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타이탄 로드 1(9화)
chapter 4. 킨델베르 숲(2)


쿠웅!
폭음이 터지고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대지의 울부짖음은 지진이라도 난 듯 거대한 진동이 되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하르실리온이 떨어진 곳은 숲의 한복판. 낙하의 충격으로 인해 나무들은 하르실리온을 중심으로 동심원을 그리며 누웠다.
추락은 소리와 진동뿐만 아니라 열기 또한 발생시켰다. 넘어진 나무 일부에는 불이 붙기도 했다.
땅에 닿기 직전 루인은 낙법을 펼쳤다. 모든 무술이 총망라되어 있는 수라타에는 당연히 낙법도 포함되어 있었다.
수백 밀의 높이에서 떨어지는 일에 낙법이 얼마나 효용성이 있을지는 루인으로서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추락하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았다.
루인은 추락의 결과를 확인할 수 없었다.
땅에 닿는 순간 하르실리온과의 유니온이 해제되었기 때문이다.
루인은 갑작스럽게 찾아온 암흑에 놀랐다. 하지만 잠시 후 하르실리온의 아공간이란 것을 깨닫고는 재빨리 하르를 찾았다.
언제나 생글거리던 하르는 쓰러진 채 움직이지 않았다.
“하르!”
루인은 놀라 소리치며 하르를 불렀다. 하르가 힘없이 눈을 뜨며 루인을 바라보았다.
“무사해서…… 다행…… 헤헤.”
“이 바보야! 지금 무슨 짓을 한 거야?”
“루인…… 나의 주인…… 무사해야…….”
루인은 아무 말도 못한 채 하르를 바라보았다.
유니온을 하게 되면 하르실리온은 루인의 생각에 따라 움직이게 된다. 하르실리온이 루인에게 종속되는 것이다.
하지만 유니온은 일방적인 관계가 아니다. 하르실리온의 감각이 루인에게 생생하게 전해지는 만큼 피해 또한 고스란히 전해진다. 물론 그건 정신적인 타격일 뿐 실제 루인의 몸에 상처가 생기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 충격이 너무 크면 어떻게 될까? 하르실리온의 몸이 완전히 박살 날 정도라면?
사람의 정신은 그리 강하지 않다. 온몸의 바스러질 정도의 충격을 받는다면, 실제 몸이 무사하다고 해도 쇼크사로 사망할지 모른다.
땅과 부딪히는 순간 루인과 하르실리온의 유니온은 강제적으로 해제되었다. 하르실리온이 한 일이었다. 덕분에 루인은 무사할 수 있었다.
하지만 결과는 결코 좋다고 할 수 없었다.
분명 하르실리온은 루인과 유니온하지 않고도 움직일 수 있다. 하지만 그 능력에서는 엄청나게 차이가 났다.
유니온한 상태로도 추락의 충격에 어찌 될지 몰랐다. 그런 걸 유니온하지 않은 상태에서 받았으니 그 피해는 실로 엄청날 것이다.
루인 역시 그러한 사실을 알았기에 안타까운 눈빛으로 하르를 바라보았다.
항상 툴툴대기나 하고 빈둥대기만 하는 줄 알았는데, 그래서 볼 때마다 구박만 했었는데, 하르가 자신을 구하기 위해 희생한 것이었다.
루인은 미안함과 고마움으로 어찌할 바를 몰랐다.
“루인, 이제 그만 심퍼사이즈를 해제해야 해. 더 이상은 이 아공간을 유지할 수 없어.”
루인은 화들짝 놀라서는 아르를 끌어안으며 소리쳤다.
“그럴 순 없어. 이렇게 된 너를 두고 나만 살 수는 없어!”
“걱정 마, 루인. 주인인 네가 살아 있는 한 나는 소멸되지 않아. 아공간 속에 머물며 몸을 회복시켜야 해. 그리고 몸이 다 회복되면 다시 나올 수 있어.”
“정말이야?”
하르가 힘없이 웃으며 말했다.
“응. 그러니 이만 나가. 더 이상은 이 공간을 유지하는 것도 힘들어.”
“알았어. 꼭 무사해야 한다.”
루인은 그 말을 마지막으로 심퍼사이즈를 해제했다. 당연히 검은 공간에서 루인의 모습은 사라졌다.
루인의 모습이 사라지는 순간, 힘없이 누워 있던 하르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 모습에 조금 전의 처연함은 전혀 담겨 있지 않았다.
하르가 음흉한 웃음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이만하면 감동했겠지? 나에게 완전히 반했겠지? 루인, 넌 내 꺼야. 다른 년들에게 넘길 수는 없지. 오호호호…… 아, 역시 그 정도 충격을 혼자 버티는 것은 무리였나? 에고, 허리야.”
