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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 오브 베스트 1권(14화)
6. 풍류도(風流道)(2)


그 때문에 재욱은 먹고살기 위해 동남아로 눈을 돌리게 되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이 엉터리이기는 하지만 그가 약장수에게 배운 만병통치약이 전혀 효용이 없던 약은 아니었다.
크게 탈나는 사람도 없을 뿐 아니라 간간이 낫는 사람도 있어 먹고사는 데는 지장이 없었다.
그렇게 동남아와 중국 오지를 돌며 돈을 모은 재욱은 그래도 재주가 있었는지 중국 등을 돌며 무술 몇 가지를 배우게 되어 그것을 가지고 지금의 풍류도를 만들게 된 것이다.
한마디로 강남에 번듯하게 지은 듯한 이 풍류도는 알고 보면 중국과 동남아에 널려 있는 잡동사니 무술을 짜깁기하여 만든 보기만 그럴듯한 엉터리 무술인 것이다.
그런 것을 재욱은 지금 지후에게 자신이 만든 무술을 중국에서 넘어온 도사가 전한 무술로 둔갑을 시켜 사기를 치는 중이었다.
“무위자연이라고 도교의 가르침을 우리 선조에게 전한 도사의 얼을 받아……. 지금 나에게까지 이르게 된 것이지.”
너무도 진지한 표정으로 풍류도에 대하여 설명을 하는 재욱의 표정에서 지후는 전혀 거짓을 느낄 수 없었다.
재욱은 혹시라도 도사의 가르침으로 속세를 떠나 자연과 살아가는 풍류도의 정신에 위배되는 도심에 들어온 것을 지후가 의심할 것 같아 장황하게 자신이 서울, 그것도 강남에 도관을 차리게 된 이유를 설명하였다.
“다만 아쉬운 것이 있다면 그 전통이 내 대에서 끊어질 위기에 봉착했다는 것이지.”
전통의 대가 끊기는 위기에 처했다는 재욱의 말에 넘어간 지후는 얼른 말을 꺼냈다.
“혹시 그럼 제가 배울 수 있겠습니까?”
“물론이지. 그런데 나도 먹고는 살아야 하는 관계로……. 내가 오랜만에 도시로 나와 보니 옛날과 너무도 다르더군…….”
지후의 말에 회비를 내라는 말을 직접적으로 하지를 못하고 회비를 받는 것에 대한 변명을 하는 재욱이었다.
이 대목에서 조금 미심쩍은 생각이 들기는 하였지만 도사도 먹고는 살아야 한다는 말에 어느 정도 수긍을 하게 되어 지후는 회비를 물어보았다.
“그럼 배우기 위해선 1달에 얼마를 내야 하는 건가요?”
지후의 말에 이미 다 넘어왔다는 생각에 재욱은 근엄하게 말을 하였다.
“허허, 다른 곳에서는 배움의 대가로 1달 단위로 요구를 하는 것 같은데, 우리 풍류도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고 1년 단위로 한다네!”
너무도 이상한 말이었다.
조금 전에는 전통이 끊길 것 같다는 말로 심금을 울리는 이야기를 하다 지금은 회비를 1년 단위로 받는다고 하자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지후는 조금 의심스럽기는 하지만 이미 조금 전 보았던 검은 퉁소와 부채에 정신을 빼앗겨 그냥 넘어가기로 하였다.
“조금 의심스럽기는 하지만 그래도 써먹을 곳이 있겠지.”
사실 지금 자신이 풍류도에 대하여 잘 알지는 못하지만 이야기 중에 무도라고 했으니 못해도 체력 단련은 되겠다는 생각에 재욱의 허술한 속임수를 그냥 넘어가기로 하였다.
“그럼 1년에 얼마인가요?”
“그리 비싸진 않아. 300만 원만 내게!”
재욱은 별로 비싸지 않다고 말을 하면서 300만 원을 불렀다.
그런 재욱의 말에 지후는 곰곰이 생각을 하기 시작하였다.
자신이 비록 부채와 통소에 관심이 있기는 하지만 체력 단련에 300만 원씩이나 써야 할까 하는 생각을 하였다.
