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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 오브 베스트 1권(22화)
9. 은밀한 유혹(3)
그럴 때면 나오는 것이 바로 오르가즘에 대한 이야기였다.
누구는 어떻고, 누구는 모두 거짓이라는 말을 하기도 하였다.
물론 자신도 그동안 섹스를 하면서 여성의 오르가즘이라는 말을 믿지 않았다.
남편과의 관계에서 전혀 그런 것을 느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의무적으로 자신의 몸 위로 올라와 몇 번 허우적거리다 힘이 빠져 내려가는 남편이었다.
그 때문에 혜영은 남편과 관계를 맺을 때면 오히려 자신이 그가 빨리 끝내고 내려가길 원할 정도였다.
그런데, 그러던 자신이 남편이 아닌 외간 남자에게서 남들이 말하는 오르가즘을 느낀 것이다.
머리끝에서부터 발끝까지 관통하는 듯한 짜릿함, 그리고 세포 하나하나 살아 있는 듯한 그 형언할 수 없는 느낌을 뭐라 표현할 길이 없었다.
그저 머릿속에서 불꽃이 계속해서 번쩍였다는 말이 맞을 정도로 정신이 없었다.
그리고 어느 한순간 자신은 정신을 잃었다.
여자가 너무 성적으로 흥분을 하면 기절도 한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있었다.
그런데 그런 경험을 자신이 할 줄은 몰랐다.
말로만 듣던 것을 자신이 경험을 하게 되자 혜영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였다.
이런 몰랐던 기쁨을 알게 되자 놓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계속해서 떨어지는 물줄기를 샤워 꼭지를 돌려 잠근 혜영은 샤워 타월을 몸에 두르고 밖으로 나왔다.
어제 함께 하룻밤을 보낸 남자가 소파에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테이크아웃 커피를 마시며 창밖을 보고 있는 그의 옆선이 너무도 아름다웠다.
여성처럼 선이 가는 아름다움이 아닌 모든 것을 포용할 것 같은 사자의 기운을 담은 남자의 굵은 선이 진한 아름다움이었다.
특히 혜영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그의 오뚝한 콧날을 타고 내려와 굳게 닫힌 그의 입술과 턱 선이었다. 자신보다 한참은 어려 보이는 남자에게 자신도 모르게 매료되게 하였다.
‘남자가 저렇게 아름다울 수가 있구나!’
혜영이 상념에 잠겨 있을 때 지후는 문득 자신을 보는 시선이 느껴져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샤워 타월 한 장만 걸치고 있는 혜영을 보게 되었다.
조금 전까지 알몸으로 침대에 뒹굴며 서로 볼 것 못 볼 것 다 보았다.
그런데 지금 저 모습에 지후는 잠깐 가슴이 떨렸다.
지후가 보는 혜영의 모습은 정말이지 너무도 유혹적이었다.
남자가 여자에게 가장 유혹을 느끼는 순간이 바로 샤워를 막 마치고 나왔을 때라고 하지 않던가?
물에 촉촉이 젖은 머릿결, 화장기 없지만 깨끗한 얼굴, 그리고 가는 목선과 깊게 파인 쇄골이 보이고 몸에 걸친 것이라고는 하얀 샤워 타월 한 장, 그러면 게임 끝난 것이다.
남자는 시각적으로 성욕을 느낀다고 하지 않던가?
남자의 상상력을 극도로 자극하는 모습을 하고 있는 혜영의 모습은 누가 봐도 최고였다.
추녀가 그러고 있어도 미녀로 보일 순간에 20대의 싱그러움과 30대의 육감적인 몸매를 가지고 있는 혜영의 모습에 지후는 잠깐 흔들렸다.
하지만 곧바로 정신을 차렸다.
그녀와 자신은 말 그대로 원나잇 스탠드의 관계인 것이다.
“누님! 여기 숙취해소 약 드시고, 커피 괜찮죠?”
