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타이탄 로드 1(11화)
chapter 4. 킨델베르 숲(4)


콰과과과과.
거대한 나무가 날아들었다. 방금 뽑혔다는 것을 말해 주듯 나무는 생기가 넘치고 있었다. 뿌리에는 흙이 잔뜩 묻어 있었다.
“모두 엎드려!”
길포드는 다급하게 소리치며 자신 역시 엎드렸다.
허공을 비행하는 거목에 담긴 힘이 어찌나 강한지, 거목은 주위에 작은 나무들을 모조리 쓰러뜨리면서도 한참이나 날아갔다.
덕분에 갑자기 넓어진 시야.
길포드는 그 환해진 공간의 정면에 서 있는 존재를 보는 순간 모골이 송연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거대한 키는 5밀이 넘어 보이고 초록색의 거친 피부는 웬만한 칼도 들어가지 않을 것 같다.
굴강한 근육에는 힘이 넘치고, 그럼에도 둔해 보이지 않는 몸매는 이상적인 선을 그린다.
지상의 폭군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존재.
나타난 것은 오우거였다.
실상 폭군이라는 별명도 옛말이다. 인간에게 오우거란 양질의 가죽을 제공해 주는 사냥감에 불가하다. 하지만 그건 인간에게 나이트암이라는 무기가 있기에 가능한 일.
나이트암에 타지 않은 상태라면 기사 5명이 모여야 겨우 잡을 수 있는 것이 바로 오우거다.
길포드 용병단은 마법사인 알리시아를 제외한 4명 모두 나이트의 경지에 올랐다. 그리고 알리시아도 나이트와 비슷한 전투력을 발휘하는 3클래스의 마법사였다. 이만한 전력이면 오우가 하나 정도는 충분히 상대할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나타난 오우거가 셋이라는 점.
하나와 둘은 엄청난 차이다. 그리고 셋은 메울 수 없는 차이다.
다들 오우거에 대한 공포로 굳어 있는데, 괜히 단장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듯 길포드가 침착한 목소리로 지시를 내렸다.
“기습으로 하나를 먼저 해치운다. 목표는 가장 오른쪽에 있는 놈. 알리시아가 가장 강한 마법으로 한 방 먹이면 동시에 너희들 셋이 같은 놈을 공격한다.”
날렵해 보이는 사내, 크레일이 의아한 목소리로 반문한다.
“두 놈이 가만히 있지 않을 텐데? 저놈들 엄청 영리하다고.”
“저 둘은 내가 상대한다.”
“단장! 아무리 단장의 실력이 좋아도 오우거 둘을 상대하는 건 무리야!”
“나도 안다. 그래도 잠시 주의를 끌 수는 있겠지. 그러니 너희들이 최대한 빨리 한 놈을 처리하고 나를 도와주도록. 아니면 다른 좋은 방법이라도 있나?”
“하, 하지만…….”
알리시아가 냉정한 목소리로 크레일에게 말한다.
“그만, 크레일. 현재로써는 단장의 방법이 가장 성공 확률이 높다.”
“칫, 누가 마법사 아니랄까 봐. 알았다고. 단장, 부디 조심해.”
“물론. 그럼 알리시아, 마법을.”
알리시아가 메이지 스탭의 에테르기움에 오른 손가락을 대고는 마법의 언어를 영창하기 시작한다. 동시에 네 명의 사내들이 앞으로 달려 나간다.
길포드는 달려 나가며 단검 두 개를 오우거 둘에게 각각 하나씩 날린다. 길포드의 단검 던지기 실력이 상당히 좋은 건지, 달리면서 던졌음에도 단검은 상당히 정확하게 날아간다.
두 개의 단검은 모두 오우거의 얼굴을 스치고 지나간다.
상처를 입었기 때문일까? 오우거 둘이 소리를 지르며 길포드에게 달려든다. 다른 오우거 하나는 남은 세 명의 남자들에게 달려든다. 크레일이 던진 단검이 마찬가지로 얼굴을 스쳤기 때문이다.
오우거와 길포드 용병단이 맞부딪히기 직전, 알리시아의 낭랑한 음성이 울려 퍼진다.
“커즈드 플레임 볼트(Cursed Flame Bolt)!”
알리시아의 정면, 허공에 생성된 9개의 불꽃 화살이 빠른 속도로 날아간다. 그 목적지는 세 명의 남자들에게 덤벼드는 오우거.
뒤늦게 마법을 눈치챈 오우거가 피하려 하지만 불꽃 화살은 충분히 가속된 상태. 속도가 빨랐기에 오우거는 미처 피하지 못하고 그대로 직격당했다.
퍼퍼퍼……펑! 화르륵!
오우거에 직격한 불꽃 화살은 그대로 폭발하면서 충격을 배가시켰다. 게다가 거기서 끝난 게 아니라 남은 불꽃이 자신의 영역을 넓혀 가며 오우거의 몸을 불꽃으로 덮어 가기 시작했다.
