 것이 평민이었다.
명령을 내리는 것은 귀족이지만, 그 귀족의 명령을 직접 전해 주고 감독하는 것은 평민이기 때문이다. 귀족이 아예 구름 위에 존재한다면 평민은 머리 위에 있는 셈이다.
그렇게 무서운 평민으로 사칭했기에 루인은 아무런 문제가 없으리라 착각한 것이었다.
그러나 귀족에게 평민이란 노예보다 조금 나을 뿐, 하찮은 존재인 건 마찬가지였다.
남자가 건들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평민? 간덩이가 부은 놈이군. 이곳은 슈론토의 국유지다. 감히 이곳에서 허가도 받지 않고 사냥을 하다니. 죽고 싶은 거냐?”
루인은 머리를 조아리며 공손하게 말했다.
“잘 모르고 그랬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루인의 실력으로 나이트암을 상대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건 윌포스를 이용한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오우거도 한 방에 죽일 수 있는 윌포스이지만 나이트암은 오우거보다 월등히 강하다. 게다가 그런 나이트암이 무려 네 기다.
괜히 반발하다가는 순식간에 목이 날아갈 수도 있다.
“뭐, 모르고 그랬다니까 어쩔 수 없지.”
루인이 아는 귀족이라면 절대 이런 말을 하지 않는다.
‘내가 인간에 대해, 귀족에 대해 너무 안 좋게만 생각한 걸까?’
루인의 이러한 의문은 5초도 지나기 전에 의미 없는 것으로 바뀌었다. 기사가 비릿한 목소리로 한 말 때문이었다.
“그래도 벌금은 내야지. 네놈이 품에 챙겨 넣은 거 당장 꺼내서 바쳐라.”
“예?”
“프로운의 웅담. 애초에 그건 네가 가질 물건이 아니었다. 당장 바쳐라.”
국유지라는 것은 결국 핑계일 뿐. 기사들은 프로운의 울음소리를 듣고 달려온 것이었다. 그들이 욕심내는 건 당연히 프로운의 웅담이었다.
“하지만 그건…….”
루인이 머뭇거리자 기사의 얼굴이 사정없이 일그러졌다.
기사가 탄 나이트암의 투구가 위로 살짝 들리더니 뒤로 넘어갔다. 기사는 몸을 일으킨 후 아예 바깥으로 뛰어내렸다.
6밀의 높이에서 뛰어내렸음에도 기사는 아무런 충격을 받지 않은 듯했다. 루인 역시 6밀 정도는 부담 없이 뛸 수 있지만 그건 루인이 익힌 수라타에 있는 몸을 가볍게 하는 수법 때문이다.
순전히 신체적인 능력만으로 이런 일을 했다는 것은 기사가 나이트 중급의 실력자라는 것을 의미했다.
기사는 루인의 멱살을 거칠게 잡으며 소리쳤다.
“당장 네놈이 챙긴 프로운의 웅담 내놓으라니…… 히익!”
루인은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 않아 공손한 태도를 취했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고개를 숙이게 되었다. 그래서 기사는 루인의 얼굴을 지금 멱살을 잡으며 처음 본 것이었다.
기사는 루인의 험악한 얼굴에 놀라며 뒤로 물러섰다.
다른 세 기의 나이트암에서 낄길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기사의 얼굴이 수치심으로 벌겋게 달아올랐다. 한순간이지만 평민 놈의 얼굴에 놀랐다는 것은 너무나 큰 수치였다. 귀족인 그에게는.
“건방진 새끼!”
기사는 루인의 배를 그대로 걷어찼다. 체술을 배운 적은 없는지 힘과 속도는 빨랐지만 동작 자체는 매우 엉성했다. 루인의 능력으로 충분히 피할 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루인은 피하지 않고 그대로 맞았다.
귀족이 매질을 할 때 피하면 안 된다. 그랬다가는 구타의 강도만 더욱 강해진다. 루인이 노예 생활을 하면서 배운 것들 중 하나였다.
그렇다고 무작정 맞은 것은 아니었다. 타격의 순간 몸을 살짝 뒤로 빼며 충격을 줄였다.
그래도 기사의 발길질이 약한 것은 아니기에 루인은 결국 쓰러졌다. 기사는 쓰러진 루인을 계속해서 밟아댔다.
“재수 없는 새끼! 빌어먹을 새끼!”
한참을 그렇게 하던 기사는 숨이 차오르자 루인을 밟던 것을 멈추었다. 그러고는 혼자 씩씩거리더니 검을 뽑아 들며 말했다.
“네놈을 여기서 죽이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