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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1(20화)
제4장 신의 존재 증명(3)


스아아아아앗!!
투두두둑.
주문이 펼쳐지자마자 가까이서 덤벼들던 병사 일곱 명이 그대로 얼음이 되어서 굴러 떨어졌다. 날아오던 화살은 얼음벽에 박혀서, 살까지 얼어 버리고 말았다. 이어서 초능력자들의 화염, 빙결, 번개 따위가 날아왔지만 디스펠 블레이드로 쳐 버렸다.
“흠!”
그사이에 훅스 씨가 뒤로 돌아나가서 투 핸디드 소드를 아래위로 휘저으며 엄청난 속도로 달려 나갔다. 아까 보았던 것처럼 무시무시한 속도였다. 육안으로 식별이 힘들 정도라고 해야 한다.
퍼버버벅!
[논리셜 스트라이크Nonlethal Strike 체크. 모두 완벽한 성공Perfect Good.]
털썩!
나는 그만 입을 벌리고 말았다.
우와아앗…… 저게 인간인가?! 훅스 씨는 일직선으로 달려드는 병사들을 관통하면서 모조리 죽지 않게 기절만 하도록 칼등으로 쳐 버린 것이다! 열두 명의 병사가 기절해서 추풍낙엽처럼 떨어져 나갔다. 전설의 영웅기사전 같은 모습이다.
그 모습에 모든 병사들이 전의를 잃어버렸다.
“히이이익!”
“이…… 일단 후퇴해! 시민들의 혼란부터 진정시킨다!”
“핑계 좋구만!”
내가 야유했지만 남은 병사들은 신경 쓰지 않고 성 밖으로 달아나 버렸다. 조금 여유가 생기자 나는 숨을 골랐다. 훅스 씨는 쓰러뜨린 병사들이 병신이 되지 않았는지 눈으로 확신하고 있었다. 퀘른 성의 정규병을 상대로 저 정도 여유를 보여 줄 수 있다니.
훅스 씨가 내게 말했다.
“어깨에 업고 있는 그 아가씨, 잘 챙기게. 조금 있으면 한 탕 크게 싸울 테니.”
“네? 아가씨?”
나는 등 뒤의 그랑시엘을 힐끔 바라보았다. 지하 내궁이 무너져 내리면 죽어 버리기 때문에 기절한 것을 들고 나왔다. 예쁘장하게 생겼다고는 생각했는데 설마 이게 여자라니? 내가 불신의 눈길로 바라보자 훅스 씨는 왜 쳐다보냐는 듯한 눈을 했다.
“안목이 부족하군. 어쨌든 엘프와 융합해 버렸으니까 지금 상태는 하프엘프(Half Elf)와 다를 바가 없어. 더 변이하기 전에 치료해야 하니까 잘 챙겨.”
“하지만 가슴이 없…….”
“그런 체질이겠지.”
훅스 씨는 그 말을 끝으로 성벽 위로 휙 하고 달려가 버렸다. 역시 도움닫기도 없이 3미터 정도를 뛰어 버리는구만. 나는 등 뒤에 아무런 느낌도 없었던 걸 떠올렸다. 겉으로도 아무런 표시가 안 났다. 이게 말로만 듣던 유아 체형이라는 건가? 나는 훅스 씨를 따라서 올라갔다.
쿠르릉쿠르릉.
다섯 개의 비행선에서 떠오른 새까만 구름 떼가 점차 이동하고 있었다. 이누타브가 부른 뇌운과 합쳐져서 더욱 불길하게 느껴졌다. 구름은 퀘른 성을 둘러싸고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모형을 그리기 시작했다. 성벽에서 그 모습을 올려다보자니 마치 마법진(Magic Circle) 같다.
“저건 뭐죠?!”
후오오오오.
바람 때문에 옷가지가 흩날리고 뺨이 쏠릴 정도다. 풍압이 거세서 웬만한 남자가 날려갈 정도다. 나는 미늘 갑옷과 검의 무게로 겨우 버티면서 올라갔다. 훅스 씨가 투 핸디드 소드, 나이트메어를 붙잡으며 말했다.
꽈악.
“페드라크는 육신을 잃어버린 엘프 종족을 부활시키기 위해 많은 준비를 했네. 저 다섯 개의 비행선은 엘프의 고대 기술로 만들어진 제단이야. 저 구름 떼 하나하나가 엘프들의 영혼이고.”
“그래서 이제 어떻게 된다는 겁니까?”
“저 구름 떼가 퀘른 성을 둘러싸고 오망성을 그리면, 소환된 대정령이 힘을 빌려주게 되지. 엘프의 영혼이 퀘른 성의 모든 시민들에게 빙의하게 된다. 영혼은 육체를 변화시키지. 10만 명의 엘프 사이오니스트들이 현세에 부활한다!!”
“……!!”
나는 등골이 오싹해졌다. 엘프라는 종족은 육체적으로 약하지만 마법과 초능력의 재능이 매우 뛰어난 것 같다. 그들이 빙의해서 10만 명이나 되는 초능력자들이 탄생하면, 그 어떤 대륙의 군대도 퀘른 성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어떤 대마법사도 이런 군세를 감당할 수는 없다.
