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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 오브 베스트 1권(9화)
4. 첫사랑, 그리고 이별(3)


발을 맞춰 걷고∼

틱.
지후는 한참 일을 하고 있는데 전화가 울리자 얼른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누나, 지금 제가 조금 바빠서 그러는데, 무슨 일이에요?”
원래 2명이서 근무를 해야 하는데, 아르바이트 1명이 일을 그만두는 바람에 지금 편의점은 무척이나 분주했다.
“알았어요. 안 흔들릴 테니 무슨 일인지는 집에서 마저 얘기해요. 끊어요.”
느닷없이 꺼낸 흔들리지 말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지후가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앞에 있던 손님이 지후에게 소리를 쳤다.
“여기요. 계산 좀 빨리해 주세요. 바빠요.”
“죄송합니다. 만 사천 원입니다.”
지후는 손님이 내민 돈을 받고 잔돈을 거슬러 주면서도 자꾸 조금 전 은정이 전화한 내용이 귓가를 맴돌았다.
‘우리 엄마가 무슨 말을 해도 넌 흔들리면 안 된다.’
한창 바쁜 시간이라 지후는 머리를 한번 흔들고는 상념을 떨쳐 내었다.
‘바쁜데, 내가 무슨 생각을. 일단 한가할 때 생각해 보자!’
강남에 위치한 편의점이라 그런지 저녁 9시가 다 되어서야 손님들이 숫자가 조금씩 줄었다.
시간적 여유가 생기자 지후는 그제야 아까 은정의 한 전화 내용에 생각이 미쳤다.
‘우리 엄마가 너와 내 사이를 안 좋게 생각하는 것 같으니 넌 우리 엄마가 어떤 말을 하든 흔들리지 마! 나머진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지후는 은정의 말이 생각나 점점 불안해졌다.
솔직히 은정과의 사랑이 지후에게는 첫사랑이다.
불꽃같이 확 첫눈에 반한 그런 사랑은 아니지만 지금은 은정을 사랑하게 되었다.
자꾸만 머릿속을 잠식하는 불안감 때문에 지후는 일에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집중, 집중하자! 내가 이렇게 흔들리면 누나가 더 불안해할 거야! 이럴수록 내가 정신을 차려야 해!’
정신을 다잡아 일을 하기 시작하자 시간은 훌쩍 지나가 교대 시간이 되어 버렸다.
아르바이트를 교대하는 내내 지후는 집중을 하지 못하여 교대 근무자에게 잔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집에 도착을 해서도 하루가 어떻게 갔는지 모를 정도였다.