하르의 목적은 무엇일까? 그리고 다른 년이라니? 아직 하르의 의도는 알 수 없다.

* * *

심퍼사이즈를 해제하고 바깥으로 나온 루인의 눈에 처음 들어온 것은 완전히 박살 난 하르실리온의 모습이었다. 원래의 형상은 보이지 않고 조각 난 금속 덩어리만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허공에 검은 구멍이 생겨났다. 그 구멍은 아공간의 통로. 바닥에 떨어져 있던 금속 덩어리들이 하나씩 그 구멍으로 빨려 들어갔다.
모든 금속이 빨려 들자 구멍의 크기가 줄어들었다. 그렇게 동전 크기만 하게 줄어든 구멍은 루인을 향해 날아왔다.
구멍은 어느덧 모습이 바뀌어 문자 같은 것으로 변해 있었다. 루인은 알아볼 수 없었지만 그것은 고대 마법시대에 사용하던 고대의 마법 문자.
문자는 루인의 가슴에 들어와 박혔다. 테사르의 륜 옆으로 고대의 마법 문자가 문신처럼 새겨졌다.
루인이 하르실리온에 탑승하는 공간은 하르실리온의 몸 안에 존재하는 아공간이다. 비록 현실과 유리된 공간이라고 하나 하르실리온이라는 접점이 존재하기에 현실 차원과의 연결에 문제가 생기지는 않는다.
반면 하르실리온이 회복을 위해 들어간 곳은 현실과 아무런 접점이 없는 아공간이다. 현실에 무언가를 남기지 않으면 그 아공간에서 이곳으로 돌아오는 것은 요원한 일이다.
구멍이 변해 생긴 문자는 현실과 아공간을 연결하는 접점이었다.
루인은 이러한 사실을 하르에게 들어 알고 있었다.
루인의 옷은 갱도가 매몰될 때 이미 걸레가 되었다. 게다가 3년 동안 새로운 옷을 구하지도 못했다. 중요한 부분을 가리는 것으로 만족해야 할 상태였고 당연히 상체는 훤히 드러나 있었다.
루인은 가슴에 새겨진 문자를 아련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방금 일로 하르에 대한 호감이 커진 상태다. 하르의 혼잣말을 들었다 해도 그 마음이 희석되었을망정 고마운 마음을 가졌을 것이다. 그런 상황인데 혼잣말을 듣지도 못했으니 루인은 진심으로 깊이 고마움을 느꼈다.
루인은 잠시 문자를 바라보다가 이내 시선을 돌려 냉정하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고마운 건 고마운 거고 현실은 현실이다.
루인이 가진 최강의 무기라 할 수 있는 하르실리온을 사용할 수 없는 상태다.
게다가 루인이 떨어진 곳은 숲 지대. 대부분의 숲은 인간의 발길을 거부한다. 그곳의 주인은 몬스터이기에.
게다가 이곳이 루인이 일하던 에테르기움 광산에서 가까운 곳인지? 아니, 이곳이 루드란 제국이 맞는지조차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곳이 안전하다면 차분히 주위를 살피는 것이 옳겠지만 그렇지도 않았다. 요란하게 추락했으니 이 숲의 생물들의 관심을 끌었을 것이다.
숲의 넓이가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는 이상 일단 안전한 장소를 찾은 후 인간들이 사는 곳으로 나갈 방법을 찾아야 했다.
루인은 주변을 조심스럽게 살피며 자리를 이동했다.
하르실리온의 추락으로 발생한 막대한 열기, 그 열기로 몇몇 나무들에 불이 붙었지만 다행히 큰불로 발전하지는 않았다. 불은 오히려 꺼져 가고 있었다. 다행스러운 일이었지만 루인으로서는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었다.
주위의 공기는 후끈거렸다. 추락으로 발생한 열기가 결코 적지 않다는 의미였다. 그런데도 불길의 규모는 작았고 게다가 꺼져 가기까지 했다.
일반적인 숲이었다면 당장 큰불로 번져도 이상하지 않을 일이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루인은 불이 잘 붙지 않는 나무에 대해 들어 본 적이 있다.
베이디안 대륙에서 살아가는 자라면 누구나 그런 나무에 대해 알고 있다. 일반적인 나무에 네거티브 포스(Negative Force)가 깃들게 되면 지금처럼 나무에 불이 잘 붙지 않게 된다.
그렇게 네거티브 포스가 깃든 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는 곳 중 몇 곳은 절대 인간이 발을 들이지 않아야 할 곳이었다.
“설마 몬스터 랜드는 아니겠지?”