“부담이 되면 3개월에 한 번씩 분기별로 내도 된다.”
지후가 고민을 하는 것 같자 재욱은 얼른 말을 바꿨다.
사실 1년치라고는 하지만 한꺼번에 300만 원이라는 큰돈을 내는 것은 자신이 생각해도 무리라 생각을 한 것이다.
그런 재욱의 말을 듣지 못하고 지후는 자신의 생각에 빠져 있었다.
태섭의 지시로 지후는 1달에 100만 원씩이나 하는 강남의 유명 헬스클럽에서 이미 체력 단련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곳은 비싼 만큼 시설도 무척이나 잘 되어 있을 뿐 아니라 전담 트레이너까지 있었다.
그런데 단지 호기심 때문에 300만 원을 써야 할까 하는 의문이 들기는 하였지만 그 정도 돈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라는 생각에 넘어가기로 하였다.
“그런데 이 물건이 도관 안에 있는데, 이것도 배우나요?”
지후는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자신이 관심이 있는 부채와 퉁소를 들어 보이며 물었다.
그런 지후의 질문에 재욱은 얼른 대답을 하였다.
“당연하지. 이 안에 있는 물건들은 모두 풍류도를 배우는 소품들이니 당연히 배우지.”
지후는 눈을 반짝였다.
부채를 이용한 무술은 모르겠지만 퉁소는 겨우 300만 원을 들인다고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란 것을 알고 있었다.
지후도 한량이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그런지 어려서부터 이런 쪽에 관심이 많았다.
중학교 때에는 특별활동 시간에 전통문화반에 들어 우리나라 전통 악기에 많은 관심을 보였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암 선고로 일찍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게 되어 조금 하다 말았었다.
어린 날의 추억도 있고 무언가 사연도 있을 것 같은 물건을 보고 관심을 가지게 된 지후는 얼른 등록을 하였다.
“혹시 카드도 되나요?”
평소 누가 지갑에 현금 300만 원을 들고 다니겠는가?
“물론이지. 할부로 해 줄까? 일시불로 해 줄까?”
지후는 회비를 할부로 해 줄까 하는 관장의 말이 참으로 웃겼다.
도관에 카드로 회비를 내려고 하는 자신이나, 당연하다는 듯이 카드를 받아 들고 할부냐, 일시불이냐, 말하는 관장도 정상은 아니란 생각을 하였다.

***

뚱뚜둥 뚱뚱, 뚜둥 뚱뚱∼
실내에 거문고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리고 실내 한가운데에서 젊은 남자와 나이 지긋한 남자가 열심히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악! 살살 좀 해 줘요.”
“젊은 놈 몸이 이렇게 뻣뻣해서야 어디에 쓰겠어! 참아!”
그 둘은 이 풍류도 도관의 관장인 재욱과 유일한 수련생인 지후였다.
지후가 비록 헬스클럽에서 운동을 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이렇다 할 유연성 운동은 해 본 적이 없어 일명 다리 찢기라는 것을 하면서 고통스러워하고 있는 중이었다.
하지만 풍류도를 익히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것이라고 하는 말에 꾹 참아 보고는 있지만 너무도 아팠다.
“매일 내가 가르쳐 준 스트레칭 동작을 해야 한다.”
“스트레칭이요?”
“그래. 자기 전에 한 번, 자고 일어나서 한 번.”
“아니, 도관에서 무슨 스트레칭을 가르쳐요?”
“시대가 바뀌었으면 가르치는 사람도 배우는 사람이 알아듣기 편한 말로 바꿔 알려 줘야 알아듣지!”
“아!”
뭔가 핀트가 엇나간 말 같으면서도 맞는 말같이 들리기도 하기에 지후는 재욱의 말을 그냥 넘겼다.
“사람의 몸이라는 것도 기계와 마찬가지로 준비 동작을 하면서 각 관절이나 기관에 신호를 보내 줘야 무리 없이 동작에 맞춰 움직이는 것이다.”
“예.”
“내가 하는 동작을 잘 보고 따라 하거라!”
재욱은 조금 전 다리 찢기로 사타구니를 주무르고 있는 지후를 보며 길게 이야기를 하고 풍류도에서 가르치는 투로(套路), 즉 태권도에서 말하는 품세를 시전 하였다.
