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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탄 로드 1(8화)
chapter 3. 수련(2)
루인은 이틀 동안 혼허무극신공의 연공도 중지한 채 자신의 머릿속에 든 지식을 뒤적거렸다. 그리고 결국 가능성이 보이는 방법을 찾아낼 수 있었다.
마나란 세상을 존재하게 하는 에너지다. 그리고 이 에너지는 루인이 살고 있는 이 차원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차크라, 기, 루아르, 헤르사임, 코호…….
비록 부르는 이름은 다르다고 해도 마나는 다른 차원에도 분명히 존재했다.
그리고 에테르기움처럼 마나가 응축되어 고형화한 상태로 존재하는 곳 역시 있었다. 그런 에테르기움을 다루는 방법도 마찬가지로 존재했다.
차원이 다르면 환경이 다르고 당연히 그곳을 살아가는 존재들의 형상도 다르다. 온통 불로 이루어진 존재들도 있고, 돌로 이루어진 지성체도 있었다.
개중에는 펠그림처럼 순수한 에너지로 이루어진 정신체도 존재했다.
정신체이기 때문일까? 언어가 존재하지 않기에 이름이 없는 그 종족은 의지로 마나를 다룰 수 있었다. 마나 정화법 역시 이들의 방법이었다.
이들은 에테르기움에서 마나를 흡수할 수도 있었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에테르기움의 등급이 높아야 했다.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고, 바람이 고기압에서 저기압으로 불듯, 마나의 흐름은 마나 밀도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움직였다.
그것을 거스르는 것이 마나 연공법이고 심법이었지만, 마나를 흡수하는 방법에는 통용되지 않았다.
공동에는 수많은 에테르기움들이 존재했다. 그 에테르기움들의 등급은 대부분 B등급. 개중에는 간혹 A등급도 존재했다.
에테르기움의 등급은 A등급부터 E등급으로 나뉘며 앞으로 갈수록 상등품에 해당한다. A등급을 뛰어넘는, S등급의 에테르기움이 있다는 소문이 있기는 했지만 공식적으로는 존재하지 않았다.
문제는 에테르기움에서 마나를 흡수하는 방법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그 에테르기움의 등급이 A등급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루인은 마나를 흡수하는 방법을 사용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상황이 바뀌었고 무시무시한 구멍(?)을 채울 정도로 막대한 마나가 필요하게 되었다.
일주일을 고민한 끝에 겨우 몇 가지 방법을 조합하여 해결 방안을 찾아낼 수 있었다.
그 방법은 루인이 알고 있는 나르켈어로는 설명하기 어려웠다.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 존재와 전혀 다른 법칙으로 살아가는 존재들의 방법이 함께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에테르기움을 부수고 가루를 낸 다음 다시 합치는 것이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에테르기움의 등급을 향상시킬 수 있었다.
허탈할 정도로 간단한 방법처럼 들리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그저 말로 설명할 수 있는 부분이 이 정도일 뿐.
루인은 그렇게 알아낸 방법으로 B등급의 에테르기움을 A등급으로 향상시켰다. 그리고 그 에테르기움에서 마나를 흡수했다.
에테르기움은 마나가 응축되어 아예 고체가 되어 버린 것. 당연히 대기의 마나와는 그 밀도에서 비교가 되지 않는다.
에테르기움에 응축된 마나는 매우 많은 양이었고, 루인의 몸에 존재하는 386개의 마나 홀은 탐욕스러운 기세로 마나를 빨아들였다.
마나 홀이 마나를 빨아들이는 용량에는 한계가 없었다. 하지만 루인의 몸까지 그런 것은 아니다.
비록 렉토-헬리온-쿠브린에 의해 이상적인 신체로 바뀌긴 했지만 기본 바탕은 사람의 몸이다. 많은 양의 마나를 받아들이니 당연히 무리가 왔다.
그렇기에 루인의 혼허무극신공 수련은 하루 4시간 정도로 제한되었다. 대신 비는 시간에 전투법을 익혔다.
루인이 고른 것은 ‘수라타’라는 박투법이었다. 그것은 ‘엘메른’이라는 곳의 무술이었다. 엘메른은 루인이 살고 있는 이 베이디안 대륙과도, 그리고 지구라는 곳과도 비슷한 곳이었다.
루인이 무림의 심법을 택한 것은 마나 연공의 효율도 있지만 그 땅에 살아가는 자들이 자신과 비슷하다는 이유가 더 컸다. 실제로 더 우수한 효율의 마나 연공법도 존재했지만 루인과는 전혀 다른 존재였기에 안정성을 보장할 수 없었다.
에테르기움의 등급을 올린 후 그것에서 마나를 흡수하는 방법은 그런 점에서 도박과 마찬가지였다. 마나를 빨아들이는 마나 홀이 아니었다면 그 방법을 처음부터 알았다고 해도 사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루인이 ‘수라타’라는 박투법을 선택한 것 역시 마찬가지 이유였다. 신체가 서로 비슷하니 무술도 더욱 효과적이고 안전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게다가 수라타는 다리를 이용해 공격하는 각법이 매우 발달되어 있었다. 루인이 생각하는 한 가지를 실행에 옮길 때, 각법이 우수한 수라타가 가장 도움이 될 것이라 판단했다.
