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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1(13화)
제3장 퀘른 대결전(3)
나는 일주일 후에 퀘른의 성문에 도착했다.
나는 성문에 들어오자마자 가죽 갑옷을 내팽개치며 짜증을 냈다. 땀에 젖어서 또 냄새 난다. 나는 발악하듯 꽃밭에 드러누워서 외쳤다.
“더∼럽게 넓어어어!!”
폴커 왕국은 대륙에서 두 번째로 큰 국가다. 제일 거대한 하라바인 제국 다음이다. 하라바인 제국의 영토가 대륙의 2/5를 차지하고 있지만, 그 대부분이 북방의 동토(冬土)라서 쓸모가 없다.
항구로 쓸 만한 도시도 없어서 제국이란 이름에 비해서 가난했다. 그에 비하자면 폴커 왕국은 비옥한 대지와 따뜻한 항구를 가지고 있는 중반구의 대국(大國)이었다. 그 다음은 헤세랄드나 기타 왕국들이다.
넓은 건 좋지만 도시에서 도시로 여행하는 데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려서야 짜증이 난다. 마차나 텔레포트가 없으면 몸이 고생한다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대체 옛날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나.
나는 태양 빛 때문에 손으로 눈가를 가리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퀘른의 하늘에는 비행선이 떠 있었다.
마치 풍선 같은 동체에 밑에는 사람이 타는 공간이 있었다. 퀘른의 성주가 야심차게 내놓은 대발명품으로서 사람이 마음대로 하늘을 날 수 있게 해 주었다. 물론 저 열기구가 떨어지면 사람도 죽긴 한다.
“타 보고 싶네.”
비행선은 얼추 너비만 100미터는 되어 보였다. 산처럼 높이 떠 있는데도 제법 크게 보여서 그늘에 가릴 정도였다. 나는 멍하니 비행선을 바라보다가 아차 했다.
“지도를 사야지!”
나는 시장을 돌아다니면서 지도를 파는 곳을 찾기로 했다. 퀘른은 꽤 동쪽에 있는데다 내륙 지방이라서 건조하고 날씨가 더웠다. 자연히 내가 입고 있는 가죽 갑옷은 덥고 불편해서 지도를 사는 김에 새 갑옷을 사기로 했다.
무기 상점은 지도 상점과 붙어 있었다.
아마 퀘른에서 조금만 더 가면 동방대륙의 관문인 엘 타리오트 성이 나오기 때문일 것이다. 동방의 무사들도 종종 들르기 때문에 수입이 괜찮은 것 같았다. 나는 지도보다는 방어구를 먼저 사기로 하고 들어갔다.
무기점의 분위기는 조용하고 고풍스럽다.
무거운 정적이 느껴질 정도였다.
화롯불 옆에 앉아서 책을 보고 있는 무기 상점 주인은 퇴역 기사였다. 그 사실은 등 뒤에 전시해 둔 기사 퇴역증에서 확인했다.
희끗희끗한 머리에 단단한 인상의 말쑥한 중년인이었다.
나는 문득 그 중년인의 레벨을 살펴보았다.
훅스
Lv. 34/ 마스터 나이트
HP 1,150
MP 0
“…….”
지금까지 내 경험으로 비추어 볼 때, 레벨 15에서 20까지는 왕실 기사의 수준이다. 아마 눈앞에 있는 이 훅스라는 분은 근접전만이라면 센마조차도 이기기 힘든 검술의 달인일 것이다.
훅스 씨는 동방에서 들어온 담배라는 것을 뻐끔뻐끔 피면서 안경을 고쳐 쓰며 책을 읽고 있었다. 입고 있는 옷도 갑옷이 아니라 신사복이라서 도무지 그런 강자라는 걸 믿기 힘들다. 사람이란 건 겉보기로 판단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봐, 청년. 뭘 하나? 무기 좀 소개시켜 줘?”
“아, 아니오!”
그때 눈앞에 글자가 떠올랐다.
[키워드 ‘검기’와 연계됩니다. 해당 분기를 시작하시겠습니까?]
‘검기?’
