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타이탄 로드 1(12화)
chapter 4. 킨델베르 숲(5)
윌포스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일정 시간의 정신 집중이 필요했다. 근접전에서 그렇게 정신 집중을 하는 건 나 죽여 달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일이다.
강한 공격력을 가지면 뭐 하겠는가? 그전에 죽임당할 게 뻔한데.
근접전에서는 거의 쓸모없는 윌포스이지만 장거리 공격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약간의 딜레이가 생기기는 하겠지만 그 정도는 윌포스의 가공할 공격력을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마침 우수한 궁술과 활 만드는 법에 관한 지식도 머릿속에 존재했다. 궁술은 별다른 이름이 없이 그냥 궁술이었고, 활은 각궁이라는 이름의 복합궁이었다.
동이라는 종족이 이 궁술과 활을 사용했다는 것까지는 알겠는데 동이라는 종족에 대한 지식은 알 수 없었다. 신선과 마찬가지의 경우다.
어차피 루인이 원하는 건 누가 사용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위력이 우수한가이다. 그런 의미에서 궁술과 각궁은 최고였다.
공동에서 나온 후 처음 조우한 몬스터인 코쿤. 그 코쿤의 머리에 달린 뿔은 이 각궁을 만들기에 상당히 좋아 보였다.
루인은 당장 만들어 보았지만 처음이라 실패했다. 하지만 코쿤은 계속해서 덤벼들었기에 뿔의 수급에 문제는 없었다.
단지 위험이 증가하기는 했지만 그렇게 전투를 하며 루인의 실력이 빠르게 늘었기에 역시 문제는 되지 않았다. 이론이라는 호랑이에 경험이라는 날개가 달렸으니까.
그 뒤 결국 각궁을 만들게 되었고 그 후로 덤벼드는 몬스터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코쿤 한둘은 수라타로 상대할 수 있었고, 숫자가 많을 경우는 멀리서 접근을 알아챌 수 있기에 화살 공격으로 처리할 수 있었다.
이제 갓 활을 다루기 시작한 루인의 활 솜씨는 분명 형편없었지만 윌포스가 부여된 화살은 루인의 의지에 따라 방향도 바꿀 수 있었다.
킨델베르 숲 자체가 몬스터 랜드의 초입이고 그래서 몬스터들의 전투력이 낮았기에, 더 이상 루인에게 위험이 되는 몬스터는 없었다. 몬스터의 강함은 대체로 크기와 비례했고 큰 놈은 멀리서 확인할 수 있었기에 윌포스를 부여한 화살로 충분히 상대할 수 있었다.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 같았지만 정작 제일 중요한 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상태였다.
루인이 방위를 보는 법을 모른다는 것.
도주를 방지하기 위해 노예들에게는 지리나 방위 보는 법 등을 가르치지 않았다.
몬스터 랜드가 워낙 유명한 곳이기에 이곳이 몬스터 랜드라는 것까지는 짐작할 수 있었지만 정작 북쪽이 어디인지 알 수 없었다.
지구의 지식으로 방위를 알아보려 했지만 그것 역시 실패했다. 하늘에는 구름이 잔뜩 껴 있어 태양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나이테로 방향을 찾는 것은 애초에 일반인에게는 상당히 어려운 일인데, 거기다 네거티브 포스가 깃들어서인지 나이테의 방향이 모두 제각각이었다.
그 때문에 루인은 킨델베르 숲에서 길을 잃고 헤매야 했다.
며칠 동안이나 킨델베르 숲을 헤맨 루인은 겨우 길포드 용병단과 만날 수 있었다. 정확하게는 질주하는 길포드 용병단의 모습을 멀리서 본 것이다.
인간들을 믿을 수는 없었다. 자신의 정체를 알게 된다면 잡아서 다시 노예로 팔 확률이 지극히 높았다.
루인은 길포드 용병단을 믿을 수 없었기에 몰래 그들의 뒤를 따랐다. 그들의 질주가 워낙 요란했기에 몸을 숨기고 따라가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문제가 발생했으니, 그 요란함이 오우거들의 신경을 거슬린 것이다.
루인은 고민했다. 가만히 놔두면 인간들이 죽을 것은 확실해 보인다. 하지만 그렇다고 도와주자니 신뢰할 수가 없다.
‘저들이 달리는 방향으로 계속 가면 인간의 마을이 나올까?’
루인은 확신할 수 없었다. 중간에 방향을 꺾을 생각인지 어찌 알겠는가?
