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레벨업1(11화)
제2장 왕도 필리아딘(5)


Class : 마검사(魔劍士)
New Class : 홀리 파이터(Holy Fighter)

마검사는 검과 마법을 같이 쓰는 스킬을 주로 부여받게 되는 직업이다. 마검사로 아무리 레벨을 올려도 궁극으로 불리는 9클래스 주문을 배울 수 없으며, 검사 최고경지에 도달할 수도 없다. 대신에 마검사는 검과 마법을 같이 써서 3∼40레벨에서는 최강 직업 중 하나였다.
홀리 파이터는 아무래도 내가 좀비를 학살한 경험 때문에 생긴 것 같다. 오로지 신검(神劍)을 비롯한 신성한 무기를 들 때 위력을 발휘하는 직업 같다. 출현 조건이 희귀하기 때문에 마검사보다도 정보가 적었다. 신검의 힘을 최대한으로 끌어낼 수 있는 조건이라는 거겠지.
“으∼음.”
나는 고민하다가 외쳤다.
“레벨업!”
홀리 파이터다!
마검사도 좋겠지만 나는 왠지 9클래스 마법을 못 배우는 게 손해처럼 느껴졌다. 8클래스 마법도 배우기 힘들어 보인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이누타브 블레이드의 힘을 빌려서 이 상황을 타개해 나가는 게 좋은 것이다.
이윽고 레벨업 결과가 표시되었다.

J. S.
검사 Lv. 10
마법사 Lv. 12
홀리 파이터 Lv. 6

레벨 총합으로 치면 28이나 된다. 즉 기사들은 씹어 먹을 실력의 소유자가 되어야 정상이다. 하지만 나는 그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저건 어디까지나 총합일 뿐이며 전투력은 다르게 측정된다.
내가 실질적으로 싸우면 Lv. 20짜리 검사나 기병과 비슷할 것이다. 나는 여러 직업을 나누어 올린 데다가 서로 어울리지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단일 직업을 끝까지 올린 녀석들보다 상대적으로 약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대신 경험치 패널티가 없기 때문에 상당히 수월하게 여러 가지를 할 수 있다.
검사 레벨 10이 되면서 얻은 새로운 스킬은 [초강베기], [점프 슬래쉬]였다. 쉽게 말하면 무지막지하게 강하게 베는 스킬과, 점프해서 적을 난도질하는 공격이다. 마법사 레벨이 12가 되어서 3클래스 중반의 마법을 쓸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홀리 파이터가 되자, 왠지 손에 들고 있는 이누타브의 냉기가 한결 줄어들었다. 지금까지는 들고 있으면 마치 얼음물에 살짝 손을 담근 듯한 냉기가 치솟아올랐다. 이제는 손이 조금 차가운 정도가 되었다. 아마 이누타브 블레이드로 공격하면 더 강력하겠지.
상황이 정리되자 나는 수도를 피해서 동쪽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방향은 소리를 들으면 알 수 있다. 왕도는 늘 고기압에 둘러싸여 있으며 해역에서 가깝다. 그렇기 때문에 바람이 부는 방향은 무역풍과 비슷했다. 또한 나뭇등걸을 보면 동서남북을 분간할 수 있다.
수도 동쪽에서 가장 가까운 성은 퀘른 성이다. 퀘른 성의 성주는 뛰어난 연금술사로, 퀘른 성의 과학 기술(이라고 들었는데 뭔지는 잘 모른다)은 매우 발달되어 있다고 한다. 게다가 [비행선]이라는 것도 있다고 하니, 구경거리는 충분할 것이다.
“간다, 퀘른!!”
대륙의 동쪽 끝이라고 해도 지금은 막연하다. 그러므로 일단은 퀘른부터 가고 생각해야겠다. 그곳에서 지도를 구해서, 동쪽 끝이 어디인지를 알아봐야겠다.



제3장 퀘른 대결전(1)


저벅.
저벅.
저벅.
“……아, 젠장…… 멀다…….”
헛간에서 출발한 지 6일째.
나는 이누타브 블레이드를 땅에 꽂아 놓고 잠시 기대어서 쉬었다. 가도 가도 끝없는 평원에 수풀이었다. 사람은 별로 살지 않지만 그래서 더 황량했다. 나는 거의 조깅을 하듯이 걸어왔는데도 아직까지 퀘른은커녕 그럴듯한 마을도 보이지 않았다.
