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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1(15화)
제3장 퀘른 대결전(5)


키네틱 실드라는 건 자신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한테도 걸어 줄 수 있는 것 같았다. 그랑시엘이 내게 손을 뻗어서 손가락이 닿자, 내 몸 주변에 위잉 하고 희뿌연 우유 같은 막이 생겨났다. 마치 보이지 않는 붓이 채색을 하는 것 같은 변화다.
“호오. 응?”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자 머릿속에 뭔가가 삐끗하고 걸리는 느낌이 들었다. 머리를 잡자 그랑시엘이 쿡쿡 웃으며 말했다. 꼭 고양이처럼 웃는 녀석이네.
“초능력자가 아니신가 보네요. 마법하고는 다르게 키네틱 실드는 집중을 유지하지 않으면 깨져 버려요. 영창과 수인만 끝내면 정해진 대로 발동되는 마법에 비하면 이게 안 좋죠…….”
“이 감각은?”
“키네틱 실드의 채널(Channel)을 좌뇌에 걸어 뒀어요. 물이 반쯤 찬 통을 왼쪽 손에 들고 떨어뜨리지 않는다는 느낌을 유지시키세요. 그러면 키네틱 실드는 안 풀려요.”
찰박.
우리는 큰 지하수로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하수구라서 냄새가 엄청나게 날 줄 알았지만, 키네틱 실드는 냄새까지도 차단해 주는 모양이었다. 아마도 뇌의 인식을 바탕으로 현실을 변화시키는 능력이니까 그런 거 같다.
쏴아아아.
갈수록 물의 흐름이 거세어져서 종래에는 허벅지까지 올 정도로 물의 흐름이 급격하게 변했다. 하지만 키네틱 실드 덕분에 멀쩡했다. 단지 시각적인 압박이 상당히 괴로워서 하마터면 집중이 풀릴 뻔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거뭇거뭇한 것들이 떠내려오는 걸 보면 비위가 상한다.
ㄱ 자 구간을 넘어서자 물의 흐름은 한결 줄어들었다.
어느 정도 걸어왔다 싶자 그랑시엘이 말했다.
“헤에, 집중력이 좋으시네요. 초능력을 배우시면 좋겠는데…….”
배우면 좋겠지. 나는 궁금한 점을 물어보았다.
“마법과 초능력을 동시에 배울 수 있습니까?”
“불가능한 건 아닌데, 한쪽만 집중해도 수준이 높아지기 힘들죠. 초능력은 선천적인 재능 탓이 높아서 마법을 같이 배우는 녀석들도 꽤 많은 편이에요.”
이야기를 하다 보니 200m 정도 걸어왔다. 그러자 점차 수로가 좁아져서 고개를 숙이고 걸어가야 할 정도가 되었다. 나는 그랑시엘을 안심시키기 위해서 말했다.
“추적 마법이 걸려 있어서, 이대로 가기만 하면 찾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조금만 더 찾아보죠!”
“…….”
“저기요?”
그랑시엘의 안색이 별로 안 좋아져 있었다.
이 사람 왜 이래? 의아해서 마음을 읽어 보았다.
‘뭐지? 왜…… 저 검을 보니까 기분이 안 좋아지는 거지?’
나는 그랑시엘의 시선을 따라가 보았다. 내 허리춤에 있는 이누타브 블레이드의 검갑을 보고 있었다. 잘 안 보이게 헝겊으로 매고 있었는데 걷다 보니 풀려 버린 모양이다. 나는 아차 싶어서 헝겊을 다시 묶었다. 들키면 안 되는 건데!
그랑시엘이 내게 물었다.
“그 검은 뭔가요?”
“제가 지인한테서 받은 검입니다.”
그랑시엘이 인상을 찡그리며 얼굴을 가렸다.
“……영, 기분이 나쁜 검인데요.”
응?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마법사는 물론 검사들도 이누타브 블레이드를 보고 딱히 다른 감상이 없었다. 그저 대단한 능력을 지닌 보검이라는 식이었다. 그런데 초능력자인 그랑시엘은 이누타브 블레이드를 보면 볼수록 기분이 나빠졌다. 왜 이런 차이가 나는 건지 궁금해졌다.
아마 해답은 퀘른의 성주가 갖고 있을 것이다.
그가 퀘른 성에 초능력자들을 만들어 냈으니까.
나는 점차 물의 흐름이 사라져서 신발 아래까지 올 때가 되어서 키네틱 실드를 풀었다. 이제부터는 기억해 둔 수로길 말고 직접 추적해서 가면 된다. 이 다음부터 물의 흐름이 강해지는 곳이 없다는 건 이미 확인했기 때문이다.
지잉―
‘찾았다.’
꽤 걸어온 덕에, 아까 보았던 성 주변의 방음 결계로 통하는 길이 보였다. 걸어서 20분 정도면 도착할 길이다. 수로도 이제 키가 안 닿을 정도로 높아졌다. 나는 그랑시엘에게 같이 갈 것을 재촉하려다가 수상쩍은 느낌이 들어서 멈췄다.
부들부들.
그랑시엘이 손을 떨고 있었다. 그의 눈에 핏발이 가득 서 있었다. 내가 다가가려 하자 그랑시엘이 외쳤다.
“오지 마! 뭔가 이상해!”
“……?!”
나는 그때, 좌측 50미터 앞에서 무언가 꿈틀거리는 거대한 것이 다가오고 있는 것을 들었다. 거머리나 촌충처럼 생긴 기괴한 생물이었다. 촉수가 육중하게 꿈틀거리는 게 무서울 정도였다.
‘피할 만한 데가!’
이 앞은 잠시 물을 모아 두는 지하 정수처리장이다. 나는 그랑시엘에게 외쳤다. 이대로라면 괴물과 만나 버리고 만다. 그 전에 피해야 한다.
“일단 넓은 곳으로 가요! 여기 있으면 위험해…….”
“흐으아아아아아악!!!”
파치치칫.
그랑시엘이 찢어질 듯한 비명을 질렀다. 그러더니 그의 전신에서 백색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이윽고 손발이 투명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그랑시엘은 자신의 변화가 믿기지 않는지 공포스러운 눈으로 스스로를 내려다보았다.
“아아…… 아아?!”
이윽고 그랑시엘의 전신에 무지갯빛이 감돌더니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워낙 순식간의 일이라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다.
스팟!!
“……뭐, 뭐야!”
당황할 때 눈앞에 글자가 떴다. 이럴 때는 어김없이 나타나 주는 것 같다.

