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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1(21화)
제4장 신의 존재 증명(4)


키킹. 킹.
“큭!”
훅스 씨가 여유를 만들어 준 덕분에 나와 그랑시엘은 주문의 범위에서 빠져나와서 몸을 추스를 수가 있었다. 뭔가 반격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엘파인은 상공 10미터 위에 붕 떠 있다. 화살을 쏴도 잘 안 맞을 상황에 검을 휘둘러 봤자 닿지도 않는다.
……이런 게 어딨어?! 반칙이잖아!
나는 화딱지가 났지만 헛소리를 할 시간도 없었다. 그랑시엘이 강력한 초능력을 준비한다는 것을 알아챈 엘파인이 한쪽 손을 공기로 만들어 쭈욱 뻗어 내었다. 마치 소울 크러쉬를 연상시키는 강대한 진공파가 그랑시엘을 때렸다.
콰앙!!
“읏!! 벡터를……!”
그랑시엘의 키네틱 실드는 무지막지한 충격량 앞에 금방이라도 깨져 나갈 것 같았지만, 이내 그랑시엘이 한 손을 휘저으며 수직으로 치켜 올렸다. 그러자 힘의 방향이 바뀌면서 풍압이 허공으로 치솟았다. 힘의 방향을 바꿀 수 있는 초능력이다.
타앙.
훅스 씨는 그 틈에 엄청난 기세로 점프를 해서 나이트메어를 휘둘렀지만, 엘파인은 마치 예상했다는 듯이 바람이 되어서 휙 하고 피해 버렸다. 훅스 씨가 무형의 검기라는 것을 발출할 때는 몸을 수백 조각으로 분열시켜서 더욱 뒤쪽으로 날아가 버렸다.
‘정령이란 거 엄청 까다롭군!’
점프하는 게 문제가 아니다. 상대는 원한다면 대기의 성층권까지도 날아가서 주문을 외울 수 있다. 가진 주문이나 기술의 전력은 비슷할지 모르지만 기동력과 회피력에서 상대가 안 된다. 나는 급히 훅스 씨에게 외쳤다.
“이 자식을 언제까지 쓰러뜨려야 돼요?!”
“엘파인이 마법진의 근원이 되어서 빙의 주문이 발동할 때까지 약 15분. 그때까지는 최소한 일격을 먹여야 하네!”
훅스 씨가 신경질을 부렸다.
“제길. 한 대 피고 싶군.”
퍼벙.
말이 끝나자마자 엘파인의 손가락에서 떨쳐 나온 다섯 개의 충격파를 무시무시한 속도로 쳐 내는 훅스 씨였다. 그러면서도 한 손 모양은 담배를 고정시킨 그대로였다.
“…….”
이럴 때도 담배가 생각나다니. 담배란 건 한 번 피우면 끊지 못하는 것 같다. 에서론 자작님과 비슷한 나이일 텐데 저렇게 늙어 보이는 건 담배를 피우기 때문이 아닐까? 잡생각을 하는 동안에 웬 목소리가 머릿속에 들려왔다.
―띄워 줄 테니까 한 대 먹여!
‘뭐?’
멍해서 주변을 둘러보자 그랑시엘이 눈을 꼭 감고 있었다. 정신을 집중한 채로 두 손을 하늘로 뻗고 있다. 내 눈앞에 글자가 스쳐 지나간다.
[그랑시엘이 텔레파시 링크(Telepathy Link)를 시도합니다. 허락하시겠습니까? Yes/No]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랑시엘이 연이어서 텔레파시를 보냈다.
텔레파시는 말을 하지 않고도 두뇌에서 두뇌로 생각을 전송하는 초능력인 것 같다.
―지금 큰 기술로 시선을 끌 테니까, 3초 후에 뛰어!
나는 상단베기 자세로 이누타브 블레이드를 꽉 잡았다.
최고로 집중해야 한다.
카가가강!!
훅스 씨가 보이지 않을 정도의 속도로 움직이며 혼자서 엘파인의 공격을 감당해 내고 있었다. 역시 훅스 씨는 마스터 나이트라서 마치 팔이 여덟 개는 되는 듯한 연속 공격을 수월하게 피해 낸다. 하지만 피하기만 해서야 말이 되지 않는다.
그랑시엘의 세 손가락이 모아지면서 엘파인을 겨누었다.
“오블리비언(Oblivion)!!”
번쩍.
거대한 눈동자가 허공에 열린다.
탁한 동공이 머나먼 우주에서 지상을 내려다본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보였다.
어쩌면 이누타브 블레이드를 지니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광선이 허공에 일렁이더니 파장이 되어서 뻗어 나갔다. 진회색의 파장이 구름처럼 흩어진 엘파인에게 도달하는 순간이었다. 지금까지 어떤 공격에도 무미건조하게 회피만 하던 엘파인의 몸이 굳어졌다. 엘파인이 당황하며 몸을 빼내려 했다.
[템포리스 디사이플(Temporis Disciple)?! 엘프만이 쓸 수 있는 초능력을 어떻게 인간이……!!]
타앗.
그 순간, 나는 전신이 엄청난 힘에 이끌려 들어갔다. 아마도 그랑시엘이 염동력으로 내 몸을 엘파인에게로 던진 것이다. 나는 빠르게 점멸되는 시야를 붙잡고 감각으로 위치를 파악했다. 그리고 엘파인에게 다가왔다고 여긴 순간 검을 머리 위에서 발끝까지 쫙 그어 베었다.
퍼버벅!!
흉한 소리와 함께 엘파인의 영체가 반으로 갈려 터져 나갔다. 내 눈에 엘파인의 상태가 보였다.