오랜 시간 함께했기에 길포드 용병단의 호흡은 매우 잘 맞았다. 마법이 직격하고 퍼져 나가는 그 순간, 세 명의 남자가 동시에 오우거를 공격했다.
두 개의 검과 하나의 창이 그대로 오우거의 몸에 꽂혔다.
푸욱, 푸욱, 푸욱.
무기를 잡은 손에 묵직한 느낌이 전해져 왔다. 그것도 세 명 모두.
아무리 오우거라고 해도 마법 공격과 세 명의 공격에 정확하게 직격당한 이상 버틸 수는 없을 것이다. 이제 길포드를 도와 남은 오우거를 처리하면 된다.
알리시아와 셋은 그리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크아아아아앙!”
오우거의 입에서 터져 나온 천지를 울리는 폭음!
그건 마치 동쪽 사막 지역에 산다고 알려진 버서커(Berserker:광전사)들이 사용하는 소울 크라이(Soul Cry) 같았다.
오우거의 몸을 뒤덮던 불꽃은 순식간에 꺼져 버렸다.
세 명은 균형을 잡지 못하고 비틀거렸다.
가장 심한 영향을 받은 것은 알리시아.
새로운 마법을 영창 중이던 알리시아는 오우거의 포효에 강제로 마법이 취소되었다. 그 대가는 고스란히 알리시아에게 돌아왔다.
“쿨럭!”
알리시아는 입에서 피를 토하며 그대로 쓰러졌다.
세 명이라고 상황이 좋은 것은 아니었다.
귀는 굉장히 예민한 기관이다. 단순히 소리를 듣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몸의 균형을 유지하는 반고리관, 달팽이관 등이 모두 귀에 위치해 있다.
가까이에서 오우거의 포효를 들은 셋은 그 기관들이 완전히 마비되어 버렸다.
오우거의 거대한 주먹이 들렸다. 그러고는 아래로 떨어진다. 그 목표는 크레일.
크레일은 피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그저 주저앉을 뿐이다.
힘겹게 둘을 상대하던 길포드의 눈에 그 광경이 들어왔다. 길포드가 찢어지는 비명을 질렀다.
“크레일!”
그 순간, 믿어지지 않는 일이 벌어졌다. 오우거의 주먹이 크레일이 아니라 크레일 바로 옆의 땅을 내려친 것.
오우거가 실수한 것은 아니었다. 실수였다면 지금처럼 아예 옆으로 넘어가지는 않을 테니까.
쿵!
오우거의 거체가 바닥에 쓰러졌다. 누군가가 오우거를 쓰러뜨린 것은 확실하다. 하지만 그자의 정체는 보이지 않았다.
보이는 거라고는 오우거의 머리에 꽂혀 있는 나무 막대 하나뿐이었다.

* * *

루인은 노예였다. 태어날 때부터 노예로 태어났고 노예로 교육 받았다. 어렸을 때부터 세뇌되다시피 받은 교육의 영향은 결코 적지 않았다.
그렇기에 루인은 노예가 주인의 말을 따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해 왔다. 간수인 빌이 아무리 부당하게 대해도 반항하지 않고 따른 것은 그 생각의 영향 때문이었다. 간수의 말을 따르라는 것이 주인인 영주의 명령이었기에.
헬레나의 유혹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 역시 마찬가지의 이유다. 노예는 주인의 명령 없이 성관계를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 명령이 있었다면 아무리 혐오스럽다고 해도 망설임 없이 행했을 것이다.
신분에는 귀천이 있고, 높은 자가 낮은 자에게 명령을 내리고, 낮은 자가 높은 자의 명령을 따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3년 전 그날까지 루인은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해 왔다.
이건 루인만의 생각이 아니다. 물론 어렸을 때부터 세뇌된 루인 정도는 아니겠지만, 베이디안 대륙에 살아가는 사람 대부분은 지배하고 지배 받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던 것이 렉토-헬리온-쿠브린이라는 타차원의 존재를 접하면서 바뀌게 되었다. 그에게서 얻게 된 다른 차원의 지식, 특히 베이디안 대륙과 거의 흡사한 환경의 지구나 엘메른의 지식을 얻으면서 인식에 변화가 찾아오게 되었다.
어째서 사람은 다른 사람을 지배하는가?
어째서 사람 위에 사람 있고, 사람 아래에 사람이 있는가?
결국 피와 뼈와 살로 이루어진 다 같은 사람이 아닌가?
자유…… 평등…… 인권…….
전혀 생소한 개념들은 루인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루인은 많은 생각을 했다. 시간은 충분했다. 3년간 공동에 갇혀 있어야 했기에.
그리고 루인은 결심했다. 세상에 변화를 가져오기로.
이 비합리적인 세상을 바꾸기로.
물론 이러한 생각은 루인의 독선일 수도 있다. 게다가 아무리 비슷하다고 해도 이곳은 베이디안 대륙이지 지구나 엘메른이 아니었다. 그곳의 지식을 이곳에 적용하는 것이 옳다 할 수는 없었다.
