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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1(14화)
제3장 퀘른 대결전(4)
미늘 갑옷에 질 좋은 롱소드를 하나 사니 이제야 뭔가가 되는 것 같았다. 롱소드를 하나 더 산 것은, 앞으로는 싸울 때마다 이누타브 블레이드를 꺼내 들 수 없기 때문이다. 함부로 신검의 위력을 노출시키면 노리는 자들이 늘어난다. 가능하면 본신의 실력으로 싸워야 한다.
대륙 전도(全圖)와 퀘른 주변지도, 관광명소 지도. 세 개를 사는 데 70골드가 들었다. 상당히 큰 지출이다. 나는 지금의 내 레벨을 점검해 보았다.
J. S.
검사 14
마법사 12
홀리 파이터 7
검사 레벨이 꽤 올랐다. 얼마 전에 센마를 쓰러뜨리면서 경험치를 또 받았기 때문이다. 홀리 파이터 레벨을 15까지 올리면 새로운 스킬이 생기는 것 같지만 지금 당장은 필요 없다. 방랑 생활이 얼마나 될지도 모르니 검 실력이 좋아야 한다.
나는 여관 하나를 잡고 퀘른 시내 구경을 나갔다. 아까 보았던 비행선이란 걸 좀 더 자세히 보고 싶었다. 하늘을 나는 마법사는 이따금 본 적 있지만, 하늘을 나는 도구는 처음 보기 때문이다. 고대 마녀들의 빗자루나 가능한 일이다.
“응?”
빵가게에서 슈크림 빵을 사서 먹으며 걸어 다니고 있자 어디서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저만치 광장에서 사람들이 모여들어서 뭔가를 구경하고 있었다. 나는 무슨 일인지 궁금해서 가서 구경하기로 했다.
“우앗!”
줄 선 곳에 가까이 가니 웬 꼬마아이가 대열에서 튕겨 나왔다. 사람이 정말 많았다. 나는 그들을 뚫고 보려면 시간이 많이 걸릴 거라고 생각했다. 이럴 때야말로 능력을 잘 살려야 하는 거지.
‘듣기’를 시작했다.
파지지직.
파지직.
뇌광이 튀기는 소리와, 불꽃이 치솟는 소리가 동시에 들렸다. 그러더니 쐐액 하고 대기가 움직이더니 제멋대로 날아다녔다. 소리만으로도 상황을 판단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렬한 이미지였다.
‘마법?’
하지만 마법역장(Magic force)이 느껴지지 않는다. 위력으로 보아서 하나하나가 최소한 3클래스 원소 계열 주문은 된다. 그런데 내게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설령 9클래스의 마법사라고 해도 그렇게 할 수는 없다.
점점 궁금해져서 안으로 비집고 들어가기로 했다. 팔뚝에 힘이 들어가고 핏줄이 솟았다.
꾸욱.
“야, 이, 임마 밀지 마!”
“뭔 힘이…….”
두 팔로 헤치고 들어가자 사람들이 기겁을 하면서 비켜섰다. 내 힘은 전신에 힘을 주는 것만으로 밧줄을 끊을 정도이다. 장정 세 명과 맞먹는다. 어느 정도 사람들을 헤치고 들어오자 광경이 눈에 보였다.
“하압!”
마법사 모자를 쓴 어린아이가 손을 내뻗으며 상대를 조준했다. 상대는 열두 살 정도로 보이는 소녀였는데, 손이 뻗어진 걸 보자 피하면서 바닥을 굴렀다. 아무런 주문도 수인도 없는데 경계하는 모습이었다.
파칫!
그 순간 어린아이의 손에서 말 그대로 뇌전이 튀어나갔다.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단지 정신을 집중하는 것만으로 원소력을 사용한 것이다! 게다가 역장이 안 느껴진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카앙.
소녀의 전신을 둘러싼 화염의 벽이 전류를 튕겨 내 버렸다. 저것도 이상한 일인 게, 라이트닝은 같은 원소 방어막으로 막을 수 없다. 그냥 관통할 뿐이다. 그런데 저 화염 방어벽에 막혀 버린 것이다.
아이와 소녀의 레벨이 눈에 보였다. 소녀 쪽의 레벨이 조금 높았다.
쥬인티스
Lv. 22 사이오니스트
셀롬
Lv. 23 사이오니스트
……사이오니스트?
궁금증에 고개를 갸웃거리자 눈앞에 글자가 떴다. 이젠 익숙해져서 놀라울 것도 없었다. 내가 궁금한 거나 계기만 있으면 나타났다.
사이오니스트(Psyonist)
초상능력을 사용하는 자들. 능력의 근원이 뇌로 인한 현실개변으로 생겨난다. 마법사와 달리 준비 과정 없이 초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 대신에 용량제한이 있다. 또한 익힐 수 있는 초능력에 제한이 있다. 선천적인 경우가 많다.