방금도 들렀던 민가의 농부가 말하기를 퀘른까지는 일주일 걸린다는 것이다. 나는 차마 그게 말을 탔을 때의 거리인지, 걸어갈 때의 거리인지 물어보지 못했다. 그냥 호밀빵을 얻어먹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 이거라도 감지덕지.
“아, 젠장!”
퍽.
나는 짜증스럽게 가죽 갑옷을 벗어서 내던졌다. 땡볕에 그을리자 가죽 냄새가 심하게 나고 더웠다. 정기적으로 가죽 갑옷을 관리해 주지 않으면 갈라져서 쓸 수 없게 된다. 나는 마치 물고기 썩는 듯한 냄새가 나자 코를 찡그렸다.
잠시 그늘 밑에 앉았다.
바람이 시원했다.
드러누워서 휴식을 만끽하고 있자, 기대듯 누워 있는 나무 반대편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허스키한 미성이다.
“기다렸다.”
오싹.
나는 지금까지 듣기를 하고 있다가 방금 전에 풀어 둔 상태였다. 그때까지 나타나지 않고 있다가 도깨비처럼 누군가가 확 하고 나타나 버린 셈이다. 놀라서 눈을 크게 뜨고 있자 이 목소리의 주인이 누군지 알 수 있었다.
저벅하고 반대편에서 내 앞으로 걸어오는 여자.
나는 어찌할 줄 몰라서 입꼬리를 오글거리면서 어색하게 웃었다.
“아하하…….”
트위스티드의 멤버, 센마였다.
‘재수 옴 붙었다!’
나는 앉은 채로 이누타브 블레이드를 꽉 움켜쥐었다. 아무리 상대가 강하다고 해도 일격 정도는 막아 낼 자신이 있다. 하지만 1분 이내에 저 무시무시한 샴시르에 전신이 난도질당해서 죽을 것이다. 상대의 실력으로 보아 마법을 쓸 틈도 주지 않을 거고, 마법 수준도 상대보다 훨씬 딸린다.
센마가 말했다.
그녀의 얼굴 반쪽이 그늘에 가려 있었다. 햇빛이 반짝거려서 얼굴이 어두워 잘 보이지 않았다.
“그 좀비 굴을 혼자서 부수다니 대단하군. 마력으로 강화되어서 재생력까지 있는 좀비들이었는데, 재생조차 못 하게 부숴 버렸나. 룬(Rune)으로 보강된 소환진까지 부순 것도…….”
“아, 그래.”
나는 건성으로 대답했다.
사실 그놈들이 재생력이 있었다느니, 룬으로 만들어진 소환진이었느니 하는 건 잘 몰랐다. 그냥 썰면 소멸되는데 그런 걸 알 턱이 있냐. 약하게 보이기 싫어서 두려움을 감추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복수라도 하러 왔어? 상대해 줄까?”
“…….”
센마는 움찔했다. 그녀는 아마 내가 예전에 썼던 이누타브 블레이드의 힘, 9클래스 마법 티마이오스를 잊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예전에 매직 미사일이었기에 망정이지 만일에 더 강력한 마법을 썼다면 센마는 죽은 목숨이었다.
근데 사실 난 그렇게 못 한다.
왜냐하면 티마이오스를 쓴 자체로 이누타브 블레이드의 효과가 다한다. 그 안에 내장된 강력한 주문들은 티마이오스 사용하는 중에는 못 쓰는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마법을 쓰기에는 아직까지 저레벨이라서 사용할 만한 단계가 아니었다. 지금 센마는 내게 공포의 존재이다.
[허세 스킬이 상승했습니다!]
그만하라니까, 좀.
내가 배짱 튕기는 데는 이유가 있다. 나는 센마가 등장하자마자 그녀의 마음을 읽었고, 강한 자신감 밑에 깔려있는 불안감과 공포를 읽었다.
그것은 9클래스 마법인 티마이오스―물론 센마는 그 정체를 모르지만―에 대한 공포였다. 게다가 자신의 배경까지 알고 있으니 나를 두려워할 수밖에.
