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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1(24화)
제5장 환왕 카라얀(3)


스카아앙.
이누타브 블레이드에서 별안간 검광이 어마어마한 기세로 터져 나왔다. 나는 사물을 모두 분별할 수 있지만 적들은 그 섬광에 눈이 부셔서 주춤거렸다. 나는 씨익 웃고는 이누타브 블레이드를 거머쥐고 외쳤다.
“홀리 바운드(Holy Bound)!!”
콰직.
두 팔로 땅에 신검을 박아 넣는 순간, 신검을 중심으로 새하얀 파장이 퍼져 나갔다. 그 파장 안에 들어와 있던 오우거들은 흠칫거리면서 학질 걸린 것처럼 몸을 떨었다. 그러더니 전신에 신열(神熱)이 솟구치며 피부가 불탔다.
“쿠어어어어어!!”
“이, 이런!! 홀리 바운드를?! 네놈은 성기사의 능력을 어떻게……!!!”
로브를 입은 자들이 공황 상태에 빠졌다. 한순간에 오우거 병사들이 무용지물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홀리 파이터의 상위직, 신검술사 Lv. 3으로서 처음 사용한 홀리 바운드다.
홀리 바운드는 부정한 생명체나 몬스터, 이종족에 대해서 성스러운 파장을 흘려 넣어 자멸시키는 비기다. 어떤 마법 무기를 통해서도 쓸 수 있지만, 성검(聖劍)을 쓸 때 위력이 극대화된다. 성기사라는 직업에서 신검의 힘을 다루는 능력만 특화시킨 직업이다.
나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검을 치켜들고 외쳤다.
“으오오오오오!! 내가 사실은 이누타브의 성기사지비!!!”
“엉?!”
“뭐라?!”
[허세 스킬 발동!!]
나는 지금 전설의 허세왕이다!!
나는 잔인한 눈으로 놈들을 내려다보며 외쳤다.
“이쯤에서 물러나지 않으면 이 몸이 이누타브를 대신해서 심판을 내리겠다!!”
“크…… 크윽…….”
“페드라크님과 센마 님을 쓰러뜨렸다는 게 거짓이 아닌가…….”
놈들은 분한 표정을 지으며 오우거 병사들을 추슬러서 뒤로 물러났다. 지금은 물러날지 말지 고민하는 중인 것 같다. 나는 훗 하고 허세웃음을 지으면서 자세히 놈들의 레벨을 살펴보았다.

엘 페르메
Lv. 20 카오스위저드

라르만
Lv. 25 정령술사

이신
Lv. 22 네크로맨서

“…….”
세 놈 모두 전투력만 치면 나한테 거의 떨어지지 않네…….
거기에다 카오스 위저드면 혼돈계 마법의 위력은 1.5클래스 위의 수준으로 쓸 수 있다는 절대희귀 직업인데. 홀리 바운드로 상쇄는 가능하겠지만 주문을 조금만 스쳐 맞아도 죽을 것이다. 나는 이마에서 땀이 쫙 나는 걸 느꼈지만 허세로 버텼다.
그때였다.
그들의 등 뒤쪽에 누군가가 텔레포트해서 나타났다.
“멍청한 것들! 기습을 하기는커녕 선공을 당해?! 그러고도 네놈들이 트위스티드 소속이냐!”
그러자 놈들은 황급히 그자에게 무릎을 꿇으며 외쳤다.
“면목이 없습니다 카라얀 님!!”
세 명의 술사의 경배를 받는 것은 열 살 정도로 보이는 꼬마 여자애였다. 단지 흑발에 백의를 걸치고 있고 엉덩이 뒤에 커다랗고 탐스러운 아홉 개의 꼬리가 휘날리고 있다는 게 특이하다.
‘저 녀석은!’
나는 저 녀석의 목소리를 예전에 들었던 것을 떠올렸다.
분명히 왕도 필리아딘에서 도적들을 피해 다닐 때, 난데없이 나를 좀비 굴로 이동시킨 녀석이다. 그때 보았던 레벨은 41이었다. 나는 자세히 카라얀의 레벨을 관찰했다.

