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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 오브 베스트 1권(23화)
9. 은밀한 유혹(4)


비록 혜영이 우수한 인재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삼영에 혜영만 한 스펙을 가진 인재가 없는 것도 아니었다.
혜영은 누구 못지않은 야망이 있었다.
여성의 몸으로 삼영그룹의 사장단에 오르는 것이 혜영의 꿈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세현이 무척이나 필요하였다.
능력만 있다고 삼영의 사장단에 아무나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삼영그룹 총수인 이희건 회장이 확실하게 믿고 맡길 수 있다는 판단이 서야만 그 자리에 오를 수 있는 것이다.
믿고 맡길 수 있는 존재로는 혈연으로 연결된 피붙이만 한 것이 없다.
비록 혜영이 삼영가의 혈족은 아니지만 세현의 부인으로서 가족 경영이 가능한 것이다.
그 때문에 혜영도 자신의 선배인 선영이 중매를 섰을 당시 세현에 대하여 조사를 하고 결혼하였다.
그의 사생활이 문제가 될 것이지만 자신이 잘 컨트롤하면 충분히 같이할 수 있을 것이라 판단을 하였다.
하지만 그것은 완전한 판단 미스였다.
능력에 비해 자존심이 강한 세현은 자신보다 뛰어난 부인을 인정할 수가 없었다.
그 때문에 세현은 회사에서도, 그리고 집에서도 막심한 압박감을 받았다.
회사에서는 회장의 인척이면서 능력이 없어 계열사, 그것도 사양길에 접어든 사업의 중역도 아닌 하급 관리직에 있었다.
그 때문인지 위아래로 많이 그를 따돌리고 있었다.
그렇다고 집에서 편한 것도 아니었다.
자신에 대하여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 혜영에게서도 마찬가지로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듯한 그 느낌이 싫어 결혼하면서 인연을 끊었던 여자와 다시 만나게 되었고, 어쩌다 보니 살림까지 차리게 되었다.
“그럼 어쩌겠다는 말이야! 좀 쉽게 얘기해 봐!”
흥분하여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는 세현은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였다.
그런 세현에게 혜영은 자신이 생각한 것을 보다 쉽게 말을 하였다.
“별거 없어! 나도 날 부정한 당신을 신경 쓰면서 에너지 낭비할 생각이 없으니 각자 상대에 대하여 상관하지 말기로 하자고.”
혜영의 말을 들은 세현은 뭔가 머리를 스치는 것이 있었다.
“그럼, 내가 외도한 것을 넘어갈 테니, 앞으로 당신이 뭘 하든 상관하지 말라는 말이지?”
“그래요. 내가 뭘 하든, 그것이 당신처럼 애인을 만드는 것이라도 상관하지 않기로 하자고.”
“OK! 좋아!”
“참! 그리고 앞으론 이 집에 들어오지 말아요.”
“……?”
“설마 내가 지금 당신과 타협을 했다고 모든 것을 이해하고 넘어가는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겠죠?”
혜영은 자신의 집에 세현이 들어오는 것을 막았다.
자신을 속이고 내연녀와 자식까지 본 남편과 더 이상 한 이불을 덮고 생활할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자신의 야망을 위해 넘어가기로 하였지만 그것만은 도저히 용납할 수가 없는 문제였다.
세현은 잠시 혜영의 말을 생각하다 그녀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좋아! 그럼 그에 대하여 각서를 쓰자고. 이번 일에 대하여 더 이상 따지지 않는 것과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규칙 말이야!”
“그게 좋겠네요. 그래야 서로 편할 것 같으니.”
어느 정도 타협이 끝나자 세현과 혜영은 앞으로 결혼 생활에 대한 각자 원하는 것을 적으며 계약서를 작성하였다.
그 계약서의 주요 골자는 서로의 삶에 대하여 터치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 핵심이었다.

***

“지후야! 넌 꿈이 뭐냐?”
혜영은 호텔 침대에 알몸으로 누워 샤워를 마치고 나오는 지후를 보며 질문을 하였다.
방금 전까지 두 사람은 격렬하게 몸의 대화를 나누었다.
혜영은 남편과 계약을 한 뒤 수시로 프린스에 들러 지후와 시간을 가졌다.
그런데 오늘처럼 섹스를 가지는 경우도 있었지만, 보통은 2차를 하지 않고 그냥 룸에서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하는 정도였다.
하지만 오늘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혜영은 술도 별로 마시지 않고 2차를 나왔다.
