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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1(17화)
제3장 퀘른 대결전(7)
쿠르르릉.
이누타브 블레이드가 정확히 중천을 가리킨 순간 하늘이 빠르게 변했다. 지금까지 쨍쨍하고 맑은 날이었는데 동쪽에서 먹구름이 육안에 보일 정도의 속도로 몰려왔다. 나를 포함해서 초능력자들은 그 모습을 멍하니 보고 있었다.
이윽고 하늘에 어둠밖에 남아 있지 않을 정도로 구름이 들어차자, 별안간 하늘에서 엄청난 기세로 무언가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하얀 내궁의 벽이 그 물방울에 점차 물들어서 젖기 시작했다.
똑.
나는 뺨에 점점이 떨어지는 물방울을 만져 보았다. 차갑고도 투명한 것이 조금씩 흐른다.
“비?”
비가 내린다.
비는 점차 내리기 시작하더니 말 그대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우르릉하면서 천둥이 치고 하늘에서 번개가 수십 가닥이나 퍼부었다. 번개가 지상을 때릴 때마다 이 거대한 퀘른 성의 건물이 부서져 나갔다. 첨탑이 부서지고 벽돌이 휘날린다.
쏴아아아아아!!
번쩍.
파지지직!!
하늘에서 번개 한 가닥이 떨어지더니 이누타브 블레이드에 떨어졌다. 섬광 때문에 잠깐 눈을 감았다가 떠 보니, 이누타브 블레이드는 검날 전체가 빛으로 화해서 울고 있었다. 나는 그 진동에서 상상할 수 없는 살기(殺氣)를 느끼고 흠칫했다.
나도 모르게 마인드 리딩으로 검의 마음이 읽혀 들어온다.
‘죽여 버리겠다. 죽여 버리겠다. 모조리 다 죽여 버리겠다.’
……어?
‘탈마히라…… 알기로스……. 그리고 아사페트라의 생존자들…… 모조리 멸해 버리리라! 영겁의 시간 속에서 말려 죽이리라!!’
“……으아…….”
나는 나도 모르게 전신이 후들거리는 게 느껴졌다. 정확히 말하자면 검의 마음을 읽은 것이 아니다. 검을 통해서 전해지는, 하늘 저편 의지의 잔향을 읽었다. 원래라면 너무나도 미약해서 읽을 수조차 없다. 그러나 그 의지가 얼마나 강한지 내 뇌를 뒤흔들어 버릴 정도다.
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정신력…….
‘이게 이누타브의 의지……?’
신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한 살의.
“히, 히익!!”
“말도 안 돼! 이, 이런 건 마법으로도 불가능……!!”
사제들은 모두 공황 상태에 빠졌다.
그 순간, 내 눈앞에 붉은 글자가 엄청나게 크게 떠올랐다.
이런 일은 없어서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대신(對神) 권능 저항 체크.
레벨 부족.
치명적 실패…….
지금부터 1분간 이누타브 블레이드의 소유권이 J. S.에서 동방 신 이누타브로 이동됩니다.
눈앞에 글자가 뜬 순간 나는 내 정신이 아득한 어딘가로 밀려나는 걸 느꼈다. 정신은 말짱한데 몸의 통제권을 상실한 것 같다. 안구 시신경의 뒤편으로 물러나서 ‘나’라는 인간이 무엇을 하는지 3인칭으로 바라보는 것 같다.
위이이잉.
이누타브 블레이드가 엄청난 푸른 빛을 내뿜었다. 그러더니 검신 자체가 녹아들어 가는 것처럼 변했다. 마치 아무런 가공 없는 천연의 코발트색을 보는 것 같다. 이런 상태는 본 적이 없다.
곧 ‘나’는 투명한 눈으로 공격을 개시한다. 이들에게 살의는 느끼지 않는다. 너무 미천한 힘을 지닌 자들이기에. 개미에게 살기를 품는 인간은 없듯이.
퍼억!
“……에……?”