카라얀 세이실버드(환왕)
Lv. 41 구미호군주
Lv. 5 드래곤 슬레이어
Lv. 7 트위스티드의 멤버
HP : 2879
MP : 8921

단순하다.
다른 건 아무것도 없다.
단지 오우거들과 같이, 종족 [구미호] 자체가 직업인 녀석이다. 나는 그제야 이종족들의 특징을 알 수 있었다. 엘프처럼 이미 세상에 남아 있지 않은 자들은 고대 종족으로 불리고 나머지는 종족 자체가 강력하므로 그걸 직업으로 삼는 것이다.
‘마력이 엄청나!’
마력만으로는 얼마 전에 쓰러뜨렸던 하늘의 대정령조차도 능가한다. HP는 비교적 적은 편이지만 그걸 메꾸고도 남을 정도의 마력이다. 어쩌면 대마법사급일지도 몰랐다. 나는 허세를 잃지 않고 외쳤다.
“다시 보게 되었군, 트위스티드의 카라얀! 왕도에서는 신세 좀 졌다!”
“애송이가 주제도 모르고 까부는구나. 흥.”
카라얀은 코웃음을 치며 나를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자신만만한 태도였다.
“우리 트위스티드에 대해 알고 있는 건 네가 동방 신의 사자이기 때문이겠지. 하지만 아무리 신의 사자가 강력하다 해도 한계는 있는 법. 트위스티드의 5위, 이 카라얀이 그 한계를 가르쳐 주마……!!”
5위?!
강하다고는 생각했는데 설마 5위씩이나 되는 겁니까?!
허세왕 타이틀이 없었다면 단박에 전신에서 땀을 줄줄 흘릴 상황이다. 정신이 나갈 것 같다. 오우거랑 저 세 마법사만 해도 내 힘만으로 당해 내기 힘들다. 거기에 카라얀까지 덤벼들면 희망이 없다.
에라이, 약한 소리 하지 말자.
하긴 서열 2위가 최후의 엘프 군주에 9클래스 마스터 위저드인데 다른 녀석들도 그에 못지않는 게 정상이다. 트위스티드란 단체의 가공함에 치를 떨고 있을 때였다.
위잉.
“크헉?!”
콰과광.
[기습 성공. 추가 데미지가 적용됩니다.]
정령술사 라르만과 네크로맨서 이신이 난데없이 날아든 무형의 주먹에 얻어맞고 몇 미터를 붕 떠서 날아갔다. 나는 청력으로 180미터 밖에서 그랑시엘이 수십 개의 주먹을 띄워 놓은 것을 감지했다. 초능력자는 체력이 약하므로 근접전을 하기보다는 멀리에서 지원을 해 주겠다는 뜻이다.
카오스 위저드, 엘 페르메가 이를 갈았다.
“이 자식! 플라잉 피스트(Flying Fist)를……!! 초능력자 동료를 데려왔구나!”
“뭘! 니들도 다굴치잖냐!”
나는 툭 내뱉고는 이누타브 블레이드를 스윽 하고 비껴들었다. 그러자 검광이 엄청난 기세로 백열하더니 이윽고 검 주변에 두세 개의 구체를 띄우며 맴돌았다. 홀리 파이터 Lv. 15에서 배운 [홀리 크로스]의 준비 자세다.
홀리 크로스를 쓰면 어떤 마법이든지 즉각 디스펠 블레이드로 쳐 내고 준비 동작 없이 2차 공격을 할 수 있다. 말 그대로 마법사를 상대하기 위한 스킬이다. 지켜보던 카라얀이 팔짱을 풀면서 말했다.
그 눈에는 감탄 어린 기색이 어려있다.
“제법 강하구나! 하지만 어째서 사자의 날개(Wings of Messenger)를 펼치지 않는 거지?”
“…….”
나는 대답하지 않은 채 씩 웃기만 했다. 하지만 속으로는 당황해서 안달이 났다.
‘날개?’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내가 모르는 사자의 능력도 있었나?

구미호 전용 스킬, ‘천년의 지혜’ 적용.
허세 간파 체크.
레벨 차에 따른 패널티 적용으로, 허세 성공 확률 보정이 사라집니다.
지혜(wisdom) 대결 중…….