엘파인
HP 240
빈사 상태

눈앞이 아득해졌다.
‘끝내지 못했어!’
그렇게 생각한 순간 내 몸이 투명한 손에 잡혀서 들려 버렸다. 전신을 기계로 누르는 것 같다. 노한 목소리가 귓가로 들려온다.
[이누타브 블레이드라 해도 나를 일격에 멸할 수는 없다!!]
콰광.
상공 15미터에서 펑, 하고 공기 충격파를 한 번 뚫고 바닥으로 떨어져 내린다. 떨어져 내리는 데는 찰나의 시간조차 필요하지 않아서, 나는 전신이 크게 튕겨 나가는 것을 느꼈다. 등뼈가 오작하고 부서지고 목뼈가 돌아간다. 뇌진탕 때문에 정신이 나가려고 한다.
터엉.
비명을 지를 수도 없다.
그저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 속에서 입만 쩍하고 벌린다.
‘으…… 아…….’
이누타브 블레이드가 손에서 떨어져 나간다. 이 모든 과정이 꿈같다. 현실이라고 믿기엔 너무 느리다. 죽기 전에는 잠시 동안 모든 사물이 느려 보인다는데, 지금이 그 상황 같다.
손끝에서 손톱이 빠져나가고 혈관이 터져나갈 때 눈앞에 글자가 보인다. 점차 시야가 백색으로 변해 간다.
마치 마지막 초침을 세는 것과 같이.
[HP가 0이 되었습니다. 끝내시겠습니까? Yes / No]
……뭐라고?
빠직.
그 순간 나는 진심으로 [열 받았다]. 죽음의 고통과 절망 따위는 저만치 피안으로 치워 버리고 전신에 힘을 준다.
그리고 모든 의지를 끌어 모아 외친다.
닥쳐! 난 절대 이런 식으로 안 죽어!
네 멋대로 내 생명을 숫자로 규정하지 마!
나는 살아 있다!
숨 쉬고 있다!
생각하고 있다!
내가 바로 J. S. 다!
한 줄의 문장으로 끝낼 수 있을 정도로…….
“……간단한 목숨이라고 생각하지 말란 말이다아아아아!!!”
덥썩.
손에 힘이 돌아왔다. 이누타브 블레이드가 손에 잡힌 것을 느꼈을 때, 나는 눈을 부릅떴다. 힘없이 튕겨 나가던 몸을 붙잡아서 바닥에 쓰러지듯이 고정시켰다.
서서히 일어나면서 젖은 머리를 들어 물웅덩이 사이로 나 자신을 비춰 보았다. 얼굴 위로 글자가 떠올랐다. 수면에 핏빛 공명이 퍼져 나간다.

J. S.
HP 1

아아, 그래 살아 있구만. 잘도 살아남았어.
휙 하고 모두의 시선이 이쪽을 향한다.
나는 씨익 웃으며 외쳤다.
“몇 번을 물어봐도 내 대답은 No다!!!”