***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라는 옛 노래 가사처럼 어제부터 불안했던 지후의 예상이 꼭 들어맞았다.
“지후 총각! 잠시 얘기 좀 하지!”
주인집 아주머니, 즉 은정의 어머니가 아침에 지후의 집 앞에서 문을 두들기며 지후를 찾은 것이다.
아마도 어제 은정이 한 전화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예,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지후는 간단하게 옷을 정리하고 주변을 살펴보았다.
‘어질러진 것은 없고, 됐다.’
“들어오세요. 그런데 무슨 일로…….”
지후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끝을 흐렸다.
현숙은 안으로 들어와 안 보는 척 주변을 살펴보았다.
지후가 어떻게 하고 사는지 살피는 것이다.
말이 통하지 않으면 무언가 꼬투리를 잡아서라도 지후를 내보내겠다는 무의식적 행동이었다.
하지만 지후의 삶에서는 꼬투리를 찾을 만한 것이 안 보여 현숙은 속으로 침음을 흘리고 말았다.
‘무슨 사내자식이 이리 꼼꼼해! 성격이 까탈스러운가 보네!’
현숙은 이미 지후가 못마땅하기에 정리정돈이 잘 되어 있는 모습도 성격이 모나서 그런다고 생각을 하였다. 그렇다고 남 성격 가지고 말을 할 처지는 못 되는 일이라 단도직입적으로 말을 하였다.
“지후 총각! 내 말 오해하지 말고 들어!”
지후는 현숙의 말에 더욱 긴장을 하였다.
“우리 은정이랑 두 사람 사귀고 있는 것 맞지?”
현숙이 이토록 직설적으로 물어 올지 몰랐기에 지후는 당황하였다.
“네……. 네.”
“지후 총각이 착하고 착실하다는 것은 알겠는데, 난 우리 은정이 더 좋은 남자를 만나 행복하기를 바라.”
“어머님! 은정 누나랑 저 정말 좋아하고 있습니다. 허락해 주세요.”
“어머니라니. 듣기 거북하네. 그리고 두 사람은 어려서 아직 잘 모르나 본데, 현실은 두 사람이 생각하듯 그렇게 간단한 게 아냐!”
이미 작정을 하고 온 현숙의 귀에는 지후가 어떤 말을 하여도 들리지 않았다.
“더욱이 은정이는 이제 겨우 대학교 2학년이고 총각은 이제 겨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직장도 없는 상태잖아?”
현숙이 너무 현실을 직설적으로 말해서 그런지 지후는 커다란 충격을 먹은 듯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
자신도 어렴풋이 이 문제가 나올 것만 같아 불안했었다.
어른들이 보기에 자신들의 사랑이 참으로 위험천만한 풋사랑으로 보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사랑인데 지켜보지 못하고 막으려고만 하니 정말이지 답답함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
현숙이 뒤로도 무슨 말을 하는 것 같았지만 지금 지후의 귀에는 어떤 말도 들리지 않고 있었다.
무언가 고장 난 TV에서 나오는 볼륨이 소거된 화면을 보는 듯하였다.
그러기를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그리고 다음 달까지 방을 비워 주었으면 좋겠어!”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고 이게 무슨 청천벽력 같은 소리인가? 방을 빼 달라니!
“아니 갑자기 그러시면…….”
“내 총각 형편이 어려워 그동안 세를 올리지 않고 있었지만 안 되겠어! 이미 복덕방에도 얘기해 놓았으니 그리 알고, 난 할 말 다 했으니 이만 가 볼게!”
“저, 저기!”
“아, 그리고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난 우리 은정이와 지후 총각 사귀는 것 두 눈에 흙이 들어가도 인정 못하니 그리 알고……!”
현숙은 그렇게 자신이 할 말만 하고 휑하니 가 버렸다.
집주인 아주머니가 나가고 홀로 남겨진 지후는 엄청난 현실에 암담해졌다.
은정과 사귀는 문제로 집에 찾아와서는 결론이 집에서 나가 달라는 말이라니!
어떻게 일언반구 없다가 이렇게 갑자기 자신보고 나가라고 할 수가 있는가? 지후는 참으려고 애를 써 봐도 가슴 깊은 곳에서 치고 올라오는 서러움에 눈물이 핑 돌았다.
자신이 고아이기에, 배운 것이 짧고, 결정적으로 가진 것이 없어 이런 대우를 받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은정 누나 어머니 말의 결론은 결국 돈이었다.
가진 것이 없어 누나를 고생시킬 것이기에 인정을 못한다는 말이었다.
만약 수억 대, 수십억 대의 재산을 가지고 있었어도 저런 말을 자신에게 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지후가 생각하기에 그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돈만 많이 가지고 있었더라면 은정의 어머니가 자신을 찾아와 이런 말을 할 이유가 없었다는 생각이 들자 지후는 갑자기 머릿속이 차가워지기 시작하였다.
작년 겨울 은정이 위험에 처했을 때 구해 준 것에 얼마나 고마워하며 자신에게 잘해 주었던가?
당시 은정의 어머니는 자신에게 이렇게 말을 했었다.

“지후 학생, 고마워. 내게 딸이 하나 더 있었더라면 사위로 삼았을 거야! 호호호!”

