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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탄 로드 1(7화)
chapter 3. 수련(1)


공동을 나가기 위해서는 하르실리온을 움직일 수 있어야 했다. 하르실리온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몸에 마나를 쌓아 나이트의 경지에 들 필요가 있었다.
루인은 노예 출신이다. 당연히 알고 있는 마나 연공법은 없었다. 가끔 단순히 호흡만으로 마나를 모아 나이트의 경지에 드는 사람이 나오곤 했다. 하지만 그런 자들은 마나에 대한 기감이 지극히 뛰어난, 아주 극소수의 몇몇뿐이다. 그것도 단 몇 달이 아니라 수십 년을 노력하고서야 겨우 나이트가 될 수 있었다.
현실적으로 마나 연공법 없이 나이트가 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하지만 루인은 실망하지 않았다. 분명 마나 연공법은 몰랐다. 대신 마나 연공법을 대체할, 어쩌면 마나 연공법보다 더욱 효과가 좋을 방법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몇 시간 전에 알게 된 것이었다.
루인은 렉토-헬리온-쿠브린에게 먹혔었다. 하지만 의식을 완전히 잃은 것은 아니었다. 또렷하진 않지만 분명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건 루인의 정신이 단번에 먹힌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루인은 렉토-헬리온-쿠브린의 속에서 천천히 소화되어 갔다. 아마 테사르의 륜이라는 문신에서 일어난 빛이 아니었다면 루인이라는 존재는 시간이 흘러 완전히 사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루인은 살아남았다. 그것도 그냥 살아남은 것이 아니었다.
소화라고 표현했지만 그건 루인의 정신이 렉토-헬리온-쿠브린과 하나가 되는 과정이었다.
애초에 정신체인 펠그림의 정신력이 물질에 기반을 둔 생물인 인간보다 강한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게다가 렉토-헬리온-쿠브린은 평범한 펠그림이 아니라 가장 강한 펠그림, 펠그림의 오라클이었다.
그렇기에 루인은 아무런 반항도 하지 못한 채 일방적으로 흡수되어 갔다.
흡수라고 하지만 결국 하나 되는 과정이란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즉, 렉토-헬리온-쿠브린의 지식은 루인의 지식이기도 하다는 의미다.
렉토-헬리온-쿠브린이 지닌 지식은 무한에 가까울 정도로 엄청난 양이다. 원래의 루인이라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루인은 렉토-헬리온-쿠브린에게 도망치기 위해 정신세계를 돌아다녔다. 그건 단순한 도망이 아니라 루인의 정신을 개발하는 일이기도 했다.
마지막에 루인의 정신세계에 검은 공간은 남아 있지 않았다. 단순히 렉토-헬리온-쿠브린에게서 도망치기 위해 한 일이지만, 그럼으로써 정신세계를 모조리 개척하는, 인간으로서는 불가능한 전무후무한 일을 달성했다.
루인은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듯 렉토-헬리온-쿠브린의 지식을 빨아들였다. 렉토-헬리온-쿠브린이 지닌 지식은 너무나 엄청났고, 그중 10퍼센트 정도를 받아들였을 때 루인의 정신은 포화 상태가 되었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났다면 루인의 정신이 완전히 먹혀 버렸겠지만 그때 빛이 발생했다. 그 빛은 렉토-헬리온-쿠브린이라는 존재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주어 소멸시켰다.
그렇다고 그 빛이 루인에게 호의적인 건 아니었다. 아니, 지독히 배타적이며 위협적이었다.
테사르의 륜은 어린 시절 루인의 어머니가 루인의 심장 부분에 새겨 놓은 문신이었다. 루인은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그저 어머니의 흔적이라 생각하며 소중히 여겼다.
하지만 테사르의 륜은 매우 위험한 것이었다. 어째서 어머니가 자신에게 이런 것을 심어 놓았는지 루인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비록 그 덕분에 렉토-헬리온-쿠브린를 물리칠 수 있었지만 까딱 잘못했으면 루인 자신도 문제가 생겨 버릴 뻔했다.
테사르의 륜에서 나온 빛은 정신에 매우 치명적인 타격을 주는 것이었다. 정신체만 정신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생물이라면 그 어떤 존재이든 정신을 가지고 있다.
루인 역시 빛 때문에 어마어마한 타격을 입었다. 단지 육체를 가진 생물이었기에 렉토-헬리온-쿠브린보다 타격이 조금 덜했을 뿐이다.
루인의 정신은 대부분 파괴되었다.
빛이 사라진 후 루인이 제정신을 차릴 수 있었던 것은, 정신세계에서 도망 다니며 정신의 방을 완전히 개발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수많은 정신의 방을 만들었기에, 정신이 완전히 소멸하는 것을 가까스로 피할 수 있었다.
빛에 의해, 루인이 개척했던 정신의 방은 대부분 파괴되었다. 그나마 하나라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천운이었다.