결국 일단 자신의 정체를 숨긴 채 도와주기로 했다. 살아남으면 어쨌든 인간의 세상으로 갈 테니까.
가지를 잘라 만든 화살을 질긴 나뭇잎으로 만든 전통에서 꺼냈다. 그러고는 굉장히 허접해 보이는 모습의 활에 걸었다.
이대로 그냥 날렸다가는 완전히 빗나갈 뿐 아니라 위력도 형편없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 윌포스를 담는다면 이야기가 전혀 달라진다.
잠깐의 집중으로 윌포스를 부여했다. 그러고는 망설임 없이 시위를 놓았다.
팅!
코쿤의 힘줄이 세차게 튕기며 화살은 오우거의 머리를 향해 정확하게 날아갔다. 그리고 오우거의 주먹이 인간의 머리를 부수기 직전, 화살은 명중했다.
인간들이 주변을 둘러보는 게 보였다. 하지만 루인은 풀숲에 몸을 가린 상태이기에 발견하기 어렵다.
루인은 다시 화살 하나를 꺼내 시위에 걸었다. 한 마리만 더 처리해 주면, 남은 한 마리는 저들 스스로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안 되면 화살 한 대를 더 날리면 될 일이고.
루인이 이렇게 느긋하게 생각할 때였다.
* * *
길포드는 깜짝 놀랐다. 크레일이 곧 죽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길포드는 감정이 굉장히 풍부한 사람이었다. 이 킨델베르의 숲으로 위빙 플라워를 찾으러 들어온 것도 병에 걸려 죽을 날만 남겨 놓은 어린 소녀의 치료 때문이었다. 치료에 반드시 필요한 재료가 바로 위빙 플라워였다.
가난한 농노의 아이였기에 의뢰비로 그들이 낼 수 있는 돈은 극히 적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도 길포드가 나선 것은 단순히 소녀가 불쌍하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어린아이들에게 들려주는 동화도 아니고 이 무슨 꿈같은 짓이란 말인가? 돈 한 푼 되지도 않는 일에 목숨을 걸다니?
하지만 길포드는 항상 그렇게 행동해 왔고, 그것이 바로 길포드의 매력이었다. 길포드 용병단의 단원들은 그런 길포드의 인간적인 매력에 반해 뭉친 사람들이었다.
단원들은 길포드를 친형, 친오빠로 생각하고 대했다. 그건 길포드 역시 마찬가지여서 단원들을 친동생처럼 아꼈다.
그런 길포드였기에 크레일의 위기에 놀라고 말았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난 건지 크레일을 공격하던 오우거가 옆으로 넘어갔다. 상태로 보아 죽은 것 같았다.
길포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길포드의 이런 행동은 전투에 있어서 상당히 문제가 되는 행동이었다.
평소에는 따뜻하게 행동하다가도 임무를 수행할 때는 최대한 냉정해지는 길포드였다. 그런데 단원들을 사지로 밀어 넣었다는 죄책감 때문인지 지금은 그 냉정함을 유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것이 빈틈이 되었다.
길포드의 실력은 나이트 중급 정도였다. 그 실력이라면 오우거 한 마리를 상대로 가까스로 버틸 수 있는 수준이다. 그런데 지금은 무려 두 마리의 오우거를 상대하고 있었다.
매우 무리하고 있는 상황인데 거기서 또 정신을 다른 곳에 판 것이었다.
이런 빈틈을 두고 볼 정도로 오우거가 멍청하지는 않았다. 오우거의 커다란 주먹이 그대로 길포드를 강타했다.
퍼억!
“……!”
지상의 폭군이 내지른 일격이다. 그것도 한눈파느라 제대로 피하지도 못하고 정통으로 맞아 버렸다.
길포드는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의식을 잃고는 날아갔다.
몇 밀이나 날아간 길포드의 몸은 바닥에 떨어진 채 데굴데굴 굴렀다. 죽었는지 단순히 의식을 잃은 건지 당장은 알 수 없는 상태였다.
* * *
‘저 멍청한 놈이!’
루인은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 같았다. 이렇게 되면 더 이상 정체를 숨길 수가 없다. 당장 오우거는 처리할 수 있다고 해도 이 뒤로 계속해서 덤벼들 몬스터들을 처리할 수는 없다.
단순히 숫자 하나 줄어든 것이 아니었다. 루인이 길포드에 대해 알 수는 없었지만 최소한 그가 이 그룹의 지휘자라는 것 정도는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런 자가 빠졌으니 전투력이 급감할 것은 당연했다.