훅스 씨가 예리한 눈으로 말했다.
“그걸 막으려면 다섯 개의 비행선을 부수고, 잠시 동안 나타나는 대정령(Grand Spirit)을 쓰러뜨려야 해! 대정령이 나타나는 곳은 바로 이곳, 퀘른 외성의 정상일세.”
“다섯 개의 비행선은 어쩌고요?!”
“그건 따로 할 사람이 있네.”
훅스 씨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담배를 피웠다. 그도 적지 않게 긴장이 되는 것 같았다. 나는 대정령이 뭔지 모른다. 지금 엘프들이 부활하려 한다는 사실만 알고 있다. 나는 옆에 그랑시엘을 눕혀 놓고 흔들어 깨웠다.
흔들흔들.
“야, 일어나 봐. 너 이러다가 잘못하면 죽어.”
흔들흔들.
“아, 일어나라니까. 싸우다가 못 돌봐 줘.”
“헤히히히…….”
이것이?
기분 좋은 꿈을 꾸는지 헤실거리면서 침을 흘리는 그랑시엘을 보고 어이가 없었다. 그러고 보니 아까보다 이목구비가 뚜렷해지고 좀 더 여성스러워진 것 같다. 귀가 조금 더 길어졌다. 자는 도중에 엘프로 변화하고 있나 보다.
그랑시엘이 잠꼬대를 했다.
“엄마…… 배고파…… 나 대회 1등 했어…….”
“아, 그래. 참 잘했어요. 제기랄.”
나는 투덜거리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는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다.
내 눈앞에 글자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분기 시작. ‘대정령(Grand Spirit) 하늘의 엘파인(Elpine the Sky) 토벌’
현재 레벨로 난이도 측정 불가…… 조력자 합류로 난이도 정상.
TIP : 하늘의 정령은 물리 공격이 통하지 않아요☆

…….
어쩌라고!!
물리 공격이 안 통한다면 큰일이다.
이누타브 블레이드에 새겨진 주문들 중에서 남아 있는 건 이제 티마이오스밖에 없다. 소울 크러쉬도 쓸 수 있긴 하지만 그건 물리 공격이다. 차라리 강력한 공격 주문이면 좋겠지만, 티마이오스는 절대 회피 주문일 뿐이다.
즉, 나는 하늘의 대정령이 나타나도 공격할 수단이 없다.
그나마 3클래스 마법을 사용할 수 있긴 하지만 그런 마법으로 대정령이 피해를 입을지도 의문이다. 지금 나오는 건 엘프들의 영혼을, 워터 엘프를 매개체로 육신에 정착시키는 주문을 행사할 수 있을 정도의 대정령이다. 적어도 5클래스 마법은 준비해야 한다.
내가 망설이자 훅스 씨가 넌지시 말을 걸었다.
“내가 왜 갑자기 나타났는지 궁금하지?”
“……네.”
“아직 대정령이 나타나려면 5분은 있어야 되니까 옛날 얘기나 해 주지.”
훅스 씨가 손가락 사이로 담배를 뻑뻑 피우더니 버렸다. 그러더니 마지막 한 대를 꺼내더니 아까운 표정으로 “돗대인데……”라고 중얼거렸다.
왠지 모를 동방의 용어인 것 같다.
“옛날에 어떤 바보가 있었어. 그 바보는 세상에서 첫 번째를 다툴 정도로 강한 주제에, 터무니없이 높은 꿈을 꾸었지. 모든 사람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 괴물이나 몬스터 따위가 더 이상 인간을 위협하지 않는 세상. 그리고, 그는 미친 꿈을 실현시켜 버렸다…….”
설마. 이건 성왕(聖王) 이야기인가?
몬스터와 드래곤을 모조리 몰아내어서 대륙에 평화를 가져다 준 최고의 영웅. 악폐습을 철폐하고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해 준 위대한 왕.
내가 머릿속을 굴리거나 말거나 훅스 씨의 말은 이어졌다.
“그 후환은 뒷세대가 책임져야 했지. 누가 되었든 책임져야 했어. 그리고 여덟 명의 바보가 뒷수습에 나섰다. 바보에도 격차가 있었는지 이젠 다섯 명밖에 남지 않았지만.”
“아…….”
나는 설마 하는 눈으로 훅스 씨를 바라보았다.
훅스 씨는 담배를 뻐끔하고 깊게 들이마시더니 하늘을 바라보았다. 지금 이건 골든프릭스 용병단의 이야기다. 설마, 훅스 씨가 골든프릭스의 단원이었다는 것……!!
훅스 씨가 담배를 손가락으로 비벼 끄고는 그걸로 자신을 가리켰다.
“여기 바보 1.”
“…….”
“바보 2나 바보 3 같은 놈들은 세상 여기저기에 흩어져서 잘살고 있는 것 같지만, 나는 요령이 없지 뭐냐. 그래서 옛 친구 페드라크의 도움으로 10년 전에 퀘른에 정착했다. 무기 상점이나 하면서 여생을 보낼 셈이었는데…….”
후우.
