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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1(25화)
제5장 환왕 카라얀(4)


파지직.
쩌엉.
실드 주문이 한 방에 깨지고 스켈레톤들이 부서졌다. 네크로맨서 쪽은 내 능력이 자신의 마법에 극성이란 걸 알아챘는지 얼굴이 크게 일그러졌다.
이 정도 주문은 한 방이야!
카오스 위저드 엘 페르메가 이를 악물고 카오스 워드(Chaos Word)를 외웠다.
“르데르마!”
쩌억.
허공에서 조그마한 악마의 입이 떠오르더니 내 머리로 덮쳐 왔다. 혼돈 언어로 환수를 순식간에 소환해 내는 기술이다. 이 정도쯤은 신검의 검광에 노출되어도 사라진다. 나는 가볍게 악마의 입을 베어 내고는 다시 한 번 홀리 바운드를 썼다.
“홀리 바운드!”
“크오오!!”
화륵.
덮쳐 오던 오우거 병사들이 다시 비명을 지르며 전신이 불탔다. 게다가 주문을 외우려던 마법사들도 비틀거렸다. 으아, 정말 이 기술 최곤데?! 6클래스 마법사의 길을 포기한 보람이 있어!
내가 점프해서 네크로맨서의 목을 베려는 순간이었다.
까앙!
“그렇겐 안 되지!”
옆에 있던 정령술사 놈이 정령 소환에 성공했는지 바람 정령으로 만들어진 칼날로 신검을 막아섰다. 날카롭게 세운 손에서 백색 바람의 칼날이 뿜어져 나오고 있다. 톱날 같은 기세다.
정령술사란 건 굳이 말하자면 마검사에 가까운 직업이다. 일단 정령을 소환하면 두 가지 타입으로 싸울 수 있다. 정령에게 모든 일을 시키는 간접 타입과, 정령과 합신해서 직접 싸우는 강령 타입. 정령술사 라르만은 강령 타입인 것이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 없는 일.
라르만의 정령검이 검신을 타고 머리를 찔러 왔지만 가볍게 피했다. 나는 허공에서 다시 한 번 베기를 하면서 몰아붙였다.
쫘좍.
“크윽…….”
라르만은 실력이 딸리는지 가슴에 한 칼을 맞고는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끝장을 내려 할 때 카오스 위저드와 네크로맨서는 서로 손을 맞잡더니 갑자기 시야에서 사라졌다.
“블링크(Blink)?”
나는 50미터 밖에 나타난 녀석들을 확인하고 치를 떨었다. 단번에 거리 좁힌 것이 무색해졌다.
저놈들을 잡으려면 또 뛰어가서 검을 휘둘러야 한다. 게다가 홀리 바운드는 이제 한 번밖에 못 쓴다. 내가 달려가려고 할 때 뒤쪽에서 재차 폭음이 울렸다.
콰앙!!
“대단한 초능력자구나! 하지만 그 정도 실력으로는 안 돼!!”
후와악.
그랑시엘이 벡터 장력으로 전신에 방어막을 쳤지만 허공으로 뛰어오른 카라얀이 갑자기 입에서 불꽃의 브레스를 확 내뿜었다. 부채꼴 모양의 백색 화염이 치솟아오른다. 멀리 떨어진 이곳까지 열기가 느껴질 정도였다.
[구미호 전용스킬, [구대업화] 발동. 벡터 방어막 방어 체크……. 절반의 성공(Half Good).]

화륵.
“꺄악!!”
부채꼴 모양의 화염이 급격히 팽창하며 아홉 갈래로 찢어졌다. 그러더니 중앙에 용권이 생겨나며 그랑시엘의 옷이 화염에 그을리고 찢겨 나간다.
명백히 밀리고 있는 모습이다. 서열 5위라는 게 거짓이 아닌지, 저 강력한 초능력자를 실력으로 몰아붙이는 카라얀의 모습은 공포 그 자체였다.
나는 급히 달려가서 쓰러지는 그랑시엘을 부축해 주었다.
“괜찮아?”
철썩!!
상반신을 감싸 안자, 갑자기 그랑시엘이 눈을 번쩍 뜨더니 뺨을 후려쳤다. 나는 뺨을 맞고 고개가 홱 돌아가자 정신이 멍해졌다. 이빨이 흔들린 거 같다.
뭐지, 이 상황은?!
어째서 싸다귀?!
“어, 어딜 만져!!”
손을 급히 떼자 뾰로통해진 얼굴로 다시 버티고 섰다.
왠지 셋 다 무안해져서 침묵이 감돌았다.
“…….”
“…….”
카라얀이 말했다.
“너희 사랑싸움하니?”
[도발 체크…….]
뭔 소리야?!
“아냐!”
“아니거든!!”
우리는 격하게 흥분해서 부정했다. 이런 약삭빠르고 자기밖에 모르는 녀석하고 사랑싸움이라니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그랑시엘은 그랑시엘대로 홀랑 타 버린 상체를 가리고 얼굴이 빨개져 버렸다.
스쳐 지나가는 글자가 짜증을 부채질했다.
[도발당했습니다.]
사앗.
“후후.”
카라얀은 픽 하고 웃더니 손가락 끝에서 조그마한 불꽃을 만들어 냈다. 그것만으로도 나와 그랑시엘은 움찔하고 물러났다. 저 녀석은 불꽃에 관한 한 세상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조예를 지니고 있다.
아니나 다를까 카라얀이 훅 하고 불꽃에 입김을 불어넣었을 때였다.
스르릇.
퍼엉.
요란한 연기와 함께 쨍알거리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옷깃을 스치는 바람 사이로 왠지 모를 향수 냄새도 났다.
[갑니다아, 첫째 꼬리!]
[나왔습니다, 둘째 꼬리!]
[해볼까요오, 셋째 꼬리!]
빙글 하고 제비를 돌면서 카라얀과 똑같이 생긴 녀석들이 불꽃 형상이 되어서 허공에서 튀어나왔다.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뛰어다니기까지 한다. 왠지 귀엽단 생각을 하면 지는 건가? 그 광경에 멍해져 있을 때 내 눈앞에 글자가 흘러나왔다.