이제는 상대의 직업 설명도 어느 정도 보이는 것 같았다. 예전엔 안 보였는데, 이것도 레벨이 오르면서 생긴 효과인 것 같다. 아무튼 사이오니스트란 건 주문 없이 능력을 사용하는 녀석들이란 거군.
주변 사람들의 마음을 읽어 보았다.
‘벌써 이 대회도 3회째구먼. 뛰어난 사이오니스트들이 많이 나오는 건 좋지만…….’
‘이겨라, 셀롬! 너한테 30골드를 걸었다!’
‘쥬인티스는 전회에서 4강에 들었는데 역시 셀롬이 대단하네?’
‘쳇. 나도 16강에서 떨어지지만 않았으면…….’
퀘른 성에서는 사이오니스트란 것을 전문적으로 양성하는 것 같았다. 통칭 초능력(Psychic)이라고 부르는 것 같다. 퀘른 성주는 사람들의 초능력을 각성시키는 방법을 알고 있었고, 신분 차이에 관계없이 원하는 사람은 모두 그 방법을 시행하게 했다. 그렇게 십여 년이 지나자 퀘른 성에서 초능력자란 그리 희귀한 게 아니게 되었다.
그리고 이건 3년에 한 번씩 사이오니스트들끼리 누가 더 강하고 응용력 높은 능력을 지니고 있는지 겨루는 대회이다. 쉽게 말하면 각 성에서 개최하는 무투대회나 마법대회 같은 것이다.
‘으아, 무서워.’
나는 도저히 흥미롭게만 바라볼 수가 없었다.
저 녀석들이 쏘아 내는 뇌전이나 화염은 하나하나가 3∼4클래스의 마법에 준한다. 그것도 영창이나 수인도 하나 없이 집중만 하면 나간다. 게다가 싸우는 걸 보면 열 발 정도는 우습게 사용한다. 위력을 집중시키면 고레벨의 마법에 필적하는 위력을 보일지도 모른다.
무영창으로 강력한 원소력을 난무하는 능력자들. 확실히 전투에 있어서는 마법사보다 우위에 있는 게 틀림없다.
그때 내 눈앞에 글자가 떠올랐다.
분기 ‘퀘른 지하수로’와 ‘트위스티드’가 함께 시작.
현재 레벨로 감당할 수 없는 상대가 나올 수 있으니 유의.
Tip : 퀘른 내성으로 가서 성주를 만나세요!
퀘른의 내성은 거대한 비행선 다섯 대로 둘러싸여 있었다. 퀘른의 하늘을 떠다니는 저 비행선들의 정체가 뭔지는 잘 몰라도, 아마 침입자에 대비하기 위한 방어용일 것이다. 길을 지나면서 사람들의 기억을 읽은 결과 알게 된 사실이다.
우우웅.
저 다섯 대는 비행선의 이론이 나타나기도 전에 떡하니 성주가 거하는 내성을 지키고 있었다고 한다. 즉 퀘른의 기술력을 초과하는 것들이다. 저 안에 들어가 봤다는 사람이 한 명도 없을 정도로 수수께끼였다.
‘에, 일단 내성에 들어가려면 저 비행선들의 감시를 통과해야겠지…….’
듣기를 해서 알아본 결과 퀘른의 상공을 돌아다니는 소형 비행선들에는 투시와 감지 전문의 초능력자들이 순찰을 돌고 있다. 그들의 감지 영역은 못해도 수백 미터는 될 것이다. 만일 수상한 자가 발견되면 즉시 초능력자들의 합공이 개시될 것이다. 그러면 대마법사라도 살아날 도리가 없다.
내가 단번에 내성에 들어가기로 결의한 이유는 간단하다.
Tip.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글자다. 그것은 힌트를 주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내가 놓인 상황이 절박하다는 뜻도 된다. 적어도 저 힌트대로 한다면 퀘른의 수수께끼를 풀면서 죽을 위험은 덜하게 된다.
나는 퀘른 지하수로라는 글자에 주목했다. 지상은 비행선의 감시 때문에 접근이 불가능하다. 경비병들을 보니 최소한 10레벨이 넘는 사이오니스트들이 드글거린다. 만일 싸움이 벌어지면 나만 손해다. 그렇다면 다른 루트를 찾아야 한다.
지하수로.
어떤 도시에나 지하수로는 있다. 비행선을 띄울 정도로 기술력이 발달한 퀘른이라면 지하수로의 수준과 넓이가 다른 성보다 더 넓을 것이다. 나는 그 지하수로의 형태를 감지해 보기로 했다.