지후는 혜영이 샤워를 하러 들어간 사이 밖으로 나가 숙취해소를 위한 약과 커피를 사 왔다.
일종의 서비스였다.
하지만 이미 지후에 대하여 흥미를 가지게 된 혜영은 그런 지후의 서비스가 자신에게 관심을 두는 것 같은 느낌에 너무도 기뻤다.
물론 자신도 그가 원나잇 상대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마음이 그런 것을 어떻게 조절할 수가 없었다.
“고마워!”
혜영은 자신도 모르게 고맙다는 말을 하였다.
그런 혜영의 말에 지후는 잠깐 뜻밖인 듯 눈이 조금 커졌다 정상으로 돌아왔다.
자신이 프린스에서 일하며 가끔 원나잇을 나올 때면, 섹스가 끝나고 파트너가 씻으러 들어간 사이 자신은 언제나 서비스 차원에서 숙취해소 약과 커피를 가져다주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자신에게 고맙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으레 그러려니 하는 것인지 아무런 말없이 자신이 제공하는 서비스를 당연하다는 듯이 행동을 했던 것이다.
아마도 그들의 생각 저변에는 자신이 가게에서 쓴 돈을 생각하며 이 정도 서비스는 당연한 것이라 생각하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렇기에 이번 파트너의 고맙다는 인사는 지후도 뜻밖인 것이다.
혜영은 화장대 앞에 앉아 머리를 말리고, 간단하게 화장을 하였다.
생애 첫 일탈을 한 것치고는 참으로 대담한 짓을 한 것이란 생각에 혜영은 화장을 하다 말고 헛웃음을 터뜨렸다.
“풋! 호호호.”
혼자 화장을 하다 말고 웃는 혜영을 잠시 지켜보던 지후는 고개를 잠시 갸웃거리다 마시던 커피를 마저 마셨다.
혜영도 얼른 화장을 마무리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옷을 입기 위해 일어난 것인데, 문득 한쪽에 앉아 있는 지후가 의식이 되었다.
‘어쩌지?’
옷을 입으려고 일어나던 혜영이 머뭇거리는 모습이 이상했던 지후는 잠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무엇 때문에 혜영이 그러는지 깨닫고는 자신도 모르게 피식 미소를 짓고 일어나며 혜영에게 말을 하였다.
“전 나가서 엘리베이터를 잡아 놓겠습니다.”
“그, 그래!”
혜영은 기다렸다는 듯이 얼른 대답을 하였다.
혜영은 지후가 나가자 얼른 일어나 바닥에 떨어져 있는 속옷을 챙겨 입었다.
그리고 혹시나 그가 다시 들어올지 모른다는 기우에 빠르게 널브러져 있는 옷가지들을 챙겨 입었다.
옷을 다 입고 밖으로 나온 혜영은 엘리베이터가 있는 곳으로 걸어가며 생각을 하였다. 멀쩡한 정신에 자신의 몸을 보인다는 것이 잠시 꺼려졌는데, 자신의 모습에 눈치를 채고 배려하는 그의 모습에 혜영은 지후를 다시 보게 되었다.
***
“어디 갔다 와?”
집에 들어서던 혜영의 귀에 들리는 남편의 목소리였다.
자신에게 어디를 갔다 왔는지 묻는 남편을 잠시 보다 혜영은 방으로 들어갔다.
자신의 물음에 대답도 하지 않고 방으로 들어가는 혜영의 모습에 세현은 인상을 구겼다.
기분이 나빠진 세현은 그녀를 따라 방으로 들어갔다.
“내 말 안 들려?”
옷을 갈아입고 있던 혜영은 방으로 따라 들어와 자신에게 소리를 지르는 남편의 모습에 눈을 치켜뜨며 대답을 하였다.
“내가 어딜 가든 무슨 상관이죠?”
“왜 상관이 없어! 난 네 남편이야!”