루인은 그렇게 수라타와 마나 흡입, 혼허무극신공을 열심히 수련했다.
그렇게 3년이란 시간이 지났다.
* * *
루인의 두 눈에는 정광이 가득하다. 담담히 서 있건만 몸에서는 굳건한 기세가 흘러나온다.
루인이 바닥을 박찬다.
순식간에 이동하는 루인의 몸. 그 속도는 결코 일반적인 사람의 신체로는 낼 수 없는 수준이다. 마나를 이용해 신체를 강화시켰기에 그런 일이 가능했다.
3년이란 시간 만에 드디어 나이트의 경지에 오른 것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던 상태에서 3년 만에 나이트의 경지에 올랐다? 그건 엄청나게 빠른 성장 속도였다.
하지만 루인의 이상적인 신체와 마나 흡입이라는 무식한 방법을 고려해 보면 어마어마하게 오래 걸린 것이기도 했다.
하르실리온이 옆으로 누운 채 나른한 목소리로 물었다.
“뭐야? 갑자기 빨라졌네? 설마 나이트가 된 거야?”
하르실리온은 루인이 탑승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스스로의 의지로 움직일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건 그냥 움직인다는 행위에 국한되어 있었다. 공간이동 마법진을 발동시키는 것 역시 마찬가지로 할 수 없었다.
즉, 하르실리온이 바닥에서 뒹굴거리는 것은 본인의 의지라는 말이었다.
6밀의 강철 거인이 백수처럼 바닥에 누운 채 빈둥대는 것은 어떤 의미로는 상당히 아찔한 광경이다. 하지만 루인은 하르실리온의 모습에서 아무런 감흥을 받지 않았다.
3년이라는 시간은 그런 행태에 익숙해지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래, 하르. 이제 바깥으로 나갈 수 있다. 하하하하하.”
3년은 또한 하르실리온을 하르라는 애칭으로 부르기에도 충분한 시간이었다.
루인은 하르실리온에게 향하던 시선의 방향을 바꾸었다. 그러고는 감회에 젖은 표정으로 공동을 둘러보았다. 루인의 두 눈에는 아쉬움이 가득했다.
“아, 제길. 에테르기움을 남겼으면 바깥으로 나가서 한몫 벌었을 텐데. 남은 건 겨우 이거 하나뿐인가?”
루인의 손에 들린 것은 A등급의 에테르기움 딸랑 하나. 그것이 이 공동의 유일한 광원이었다. 밝은 빛을 뿌리던 수많은 에테르기움들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마나로 환원되어 모조리 루인에게 흡수되었다. 정확하게는 루인의 마나 홀이겠지만.
에테르기움을 고스란히 남겨서 바깥으로 나갔다면 루인은 순식간에 부자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이트의 경지에 오르기 위해서 하나를 제외한 모든 에테르기움이 소모되어야 했다.
돈지랄로 나이트가 된 셈.
나이트가 되어 바깥으로 나갈 수 있게 된 것은 분명 기뻤지만, 그러느라 날려 버린 에테르기움이 너무나 아쉬웠다.
루인은 몸을 돌려 하르실리온을 향해 걸어갔다. 마지막이라는 생각 때문인지 발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꼬르륵!
배에서 심상치 않은 소리가 들려왔다.
무려 3년이다. 그 시간은 물가에 자라 있는 이끼가 모조리 루인의 뱃속으로 들어가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이끼가 바닥난 것은 일주일 전. 루인의 뱃가죽은 이미 등짝에 찰싹 달라붙은 상태였다.
며칠만 늦었다면 아마 굶어 죽었을 것이다.
루인은 수라타의 ‘빠른 걸음’으로 순식간에 하르실리온에게 달려갔다. 그러고는 심퍼사이즈하여 하르실리온의 안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여전히 컴컴한 공간. 그 한 곳에서는 언제나처럼 하르가 싱글거리는 표정으로 루인을 바라본다.
하지만 이전과는 분명 달랐다.
루인은 눈을 감았다. 그러고는 떴다.
보이는 것은 컴컴한 어둠.
유일한 광원인 에테르기움을 가진 채 하르실리온에 탑승했다. 당연히 공동에는 빛 한 점 존재하지 않았다.
루인은 몸을 움직였다. 그렇게 생각했지만 루인의 몸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대신 루인의 몸에 흐르는 마나가 움직이며 동시에 하르실리온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르실리온은 엉거주춤한 자세로 몸을 낮추며 손으로 바닥을 훑었다. 공간이동 마법진이 있는 곳에는 홈이 파여져 있기에 보이지 않아도 이런 방법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단, 자세가 좀 그렇다는 단점이 있다.
“이 꼴사나운 모습은 뭐야?”