그리고 섹스가 끝나 샤워를 마치고 나오는 지후에게 느닷없이 꿈에 대하여 물은 것이다.
그런 혜영의 질문에 지후는 잠시 그녀의 얼굴을 쳐다보다 무슨 생각을 했는지 간단하게 대답을 하였다.
“제 꿈은 돈 많이 버는 것입니다.”
“돈?”
“예, 돈이요. 그래서 어느 누구도 절 무시하지 못하게 할 것입니다.”
지후가 처음 자신의 질문에 돈이란 대답을 했을 때, 혜영은 약간 실망하고 말았다.
겨우 돈 따위를 꿈으로 삼고 있다는 말에 자신의 눈이 잘못되었나? 하는 생각까지 든 것이다.
그러다 뒤이은 지후의 말에 무언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제 겨우 20살인 어린 청년이 돈에 대하여 집착을 하는 것이 좋게 보이지 않았는데, 누구에게도 무시 받지 않겠다는 말을 하는 것에서 돈 때문에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어쩌면 자신이 회사에서 성공을 하여 삼영의 사장단에 들어가는 것을 꿈꾸는 것과 같은 맥락인 것 같았다.
혜영의 학창 시절, 그녀의 집안은 삼영에는 비교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떵떵거리며 살고 있었다.
직원 수 100명 규모의 중소기업을 운영하던 아버지 덕에 남부러울 것 없는 삶을 살았다.
하지만 어느 날 혜영이 의사라는 꿈을 접고 대기업의 최고경영자가 되기로 마음먹게 되는 일이 발생하였다.
그날은 혜영에게 죽어도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아 있었다.
자신의 자랑이고 지지자였던 아버지가 젊은 남자에게 허리를 숙이며 미소를 짓는 것을 목격하였다.
자신의 우상인 아버지가 그렇게 비굴해 보이긴 처음이었다.
나중에 조금 커서 그것이 하청업체의 사장으로서 원청업체의 담당자에게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당시에는 이해를 하지 못해 속도 많이 썩였다.
당시 어린 치기로 자신의 아버지를 비굴하게 만든 그 사람의 높은 사람이 되어 자신의 아버지가 당한 수모를 그대로 돌려주겠다는 생각으로 노력을 하였다.
그리고 그 노력이 결실을 맺어 대한민국 최고 그룹의 일원이 되었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되자 혜영은 눈앞의 어린 청년도 자신과 비슷한 경험을 했을 것이란 것을 짐작할 수가 있었다.
“그럼 모아 둔 것이라도 있어?”
“훗, 아직 그런 것 없습니다. 저 고등학교 졸업한 지 이제 겨우 1년이에요. 그리고 이 일 시작한 지 이제 겨우 5개월 돼 갑니다.”
지후는 담담히 말을 하며 잊었던 그때의 기억을 꺼내 보았다.
돈도 없는 고아 주제에 자신의 딸을 넘본다는 말을 하던 은정 어머니의 말이 아직도 귀에 생생히 되살아났다.
그 생각을 해서 그런지 지후는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 눈살을 찌푸리고 있었다.
“그래! 돈을 버는 것이 꿈이라면 내가 어느 정도 도와줄 수도 있는데…….”
혜영은 그것이 꿈이라면 도와줄 수도 있다는 뉘앙스로 말을 하며 뒤끝을 흐렸다.
지후는 잠시 그녀의 말을 듣다 눈을 반짝였다.
자신을 도와줄 수 있다는 말에 아무런 말없이 혜영만 쳐다보았다.
그러다 먼저 말을 걸었다.
“제게 뭘 원하지요?”
“내가 너에게 뭘 원하느냐고?”
“예, 이유 없이 그런 말씀을 하시지는 않을 것이라 봅니다.”
지후는 혜영이 단순히 자신이 불쌍해 도와주겠다고 말을 한다고 해도 곧이 믿지 않을 것이다.
20년이라는 짧은 삶을 살아왔지만 아르바이트는 물론이고 그동안 여러 사람을 만나면서 절대로 무조건적인 도움을 주는 사람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나를 받으면 하나를 줘야만 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아르바이트 하는 곳의 사장이 될 수도 있고, 아니면 학교 동급생이 될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언제나 같았다.
어느 한쪽에서 일방적으로 주고 반대쪽에서 받기만 한다면 그 관계는 오래가지 않았다.