초록 머리 포니테일 사제의 얼굴이 멍하게 변했다. 내 몸은 이미 그녀의 뒤쪽에서 검을 떨쳐 내고 있다. 그 짧은 순간에 그녀가 인식할 수도 없을 정도로 빠르게 공격했다. 뭘 어떻게 한 건지는 모르지만 더 놀라운 것은 다음 순간이었다.
그녀의 전신에 새파란 선이 난무하며 그어졌다. 어린아이가 장난스럽게 그린 거 같다.
퍼퍼퍼퍼펑!!
그녀는 이윽고 흔적도 없이 파란 불빛이 되어서 타올라 터졌다. 비명을 지를 새도 없었다. 전신이 수억 도의 고열에 점화(漸火)되어서 그런 것이다. 옆에서 보고 있던 다른 사이오니스트가 비명을 질렀다.
“프…… 플라즈마(Plasma)!!”
“흥.”
내 몸은 귀찮은 듯이 한숨을 짓고는 팔을 한 번 휘익, 하고 내저었다. 그러자 청색의 원이 사방에 떠오르더니 지잉 하고 내리꽂힌다.
퍼버벙.
그 속도는 말 그대로 광속(光速)이라서 초능력자들은 전신이 터져 나갈 때까지 인식조차 하지 못했다. 그들의 시체조차 남지 않고 증발해서, 이윽고 비가 쏟아지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쏴아아.
이…… 이렇게 쉽게 해치울 수 있는 건가?!
초능력자란 직업의 강력함을 생각하면, 저 녀석들 하나하나는 검사 Lv. 25급과 맞먹을 텐데……!! 설령 대륙최강이라 불렸던 용병왕이라도 이렇게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이누타브 블레이드가 이 정도로 강력한 무기였던 거야?!
지금까지가 약 6초.
신(神)의 감각이 그대로 느껴진다.
신은 주문 따위, 수인 따위 필요 없다. 심지어 집중할 필요도 없다. 신이 생각하고 숨 쉬는 것 모두가 그대로 마법의 힘이기 때문이다. 그대로 9클래스의 힘인 엔젤 폴 필드(Angelfall field)가 펼쳐지고, 내 청력을 가볍게 뛰어넘는 수준의 인지 감각이 머릿속에 들어온다.
지금 이 순간 퀘른은 물론 근처 100km에 이르는 모든 범위의 모든 것이 감각에 들어온다. 내 듣기 능력 또한 대단한 능력이지만 비교도 되지 않는다. 내가 인식할 수 없었던 방음 결계조차도 가볍게 뚫어 버린다.
그리고 1초 만에 내궁 최심부에 있는 강대한 존재가 느껴졌다. 그 존재도 이누타브의 존재를 느꼈는지 슬며시 고개를 든다. 마(魔)가 흘러나온다. 그 또한 인간 세상의 마왕이라 불릴 만한 힘을 지닌 존재.
내 입에서 알 수 없는 소리가 흘러나온다. 끝 모를 살의에 잠식된 목소리가.
“오오, 그래, 탈마히라의 충견이 거기 있구나…… 기다려라. 지금 가서 찢어발겨 줄 테니.”
스윽.
한 걸음을 옮기는 순간 온갖 종류의 초능력 방어막과 매직 필드(Magic field)의 간섭이 뚫린다. 한 걸음으로 모든 과정을 축약해 버린 동방 신, 이누타브는 이윽고 눈을 들어서 퀘른 성주의 옥좌를 본다.
주변은 대궁전. 일개 성주에게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호화찬란하고 넓은 밀궁(密宮).
하지만 피로 물든 대궁전이다. 대궁전의 벽에는 처참하게 죽어 있는 온갖 종류의 동물과 인간들이 널려 있다. 그들 하나하나는 공포와 절망으로 일그러진 표정이다. 심지어 몬스터와 합성된 인간이 박제되어 있는 것도 보인다.
꾸르르륵.