베이디안 대륙은 크게 남북으로 가를 수 있다. 북쪽이 사람들의 영역이라면 남쪽은 네거티브 포스가 깃든 생명체인 몬스터들의 땅이다. 그렇기에 몬스터 랜드라 부른다.
루인의 바람은 아쉽게도 빗나갔다. 루인이 있는 곳은 분명 몬스터 랜드였다. 하지만 다행이라면 이곳이 킨델베르의 숲이라는 점이다.
몬스터들은 이름을 짓지 않는다. 즉, 킨델베르의 숲이라는 명칭은 인간들이 지은 것이다. 그리고 이름을 가지고 있다는 말은 인간들의 땅과 가깝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루인은 일단 북쪽으로 방향을 잡고 이동하기로 마음먹었다.
이곳이 킨델베르의 숲이라는 것을 안 것은 아니다. 몬스터 랜드라는 확신도 없었다. 단지, 몬스터 랜드가 아니라면 어느 쪽으로 가는가 하는 것은 의미 없고, 몬스터 랜드라면 남쪽으로 가는 것은 자살행위와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결정하고 이동하려 했지만 루인은 채 열 걸음도 옮기기 전에 생각을 바꾸었다.
하르실리온이 추락하며 발생한 열기는 결코 적지 않았다. 특별히 뜨거운 곳은 고기를 충분히 익힐 정도였다.
꼬르륵!
고기 익는 냄새가 루인의 코를 자극했다. 추락의 충격으로 육편이 된 알 수 없는 생물이 열기로 익은 것이었다.
정체는 알 수 없지만 일주일이나 굶은 루인에게 그 정도는 아무런 방해도 되지 않았다. 루인은 대충 흙을 털어 내고는 단숨에 고기 덩어리를 입에 넣었다.
꿀맛이었다.
허겁지겁 배를 채우던 루인은 한순간 먹는 것을 멈추었다. 코앞에서 들려온 소리 때문이었다.
“그르르르릉!”
루인의 고개가 천천히 들려졌다. 그런 루인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늑대를 닮은 생물이었다. 하지만 늑대는 아니었다. 이마에 커다란 뿔이 달려 있었으니까.
루인의 등으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코쿤!’
코쿤은 헬렉스, 프로운과 함께 인간에게 매우 잘 알려진 몬스터였다. 그중 코쿤은 홀로 돌아다니는 자들을 습격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밤에 함부로 돌아다니면 코쿤이 잡아 간다.’
부모들이 놀다가 늦게 들어온 어린아이들에게 흔히 하는 말이었다.
루인은 코쿤을 본 적은 없었지만 생김새에 대해서는 들어서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코쿤의 뜨거운 입김이 루인의 얼굴을 간질거린다. 벌려진 입에는 날카로운 이빨이 섬뜩한 빛을 발하고, 진득한 침이 입가를 따라 흐르며 번들거리고 있다.
루인과 코쿤의 눈이 서로 마주쳤다.
정적.
이대로 멈춰 있을 것 같던 시간은 순식간에 끝이 났다. 루인이 뒤로 살짝 물러나려는 순간!
“캬르르!”
코쿤이 순간적으로 머리를 내밀며 루인의 머리를 물어 왔다. 갑작스런 변화에 루인은 당황해 어찌할지 판단하지 못했다.
보통 이렇게 되면 루인이 코쿤에게 당해야 정상이다. 하지만 상황은 루인에게 유리하게 흘러갔다.
루인의 몸이 바닥이 달라붙듯 낮아진다.
동시에 왼손이 코쿤의 머리를 향해 뻗어 나간다. 손이 한 바퀴 회전하며, 손바닥으로 코쿤의 아래턱을 올려친다.
오른손은 아래로 내려와 손바닥으로 땅을 짚는다.
한순간에 행해진 동작으로 코쿤의 공격은 빗나가고 루인은 코쿤의 아래쪽 사각에 위치하게 되었다.
“케륵!”
코쿤이 갑작스런 턱의 충격에 의아해하는 사이에도 루인의 몸은 계속해서 움직였다.
바닥을 짚은 오른손을 축으로 루인의 몸이 시곗바늘 방향으로 회전한다. 펼쳐진 채 원을 그린 루인의 왼발이 코쿤의 오른 앞다리 발목을 정확하게 가격한다.
루인을 공격하느라 코쿤의 무게중심은 앞다리에 잔뜩 실린 상태, 그 상태에서 디딤발 하나를 공격받았기에 코쿤의 몸은 균형을 잃고 옆으로 넘어간다.
루인의 몸은 한 번의 공격을 마친 후에도 계속해서 돌아가는 상태다. 공격을 마친 왼발이 바닥에 닿는 순간 오른발은 이미 코쿤의 목을 향해 날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