빛이 5초 정도만 더 지속되었다면 정신의 방은 모두 부서지고 루인은 백치가 되었을 것이다.
빛에 의해 정신의 방이 부서지며 렉토-헬리온-쿠브린에게 얻은 대부분의 지식은 날아갔다. 만약 차후에 루인이 다시 정신의 방을 개발하게 된다면 렉토-헬리온-쿠브린의 지식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지극히 일어나기 어려운, 기약 없는 일일 뿐이다.
그래도 다행히 남아 있는 지식 중 유용한 것이 존재했다. 그중 하나는 마나를 모으는 특별한 방법이었다.
다른 차원에 존재하는 무림이라는 곳의 방법이었다. 그곳에는 심법이라 통칭하는 여러 가지의 마나 연공법이 있었다.
루인은 그중 ‘혼허무극신공’이란 마나 연공법을 선택했다.
무림의 심법은 이곳의 마나 연공법과는 달리 ‘주화입마’라는 위험이 존재했다. 혼허무극신공은 이 주화입마의 위험이 지극히 적으면서 동시에 매우 정순한 마나를 쌓을 수 있는 심법이었다.
혼허무극신공을 극으로 익히면 신선이라는 알 수 없는 존재가 될 수 있다고 했다. 루인은 지식을 빛에 의해 상당 부분 잃어버렸고, 그렇게 잃어버린 지식 중에는 신선에 관한 지식도 있었다.
루인이 신선에 관해 알 수 있었던 것은 굉장히 건강한 노인들이라는 것 정도였다.
루인은 혼허무극신공이 제법 괜찮다고 생각했다. 나이 먹고 골골거리는 것보다는 건강하게 사는 것이 더 좋지 않겠는가?
무언가 상당히 어긋난 추측이었지만, 정보가 부족한 루인으로서는 그것이 한계였다.
혼허무극신공의 효과는 분명히 뛰어났지만 단점 또한 존재했다.
첫 번째는 마나를 쌓는 속도가 다른 내공심법에 비해 느리다는 점. 하지만 그것은 극복할 방법이 존재했기에 문제되지 않았다.
다른 단점은 나이트의 경지에 도달할 때까지 익힌 음식을 먹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만약 나이트가 되기 전에 익힌 음식을 먹으면 지금까지 쌓은 마나는 모두 흩어지고 더 이상 혼허무극신공을 익힐 수 없다고 되어 있었다.
게다가 흩어진 마나는 몸 바깥으로 배출되는 것이 아니라 몸에 쌓여 마나의 흐름을 방해하게 된다고 한다. 그 때문에 다른 심법을 연공하는 데에도 방해가 된다고 한다.
이것 역시 문제가 되지 않았다. 어차피 이곳에서 익힌 음식을 먹는 건 불가능했다.
음식이라고는 물가에 피어 있는 이끼뿐이었다. 어쩌다 보니 혼허무극신공을 수련하기에 가장 완벽한 환경이 된 것이다.
루인은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그러자 하르실리온이 귀여운 목소리로 질문했다.
“루인, 지금 뭐 하는 거야?”
루인은 공동의 바닥에 앉아 있다. 당연히 하르실리온은 소녀가 아니라 금속 거인의 모습이다.
루인은 등 뒤를 타고 오르는 소름에 살짝 몸을 떤 후 하르실리온의 질문에 대답해 주었다.
“나이트가 되기 위해서 마나 연공법을 하는 거다. 내가 이런 자세를 하고 있을 때는 절대 건드리면 안 된다. 잘못하면 영영 나이트가 되지 못할 수도 있어. 그러면 이곳에서 나가지 못할 테니까 장난칠 생각은 하지 마.”
하르실리온이 아쉬움 가득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칫, 알았어.”
루인은 다시 정신을 집중하고 혼허무극신공의 수련을 시작했다.
사람의 몸에는 마나 홀(Mana Hole)이라는 것이 있다. 기사들은 이 마나 홀을 이용해 신체의 마나 밀도를 조절, 초인적인 힘을 낼 수 있다.
그 마나 홀의 개수는 무수히 많았다. 알려진 마나 홀의 개수는 모두 386개. 하지만 매우 작은 마나 홀은 그보다 훨씬 많이 존재한다고 한다.
그런 수많은 마나 홀 중에서도 특별한 마나 홀이 있었으니 프라임 마나 홀(Prime Mana Hole), 통칭 프라임 홀이라 부르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배꼽 조금 아래에 존재하는 것으로 전사들은 마나를 받아들여 이 프라임 홀에 마나를 쌓는다.
무림의 심법 역시 다르지 않아 프라임 홀을 단전이라 부르며 그곳에 마나를 쌓았다.
루인은 눈을 감고 천천히 숨을 들이쉬었다. 그럼으로써 공기 중에 존재하는 마나를 받아들였다.