그러고 보니 센마는 그 짧은 샴시르에서 무형의 기세를 방출해서 기사들을 몰아붙였다. 보이지도 않으면서 웬만한 칼보다 더한 예기를 내뿜으니 이만저만 까다로운 게 아니었다. 어쩌면 이 퇴역 기사라면 검기의 정체에 대해서 알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물건을 고르는 척하다가 슬며시 물어보았다.
“저기…… 검기(Sword Light)라는 게 뭔지 아십니까?”
“응?”
앉아서 책을 읽고 있던 훅스 씨가 외알 안경을 치켜 쓰며 나를 올려다보았다. 의외라는 반응이었다. 훅스 씨는 잠시 멀뚱허니 내 전신을 관찰하더니 담배를 뻐끔 피었다. 실망이라는 표정이었다.
“허허. 젊은 사람이 어려운 이야기를 꺼내는군.”
“…….”
타악.
훅스 씨가 손뼉을 쳤다. 왠지 맑은 기운이 퍼져 나온다.
“난 이제 평범한 노인네라서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자네는 힘들 것 같은데.”
“왜 그런데요?”
그가 담뱃대를 털면서 말했다.
“몸이 마력(魔力)에 찌들어 있어! 검과 마법을 익히는 것은 물론 가능하지만, 기와 마력은 서로 충돌하게 되어 있지. 그 유명한 챤셰이푸[長蔘峰]도 그런 말을 했었지. 여럿을 추구함은 좋지만 하나를 얻음만 못하다고 하지 않던가?”
“……?”
훅스 씨는 웬 동방 사람 이야기를 꺼냈다. 나는 챤셰이푸가 누군지 몰랐지만 훅스 씨가 존경하는 사람 같았다. 요는 마법과 검을 함께 익히면 검기를 익히기 힘들어진다는 것 같았다. 나는 잘 제련한 롱소드를 들고 무게 중심을 맞춰 보면서 넌지시 말했다.
“저는 6클래스 마법과 검기를 같이 쓰는 사람을 본 적이 있는데요.”
이 정도면 놀라겠지 싶다. 그러자 훅스 씨가 심드렁하게 말했다. 이쪽을 쳐다보지도 않는다.
“대단하구먼.”
그러고는 담배를 뻐끔 피우며 뒷말을 이었다.
“삽질 제대로 했어.”
“…….”
아니 그 경지도 하찮게 보이시나요?
훅스 씨는 그 말을 끝으로 다시 책을 보기 시작했다. 말할 가치도 없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나는 뭐라고 말을 하고 싶었지만 단념했다. 이제 전사로서는 막 발을 내디딘 내가 무슨 말을 해 봤자 훅스 씨 앞에서는 어린애 푸념으로밖에 들리지 않을 것이다. 왠지 그에게 말을 걸기는 너무 일렀다는 생각이 들었다.
확실한 건 검과 마법을 함께 익혀서 궁극에 도달하는 건 좋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내 레벨을 어떻게 올려야 하는 걸까? 살짝 머리가 복잡해졌다. 나는 무기를 찬찬히 살펴보다가 좋은 걸 하나 발견했다.
“아! 이거 좋네.”
내가 고른 롱소드를 훅스 씨 앞에 보여 주었다. 무게 중심이 잘 맞았다. 훅스 씨는 별말 없이 롱소드를 만져 보더니 툭 내뱉었다. 성의 없는 것 같지만 신뢰할 수밖에.
“60골드.”
쩔그럭.
품속의 돈을 살펴 보자 500골드 정도가 있었다. 나는 아직도 돈이 많이 남아 있는 게 기뻤다. 그래서 롱소드 말고도 괜찮은 갑옷을 찾기 시작했다. 그래서 비싸기로 유명한 미늘 갑옷을 큰 맘 먹고 사기로 했다.
“1,000골드.”
“…….”
너무 비싼데?
나는 흥정에 들어갔다. 이대로 1,000골드를 낼 수는 없다. 나는 쾅 하고 손바닥을 카운터에 내려치면서 비분강개했다.
“잠깐만요, 어르신!! 이의 있소!!”
번뜩.
그 순간 허공에서 눈이 마주쳤다. 이 싸움은 쉽지 않을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지지 않아!
“이 미늘 갑옷이 대체 어째서, 1,000골드씩이나 한다는 겁니까!”