끼기기긱.
전신이 고통과 파괴에 몸부림친다. 등뼈가 부서지고 팔다리가 휘청인다. 머리 쪽도 약간 깨진 것 같다. 하긴 15미터나 되는 상공에서 하늘 정령의 손에 내동댕이쳐졌으니 안 죽은 게 이상하다. 나는 이누타브 블레이드에 체중을 실은 채로 희미하게 눈을 떠서 전방을 보았다.
훅스 씨와 그랑시엘이 경악스런 눈으로 보고 있다. 그건 적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일이. 인간이라면 죽어야 하건만!]
엘파인은 휘릭하고 바람이 되어서 수십 미터 위로 올라가 있었다. 꾸물럭거리면서 대기의 힘을 집중시키는 게 아마도 이누타브 블레이드에 당한 데미지를 회복하려는 것 같다. 눈에 보일 정도로 균열이 아물고 있다.
그에 반해 나는 칼 한 방 스치기만 해도 죽을 처지다.
삐끗.
“허윽!”
나는 눈알이 뒤집혀질 정도의 고통에 신음을 흘렸다. 고작 반걸음 옮겼을 뿐인데 전신이 삐그덕거린다. 망가진 인형관절 같다. 나는 당장 혀를 깨물고 죽고 싶은 기분이 들었으나 간신히 참았다.
젠장, 이렇게 아팠던 건 두 번째군.
그때 내 눈앞에 글자가 떠올랐다.
[‘죽음을 거부한 자’ 타이틀이 생겨났습니다. 타이틀을 교체하시겠습니까? 타이틀은 총 3개가 있습니다.]
‘……죽음을 거부한 자, 라.’
말 그대로다. 나는 조금 전에 죽음을 거부한 것이다. 생명이라면 마땅히 받아들여야 할 진실, 그것을 내 의지로 거부하고 이 자리에 서 있다. 힘겹게 정신을 집중하자 추가 사항이 떠오른다.

‘죽음을 거부한 자(Anti Death)’가 되었습니다.
이제부터 한 번 죽음을 거부할 때마다 회생 hp가 1에서 2배씩 상승합니다. 이 타이틀을 유지하는 동안에는 즉사 계열 공격과 주문, 사령 계열 공격과 주문의 데미지를 받을 때마다 체력을 회복합니다. 치명타 공격에 면역이 됩니다.
이 타이틀을 유지하는 동안 치유주문과 능력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신(神)의 공격에 소멸할 수 있습니다.

“……큭.”
나는 이누타브 소드를 뽑아서 들었다.
그 조그만 동작도 피눈물이 날 정도로 아프다.
엘파인이 허공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는지 허공을 유영하며 내게 말해 왔다.
[이누타브의 사자여, 너에게서 생명의 마나가 옅어지고 있구나. 정해진 필멸의 죽음을 거부하고 다른 존재가 되어 버린 것인가? 그렇다 하더라도 너의 검은 내게 도달하지 못할 것이다!]
쐐애애액.
퍼엉!
엘파인이 던져낸 바람의 창이 내 머리를 관통하려는 순간 훅스 씨가 내 앞에서 쳐 내었다. 훅스 씨의 전신은 땀으로 젖어 있었고 단정한 신사복이 흐트러져 있었다. 게다가 등에는 베인 상처까지 있어서 정상이 아니었다.
훅스 씨가 내 앞을 가로막고 서서 조용히 말했다. 그 말에 다시 용기가 솟아오르는 게 느껴졌다.
“엘파인의 말에 동요하지 마라. 우리들 중에서 저 녀석을 확실히 해치울 수 있는 건 너뿐이야…… 힘을 회복하고 있지만 아직 멀었다. 한 번만 더 공격하면 끝장 낼 수 있다.”
“…….”
그랑시엘이 여기까지 뛰어와 있었다. 그랑시엘은 의외로 텔레포트는 사용하지 못하는 것 같다. 그녀는 이제 완전히 얼굴만 보면 엘프라는 존재로 변해 있다. 본인은 그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는지 내게 말했다.
“한 번 더 오블리비언을 사용해 볼게. 나도 원래 몰랐던 능력인데…… 이상하게 그것을 먹고 깨우치게 된 거 같네. 저 대정령의 움직임을 멈추면 다시 한 번 공격해.”
“아…….”
나는 힐끔 그랑시엘을 바라보았다. 이 녀석이 약삭빠르고 영리한 녀석이란 걸 새삼 알게 되었다. 아까 전까지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었는데 바로 상황을 파악하고 우리 편에 붙은 것이다.
옆얼굴이 꽤 예쁘다. 새하얀 머리칼이라서 토끼 같다.
나도 모르게 멍하니 중얼거렸다.
“너 예쁘다.”
“응?!?!”
확하고 그랑시엘의 얼굴이 붉어졌다. 마치 오금이 저린 듯한 표정이었다. 옆에서 엘파인에 집중하고 있던 훅스 씨도 나를 힐끔 돌아봤다.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싱겁게 웃고 말았다.
내게 남은 HP는 1이다.
단검에 팔을 긁히기만 해도 죽는다.
“…….”
……솔직히 다시 죽으면 살아날 자신이 없다. 머리에 확 열이 뻗치지 않았다면 난 차라리 죽는 게 편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죽음은 도리어 안식을 위해 존재한다.
나는 이누타브 블레이드를 잡으면서 생각했다. 그렇다면 죽으면 편해질 것을 무엇 때문에 살아가는가? 난 그 대답을 혼자서 중얼거렸다.
“왜긴 왜야.”
지이이잉…….
이누타브 블레이드에서 검광이 뿜어져 나온다. 별 효과는 없지만 왠지 이 기능이 도움이 될 것만 같다. 이누타브 블레이드는 분명히 나와 함께 성장하고 있다. 나는 엘파인을 노려보면서 씨익 웃었다.
“그렇다고 죽고 싶은 놈이 어딨냐고. 벽에 똥칠할 때까지 살고 싶은 게 인간, 이라고!”
퍼어어엉
엘파인이 허공에 띄운 폭풍의 구가 떠오르더니 폭발하며 절규를 내뿜는다. 엘파인이 만들어 낸 수천 개의 바람화살이 역풍을 타고 천공에서 무수히 내리꽂힌다. 그 공격을 막아 내는 것은 훅스 씨의 역할이다. 훅스 씨가 발도 자세를 잡고 제자리에서 팽이처럼 돌면서 엄청난 속도로 검기를 발출했다.
스스스슷.