마나 연공법은 호흡으로 얻은 마나를 프라임 홀로 밀어 넣는다. 당연히 다시 흩어지려 하지만, 같은 행위를 계속하다 보면 프라임 홀에 머무는 마나가 생기게 된다. 그런 과정을 반복하면서 프라임 홀에 머무는 마나의 양을 늘린다.
무림의 심법이란 방법은 좀 달랐다. 그곳에서는 혈도라는 가상의 길을 만들고는 그 길로 마나를 흘렸다. 프라임 홀에 마나를 모은다는 점에서는 같았지만, 단순히 마나를 쌓는 게 아니라 혈도를 통해 계속해서 마나를 유동시킨다는 것에 차이가 있었다.
혼허무극신공 역시 혈도를 통해 마나를 흘린다.
루인은 지금까지 마나 연공법이라고는 단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초짜!
비록 코로나 족이 인간보다 마나 기감이 뛰어나고, 그 혼혈인 루인 역시 제법 뛰어난 마나 기감을 가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한 번에 갑자기 마나를 느끼는 일은 불가능하다.
혼허무극신공의 수련법에 따라 숨을 들이쉬고 혈도를 따라 마나를 흘린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루인은 아무런 느낌을 받을 수 없었다.
하지만 루인은 혼허무극신공의 수련을 계속했다.
중요한 건 눈에 보이는 사실이 아니라 그리할 거라는 믿음이었다. 느낄 수 없더라도 마나는 분명 움직이고 있었다. 실망하지 말고 수련을 계속하면 언젠가는 마나를 느낄 수 있다.
혼허무극신공에 그런 설명이 있었고 다른 심법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렇기에 루인은 수련을 계속했다.
그리고 1주일 뒤.
루인은 생애 처음으로 마나를 느꼈다.

그것은 따뜻한 기운이었다. 호흡을 통해 몸 안으로 들어온 그 기운은 혈도를 따라 이동했다.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몸 안을 움직이고 있었지만 결코 불쾌하지 않았다.
조금 간질거리는 것 같으면서도 조금은 시원한, 이율배반적인 느낌이었다.
그렇게 혈도를 따라 움직인 마나는 최종적으로 프라임 홀에 도착했다.
프라임 홀에서는 다시 마나가 흘러나갔지만 호흡을 통해 계속해서 마나가 공급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당연히 프라임 홀에 모인 마나의 양은 늘어나야 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마치 구멍 난 항아리에 물을 붓는 것처럼 몸 안으로 들어온 마나는 한동안 혈도를 타고 흐르다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혼허무극신공의 수련에 잘못이 있은 것은 아니었다. 비록 스승 없이 홀로 하는 수련이었지만 루인이 얻은 많은 지식들은 제대로 된 방법으로 심법을 수련할 수 있게 해 주었다.
혼허무극신공이 마나를 쌓는 속도가 느리긴 했지만 그것 역시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혼허무극신공의 연공 속도가 느린 건 호흡으로 흡수하는 마나 중 가장 정순한 마나만을 몸에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루인이 얻은 지식 중에는 마나를 정순하게 바꾸는 방법도 존재했다. 게다가 그리 어렵지도 않은 방법이었기에 쉽사리 행할 수 있었다. 덕분에 루인은 마공이라는 것과 비슷한 속도로 마나를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럼에도 루인은 마나를 모으지 못했다. 루인의 몸에 박힌 386개의 에테르기움. 그 에테르기움들이 이 문제의 원인이었다.
루인의 몸에 박힌 에테르기움들은 루인의 몸에 존재하는 마나 홀에 각각 하나씩 틀어박혀 있었다. 그것도 단순히 이물질처럼 몸에 들어와 있는 것이 아니라, 루인의 마나 홀과 완전히 하나 되어 있는 상태였다.
에테르기움이라기보다는 특이한 마나 홀이라고 칭해야 마땅할 것이 되어 있었다.
그렇다. 이름 그대로 그 특이한 마나 홀은 마나 구멍이었다. 그 구멍을 통해 기껏 모은 마나가 모조리 사라져 버렸다.
몸 바깥으로 나간 것이 아니라 마나 홀에 존재하는 에테르기움에 흡수된 것이었다.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기에 언젠가는 루인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가능성일 뿐, 지금의 루인에게는 그저 단순한 방해물일 뿐이었다.
지금까지의 방법으로 마나를 모으다가는 언제 나이트가 될지 알 수 없었다. 호호 할아버지가 되어도 바깥에 못 나갈 가능성이 커 보였다.
루인은 머리를 쥐어짜 방법을 생각해 보았다.
비록 대부분의 지식을 잃고, 또 남은 지식 중 대부분은 쓸모없다고 해도, 남은 것 중 일부는 상당히 유용했다.
혼허무극신공이 그러했고 마나 정화법이 그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