구미호 전용 스킬, ‘구대분신’ 시전.
개별적 분신에 특수 어빌리티가 존재합니다.
TIP : 뒤로 갈수록 강해집니다.

부, 분신술? 저것들 하나하나가 카라얀의 진짜 꼬리라는 거냐.
그렇다면 마법을 쓸 수 있는 게 분명하다. 카라얀은 깔보는 듯한 시선으로 이쪽을 내려 보았다.
“너희 정도는 이걸로도 충분해. 천천히 처리해 볼까나.”
“큭……!!”
얕보기는……!! 내가 이누타브 블레이드를 들고 주문을 외우려 할 때 첫째 꼬리와 둘째 꼬리가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면서 동시에 외쳤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똑같은 타이밍이다.
[디스필드!]
[디스필드!]
터엉.
마나 역장이 급격히 움츠러든다.
디스필드 때문에 마법 발동이 취소된 것이다.
“흐켁!!”
나는 비명을 내질렀다. 주문 반동이 전신을 저리게 한다. 첫째 꼬리의 디스필드는 막아 내었지만 연이어진 디스필드에 주문이 풀려 버렸다. 저 녀석들 하나하나의 실력이 4클래스급이야!!
정신을 차리고 검을 다잡았다. 그러자 어느새 시야에서 사라졌던 셋째 꼬리가 꼬리 세 개를 살랑거리면서 이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밥 줘∼!!]
그러더니 입을 동그랗게 벌리고는 브레스(Breath)를 내쏘는 것이다! 브레스는 용이나 쓰는 거 아냐?! 너도 이종족이라 이거냐!
콰과과광
레이저빔이 날아오는 것을 가까스로 피하자 등 뒤에 있던 5미터는 될 법한 바위가 한순간에 터져 나갔다. 셋째 꼬리의 브레스의 위력이다. 나는 땅을 구르면서도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에, 그럼 아홉째 꼬리는 얼마나 센 거냐?!’
자세를 제대로 잡았을 때 그랑시엘이 두 개의 손가락을 엑스자로 겹치고 있었다.
“하이플레임 매뉴버(HighFlame Maneuver) 크레센트(Cresent)!!”
부웅.
그랑시엘이 두 손가락을 십자로 휘저었다. 그러자 첫째 꼬리와 둘째 꼬리가 초승달 모양의 불꽃 충격파에 휩싸여 사라지는 듯했다. 하지만 이내 불꽃으로 변해 버리더니 셋째 꼬리에게로 가서 합쳐져 버렸다.
쿠오오오오…….
셋째 꼬리의 눈빛이 빛나더니 꼬리가 여섯 개로 늘어났다. 여섯 개의 꼬리 하나하나가 빛에 감싸이고 있었다. 그러더니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는 것이다.
[초…… 구미호 1…… 변신……!!]
서, 설마…… 합체?
[꺄하하! 여섯째 꼬리입니다!]
예상이 빗나가지 않았다. 물론 저 녀석의 레벨에 초구미호 1같은 건 없었다. 나는 의문을 토해 내었다.
“어째서?!”
[덧셈도 못 하니 바보야?]
아니, 그걸 묻는 게 아냐! 초구미호 1이 뭐냐고!
슈웅.
그러더니 휙 하고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나는 거의 반사적으로 검을 들어서 얼굴을 막았다. 동시에 펑하고 머리채가 터져 버리는 듯한 충격과 함께 저 멀리 날아가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단지 여섯째 꼬리의 손바닥에 맞았을 뿐이라는 사실을, 땅바닥을 뒹굴면서 겨우 깨달았다.
신체 능력이 엄청나다. 방금 공격은 동체시력에도 잡히지 않아서 반사 신경으로밖에 막을 수 없었다. 만일 여섯째 꼬리의 무기가 검이었다면 일격에 사지가 잘렸을 정도로 빠르다.
분신 중 여섯 번째면 이 정도가 되는 거냐!
‘우씨!’
정작 카라얀은 싸움에 끼어들지도 않고 우리를 심드렁하게 바라보고만 있었다. 돌멩이를 발로 차고 있는 걸로 봐서는 행동을 못하는 것도 아니다. 말 그대로 싸우기 시시한 상대라서 갖고 놀고 있는 셈이다.
그랑시엘이 내게 텔레파시를 보냈다.
마치 머릿속이 터져 나갈 것처럼 큰 전파였다.
―바보야! 얼른 옷 줘!
“무슨 옷!!”
휙휙.
퍽.
그랑시엘이 화염 광선을 내쏘고 나는 앞에서 여섯째꼬리의 손바닥 공격을 막아 내고 있다. 여섯째 꼬리가 너무 강해서 공격을 막기만 하는데도 벅차다. 신검 이누타브 블레이드가 아니었다면 벌써 무기가 깨졌을 정도다. 나는 그 와중에 그랑시엘이 옷부터 달라는 것에 어이가 없었다.
아니 이것들이 왜 사람보고 자꾸 바보래?! 듣는 사람 기분 나쁘게!
푸욱.
나는 신경질적으로 땅바닥에 홀리 바운드를 꽂았다.
저것도 마법으로 만들어진 거니까 홀리 바운드에 사라질 것이다.