루인 역시 이러한 사실을 인정했다.
하지만, 몰랐다면 모를까, 알게 된 이상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어찌 참을 수 있겠는가?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알아 버렸는데.
물론 세상의 사람들이 루인의 행위를 가만히 두고 볼 리는 없다. 특히 스스로를 귀하다고 여기는 세상의 지배자들이.
루인의 행동은 그들의 기반을 흔드는 일이 될 테니까.
그들의 방해를 물리치고 원하는 바를 이루자면 반드시 필요한 것이 있었다. 그건 바로 힘!
지배자들은 강했다. 특히 그들의 권력을 굳건하게 해 주는 것은 나이트암이란 무시무시한 병기. 그것은 반란이란 행위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일반인이 힘을 모아서 나이트를 해치울 수는 있지만, 그 100배가 모여도 나이트암을 물리칠 수는 없기에.
루인에게 필요한 것은 그런 강력한 나이트암을 물리칠 수 있는 절대적인 힘!
루인에게는 그 힘을 얻을 방법이 존재했다. 바로 혼허무극신공, 그리고 수많은 무공들!
문제는 몸에 박힌 386개의 에테르기움들이었다.
이 386개의 에테르기움들은 루인의 몸에 존재하는 마나를 게걸스럽게 흡수해 버렸다.
공동에 존재하는 무수한 에테르기움들의 마나를 모조리 흡수한다는, 지독히 무식한 방법을 사용해 겨우 나이트의 경지에 올라설 수 있었다.
나이트는 분명 강한 경지이지만, 이런 나이트의 경지에 든 사람은 세상에 수없이 많았다. 마스터의 경지에 오른다면 달라질지도 모르지만 그 경지는 요원하기만 하다.
깨달음?
물론 그것 역시 힘들긴 하지만 그리 많이 힘든 건 아니다. 비록 간접경험의 형식이라고 해도 수많은 지식을 쌓은 상태다. 게다가 지금은 파괴되기는 했지만 정신세계를 완전히 개척한 적도 있다.
그 때문인지 루인의 정신력은 비약적으로 강화된 상태였다. 최소한 이 베이디안 대륙 내에서라면 루인보다 강한 정신력을 가진 존재는 얼마 되지 않았다.
이렇게 정신은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마나가 또다시 발목을 잡았다. 마나 홀에 위치한 에테르기움에 마나가 가득 차고, 그래서 더 이상 받아들이지 못해 프라임 홀에 마나가 모여 나이트의 경지에 올라선 것은 맞다.
문제는 나이트의 경지에 듦과 동시에 에테르기움의 용량이 다시 늘어났다는 것, 그것도 이전의 수십 배는 될 정도의 용량으로.
A등급 에테르기움 수천 개를 이용해 겨우 나이트의 경지에 들었다. 그 수십 배나 되는 에테르기움을 모으는 일은 불가능한 일이다. 돈이 아무리 많다고 해도 애초에 A등급이나 B등급 에테르기움의 양이 그 정도로 많지 않다.
루인은 정신체 종족의 지식을 통해 나이트의 경지에 들기 전에도 이러한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루인 스스로 가질 수 있는 무력의 한계를 알았지만 포기하지는 않았다. 본인의 무력을 올릴 수 없다면 다른 방법으로 보충하는 수가 있었다.
루인은 그 방법을 생각해 냈는데 그건 돈이 상당히 많이 드는 일이었다. 하지만 나쁘지 않았다.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 있었기에.
비록 루인의 경험이 부족하다고는 하지만, 다른 차원의 지식으로 찾아낸 몇 가지 방법은 충분히 돈벌이가 될 것 같았다.
그렇다면 문제는 그렇게 돈을 모아 무력을 갖추기 전까지 자신의 몸을 보호하는 것.
마나를 이용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마나 말고 다른 것을 사용하는 방법을 찾아내었다.
그건 바로 루인의 강한 정신력을 이용하는 것.
정신기생체인 펠그림이 차원을 넘는 능력을 가진 반면, 이름 없는 정신체 종족은 정신력으로 강대한 물리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그들의 능력이라면 단순히 생각하는 것만으로 베이디안 대륙을 순식간에 날려 버릴 수 있다.
물론 루인은 정신체 종족이 아니니 그 정도의 힘을 행사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 정도는 고사하고 극히 제한적으로, 그것도 일정 시간 정신 집중을 해야만 겨우 행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제한적인 힘만으로도 상당한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 마스터 정도의 능력을 발휘하는 건 불가능하지만, 최소한 공격력만큼은 마스터에 필적했다.
그것은 공격에 의지를 담는 것.
정신체 종족이 아니기에 단순히 의지만으로 공격하는 건 힘들지만, 의지를 무기에 담아 공격력을 보태는 것에는 엄청난 위력을 발휘했다.
루인은 이 기술에 윌포스(Will Force)라는 이름을 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