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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탄 로드 1(10화)
chapter 4. 킨델베르 숲(3)
퍽!
육중한 소리와 함께 루인의 오른발 뒤꿈치가 코쿤의 목에 정확하게 명중한다. 얼마나 강하게 들어갔는지 공격당한 부분의 움푹 들어간다.
코쿤이 고통에 비명을 지른다.
“크그그그!”
공격의 피해는 성대에까지 가해졌는지 코쿤의 울음소리는 억눌린 듯 이상하다.
비록 루인에게 타격을 허용하긴 했지만 코쿤은 몬스터, 그 야성과 전투 능력은 결코 낮지 않다.
코쿤은 뒤로 물러나는 대신 매서운 기세로 루인의 머리를 향해 앞발을 휘두른다.
루인은 양발을 모두 공격에 사용하느라 무게중심이 완전히 흐트러진 상태. 더욱이 공격했던 오른발은 아직 허공에 떠 있다. 코쿤의 앞발 공격을 피하는 건 도저히 힘들어 보인다.
그 순간 루인이 몸을 한 번 튕긴다. 그 탄력을 이용해 들려 있던 오른발이 아래로 내려오며 코쿤의 앞발을 향한다.
코쿤의 앞발에는 기다랗게 발톱이 자라 있다.
루인의 오른발은 앞발이 아니라 앞다리 안쪽 관절 부분을 향한다. 그러고는 코쿤의 앞발이 머리를 강타하기 직전, 발로 앞다리 관절 부분을 밀어 찬다.
가까스로 코쿤의 공격은 빗나간다.
루인은 밀어 차며 뒤로 물러난 것이 아니었다. 그 힘으로 몸을 다시 회전시켰고 아슬아슬하게 코쿤의 공격을 피한 것이었다.
땅을 딛고 있던 루인의 왼발이 회전력을 받아 허공으로 뻗어 오른다. 그렇게 올라간 루인의 왼발은 조금 전 공격했던 코쿤의 목을 다시 한 번 정확하게 가격한다.
퍽!
수라타는 모든 무기와 전신을 사용할 수 있는 무예이지만, 그중에서도 발차기는 특히 강하다. 그 강한 발차기가 같은 장소에 두 번이나 들어갔다.
아무리 몬스터라고 해도 이 정도의 타격은 버틸 수 없다. 코쿤은 결국 쓰러졌다.
수라타를 사용해 코쿤을 멋지게 해치운 루인, 하지만 그런 루인의 눈빛은 멍했다.
코쿤이 쓰러지고 잠시 후 루인의 눈빛이 정상적으로 돌아왔다.
루인은 놀라 경악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지금 이걸 내가 해치웠단 말이야?”
루인은 3년간 공동에서 수련했다. 다른 일은 하지 않고 오직 혼허무극신공, 마나 흡입, 수라타 수련만 했다.
혼허무극신공과 마나 흡입은 함께 이루어지는 것이고 시간에 제한이 있었다. 그렇기에 루인이 가장 오랜 시간 동안 수련한 것은 바로 수라타였다.
비록 3년의 시간이지만 루인이 수라타를 수련한 시간은 결코 적은 시간이 아닌 셈이다. 루인이 코쿤을 물리칠 수 있었던 것은 그 노력의 결실이라 할 수 있다.
루인은 노예다. 성노예였고 매우 고급에 해당했다. 마지막에 에테르기움 광산에 팔리긴 했지만 그전까지의 대우는 최고급이었다. 비참하긴 했지만 고생스럽진 않았다. 몸이 상해서 가격이 떨어질까 봐 노예상인이 신경 썼기 때문이다.
당연히 싸움 같은 건 해 보지도 못했다. 싸움은 고사하고 거친 행동, 거친 말은 사용하지도 못했다.
비록 나이트란 경지에 오르고 수라타를 상당히 깊게 수련했지만 실전 경험은 전무. 보검은 가졌지만 그걸 사용할 방법을 모르는 것이나 마찬가지의 상황이다.
게다가 코쿤의 갑작스런 등장으로 놀라는 바람에 기세가 완전히 코쿤에게로 넘어가 버렸다. 루인은 공황 상태에 빠져 머릿속이 하얘졌다.
하지만 이렇게 머릿속이 비는 것이 전화위복이 되어 버렸다. 아무 생각을 하지 못했기에 루인은 무의식적으로 수라타를 행하게 되었다. 그저 본능에 따라 이끌린 동작이었다.
잡생각이 없었기에 루인은 자신의 실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할 수 있었다. 그 덕분에 코쿤을 해치울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가장 큰 이유는 코쿤이 애초에 그리 강하지 않은 몬스터라는 것이겠지만.
자주 나타나기에 유명한 것이지 강해서 유명한 것은 아니었다. 코쿤은, 일반인에게는 모르지만 나이트의 경지에 오른 자라면 그리 어렵지 않게 상대할 수 있는 몬스터였다.