“남편? 훗, 지나가던 개가 웃겠네!”
“뭐라고? 지금 말 다 했어?”
“아니요. 마침 잘됐네요. 당신에게 할 말이 있었는데.”
자신의 말에 화를 내며 눈을 치켜뜨는 남편의 모습이 너무도 가증스러웠다.
어제 자신에게 외도하는 장면을 들키고도 뻔뻔스럽게 자신이 외박한 것에 대하여 따지는 남편의 모습에 너무도 화가 났다.
이성적으로 생각을 해도 납득이 되지 않는 남편의 태도에 혜영도 화가 나기 시작하였다.
“당신이 지금 내게 화를 낼 입장이야!”
혜영은 어제 본 것을 말하며 자신에게 따지는 남편에게 다그쳤다.
평소의 모습이 아닌 뭔가 흥분한 듯한 혜영의 모습에 세현도 잠시 주춤하였다.
언제나 조신한 모습을 보이던 혜영이 이렇게 자신에게 큰소리치는 경우는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것이 자기 주관적인 세현은 자신의 잘못을 생각지 않고 혜영의 외박에 대하여 따졌다.
“남자가 그럴 수도 있는 것이지, 그렇다고 여자가 외박을 해!”
“그럴 수도 있어? 뭐가 그럴 수가 있는 것인데!”
혜영과 세현은 교차점 없는 철로처럼 평행선을 그리며 대립의 폭을 줄이지 못하고 그동안 자신들이 가졌던 불만에 대하여 쏟아 내었다.
“여자가 말이야! 고분고분한 맛이 있어야지, 어디서 외박을 하고 들어온 주제에 큰소리야!”
“뭐! 여자는 왜 그래야 하는 것인데. 결혼 전부터 딴살림 차리고 있었으면서 나와 결혼을 해! 그건 범죄야! 알아!”
“뭐가 어쩌고 어째! 그래 나 딴살림 차렸다. 어쩔래! 내가 너 좋아서 결혼한 줄 알아!”
두 사람은 끝장을 보겠다는 듯 서로를 헐뜯으며 싸움을 하였다.
“그럼 이혼을 하던가!”
혜영은 이혼을 하자는 소리를 하였다.
그러자 지금까지 큰소리를 내던 세현은 입을 다물었다.
그도 그럴 것이 혜영과 자신의 결혼은 조건과 조건이 만난 결합이었다.
비록 혜영의 집안이 자신이 속한 삼영가보다 격이 떨어지기는 하지만 혜영이 가지고 있는 스펙이 삼영가에 도움이 되기에 자신이 마음대로 이혼을 할 수가 없었다.
어려서부터 사고를 쳐 오던 것을 뒷수습해 주던 가문에서 혜영과 결혼을 시키면서 자신에게 한 말이 있었다.
“이혼은 없다. 만약 며느리에게서 네 잘못 때문에 이혼을 해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면 각오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결혼 당일 자신을 불러 하던 큰아버지의 말씀이었다.
대한민국 최고 그룹인 삼영그룹의 총수인 큰아버지, 그는 그룹을 위해서는 자신과 같은 방계는 물론이고 후계자인 형님까지도 과감하게 잘라 낼 수 있는 냉혈한이었다.
때문에 어제 자신의 외도 사실을 들키고 혹시나 싶어 집에서 기다렸다.
하지만 혜영은 그 길로 어디를 갔는지 집에 들어오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궁금함에 물은 것인데 자신을 무시하는 듯한 혜영의 태도에 그 생각을 못하고 금세 화를 냈다.
자신의 부인인 혜영에게 약한 모습을 보여 주기는 싫었다.
사실 세현은 혜영에게 열등감을 느끼고 있었다.
자신이 비록 방계이긴 하지만 그래도 삼영그룹 회장의 조카인데, 그룹 내 위치는 혜영보다 못했기 때문이다.