‘탈마히라의 피조물’이 이누타브 블레이드의 ‘권능 저항’에 실패했습니다.
사방신 예속 피조물 생명 체크 성공.
귀소본능에 따라 생성지로 텔레포트(초능력) 시전.

‘탈마히라?’
나는 왠지 그 이름이 불길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어디선가, 많이 들어 본 것 같다…… 왠지 그립기도 하고.
쿠릉쿠릉.
“고민하고 있을 틈이 없군!!”
나는 쏜살같이 수로를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이젠 키네틱 실드도 없어서 뛸 때마다 오수가 철벅거리면서 튀어 올랐다. 그러면서도 계속해서 뭉그적거리며 거대 벌레가 쫓아오는 게 느껴진다. 속도도 나에게 뒤지지 않는다.
철벅.
철벅.
지하 정수처리장에 도착해서 다음 출구로 나가려고 할 때였다.
츄아아악.
[삐에에에―]
갑자기 정수처리장에 고여 있던 물이 비명을 지르며 터져 나가기 시작했다. 이누타브 블레이드가 자체적으로 뿜어내는 검광이 격심해져서, 진짜 소드 오오라를 연상시킬 정도가 되었다. 아무래도 여기 고여 있던 물은 전부 인공 생명체들인 것 같았다.
퍼버버버벅.
개중 내게 물로 만들어진 창날이나 손톱을 날리려는 것들도 있었지만 이내 터져 버리고 말았다. 이누타브 블레이드의 검광이 독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리고 내 눈앞에는 계속해서 빨간 글자로 된 창이 떴다. 중대한 사실을 알리는 것 같다.
[‘탈마히라의 피조물’이 이누타브 블레이드의 ‘권능 저항’에 실패했습니다. 사방신 예속 피조물 생명 체크 실패.]
[생명 체크 실패.]
[체크 실패.]
[실패.]
[…….]
…….
생명 체크란 것에 성공하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이상한 건 그렇게 많은 적이 죽어 나가는데도 내게 돌아오는 경험치는 전무했다. 마치 이런 것을 적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듯.
아마 이누타브 블레이드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을 견디지 못하고 사라지는 것 같은데, 설마 이것들은 사방신과 관련된 생명체들인가? 나는 탈마히라라는 존재에 대해서 못내 궁금해졌지만 그에 대한 설명이 나오지는 않았다.
이윽고 뛰고 뛰어서 방음 결계 바로 앞까지 왔을 때였다.
이제 몇 걸음만 더 가면 성의 지하수로로 직접 통하는 곳이 나온다. 거기로 나가면 저 괴물이 뚫고 나오긴 힘들 것이다.
쿠오오오―
올 것이 왔다.
길이만 십수 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지렁이, 내지는 촌충으로 표현할 만한 괴물이 저편 수로통로에서 기어오고 있었다. 가까이 오자 그것이 움직일 때마다 땅이 들썩거릴 정도이다.
나는 괴물의 촉수가 보이자마자 레벨을 보려고 했다.