훅스 씨는 잠깐 어이없는 듯 침묵하다 말했다.
“반대로 묻고 싶군. 이건 경량화 마법이 걸려 있어서 두툼한 겨울옷 두 벌을 껴입은 정도밖에 안 되는 미늘 갑옷이네. 미늘 갑옷은 소형 석궁에도 잘 뚫리지 않는다는 걸 모르는 건가?”
……어라 이 미늘 갑옷 마법까지 걸려 있는 거였나. 그래도 밀릴 수 없다! 나는 속으로 각오를 다졌다.
쾅.
나는 다시 한 번 카운터를 손바닥으로 내리쳤다. 훅스 씨의 인상이 미미하게 꿈틀거렸다. 한 대 칠 것 같은 표정이다.
“이 미늘 갑옷은 천 골드의 가치가 없어요!”
“뭐라고? 어이가 없어서…….”
훅스 씨가 뭐라고 말을 이으려고 했지만 나는 조목조목 천 골드의 가치를 설명했다. 내가 경비병으로 있을 때부터 계속 생각했던 것이다. 내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1골드가 1,000개 모이면 천 골드죠. 1골드로 호밀빵 여덟 개를 살 수 있어요. 그러면 1,000골드면 호밀빵을 8,000개 살 수 있죠. 호밀빵 하나로 한 끼를 때운다고 치면 8,000끼, 그러니까 무려 6년 동안 먹고살 수 있는 겁니다. 다르게 말하자면 10골드로 좋은 옷을 한 벌 사고, 수선도 맡길 수 있어요. 조금 비싼 옷이라고 치면 그런 옷을 50벌이나 살 수가 있지요. 평생 동안 입을 수 있는 겁니다!”
“자네…….”
나는 훅스 씨의 가로막으며 팔을 휘저었다.
“말 안 끝났습니다. 50골드가 있으면 친구들하고 멋들어진 술집에 가서 여자를 끼고 일주일 동안 죽어라 놀 수가 있어요. 그런 때는 일 년에 몇 번 찾아오지도 않죠. 이것만 하더라도 평생을 여한 없이 살 수 있습니다. 우울할 때는 언제든지 기분을 풀 수 있으니까요. 100골드라면 작은 조랑말을 하나 살 수 있겠네요. 그 조랑말을 키워서 타고 다니면 걸어 다닐 걱정은 안 해도 되죠. 1,000골드로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
훅스 씨는 입을 다물었다.
그러더니 툭하고 내뱉었다.
“궤변이군.”
“전 가방끈이 짧아서 궤변이 뭔지는 모르겠는데요, 1,000골드만 있으면 평생을 넉넉하게 살 수도 있다는 건 압니다. 그런데 이 미늘 갑옷을 사는 데 그 많은 돈을 다 쓰라고요? 고작해야 3개월이면 큰 대장간에서 만들 수 있는 걸 위해서?”
나는 무기 상점에서 제일 좋아 보이는 명검을 들었다.
당당하게 [가격없음]이라고 적어 놓은 검 같았다. 나는 혹시나 해서 검을 뚫어져라 쳐다봤는데, 굉장히 좋은 검인지 황금색으로 글자가 떴다. 역시 보물급인 것 같았다.
나이트메어
장비 종류 : 투 핸디드 소드
등급 레벨 : 10
마법부여 레벨 : 8
속성 : 암흑, 뇌전
소유주 : 훅스
현재 사용가능 기술: 크림존 레밍(Crimson Remming)
엔드 오브 쿼텟(End of Quartet)
현재 사용가능 마법 : 콜링 블레이드(Calling Blade)[8]
자동 소유 능력 : 사용자는 고스트와 암흑 계열에 면역
훅스 씨의 검이군. 나는 다시 제자리에 놓으며 물었다.
“이 검을 10만 골드에 팔라고 하면 파실 겁니까?”
훅스 씨가 단호하게 말했다.
“안 팔지. 그 정도 가치는 아니니까.”
“아저씨는 그렇게 말할지 몰라도, 10만 골드로 할 수 있는 일을 나열한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팔려고 할 겁니다. 무기와 방어구는 사람을 죽이고 죽는 걸 막기 위한 용도밖에 없습니다. 세상에서 사람이 발명한 것 중에 제일 쓸모없는 게 무기와 방어구입니다.”