재욱이 선보이는 투로는 다리를 어깨 넓이로 벌리고 기마 자세를 취한 상태에서 천천히 양팔을 벌리고 원을 그리는 동작을 하였다.
그런 재욱의 모습을 보면 중국 무술인 태극권과 무척이나 흡사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이는 재욱이 중국을 돌아다닐 때 배운 것으로 제대로만 배운다면 건강에는 큰 도움이 되는 동작이었다.
도관에 울려 퍼지는 음악 소리와 함께 재욱이 시전 하는 동작이 너무도 잘 어우러져 지후가 보기에 참으로 좋았다.
‘무언가 엉성한 듯한데, 참으로 아름다운 동작이구나!’
한동안 기본 투로를 시범 보인 재욱은 아직도 다리를 주무르고 있는 지후를 보며 말을 하였다.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것이냐? 어서 일어나 조금 전 내가 한 동작을 해 봐!”
“아니, 제가 천재도 아니고 어떻게 방금 전 한 번 본 것을 그대로 따라 합니까?”
지후는 재욱이 달랑 한 번 시범을 보이고 자신에게 해 보라고 말을 하자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따졌다.
그런 지후의 말에 재욱은 얼른 말을 바꾸었다.
“이 쉬운 동작을 아직도 못 외웠다는 것이냐? 에잉! 다시 보여 줄 테니 잘 따라 해!”
솔직히 그리 어려운 동작이 아니고 또 천천히 시범을 보이고 있기에 외울 수는 있었다.
하지만 아직도 사타구니에서는 갑작스럽게 과격한 운동을 하는 바람에 근육이 놀라고 욱신거려 조금이라도 시간을 끌어 보기 위해 그리 말을 한 것이다.
“호흡에 신경을 쓰면서 동작과 호흡을 일치시켜라!”
재욱은 도관에 단 하나 있는 관원이기에 가르치는 것에 있어서 철저했다.
“들이마시고, 내뱉고! 팔을 몸으로 끌어당길 때에는 숨을 들이마시고, 반대로…….”
재욱은 지후가 하는 동작을 보며 틀린 부분이나 어색한 부분을 고쳐 주었다.
‘허허, 이놈 보게. 소질이 있어 보이네!’
비록 자신이 가르치고 있는 동작들이 간판으로 걸고 있는 풍류도와는 상관없는 중국 무술의 기본 동작이기는 하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엉터리 동작을 알려 주는 것은 아니다.
중국 무술 도관에서 가르치는 것을 그대로 가르치고 있는 것이기에 재욱은 전혀 꺼릴 것이 없었다.
그래서 지후가 하는 동작들을 유심히 살피며 지후의 소질을 파악하는 것이다.
비록 중국에서 건너온 도사가 전파한 것이라 사기를 치고 있지만 뭐 어떤가? 자신은 먹고살기 위해 중국에서 배운 무술을 뛰어난 도사의 무술로 둔갑을 시킨 것에 불과한 것인데 말이다.
나중에 무술의 본 이름을 알게 되더라도 상관은 없었다.
흔한 태극권이나 18기 같은 것을 가르치는 것은 아니니 아마 자신이 알려 주지 않는 이상 모를 것이다.
자신이 배운 것은 중국에서도 사람들이 잘 왕래하지 않는 시골 마을에서 마을 사람만 익히는 무술이기에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풍류도는 태권도나 여타 무술처럼 딱딱한 것이 아니라 부드럽게 운율에 몸을 맞추는 무술이다.”
처음에는 쉬워 보였으나 동작 하나하나를 천천히 행하다 보니 무척이나 힘이 들었다. 느리게 하는 것이 생각과 달리 쉬운 일이 아니란 것을 이때 알게 되었다.
“머리로 생각을 하면 아니 된다. 그냥 운율에 맡기래도.”
재욱은 짐짓 자신이 도사라도 된 것처럼 근엄한 목소리로 계속해서 틀린 동작들을 지적하고 훈수하였다.
그렇게 지후는 재욱의 지시에 따라 풍류도의 기본형을 익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