쿠웅!!
[케엑.]
성스러운 공명 파동에 휩쓸려서 여섯째 꼬리가 사라지자, 나는 지체하지 않고 다시 카라얀에게 덤벼들었다. 하루에 쓸 수 있는 홀리 바운드는 다 되었지만 들키면 안 되지! 카라얀은 피하지도 않고 가만히 서 있었다.
부웅 하고 이누타브 블레이드가 카라얀의 목을 베어 갈 때였다. 카라얀의 코웃음과 함께 눈앞에 글자가 떠올라 버린다.

즉각 대응 주문 발동
1. 어택 리바운드Attack Rebound
2. 블링크Blink
3. 아이언 캐논Iron Canon
조건이 만족되었습니다. 동시 발동 체크……
시전자 레벨에 따라서 따로 성공 판정하지 않음.
발동 개시.

…….
……무시기?
뭐, 뭐라는 겨?
내가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깨달은 것은 이누타브 블레이드가 투명한 막에 튕겨 나오고, 카라얀의 몸이 50미터 밖으로 사라지고, 옆에서 같이 공격하려던 그랑시엘에게 수십 톤은 될 법한 강철 덩어리 다섯 개가 하늘에서 뚝 떨어져 내렸을 때였다.
그야말로 순식간의 일이다.
“으악?!”
“꺄악!!”
우리는 동시에 비명을 질렀다.
더, 더러운 즉각 대응!
너무 강해!!
그랑시엘이 순식간에 버티컬 벡터를 걸고, 나는 좌로 구르면서 범위를 피해 나갔다. 그사이에 카라얀은 다시 뭔가 주문을 걸면서 대비하는 것 같았다. 공격하면 지금과 같은 꼴이 되어 버릴 것이다.
이래서야 접근을 할 수가 없잖아!
“카오스 애로우(Chaos Arrow)!!”
텅.
“큭!”
나는 땅바닥에서 디스펠 블레이드를 휘둘러서 난데없는 공격을 튕겨 내었다. 저만치를 보니 하늘에 둥둥 떠 있는 엘 페르메와, 완전히 바람의 중급 정령을 소환해 낸 라르만, 그리고 주변에 스켈레톤 스무 기를 소환한 네크로맨서가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특히 라르만의 눈에는 선명한 살기가 맺혀 있어서 겁이 날 정도다.
“…….”
만반의 준비가 다 됐잖아? 이쪽은 전력을 꽤 소모했는데.
그만 정신을 탁 놓을 뻔했다. 옆에 버텨서 있던 그랑시엘이 힘 빠진 목소리로 말했다.
“글렀네…….”
“야.”
너부터 그런 소리를 하면…… 될까나 이 상황은.
……으, 하느님…… 도와주세요.
죽지는 않게 도망만이라도 칠 수 있으면…….
내 얼굴이 절망으로 물들 때 발랄명쾌한 목소리가 저 멀리에서 들려왔다. 모두들 예상치 못한 소리였다.
“그리고 이 몸이 멋지게 등장하는 거야!!”

<『레벨업』 제2권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