루인이 몰래 도와준다고 해도 현 상태로 이들이 무사히 숲을 빠져나가는 것은 힘들어 보였다.
‘그냥 무시할까?’
어차피 아는 사이도 아니고, 이들이 죽는다고 루인이 슬퍼하거나 죄책감 받을 이유는 없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숲이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단은 오우거들을 처리해야 했다.
오우거들에게 인간이란 가끔가다 맛보는 특식. 그 때문인지 입맛을 다시며 인간들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식욕에 정신을 팔린 건지 쓰러진 한 마리의 오우거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럼 나야 좋지.’
루인은 화살에 윌포스를 부여해서는 날렸다. 정신 집중에 시간이 필요한 대신 그 위력은 역시나 발군!
화살은 정확하게 오우거의 머리에 꽂혔다.
명중했으니 상황 끝이다. 화살 끝을 통해 루인이 심어 놓은 의지의 힘이 오우거의 뇌로 흘러 들어갈 것이다. 아무리 강한 생물이라도 안은 약하기 마련.
오우거는 뇌가 곤죽처럼 변해 버린 채 바닥으로 쓰러졌다.
그제야 남은 오우거는 위기를 느낀 것 같았다. 막대기 하나에 두 마리의 오우거가 쓰러졌으니 안 느끼면 도리어 이상한 일이다.
오우거는 화살이 날아온 방향을 노려보았고, 본능적인 감각으로 루인의 존재를 눈치챌 수 있었다. 오우거는 망설이지 않고 루인을 향해 달려들었다.
루인이 윌포스를 사용하기 위해 정신 집중하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하지만 짧은 시간도 아니다.
오우거는 강한 힘만큼이나 속도 역시 빠른 몬스터. 순식간에 루인과의 거리를 좁힌 오우거는 그대로 주먹을 휘둘렀다.
‘너무 빨라!’
다행히 윌포스를 화살에 부여하는 것은 마칠 수 있었다. 하지만 아직 화살이 시위에 걸리지 않은 상태. 시위에 걸려고 하다가는 그대로 오우거의 주먹에 당하고 말 것이다.
루인은 화살을 활에 거는 대신 오우거의 머리를 향해 그대로 던졌다.
쇄액. 푹!
매서운 기세로 날아간 화살이 그대로 오우거의 머리에 명중했다. 오우거는 달리던 자세 그대로 앞으로 쓰러졌다. 즉사였다.
루인은 몸을 옆으로 움직이는 것으로 오우거에게 깔리는 것을 피했다.
수라타는 전신과 모든 무기를 사용할 수 있는 무예. 그중에는 암기를 사용하는 법도 있었다.
루인에게는 활로 쏘는 것보다는 암기를 던지는 것이 더 익숙했다. 공동에서 활은 구할 수 없었지만 작은 돌멩이는 구할 수 있었기에.
그럼에도 굳이 활을 생각한 것은 사거리의 차이 때문이다. 윌포스는 최대한 상대와 거리를 둔 채 사용해야 하는데 암기를 사용하려면 어느 정도 가까이 붙어야 하기 때문이다.
만약 오우거가 루인에게 덤벼드는 대신 도망을 선택했다면 루인도 오우거를 잡을 수 없었을 것이다. 부족한 실력으로 만든 활은 상당히 짧은 사거리를 가지고 있고, 윌포스는 화살의 방향을 바꿀 수는 있어도 사거리를 늘리는 효과는 없었다.
그런데 암기에 능숙한 루인에게 덤벼들었으니 죽여 달라고 말한 것이나 마찬가지. 만약 오우거의 숫자가 더 많았다면 상황이 달라졌을 테지만, 덤벼든 오우거는 하나였고 루인은 쉽게 처리할 수 있었다.
윌포스는 상당한 정신 집중을 필요로 하고 그만큼 정신적인 피로 역시 크다. 게다가 오우거 같은 강한 몬스터를 잡기 위해 평소보다 훨씬 강하게 정신을 집중했다.
그러니 절대 쉽게 잡은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겉으로는 쉽게 잡은 것처럼 보인다. 그렇기에 루인이 모습을 드러내자 길포드 용병단의 세 남자는 잔뜩 겁먹은 표정으로 루인을 바라보았다.
한 번의 공격으로 오우거를 가볍게 쓰러뜨렸기에, 게다가 얼굴 또한 험상궂었으니까. 잔뜩 찢어진 눈이라니.
모습을 드러낸 루인의 얼굴은 실제 루인의 얼굴과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