내가 계속 센마의 얼굴을 쳐다보고 있자 기묘한 생각이 들었다. 보면 볼수록 예쁘다. 고향에는 저렇게 예쁜 여자가 한 명도 없었다. 물론 개중 비교적 아름다운 처녀는 있었지만 저토록 선명하지는 않았다. 만일 적이 아니었다면 당장에 발정난 개처럼 쫓아다녔을지도 모른다.
“…….”
아,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죽느냐 사느냐 하는 판에…… 나도 남자라 이건가. 센마는 내 표정 변화를 보고 무슨 생각을 한 건지, 샴시르로 가져간 손을 거두며 말했다.
“……우리 조직에 대해서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조직의 비밀은 지키는 게 원칙이다. 하지만 우리 트위스티드의 지도자께서는 너를 데려오라고 하셨다. 나를 따라오는 게 좋을 것이다.”
“뭐.”
나는 그 말을 듣다가 표정이 일그러졌다. 보자 보자 하니까 제멋대로만 이야기하고 있다. 그런 놈 만날 이유도 없고 무엇보다 짜증나.
“좀비 굴은 대체 왜 만들었으며 나를 왜 처넣었는데?!”
만일 내가 이누타브 블레이드를 도적들한테 뺏긴 상태였다면 좀비 굴에 들어갔을 때 죽은 목숨이었을 것이다. 그 좀비들을 모두 처치하는 것은 설령 Lv 30쯤 되는 전사라고 해도 힘겨운 일이다. 듣자 하니 재생력까지 출중하니 자칫하면 한 끼 식사가 되어 버렸을 것이다.
그러자 센마는 태연하고 당당하게 말했다.
“어차피 왕도 밖으로 옮길 셈이었다. 나는 카라얀에게 그 일을 부탁했다. 카라얀이 텔레포트를 써서 어디로 옮겼든 간에 내가 알 바는 아니다. 내겐 아무 책임도 없다.”
그래서 책임 없다 이 말씀이시군요!
“얼씨구! 우연히 마주쳐서 우연히 텔레포트해서 좀비 굴에 떨어졌어요? 그게 말이 되냐!”
나는 센마를 아래에서 위로 노려보며 으르렁거렸다. 예뻐도 할 말이 있고 안 할 말이 있다고!
“죽었으면 어라 죽었습니다 하고 너네 대장한테 보고할 생각이었지?!”
“흥.”
그러자 센마가 손을 다시 어깨로 옮겼다.
소리 소문도 없이 샴시르가 빠져나왔다. 나는 어느새 센마의 눈에서도 살기가 이글거리는 것을 발견했다. 생각해 보면 저 정도 되는 마법사가 생각 없이 일을 처리할 리가 없다. 일에 앞뒤가 안 맞는 건, 그만큼 센마가 나를 죽이고 싶어 한다는 뜻이다.
센마의 심정이 읽혔다.
‘그 실패 때문에 지도자께서 나를 제거 후보에 올려놓았다. 앞으로 한 번만 더 실패하면 나는 조직에게 ‘처리’된다. 네가 누구든 간에 용서 못 해. 좀비 굴은 실패했지만 어떻게든 이 자리에서 죽여 버리겠다.’
“?!?!?!”
야, 말이 안 되잖아!
데려오라며?!
‘저항해서 어쩔 수 없이 죽였다고 하면 그만이니까!’
‘이…… 이 미친!’
나는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을 머릿속으로 퍼부었다. 직접 하지 못한 것은 다음 순간 센마의 샴시르가 내 목을 노리고 정면으로 날아왔기 때문이다. 나는 그 공격을 간파해 내고 칼을 들어서 목을 막아 냈다.
공격하는 방향은 보여!
좌상. 좌하. 우상!
카앙.
센마의 샴시르가 두세 번이나 허공을 빠르게 스치며 어깨와 복부를 노렸다. 역시 샴시르의 길이가 짧은데도 보이지 않는 검기라는 기운이 나를 위협했다. 나는 숨 가쁘게 그 공격을 막아 내고는 두 걸음 뒤로 물러났다. 손이 저린다.
“호오.”
그러자 센마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전에 봤을 땐 그냥 경비병 수준인 줄 알았는데 내 삼격(三擊)을 막아 내? 왕실 하급 기사 수준은 되는군. 사람이란 게 그렇게 빨리 실력이 느는 건가?”