대궁전의 옥좌 주변에는 물이 살아 있는 것처럼 꿈틀거리며 사람의 모양을 하고 있다. 나는 저것이 탈마히라의 피조물이란 사실을 알고 있다. 왠지 모르게 물리 공격이 전혀 통하지 않는 마물이란 것도 알겠다.
퀘른의 성주는 펑퍼짐한 블랙 로브를 입은 괴인이었다. 호리호리한 체격이라는 것을 신의 감각으로 알고 있었다. 그는 동방 신 이누타브가 도착한 걸 보고 후드를 벗었다.
“오셨군.”
스윽.
“신 앞에서 얼굴을 감추는 결례를 할 수 없지.”
나타난 얼굴은 센마를 뛰어넘는 엄청난 미모의 사내였다. 금발의 머리칼은 순수한 총천연색으로 빛나고 있고 이목구비는 최상의 조화를 이루고 있다. 전신의 균형은 전사로서 이를 수 있는 극한에 도달해 있다. 놀라운 것은 그의 귀가 상당히 길고 뾰족해서 마치 이종족(異種族)을 보는 것 같았다.
그가 고개를 꾸벅 숙이며 말했다.
상당히 빠른 말투였다.
“최후의 엘프 로드(Elf Lord)이자 트위스티드의 서열 2위. 지금은 퀘른의 성주 직을 맡고 있는 미천한 엘프 페드라크가 동방 신 이누타브께 인사드리옵니다.”
그러자 동방 신 이누타브가 툭하고 내뱉었다. 그것은 명백히 혐오의 감정이었다.
“더러운 엘프 종자가 탈마히라의 발을 핥아서 살아남았군. 청소의 시간이다.”
콰르르릉.
신의 권능(神權) 섬열(殲裂).
그 순간 이누타브의 손이 하늘을 향하더니, 이윽고 지하 90미터나 되는 심층 내궁에 수백 발의 뇌전이 그대로 내리꽂혔다. 마주치는 모든 것을 파괴하는 절대적인 우뢰의 힘이었다. 신과 감각을 공유하고 있는 지금, 그 번개줄기 하나하나가 7클래스의 뇌전과 맞먹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파밧.
페드라크의 전신에는 핏빛 구체가 떠올라서 그 뇌전을 막아 내었다. 신의 지식은 그 주문도 알아본다. 9클래스 상위의 방어 주문인 그랜드 포스필드(Grand Forcefield)다. 이누타브의 눈썹이 한 번 꿈틀거렸다. 의외인 듯하다.
“흥.”
페드라크는 놀랍게도 9클래스의 마스터 위저드인 것이다!
마스터 위저드는 대륙에 총 다섯 명 존재한다. 그중에서 하나는 가짜 이름이며, 진짜 정체는 페드라크이다. 9클래스 마스터가 홀연히 나타날 리가 없기 때문이다.
“섬열로 2천의 군세를 불태울 수는 있어도 나를 죽일 순 없다, 이누타브!”
페드라크는 일격을 막아 낸 게 자랑스러운지 외쳤다. 이누타브는 그 모습에 기분 나빠한다. 페드라크는 전신에서 구슬땀을 흘리며 초신속(celerity)으로 주문을 완결한다.
지잉. 지잉. 지잉.
스펠 시퀀스로 8클래스의 주문 세 개를 연계시킨 페드라크가 나직이 외친다. 스펠 시퀀스로 연계된 주문은 일개 궁극 주문에 맞먹는 위력을 보인다. 이른바 상승효과다.
“대주문 삼중연살(三重連殺) 위시 앤 브레이크(Wish and Break)!!”
세 개의 룬이 결합하고 흩어지더니 하나의 새하얀 글자 하나를 만들어 내었다. 그 형상은 무서운 속도로 확장하며 내궁 전체를 뒤덮었다.
퍼버버벙.
“호오.”