훅스 씨가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도 바보가 한 명 있었던 거야…… 어떻게든 멸망한 종족을 회생시켜 보겠다고, 죄 없는 인간들을 몰살시키려는…… 바보가.”
물론 그 바보는 페드라크다. 그리고 훅스 씨를 제외하고는 그 엘프를 바보라고 부를 수 없을 것이다.
“고민을 많이 했지. 갈등도 많이 했어. 그러지 말라고 페드라크를 설득하기도 했다.”
“……듣지 않았군요.”
“…….”
훅스 씨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그 이후의 일은 익히 짐작할 수 있다. 페드라크의 내성에 침투할 통로를 열어 두고, 여차하면 페드라크를 베어 버리려 준비했을 것이다. 그러던 중에 이누타브와 페드라크의 전투가 그에게 감지되자 단박에 달려와서 페드라크의 목숨을 끊어 준 것이다.
최후의 엘프 로드에 대한 경의로서.
“온다.”
나는 이누타브 블레이드를 꽉 잡았다.
이렇게 된 이상 마법에는 기대지 말자. 이누타브 블레이드는 신검이니까 대정령에게 타격을 줄 수는 있을 것이다. 티마이오스를 이용해서 치명상을 피하고 어떻게든 일격을 먹이는 데 집중해야 한다.
쿠오오오―
천공의 매직서클이 엄청난 위력으로 빛났다.
아마 페드라크가 오랜 세월 동안 마력을 쏟아 부었는지, 9클래스 마스터라도 범접하지 못할 정도의 마력이 느껴졌다. 잠시 후 정상에 마법진 수십 개가 그려지더니 큐브 형태로 합쳐지기 시작했다.
지이이잉.
구름 덩어리가 뭉쳐 있는 듯하더니, 이윽고 인간의 형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 존재를 눈으로 바라보았다.
엄청난 위압감이 느껴진다.

하늘의 대정령 엘파인 Elpine The Sky
Level 45 대정령(하늘)
HP : 3402
MP : 2983

“으응…… 뭐야……?”
그때 뒤에 잠들어 있던 그랑시엘이 깨어나고 있었다. 그러더니 엘파인과 지금의 상황을 보고 기겁하는 것 같았다.
“엑, 아니, 뭐?!”
[엘프 로드 페드라크와의 계약을 시행하겠다. 나를 방해하려 하는가, 훅스?]
엘파인은 훅스를 알고 있는 것 같았다. 하긴 훅스는 페드라크와 친했으니 페드라크가 엘파인을 소환하는 모습도 보았을 것이다. 훅스 씨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담배꽁초를 손가락으로 튀겼다.
엘파인이 나를 힐끗 쳐다보았다.
[이누타브의 사자도 있군…… 하지만 나는 계약에 따를 뿐. 너희의 파멸이 뒤따를 뿐이리라!!]
“잠깐만!!”
휘익.
엘파인이 크게 팽창해서 우리를 공격하려는 순간 큰 외침이 터져 나왔다. 모두의 시선이 뒤로 쏠렸다. 그곳에는 어느새 일어선 그랑시엘이 입을 오글거리고 있었다. 엘파인이 무서운 것 같았다.
그랑시엘이 더듬더듬 외쳤다.
“나, 나, 나는 중립!!”
“…….”
“…….”
[…….]
한참의 침묵이 흘렀다.
휘오오오오―
정상에 찬바람이 계속 흩날리자, 엘파인이 서서히 입을 열었다.
[기각.]
그리고 전투가 시작되었다.
무지개 빛 섬광과 함께 엘파인의 전신이 마치 안개처럼 흩어지더니 무서운 속도로 밀려왔다. 나는 거의 반사적으로 검을 휘둘렀고 뒤쪽의 그랑시엘도 키네틱 실드를 쳤다. 티마이오스를 쓸 생각도 못할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구웅.
“흐이이이―”
헉……!! 비명 소리!
나는 뒤쪽에서 막 올라오던 병사 무리가 그 바람에 쓸리자마자 살이 사라지고 뼈밖에 남지 않은 것을 보자 경악했다. 그들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힘없이 바람에 쓸려서 떨어지고 말았다. 말 그대로 저주의 바람이다.
엘파인은 허공에서 다시 인간의 형태로 뭉치더니, 이번에는 주문을 사용했다. 정령은 주문을 쓸 때 수인이 필요 없다.
[에어로 스웜(Aero Swarm).]
스아아아―
마치 안개 방울 수천 개가 허공에 맺히는 것 같다. 나는 아직 레벨이 낮아서 정령 주문에 대한 지식이 없다. 그래서 저 주문이 어떤 위력인지는 모르지만 위험한 건 틀림없다. 디스펠 블레이드로 일일이 쳐 내기에는 너무 많다!
그때 훅스 씨가 허공으로 뛰어올랐다.
위잉위잉.
“크림존 레밍(Crimson Remming)!!”
훅스의 투 핸디드 소드, 나이트메어에 수십 개의 광채가 맺히더니 무서운 속도로 허공으로 치솟았다. 훅스의 상반신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참격이 휘둘러지더니 공기를 면으로 절단한다. 그 기세에 대기의 위층이 말려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