그럼에도 루인이 위험해질 뻔한 것은 결국 실전 경험의 부재가 가장 큰 이유였다.
정신을 차린 루인은 그러한 사실을 깨달았다. 덕분에 나이트에 오르며 자신도 모르게 생겨났던 자만심을 없앨 수 있었다. 그건 단순히 승리한 것 이상으로 루인에게 도움이 될 일이었다.
과정이야 어찌 됐건 결과는 루인의 승리다. 승자가 전리품을 챙기는 것은 당연한 수순.
루인이 익힐 무술로 수라타를 택한 것은 수라타의 완성도가 높다는 이유도 있지만, 양다리만으로도 충분히 전투가 가능하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였다.
팔은 다른 일에 필요했는데 그 일을 위해서는 탄력이 좋은 물질이 필요했다.
루인은 코쿤의 뿔을 보며 눈을 반짝거렸다.
* * *
용병이라는 존재들이 있다. 그들은 돈을 받고 의뢰를 수행한다.
용병들 대부분은 의뢰를 선택할 때 의뢰 금액과 그 의뢰의 안전성만을 고려한다. 선, 악이라는 세상의 윤리는 그들에게 고려되는 사항이 아니다.
용병들의 선이란 높은 금액과 낮은 위험, 반대로 악이란 낮은 금액과 높은 위험이다.
보통은 아무리 위험해도 돈이 눈 돌아갈 정도로 많다면 의뢰를 받아들인다. 하지만 그 위험이 정도 이상으로 높아서 거의 확실하게 죽는다면 아무리 돈을 많이 준다고 해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용병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자신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살아야 돈도 쓸 수 있는 법이다.
하지만 십인십색이라, 대부분의 용병이 이렇다고 해서 모든 용병이 그런 건 아니다. 액수에 관계없이 안전한 의뢰만 하는 용병들도 있고, 돈만 많으면 무슨 일이든 하는 용병들도 있다.
그리고 매우 극소수로, 세상의 윤리로 선이라 칭해지는 행동을 하는 자들도 존재했다. 길포드 용병단은 그런 극소수의 용병들이 모인 용병단이었다.
용병계에서는 이단으로 통했지만 그들을 위선자라 욕하는 자는 없었다. 강했기 때문이다.
어려운 의뢰도 척척 해결할 정도로 능력이 좋았고, 시비 거는 자가 나타나면 철저하게 밟아 버릴 정도의 냉정함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길포드 용병단이라도 이번에 맡은 임무는 성공을 장담할 수 없었다. 비록 외곽 지대라고 하나 몬스터 랜드에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었다.
길포드 용병단의 숫자는 고작 다섯. 그것은 자살행위나 마찬가지다.
그들의 목적지는 킨델베르 숲이었다.
숲에 들어온 지 일주일. 그들은 결국 원하던 것을 찾을 수 있었다.
“저거 위빙 플라워 아니야?”
소리친 것은 20대 중반의 인상 좋게 생긴 사내였다. 사내의 이름은 홀스터.
홀스터의 말에 다른 용병단원들의 시선이 보라색 꽃을 향했다. 30대 중반의 인상 좋아 보이는 남자가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알리시아, 확인해 봐라.”
남자의 말에 대답한 것은 후드가 달린 로브로 전신을 가린 자였다. 단지 목소리로 여자란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두 가지 마법을 동시에 사용할 수는 없어. 이게 위빙 플라워가 맞는지 확인하려면 마나로직 스캔(Mana―Logic Scan)을 사용해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카그니션 재밍(Cognition Jamming)이 해제돼. 몬스터들이 우리의 존재를 알아채고 공격할 거야.”
알리시아의 말에 다른 세 단원들의 시선도 남자를 향했다. 남자는 여전히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더 이상은 시간을 지체할 수 없다. 잘못하다가는 위빙 플라워를 구해 가도 그 아이를 살릴 수 없을지 몰라.”
알리시아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질문했다.
“만약 이게 위빙 플라워가 아니라면? 그렇게 되면 위빙 플라워를 찾는 일도 쉽지 않아져.”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지금까지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렸어. 이게 위빙 플라워가 맞으면 당장 돌아가고, 그렇지 않으면 위험해도 계속 찾는다. 그게 나의 결정이다.”
알리시아는 한숨을 한 번 내쉰 후 위빙 플라워로 걸어가며 말했다.
“휴우. 단장의 결정이라면 어쩔 수 없지. 따를 수밖에. 하여간 무식한 놈 밑에 있다가는 제명에 못 산다니까.”
남자의 이름은 길포드. 그는 길포드 용병단의 단장이었다.
다른 세 명의 단원, 홀스터, 크레일, 딜스가 알리시아의 말에 고개를 끄덕거린다.