헉!
저 카라얀이 내 허세를 간파하기 시작했다. 아까부터 긴장으로 점차 굳어져 있던 심장이 꽉꽉 죄여 오는 것 같다. 나는 어떻게든 긴장한 티를 내지 않으려고 인생 최대의 집중을 발휘했다. 여기서 들켜 버리면 안 된다!
그러나 이내 눈앞에 뜨는 글자를 보고 입술을 꽉 물었다.
[허세 실패.]
“후…… 후후!! 반쪽짜리 사자로군! 신검의 능력밖에 쓸 수 없다면 거저먹기야!”
고오오오.
광소를 터뜨리던 카라얀이 두 손을 하늘로 뻗더니 가공할 마력을 집중시켰다. 아홉 개의 꼬리가 허공으로 치솟더니 붉게 물들었다. 나는 마음을 읽어서 카라얀이 마력탄을 내쏠 생각이라는 걸 알아챘다.
최소한 7클래스 상급 수준은 되는 마력 덩어리 세 개를!
그러고도 마력량은 절반밖에 빠지지 않았다.
‘으아아앗!!’
나는 일순간 고민에 빠졌다.
등 뒤쪽에서 날아오는 수십 개의 플라잉 피스트가 카오스 위저드를 견제하고 있지만 저 마력탄이 날아오면 나는 피할 수가 없다. 이 상황에서 전방으로 나가면서 카라얀에게 정면 돌격을 할 것인가, 아니면 마력탄이 날아오면 홀리 크로스로 반격을 노릴 것인가?
어떻게든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나는 그 순간 눈앞에 글자가 뜨는 것을 확인했다.

분기 ‘사방신의 사자’ 시작.
각성 분기이므로 취소 불가능합니다.
TIP : 각성 시 세 개의 능력을 가지게 됩니다.
해당 능력의 설명은 Unknown으로 되어 있으므로 신중하게 선택해 주십시오.