동방 신 이누타브가 흥미로운 표정을 짓는다. 세 개의 대주문이 합쳐져서 전신을 압박하자 이누타브 블레이드에서 뿜어 나오는 가공할 플라즈마 검광을 막아 내었기 때문이다. 도리어 뚫어 버리려 하는 것이다. 그러자 이누타브가 잔인한 미소를 지었다.
“어리석은 놈! 신에게 마법은 통하지 않는다.”
페드라크는 못 들은 척 가볍게 오른손을 흔들며 9클래스 초반 주문을 완결시켰다. 제대로 맞으면 도시 하나가 증발해 버릴 수 있다는 궁극 주문이었다.
“노바(Nova)!!”
콰두두두.
빛의 입자가 마치 별비처럼 쏟아져 내리며 대궁전을 빛의 구름으로 물들였다. 그 구름의 온도가 수억 도에 이르며, 드래곤조차 불태워 죽이는 극한의 백염(白炎)이란 사실을 제외하면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그러나 이누타브는 급격하게 불어나는 빛의 구름을 향해 한 손을 뻗더니 주먹을 꽉 잡아 쥐었다. 동시에 허공에서 모든 것이 소멸되고 말았다.
살짝 냉소를 지은 이누타브는 슥 하고 이누타브 블레이드를 들었다.
그러고는 태연하게 허공을 베어 버린다.
쩌엉!!!
그 순간, 텔레포트도 초능력도 아닌 수법으로 이누타브의 등 뒤로 돌아와서 무언가 주문을 먹이려고 하던 페드라크의 얼굴이 불신으로 굳어졌다. 그의 눈에는 믿을 수 없다는 기색이 가득했다.
“크아아아아악!!”
어느새 그의 두 팔은 플라즈마 때문에 불타 버리고, 두 다리는 지금도 불타고 있다. 단지 강대한 마력의 보호막과 엘프의 고유 재생 능력 때문에 단숨에 타오르지 않는 것이다. 페드라크가 공포와 경악에 떨었다.
“서…… 설마…… 타임 스탠드(Time Stand)와 타임 스톱(Time Stop)을 베어 버리다니…… 이…… 이게 신이란 말인가…….”
털썩.
이누타브는 그 자리에 꿇어앉아 죽어 가는 페드라크를 내려다보았다. 마무리를 하려는지 서서히 이누타브 블레이드를 들었다. 그러고는 냉소했다.
한 줌의 자비도 없는 경멸 그 자체다.
“엘프는 초식 동물일 뿐이지. 보호할 가치도 없는 종족이었다.”
꿈틀하고 페드라크의 얼굴이 흔들렸다. 페드라크의 전신에서 분노의 감정이 피어올랐다. 그는 죽음 앞에서도 이누타브의 의지를 대하자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크윽……!! 우리의 운명을 농락하지 마라, 인간만을 위한 신이여어어어어!!!”
쿠르르륵!!
육안으로 보일 정도의 엄청난 마력!!
소용돌이가 몰아닥쳤다. 페드라크가 마지막 발악으로 자신의 몸에 있는 마력을 폭발시켰다. 그러자 그의 전신이 마치 괴물처럼 변하며 엄청난 기세로 성장했다. 꿀럭거리며 한도 끝도 없이 거대해지는 체세포 같았다. 이윽고 그것은 내궁 최심부를 무너뜨리며 수백 미터도 넘는 크기로 커졌다.
쉬리릭. 쉬릭.
촉수가 엄청난 속도로 휘둘러지며 이누타브를 노렸지만 이누타브가 플라즈마 블레이드를 수직으로 세우자 허공에서 타 버리고 말았다.
천상천하에 저 검을 막아 낼 건 아무것도 없다.
그 모습은 마치 드래곤을 연상시키는 듯했으나, 전신에 가지와 뿌리가 내려 있었다. 또한 아까 보았던 지렁이 괴물을 연상시키는 얼굴이었다. 미묘하게 페드라크의 모습이 남아 있어서 도리어 흉측스러웠다.
그러자 이누타브가 광소를 터뜨렸다.
“크흐핫핫핫핫!! 초식 동물이 지렁이로 변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