비록 자신과 혜영이 일하는 회사가 다른 계열사이긴 하지만 같은 그룹 계열이라고 해도 그 중요도가 다르다.
그룹 자금을 운용하는 중심 계열사인 삼영투자신탁의 차장인 혜영과 그룹의 모기업이었지만 지금은 간신히 적자를 면하고 있는 삼영개발의 차장으로 있는 자신과의 차이에서 오는 열등감이었다.
더욱이 삼영투자신탁은 삼영그룹 내에서 지주회사였다.
많은 계열사들의 주식을 다량 보유하고 있어 삼영가가 그룹을 장악하는 데, 큰 이바지를 하는 곳이다.
그렇기에 삼영투자신탁은 그룹 총수인 이희건 회장이 아들보다 더 신임하는 최도영 사장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는 젊은 날 이희건 회장의 측근으로 일했고, 그를 잡아 두기 위해 이희건 회장은 자신의 둘째 딸과 결혼을 시켜 삼영가에 들였다.
능력 하나로 삼영가의 둘째 공주를 부인으로 맞은 입지적인 사람이었다.
그렇듯 삼영은 이희건 회장이 회사를 위해서라면 자신의 딸까지 희생하며 인재를 모았다.
그런데 그런 인재인 혜영에게 느끼는 세현의 기분은 자신의 숨통을 조이는 올가미와 다를 바가 없었다.
자신의 큰아버지인 이희건 회장에게서 받는 압박감을 집에서까지 그대로 받는 세현이기에 부인인 혜영에게 소홀해지고 외부로 눈을 돌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밖에서야 삼영그룹의 일원이고 회장의 조카인 자신을 우러러보기 때문에 그만큼 세현이 느끼는 해방감은 그 어떤 것보다 강렬하였다.
“조금 전 할 말이 있다고 했지, 그래 할 말이라는 것이 뭐야?”
세현은 얼른 주제를 돌리기 위해 말싸움을 하기 전 혜영이 하려던 말이 생각나 물었다.
“앞으로 당신이 밖에서 어떤 짓을 하고 다니던 신경 쓰지 않기로 했어!”
세현은 혜영이 무슨 말을 하려나 기다렸는데 뜻밖의 말을 하자 눈을 반짝였다.
하지만 기브 앤드 테이크, 가는 것이 있으면 오는 것이 있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뭘 원하지?”
혜영이 자신의 일에 대하여 앞으로 신경 쓰지 않는다는 말에 세현은 당연하다는 듯 자신이 그녀에게 해 줘야 할 것에 대하여 물었다.
“별거 없어, 당신도 앞으로 내 일에 대하여 신경 꺼!”
혜영은 세현의 물음에 아무런 고민도 없이 바로 대답을 하였다.
그 때문인지 세현은 혜영의 말이 무척이나 신경이 쓰였다.
그래서 무슨 말인지 정확하게 그 뜻을 알기 위해 질문을 하였다.
“그게 무슨 말이야!”
“무슨 말이긴, 당신이 밖에 정부를 두고 이중생활을 한 것을 묵인해 주는 대신, 당신도 내가 앞으로 애인을 만들든 아니면 당신처럼 살림을 차리든 상관하지 말라고.”
혜영의 말은 자신도 앞으로 남편인 세현이 했던 것처럼 할 수도 있으니 그에 대하여 상관하지 말고, 각자 자신의 삶을 살자는 것이다.
“뭐야! 그럼 이혼이라도 하자는 거야!”
세현은 혜영의 말이 꼭 이혼을 하자는 말로 들렸다.
그 때문에 줄어들었던 목소리가 다시 커졌다.
만약 이혼을 하게 된다면 자신에게 무척이나 불리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당신이나 나나 그러지 못한다는 것은 잘 알잖아?”
그렇다. 혜영의 말마따나 세현에게 이혼을 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듯 혜영에게도 이혼을 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