당시 자신에게 사위 삼고 싶다고 말했던 사람이 몇 달이나 지났다고 저리 변한단 말인가?
지후는 이 모든 것이 돈 때문이라고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 내가 가진 것이 없어 이런 대우를 받는 것이야! 사부님! 인의(人意)를 지키고 인의(仁義)를 행하라 하셨지요. 제가 사는 세상은 그것만으로는 안 되는 세상입니다.”
지후는 꿈속에 나타나 자신을 보며 ‘인연자’니 하며 제자라 부르던 옥룡지존 남천상을 어느 순간 마음속의 스승으로 부르기 시작하였다.
그러면서 그가 꿈속에서 자신에게 들려준 것을 하나하나 기억하고 실천하려고 노력을 하였다.
그래서 위험함을 알면서도 은정이 위기에 처했을 때 기지를 발휘하여 구할 수 있었다.
그 뒤로도 지후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언제나 인간의 도리에서 벗어난 행동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럼에도 오늘 자신은 그저 돈이 없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런 대우를 받았다는 생각이 들자 남천상의 말이 모두 맞는 것은 아니라 생각하였다.
“다시는 이런 대우를 받지 않기 위해서 전 악착같이 돈을 벌 것입니다. 두고 보세요.”
자신에게 모질게 말을 하고 간 은정의 어머니에게인지, 아니면 언제나 인간의 도리를 다 하라는 남천상에게인지, 그것도 아니면 이런 대우를 받고도 억울해 눈물만 흘리는 자신에게인지 모를 말이지만 지후는 그렇게 혼자 중얼거렸다.

***

은정은 불안한 마음에 밤새 한잠도 자지 못하고 뒤척이다 언제 들었는지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아침 늦게까지 자 버리고 말았다.
어제만 하여도 빨리 지후를 만나 대책을 세우려고 하였는데, 그만 깜박하고 늦잠을 잔 것이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은정은 간단하게 세수를 하고 가벼운 차림으로 지후의 집으로 향했다.
그런데 그때 지후의 집에서 나오는 엄마를 보게 되었다.
“아니, 엄마! 엄마가 거기서 왜 나와?”
은정은 너무 놀란 나머지 자신의 엄마에게 큰 소리를 쳤다.
자신에게 소리를 치는 은정을 보고 깜짝 놀란 현숙도 당황을 조금 했지만 애써 태연한 얼굴로 은정에게 말을 하였다.
“내가 여기 오면 안 될 일이라도 있니?”
“그건 아니지만…….”
은정은 말을 줄이다 무언가 생각이 났는지 엄마의 손을 붙잡고는 얼른 집으로 들어왔다.
“엄마, 어제 내가 얘기했지! 만약 지후에게 허튼소리 했다가는 나 다시는 엄마 얼굴 보지 않겠다고!”
은정은 싸늘한 표정으로 자신의 엄마에게 말을 하였다.
그런 은정의 태도에 현숙은 너무도 기가 막혔다.
“저것이 남자에게 홀려도 단단히 홀렸어! 그래, 다신 보지말자! 말아! 그리고 지후 총각에게 빠른 시일 내에 방 빼라고 말했으니 너도 그리 알아!”
현숙은 은정의 태도에 화가 나 소리를 지르고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런 엄마의 모습에 은정도 싸늘한 표정으로 소리를 질렀다.
“좋아! 그럼 누가 못 할 줄 알고!”
은정도 빽 소리를 지르고 밖으로 나갔다.
엄마의 태도에 지후가 걱정이 된 것이었다.
집 밖으로 나온 은정은 급하게 지후의 집으로 향하였다.
탕탕! 탕탕!
“지후야! 지후야!”
은정이 대문을 두들기며 불러 보지만 지후의 기척은 들리지 않았다.
그렇게 한 시간여를 문을 두들기고 불러 보지만 안에서는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

***

한편 현숙에게 은정과 사귀지 말라는 말과 방을 빼 달라는 말을 들은 지후는 심란한 마음에 산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