하르의 칭얼거림을 가볍게 무시하고 루인은 떨리는 음성으로 소리쳤다.
“발동!”
루인의 말은 하르실리온의 입에 해당하는 곳을 통해 바깥으로 나왔다. 그러자 공간이동 마법진이 빛을 뿜기 시작했다.
마법은 공짜가 아니다. 발현하기 위해서는 마나라는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건 마법진을 통한 마법이라도 마찬가지.
공간이동 마법진은 하르실리온의 마나를 이용해 발동되었다.
루인은 갑자기 빠져나가는 마나의 흐름에 순간적으로 흠칫했지만, 그것이 공간이동 마법진을 향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저항하지 않았다.
그렇게 1분 정도의 시간이 지나자 마법진에서 빛이 폭발적으로 뿜어져 나왔다.
빛이 없어도 볼 수 없지만 빛이 너무 강해도 볼 수 없다. 갑작스런 광량의 증가에 루인의 시각은 마비되었다.
그리고 다시 시각이 회복되었을 때, 루인은 푸른 하늘을 볼 수 있었다.
“드디어 나왔다! 만…… 으아아아악!”
기쁨의 함성을 지르던 루인은 이내 비명을 질러 댔다. 아래쪽에 흰 구름이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하르실리온에 비행 기능은 없었다. 당연히 하르실리온의 몸은 아래를 향해 빠르게 가속되었다.
chapter 4. 킨델베르 숲(1)
세상에 영속적인 것은 없다. 모든 것은 변화한다.
고정된 것 역시 없다. 모든 것은 움직인다. 그건 공간 역시 마찬가지다.
루인은 공간이동 마법을 이용해 공동에서 나왔다.
지금은 사라진 공간이동 마법은 서로 다른 공간을 한순간 일치시키는 방법으로 거리의 한계를 뛰어넘어 이동하게 된다. 그런 만큼 이동하는 공간의 좌표를 설정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공간이동 마법진이 처음부터 하늘로 워프되게 만든 것은 아닐 것이다. 안전을 위해 지상에서 조금 위로 만드는 것이 상식적인 일이다. 하지만 공간이동 마법진이 만들어진 것은 무려 2000년도 더 전이다. 비록 공간이동 마법진의 좌표 설정에 시간에 따른 공간의 유동을 포함시켰다고 해도, 2000년이라는 시간은 오차를 발생시키기에는 충분할 정도로 긴 시간이다.
우주로 날려 버리지 않은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물론 떨어지고 있는 루인이 그걸 다행이라 생각할 리는 없겠지만.
하르실리온과 유니온한 상태였기에, 루인은 매우 생생하게 추락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최강의 타이탄이라고 스스로 자처하고, 그 성능이 루인이 알고 있는 나이트암보다 뛰어나다 해도, 수백 밀 높이에서 떨어지고도 무사할 리는 없다.
루인은 하르실리온의 눈을 통해 바깥을 보고 있지만 원한다면 자신의 본래 몸이 존재하는 아공간을 볼 수도 있다.
아공간으로 시선을 돌린 루인은 하르가 공포로 창백하게 질려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하르실리온의 본체가 추락에 무사할 수 없다는 것은 확실해 보였다.
이대로 멍하니 있을 수는 없다. 3년 동안 어마어마한 에테르기움을 먹어 치우고 겨우 바깥으로 나왔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끝낼 수는 없다.
어떻게든 피해를 줄일 방법을 찾아야 했다. 날 수 없으니 떨어지는 속도라도 줄여야 했다. 운이 좋았을까? 루인의 지식 중에는 스카이다이빙이란 것이 있었다.
루인은 양팔과 양다리를 쫙 폈다. 그런 다음 마치 활시위처럼 몸을 잔뜩 휘었다. 이렇게 하면 떨어지는 속도를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고, 또한 자세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숙련된 사람에게나 해당되는 일.
루인이 아는 것은 어디까지나 지식일 뿐이다. 경험이 없다. 경험 없는 지식이란 결국 반쪽짜리일 뿐이다.
루인의 머릿속에 의미를 짐작할 수 없는 말이 떠올랐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
뜬금없는 말에 정신을 쏟을 여유는 없었다.
루인의 시도는 아무런 효과도 거두지 못했다. 오히려 자세가 틀어지면서 발생한 모멘트 덕분에 하르실리온의 몸이 천천히 회전하기 시작했다.
루인은 성급하게 취했던 스카이다이빙 자세를 서둘러 취소하고는 자세를 안정화시키는 데 주력했다.
비록 스카이다이빙에 실패하긴 했지만, 그 덕분에 바람의 저항에 따라 몸의 자세가 바뀐다는 경험을 얻을 수 있었다. 게다가 하르실리온의 무게 덕분에 바람의 영향을 그리 많이 받지 않는다는 점도 있어서, 다행히 루인은 자세를 바로잡을 수 있었다.
루인은 바로 선 채로, 하지만 속도는 줄이지 못한 채 지상에 추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