Monster : 베레제트(최상급)
Lv. 26 합성괴물
Lv. 1 탈마히라의 피조물
HP 4,827
MP 1,892

무식하게 체력이 높네. 저런 건 사흘 밤낮을 때려도 죽이기 힘들 거야.
쿠웅!
두르르르륵.
수백 개나 되는 촉수가 통로 저 끝에서 뻗어 나왔다. 촉수에 맺혀 있는 돌기가 피빛이라서 불길하게 여겨졌다. 저거 사람도 빨아들일 수 있는 거 아냐?
“……젠장.”
나는 일전을 피할 수 없다는 걸 느꼈다.
그리고 이누타브 블레이드를 뽑아 들고 외쳤다.
지금이야말로 신기술을 써먹을 때다!
“소울 크러쉬(Soul Crush)!!”
콰르르릉.
이누타브 블레이드가 갑자기 주욱 하고 길게 늘어나더니 공기를 거세게 때렸다. 정확히는 검날이 늘어난 게 아니라 무형의 기세가 뻗어 나갔다. 나는 그 풍압 때문에 하마터면 손잡이를 놓칠 뻔했다.
퍼엉!
공기의 벽을 때리면서 음속을 초월한 충격파가 전방으로 퍼져 나갔다. 순식간에 달려들던 촉수들을 말 그대로 부숴 버리고(Crush) 하수로를 꿰뚫어 버린다. 그 여파가 멀리 떨어진 여기까지 미친다.
쿠우우우―
“우오∼!!”
앞머리가 뽑혀 나갈 것처럼 뒤로 쓸린다. 내 힘이 높지 않았다면 그대로 뒤로 날려가서 내동댕이쳐졌을 것이다. 거기서 끝이 아닌지, 다시 기세가 뻗어 나가더니 충격파를 연이어 날렸다. 그 반동이 그대로 팔에 와 닿았다.
콰콰쾅!
마치 신무기라고 불리는 포탄 같다.
퍼엉!
[크휘휘휘휘휘.]
베레제트라고 하는 마물이 그 공격에 촉수가 마구 뜯겨 나가자 울부짖으면서 본체를 눈앞에 드러내었다. 거리는 약 15미터, 적의 몸체는 하수로를 가득 채울 정도로 컸다. 웬만한 건물만 하다. 저렇게 거대한 몸이 하수로를 자유자재로 다니는 것은 아마 몸이 물 찬 풍선처럼 유연하기 때문일 것이다.
‘으, 냄새.’
베레제트는 눈이 없었다. 마치 커다란 구멍처럼 생긴 입만 쩍 벌리고 있었다. 언뜻 귀여워 보였지만 저기 빨려 들어가면 흔적도 없이 녹아 버릴 것이다. 나는 베레제트가 고통 때문에 느리게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다시 소울 크러쉬를 쓰면 큰 데미지를 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못하고 뒤로 돌아서서 재빨리 도망쳤다. 왜냐하면 팔이 저려서 칼을 들고 있기도 힘들 정도였기 때문이다.
철벅철벅.
‘으. 반동이 너무 심해. 마법이랑 다르게 한 번 쓰고 끝이 아닌 것 같지만 힘이 어지간히 세지 않으면 한 발만 쏴도 내가 뒤로 날려가겠네.’
“그렇다면!!”
나는 뛰다가 어느 정도 베레제트와 거리가 벌어지자 멈춰 서서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주문은 3대 요소로 이뤄진다. 주문 영창(spell), 수인(somatic), 집중(concentration)이 완벽해야 제대로 된 주문이 나간다. 나는 3클래스의 주문식을 머릿속으로 떠올리며 집중했다.
한참이나 원리를 계산하다가 주문의 정립이 끝나자, 나는 검지와 왼손 중지를 맞대며 주문을 외쳤다. 내 실력이 별로라서 15초씩이나 걸렸다.
“마이너 헤이스트(Minor Haste)!!”
부웅.
그리고 달려 나갔다. 농담하지 않고 내 발에 깃털이 달린 것처럼 느껴졌다. 주변 사물이 휙휙 지나간다. 내 달리기 실력은 대단하지 않았지만 지금만큼은 오백 년 전에 멸종한 전설의 동물인 엘프랑 맞먹을 것이다.
그러나 기뻐하긴 일렀다.
파파팟.
“으아아아아아아악!!”
나는 비명을 내질렀다.
빨리 달리는 건 좋았지만 멈출 수가 없었다. 발이 제멋대로 움직인다고 느낄 정도로 주문이 활성화되어 있다. 하수도에 점점 물이 차면서 똥물이 사방에 튀었다. 거세게 뛰니까 더 강렬하게 튀어 오른다. 이런 제기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