“으앗!”
뭔가 생각하기도 전에 나는 급박하게 전해 오는 그랑시엘의 텔레파시를 들었다.
[버티컬 벡터(Vertical Vector)!!]
지잉.
에라이! 방법이 없다!
나는 멀리서 그랑시엘이 걸어 준 초능력만 믿고 홀리크로스로 어떻게든 받아쳐 보기로 했다. 자세를 잡고 있을 때 허공에 떠오른 마력탄이 수십 개의 큐브로 분열하면서 또 다른 마법진을 그려 대었다.
나는 마법 수준이 낮아서 저게 뭔지 모르지만 위험하단 사실만은 직감했다. 카라얀이 두 손을 내게 뻗으며 외쳤다. 손끝에서 불꽃이 튀기는 것 같다.
“사우전드 페인(Thousand Pain)!!”
[합성주문Spell Complex 시전.]
키리리링.
마력탄 세 개가 흩어져서 만든 큐브가 수천 개나 되어서 쏟아져 오기 시작했다. 마치 나선의 소용돌이를 그리는 것 같다. 나는 생각 외로 공격이 느리고 단순해서 놀랐지만, 이윽고 정해 둔 대로 받아치기 시작했다. 이 정도 속도면 몇 개라도 받아칠 수 있어!
캉. 캉. 카앙.
“흐억?!”
……어, 이게 아닌데?!
콰과광!
신검이 분열하듯이 허공에서 춤을 췄다. 나는 벌써 스무 개나 되는 큐브를 쳐 내었지만 큐브가 튕겨 날 때마다 터져 나갔다. 하나하나의 위력이 3클래스 주문은 되는 것 같다. 홀리크로스에 내 주변의 마법 효과를 제거하는 위력이 없다면 벌써 전신이 그을려서 숯덩이가 되었을 것이다.
손끝이 얼얼하다. 상당한 물리력도 담고 있다. 나는 미친 듯이 검을 휘두르면서 전신에 땀이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개중 정면으로 날아오는 것들은 버티컬 벡터에 걸려서 수직으로 치솟아 올라서 망정이지, 그냥 맞았다면 난 이미 아무 큐브에나 맞아서 전신이 폭발해 버렸을 것이다.
절로 욕이 나올 정도로 강력한 주문이다.
‘망할!! 이따위 주문이 어딨어!!’
콰과과광!!
“으그그그그극…….”
휘휘휭.
검 휘두르는 횟수가 벌써 삼백 번을 넘겼다. 나는 눈썹에서 눈동자로 떨어지려는 땀을 훔쳐 내지도 못하고 눈에 핏발이 섰다.
‘팔 아파!’
나는 서서히 팔이 저려 오는 것을 느꼈다. 보통 사람은 검을 오백 번 휘두르면 피곤해서 쓰러진다. 나는 훈련도 되어 있는데다 레벨이 올라서 천 번까지는 무난히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큐브들은 신검에 스치면 튕겨 나갔다가 다시 날아오는 것이다.
이대로는 진짜 죽는다!!
타이틀을 바꿔서 죽음을 거부한 자(Anti Death)가 되도 마찬가지다. 되살아났을 때 무적 상태 같은 게 1초간 유지되지만 즉시 풀린다. 나는 계속 얻어맞으면서 죽었다 살았다만 반복하게 된다. 한 번 살아나기도 그렇게 벅찼는데 그런 미친 짓을 할 수가 없다.
그때였다.
“오블리비언Oblivion!!”
지이이잉.
하늘의 문이 열리고 눈동자가 지상을 주시한다. 그러더니 이 근방을 신비한 파장이 뒤덮기 시작했다. 그 느릿한 파장에 닿인 모든 것들이 서서히 정지하기 시작했다. 그랑시엘의 기습에 당했다가 일어나려던 두 마법사도 놀랐는지 눈을 껌벅거렸다.
“어어?”
스르르륵.
나를 농락하던 큐브 덩어리들이 파장에 닿자 마치 각설탕처럼 사라져 버렸다. 그 광경을 바라보던 카라얀이 날카로운 눈으로 내 뒤쪽을 바라보았다. 오블리비언은 안개조차 없애 버려서 어느새 이 근처는 시야가 탁 트여 있게 되었다.
“템포리스의 혈족? 엘프가 어째서…….”
타다닷.
안개 사이로 한 인영이 보인다.
“난 엘프가 아냐, 여우 꼬리!!”
파앙!
달려오던 그랑시엘이 그렇게 외치면서 왼손을 휘둘러 카라얀에게 향해 다섯 줄기의 화염 광선을 발사했다. 화염 광선은 보고 피할 수 있는 속도가 아니다. 최소한 음속이다. 카라얀의 전신에 둘러쳐 있던 6클래스 방어 마법, 마이너 포스필드(Minor Forcefield)가 그 공격을 육각형 진동으로 막아 내었다.
카라얀이 수인을 맺더니 손을 위에서 아래로 내려쳤다.
“리버스(Reverse)!!”
“흥!”
스칵.
그랑시엘의 코웃음 소리가 들리더니 하늘에서 떨어지는 거대한 공기 압력의 손바닥을 찢어 버렸다. 그랑시엘의 몸 주변에 화염으로 만들어진 칼날 다섯 개가 치솟아올랐다. 그랑시엘이 의식하고 쓴 건 아니다.
마법사나 초능력자들은 즉각 대응 주문이란 걸 사용한다. 음속을 초월하는 방출 주문에 반응하기에 인간의 반응 속도는 너무 느리다.
그렇기 때문에 특정 조건을 설정해 놓으면 그에 반응해서 능력이나 마법이 발동되도록 하는 것이다. 그랑시엘도 공격이 오면 자동적으로 화염 능력이 발동하도록 설정해 둔 셈이다.
지이잉.
카라얀과 그랑시엘의 손에서 화염과 냉기가 치솟아오르더니 허공에서 격돌했다. 그 위력은 막상막하로 보인다.
“이쪽도 결판을 내자고!”
나는 그 틈에 카오스 위저드를 비롯한 세 명의 술사에게로 덤벼들었다. 그랑시엘이 카라얀을 막는 사이에 나머지 녀석들을 내가 처리해야 한다. 그러자 삼대술사들이 동시에 수인을 맺더니 외쳤다.
“쉴드(Shield)!”
“레이즈 스켈레톤(Raise Skeleton)!”
“정념의 소환!”
쿠르릉.
‘에이, 제기랄. 역시 이놈들 강해!’
나는 강베기로 카오스 위저드를 때리려다 실드에 막히고는 반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와 동시에 놈들 앞으로 세 마리의 스켈레톤이 솟아올랐고, 정령술사 놈은 정령소환 의식을 시작했다. 디스펠 블레이드로 방출 주문은 쳐 낼 수 있지만 실드 주문을 깰 수는 없다. 나는 재빨리 검을 땅에 꽂아 넣었다.
“홀리 바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