필살기必殺技
레벨 3
검막(Blade Barrier) 시전!
방어체크!
사소한 실패(Little failure)!

퍼억!
두세 개의 바람화살이 방어를 뚫고 훅스 씨에게 정면으로 꽂혔다. 훅스 씨는 입고 있던 신사복이 찢겨 나가고, 안에 입고 있던 미늘 갑옷이 움푹 들어갔다. 버틸 만한지 허공에서 제비를 돌았다.
나머지 화살들이 나와 그랑시엘에게 집중되었다. 그것만 해도 일개 분대는 쓸어버릴 위력이다. 그랑시엘이 손을 내뻗었다. 역시 영창은 필요 없다.

템포리스 디사이플(Temporis Disciple)
버티컬 벡터(Vertical Vector) 시전.
방어 체크!
성공!

위이이잉.
내 앞에 버티는 그랑시엘 앞에 도달한 바람의 화살들이 그대로 직각으로 하늘로 치솟는다. 발사체에 한해서는 물리력의 방향을 바꿔 버릴 수 있는 능력인 것이다. 그랑시엘의 몸이 살짝 비틀거리자, 나는 모든 공격이 무마된 것을 느끼고 전방으로 달려 나갔다.
[오오오!]
외마디 기합과 함께 엘파인이 투명한 구름거인으로 변신했다. 저 자식 변신 능력도 있군! 그러더니 크기가 첨탑만 한 주먹을 그대로 내게 내리꽂았다. 제대로 맞으면 강철 인간도 부서져 나갈 공격이다!
텅!
[아니?!]
엘파인의 주먹은 내 머리 위에서 미끄러져 수직으로 튀어 올랐다. 어느새 그랑시엘의 손가락이 나를 가리키고 있었다. 버티컬 벡터를 내게 걸어 준 것이다. 거리는 떨어져 있지만 왠지 그랑시엘이 웃고 있는 것 같았다.
‘가까이 왔어!’
다섯 걸음이면 된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다시 엘파인이 안개로 변해서 뒤로 사라지려 했다. 심장이 덜컹하고 무너져 내린다.
이렇게 실패하는 건가.
“그렇겐…….”
나는 비명을 지르듯 외쳤다. 목에서 피가 튀어나온다.
“안 되지!”
파아아앗.
나는 전신을 끊어질 듯이 뒤로 젖히고는 눈을 감고 이누타브 블레이드를 던졌다. 너무 먼 건가?! 그렇게 생각할 때 이누타브 블레이드가 그 순간 검광을 토해 내며 허공에서 더욱 빨라졌다. 막 기체로 변하려던 엘파인의 이마를 뚫고 블레이드가 허공으로 치솟았다.
촤라라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