그에 길포드는 머쓱한 듯 머리를 긁적거린다.
알리시아는 보라색 꽃 바로 앞까지 걸어간 후 정지했다. 그러고는 로브 안에서 기다란 지팡이를 꺼내었다.
지팡이의 머리 쪽에는 푸른 빛을 내뿜는 보석 같은 것이 다섯 개 박혀 있었다. 그것은 가공된 에테르기움이었다.
에테르기움이 이렇게 박힌 지팡이는 메이지 스탭(Mage Staff)이라는 것으로 마법사들이 마법을 사용할 때 마력 보조용으로 흔히 사용하는 물건이다.
이렇게 메이지 스탭을 이용해 마법을 부리면 자신의 능력보다 강한 마력의 마법을 사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지속형 마법의 경우 그 지속 시간을 어마어마하게 늘일 수 있다.
카그니션 재밍 마법으로 일주일 동안 킨델베르 숲을 돌아다닐 수 있었던 것도 다 메이지 스탭 덕분이다.
알리시아는 왼손으로 메이지 스탭을 잡아 수직으로 세우고, 오른 손가락 다섯 개를 다섯 개의 에테르기움에 가져다 대었다. 그러고는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를 영창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세상에 존재할 수 없는 언어.
허락되지 않은, 그렇기에 질서의 영역을 허무는 언어.
그것은 마법 언어였다. 실전된 고대 마법 언어와 구분하여 신마법 언어라 부르는 학자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그냥 마법 언어라 말했다.
알리시아의 영창에 따라 에테르기움이 강한 빛을 뿜어낸다. 동시에 공기 중에 흩어져 있던 마나가 회오리치며 알리시아의 정수리로 쏟아져 들어온다.
몸 안으로 들어온 마나는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은 채 알리시아의 몸을 통과해 메이지 스탭을 거쳐 에테르기움으로 흘러 들어간다.
마나는 에테르기움에 도착하는 순간 움직임을 멈춘다. 하지만 흘러 들어오는 마나는 계속되었기에 에테르기움에 모이는 마나의 양은 점점 늘어 간다.
그리고 한순간.
“마나로직 스캔!”
알리시아가 발현어를 외치는 순간 뭉쳐 있던 마나가 순식간에 외부로 방출되었다. 그렇게 방출된 마나는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보라색 꽃으로 뻗어 나갔다.
마나의 흐름이 닿는 순간 보라색 꽃을 둘러싼 둥근 막 같은 것이 생겨난다. 그 막 위로 수십 개의 푸른색 선이 휘어지고 꺾이며 그려진다.
알리시아가 기쁜 목소리로 소리쳤다.
“위빙 플라워가 맞아! 희귀식물도감에서 보았던 마나로직과 일치해!”
알리시아는 순식간에 보라색 꽃을 파낸 후 로브 안에서 꺼낸 갈색 주머니에 담았다. 그 일이 끝나자 길포드가 침착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제 이동한다. 다들 주의하도록. 진짜 고생은……!”
갑자기 길포드의 검이 수평으로 휘둘러진다.
부웅! 서걱.
깔끔한 일격!
몰래 접근했던 코쿤의 몸이 그대로 이등분된다.
“……지금부터 시작이니까.”
길포드 용병단은 최대한 빠른 속도로 이동했다. 그건 위빙 플라워를 찾을 때와는 정반대의 행동이다.
위빙 플라워를 찾으러 다닐 때에는 최대한 조심해서 이동했다.
카그니션 재밍 마법은 인식을 방해하는 마법. 그렇기에 몬스터들은 길포드 용병단을 보고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 그건 손에 펜을 들고 펜을 찾는다거나, 안경을 쓰고 안경을 찾는 것과 비슷한 종류의 일이다.
조용히 움직이면 카그니션 재밍 마법은 정상 작동하지만 만약 소란을 일으켜 주의를 집중시킨다면 카그니션 재밍 마법도 소용이 없다.
그렇기에 조심해서 움직였고 속도도 빠르지 않았다.
이제는 상황이 바뀌었다. 카그니션 재밍을 걸기 위해서는 시간도 필요하지만 주위에 마법의 대상자를 인식하는 존재가 없어야 한다.
하지만 이 킨델베르 숲에는 수많은 몬스터들이 존재했다. 그들이 먹음직스러운 사냥감을 무시할 리는 없다.
카그니션 재밍은 더 이상 사용 불가.
어차피 몸을 숨길 수 없다면 최대한 빠르게 킨델베르 숲을 빠져나가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다.
분명 길포드의 판단은 그 상황에서 가장 적당한 것이었다. 다만 킨델베르 숲에 대해 알려진 것이 없었고, 그래서 그들이 진로 근처에 살고 있는 존재에 대해 알지 못했다는 것이 길포드 용병단의 불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