나는 당당하게 아저씨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외쳤다.
“저 미늘 갑옷이 아직도 천 골드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아아?! 저엉말로?!?!?!”
침묵이 감돌았다.
훅스 씨는 머리를 긁적거렸다.
그러고는 책을 덮고 담배를 털었다.
입이 자유로워지자 훅스 씨가 조용히 말했다.
“있지.”
이어진 그의 말은 너무나도 합당한 것이었다. 반박할 수 없을 만큼.
“반대로 자네 또한 자네 목숨을 천 골드에 팔지는 않잖아?”
“…….”
에, 그건 그렇죠.
“흠. 확실히 저 미늘 갑옷이 천 골드짜리는 아니지. 객관적으로 가치를 매기면 450골드 정도가 적정선이겠지만 나도 먹고살아야 되잖나. 천 골드에 팔면 나한테는 200골드 정도 남는다네. 잡설은 그렇다 쳐도 모험을 하다 보면, 방어구 하나에 목숨이 오고 가는 일이 정말 많지. 석궁에 내장이 꿰뚫릴 텐가, 아니면 천 골드를 내고 미늘 갑옷을 사겠나?”
그러더니 예리하게 찔렀다.
“지금 입고 있는 자네 가죽 갑옷으로는 석궁은커녕 컴포짓 보우도 못 막을 것 같은데 말야. 다 헤어져서 실밥이 풀려 있으니. 롱보우에 맞으면 활촉에 관통당하는 걸 겨우 막아 주겠군.”
“뭐, 그건 그렇지만…….”
나는 할 말이 없어져서 애매하게 말을 마쳤다.
지능이 높아져서 어떻게든 혼란스럽게 몰고 가려고 했는데 훅스 씨는 냉정하고 확실하게 이야기의 중점을 끊어 내 버린 것이다. 어떻게든 말을 이으려고 전전긍긍하고 있을 때 훅스 씨가 털털하게 웃었다.
“그래도 재밌는 얘기였네. 사실은 나도 은퇴하기 전부터 계속 생각하고 있었거든. 이 칼과 방어구처럼 쓸데없는 게 어딨느냐∼라는 거지. 솔직히 말해서 적이 없다면 이렇게 흉칙한 걸 들고 다닐 필요도 없잖아. 나중에 동방의 고인들처럼 검(劍)을 마음(心)에 담을 수 있게 된다면 더 쓸데없어지지.”
이윽고 이어진 말에 나는 귀를 의심했다.
“그 미늘 갑옷은 공짜로 주지.”
“넷?! 정말입니까?!”
훅스 씨가 손을 절레절레 저었다.
“나도 돈이 궁한 사람은 아니야. 무기가 주인을 만났는데 무슨 자격으로 그걸 막아? 에서론을 만나면 훅스는 잘살고 있다고 이야기나 전해 주게나.”
에서론 자작님을 알고 있다?! 나는 재빨리 훅스의 마음을 읽으려고 했다. 하지만 읽으려는 순간 갑자기 눈앞에 붉은 창이 떴다.
경고! 상대가 ‘마인드 리딩’을 감지했습니다.
패시브 스킬 대결.
결과 무승부.
상대가 인지에 성공했습니다!
……마음을 못 읽었어!
여태껏 한 번도 없던 일이라 멍하니 있자 훅스 씨가 예리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흐음, 하고 턱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왠지 모르게 살기가 섞여 있어서 전신이 저릿거렸다.
“에서론의 검을 들고 있길래 뭐하는 놈인가 했는데 이상한 능력이 있구먼. 그런 건 좋지 않은 일이니 삼가하도록 하게.”
‘다음번엔 베어 버린다.’
순간적으로 마음의 잔향이 흘러 들어와서 움찔했다. 아마 저건 훅스가 일부러 마음의 일부를 노출시킨 것이다.
나는 재빨리 미늘 갑옷과 롱소드를 챙겨 들고 외쳤다.
“이만 가 봅니다아!!”
그러고는 죽어라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쳤다.
다행히 쫓아오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