원래는 익숙하지 않아서 잘 되지 않았지만, 사실 나는 음파의 방향을 감지해서 사물의 형태를 대강이나마 파악하는 게 가능하다. 소리가 부딪히면서 물체가 어떻게 생겼는지 전달해 주는 것이다. 흑백으로 된 모형이 눈앞에 떠오르는 듯하다.
나는 정신을 집중해서 이 도시의 지하에 있는 지하수로의 모형을 머릿속으로 그리기 시작했다. 눈으로 사물을 보면 모형이 그려지지 않아서 일부러 눈을 감았다. 되도록 땅에 가까운 수로에 가서 앉았다.
지잉지잉.
‘으아. 미로(米路)다, 완전…….’
고작해야 도시의 1/5정도밖에 탐지하지 않았는데도 꾸불꾸불한 뱀 수십 마리가 엉켜 있는 지하수로가 머릿속에 들어왔다. 기억력이 부족해서 그걸 다 기억할 수는 없었지만 큰 갈랫길은 볼 수 있었다. 그렇다 해도 이대로 따라간다면 지하수로 안에서 길을 잃고 굶어 죽을지도 모른다.
쏴아아아―
‘방음 결계(Silent Area)?’
도시를 걸어 다니며 탐지 영역을 넓히던 내 감각에 커다란 흑색의 벽이 잡혔다. 그 벽은 성을 가리고 있었다. 나 같은 능력자가 있을까 봐 어떠한 소리도 들어오지 못하도록 인공적인 결계를 만들어 낸 것이다. 아마 내성에서는 외성에서 전쟁을 해도 소리가 들리지 않을 것이다.
“흐음.”
나는 호기심이 생겼다. 보통 내성은 성주가 사는 곳이기 때문에 삼엄한 경계가 펼쳐져 있다. 그렇다고 해도 이렇게까지 사람의 접근을 꺼려하는 곳은 본 적이 없다. 그것은 절대 남에게 보여서는 안 될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다.
나는 큰 수로 앞에 서서 크게 외쳤다.
“어떻게든 들어가고 말겠어!!”
그러자, 옆에서 초능력으로 쓰레기를 줍고 있던 웬 사이오니스트 청년이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았다. 안경을 끼고 흐리멍텅하게 생긴 백색 머리였다. 앞머리를 길러서 눈이 거의 안 보일 정도다. 저 흰머리는 초능력 때문에 생긴 건가?
“거기는 오물 처리하는 하수로인데요. 들어가는 건 상관없는데 냄새는 좀 날걸요.”
“…….”
왜 싸가지 없이 태클을 걸어?!
그랑시엘
Lv. 22 사이오니스트
어라, 레벨이 높네. 나는 무의식적으로 상대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혹시나 하는 생각에 말했다.
“에…… 혹시 대회에 나가신 분인지…….”
“네? 맞는데요. 지금 4강전 중이에요.”
“아, 그러시군요.”
순간 내 머리가 맹렬하게 회전했다.
그랑시엘은 여기가 오수처리관이라고 말했지만, 어찌 보면 여기가 제일 감시가 소홀한 것이다. 누구도 여기로 침입할 거라고는 예상 못할 것이다. 그랑시엘 외에는 이 근처에 사람이라곤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대로 오물 콸콸 쏟아지는 수도관의 미로를 헤매는 건 달갑지 않다. 그러면 눈앞의 이 녀석을 동료로 하는 게 왠지 좋을 것 같다.
나는 긴장을 풀게 하기 위해 선선히 얘기를 꺼냈다.
“여기서 왜 쓰레기를 줍고 있으셨는지…….”
그랑시엘이 방긋 웃으며 말했다.
“유리 조각 같은 게 떨어져 있으면 애들이 다치잖아요. 초능력에는 회복 종류가 드무니까 잘못 다치면 큰일 나죠. 시합이 모레인데다 시간이 좀 남아서 쓰레기를 줍고 있었는데요.”
“아, 그렇군!”
생각보다 좋은 녀석이네. 나는 호들갑을 떨면서 말했다.
“아까 저 안쪽에 제 마법 아이템이 떠내려간 것 같은데 같이 찾으러 가 주시겠습니까?”
“네? 하수구에요?”
그랑시엘은 약간 놀라면서도 인상을 찌푸렸다. 더러운 걸 싫어하는 듯하다. 나는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예. 그래서 지금 방법을 생각하던 중인데.”
그랑시엘은 잠시 고민하더니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러죠. 키네틱 실드를 치면 오물도 안 묻을 거고…….”
“네네, 고맙습니다.”
내 눈앞에 웬 글자가 떴다.
[그랑시엘이 동료로 들어왔습니다! 거짓말 스킬이 상승했습니다!]
“…….”
“왜 그러세요?”
“아뇨, 아무것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