그렇기에 지후는 요즘 자신이 프린스에서 선수 생활을 하면서 가장 중요 고객으로 떠오른 혜영과 관계가 틀어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혜영을 만나기 전까지 지후는 프린스에 빚이 많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혜영을 단골로 받으면서 그 빚을 모두 청산을 하고 현재 많은 돈을 벌게 되었다.
그래서 자신의 물주인 혜영과의 관계를 조금이라도 길게 가고 싶은 것이 지후의 마음이다.
“별거 없어, 너 내 애인 해라!”
지후는 혜영이 유부녀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처음 프린스에 왔을 당시 그녀와 2차를 나와 호텔서 관계를 가진 날 그녀는 무심결에 남편에 대한 말을 꺼냈었다.
아니, 그때뿐 아니라 호텔로 오기 전 술을 마실 때에도 술에 취해 비슷한 말을 했었다.
그러했기에 지후는 당시 자신의 파트너가 남편에게 큰 실망을 했거나 아니면 화가 나 있을 것이란 판단을 했었다.
물론 프린스에서 일을 하면서 지후는 유부녀이면서 호스트바를 찾는 여성들을 많이 보아 왔다.
거의 대부분이 남편에 대한 불만을 풀기 위해 찾는 여성들이었다.
물론 남자가 좋아 찾는 이들도 더러 있었다.
밖에서는 남의 눈치가 보이니 애인을 만들지 않고 그저 돈으로 자신들을 사는 것이다.
그러다 서로 눈이 맞아 살림을 차리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한다.
지금 혜영도 비슷한 것으로 보였다.
자신에게 애인이 되라는 제안을 하는 혜영을 보며 지후는 고민을 하였다.
뭐 자신이 혜영의 애인이 된다고 해서 손해가 될 것은 없어 보였다.
돈 많은 유부녀의 애인이 되는 것이 호스트인 지후로서 어쩌면 잘된 일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지금 제게 스폰 제의를 하는 것입니까?”
“맞아! 어때? 남편이 걱정된다면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돼!”
혜영은 지후가 망설이는 것이 자신의 남편 때문인가 싶어 그런 말을 한 것이다.
그런데 지후는 혜영의 말을 듣고 어이가 없었다.
유부녀가 남편 걱정하지 말라는 소리를 하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누님, 돌싱입니까?”
지후는 혜영과 이야기를 하며 옷을 입고 있었는데, 너무 뜻밖의 말을 들었기에 옷을 입다 말고 그녀를 돌아보게 되었다.
“훗! 넌 있는 사람들의 생각을 모를 거야!”
뭘 모른다고 하는 것인지 지후는 알지 못했지만 말을 하는 혜영은 무척이나 재미난 이야기를 알고 있다는 듯이 혼자 웃었다.
그런 혜영을 보던 지후는 옷을 다 입고 소파에 앉았다.
그런 지후를 침대에 엎드려 보고 있던 혜영이 자리에서 일어나 덮고 있던 침대 시트만 걸치고 지후 곁으로 다가와 그를 껴안았다.
“너도 짐작했을지 모르겠지만 그날 난 남편의 비밀을 알게 됐어.”
혜영은 처음 프린스를 찾고 또 지후와 섹스한 날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그리고 자신이 남편과 했던 계약을 말해 주었다.
이미 혜영의 가슴속엔 지후가 자신의 남자로 자리를 잡았다.
남편의 외도 사실을 알고도 자신의 야망 때문에 이혼을 하지 못하는 혜영은 이미 세현과 법적인 관계 외엔 남은 것이 없었다.
혜영의 마음속에서 남편은 이미 지워진 존재였다.
자신의 야망을 위해 이혼을 피하긴 하였지만 그렇다고 그를 남편으로 인정하긴 너무도 싫은 혜영은 어느 순간 그 자리에 지후가 자리하게 된 것이다.
남편 이외에 유일하게 자신의 몸을 차지한 남자가 지후여서 그런지, 아니면 지후의 밤일이 너무도 뛰어나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지후는 어느 순간 혜영의 가슴 안으로 들어와 있었다.
혜영에게서 그녀의 남편에 대한 이야기와 그 뒤의 이야기를 모두 들은 지후는 판단을 하였다.
그녀의 제안이 자신에게 손해가 날 것이 없다는 판단을 하게 되었다.
“좋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제가 누님의 애인이 되는 것입니까?”
지후의 말이 떨어지자 혜영은 지후를 끌어안고 있던 상태에서 고개를 돌려 그의 입술을 찾았다.
두 사람은 진하게 오랫동안 키스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