그러고는 비아냥거리며 손을 들었다.
“전설의 검술 천재 뭐 그런 건가? 어쨌든 이 자리에서 죽을 거니까 상관없지만.”
후와아악.
센마의 손 위에 거대한 룬 문자가 떠오르더니 이윽고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 같은 백색 화염구로 돌변했다. 나는 그제야 트위스티드라는 녀석들이 어떤 놈들인지 알 것 같았다. 지금은 사라진 룬의 힘을 이용해서 기존 마법을 증폭시켜서 싸우는 놈들이다.
‘대마법사는 아냐!’
그렇다면 센마는 8클래스는 아니다. 프리 텔레포트를 요소 없이 시전한 것도 룬의 힘이었을 것이다. 잘해 봐야 7클래스고 실질적으로는 6클래스 정도의 마법사인 것이다. 나는 왠지 용기가 생기는 것을 느끼며 이누타브 블레이드를 들었다.
나는 홀리 파이터로서의 스킬을 사용했다. 이 상황에서 쓸 수 있는 가장 적절한 스킬이다.
“디스펠 블레이드(Dispel Blade)!!”
슈웅.
엄청난 기세로 부풀어 올라서 직경 1미터나 되는 크기가 된 화염구가 마치 석궁을 쏘는 듯한 속도로 날아들었다. 나는 그게 3클래스의 파이어 볼의 위력을 증폭시켜서 7클래스 공격 마법에 준하는 것으로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아마 저걸 맞으면 반경 10미터가 폭발 때문에 흔적도 없이 날아갈 것이다.
나는 전력을 다해 검을 휘둘렀다.
퍼엉!
이누타브 블레이드에 스친 화염구는 마치 허공에서 빨려들듯 사라져 버렸다. 센마가 눈을 크게 부릅떴다. 그녀는 마법이 허공에서 사라지자 크게 놀라고 있었다. 나는 실실 쪼개면서 웃었다.
“헷.”
원래 이누타브 블레이드에 마법을 베는 힘은 없다. 저 센마가 쓰는 검기에나 그런 효능이 있다. 하지만 홀리 파이터의 전용 스킬인 디스펠 블레이드를 쓰면, 쓰는 검의 위력에 따라서 마법을 베어서 소멸시킬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신검 이누타브로 디스펠 블레이드를 쓴 지금, 나는 일격으로 천 명을 지져 죽일 수 있다는 8클래스의 최강 주문인 라이트닝 프롬 더 헤븐(Lightning From the heaven)조차도 베어 낼 수 있다.
“크윽. 뭐냐, 그 기술은!”
압축 파이어 볼이 먹히지 않자 센마는 주춤거리며 기회를 엿보았다. 디스펠 블레이드의 존재는 생소할 것이다. 홀리 파이터란 존재가 신의 가호 아래 온갖 검의 힘을 끌어 쓸 수 있는 희귀한 직업이다. 홀리 파이터의 조건이 언데드 300체 이상 격파니까 조건도 꽤 어렵다.
‘어디 보자.’
나도 주문을 써서 반격하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다.
생각한 것보다는 실력이 낮다지만 센마는 최소 6클래스 후반의 마법사다. 내 실력은 이제 3클래스 중반. 어설프게 마법을 쓰면 실력이 다 들통나 버릴 게 뻔하다. 나는 마법을 최후의 수단으로 아끼기로 하면서 센마를 도발했다.
더러운 미소 발동!
“이봐. 켈두스를 잡을 때처럼 프리 텔레포트로 도망치지 그래? 난 네가 텔레포트 쓰는 걸 제일 많이 봤거든!”
“이익!!”
나는 무심코 한 도발이었다. 별로 이 정도가 먹힐 거라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뜻밖에 센마는 얼굴이 붉어지면서 눈에 핏줄이 섰다. 엄청나게 열 받은 것 같았다. 나는 의외의 효과에 내심 놀랐다.
[도발 스킬이 상승했습니다!]
그때의 나는 잘 몰랐다.
툭 치면 죽어 버릴 것 같은 약해 빠진 경비병이 6클래스 마법과 검기를 동시에 사용하는 최상위 클래스의 암살자를 도발한다는 것. 그것은 센마의 엘리트로서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힌 것이다.
센마는 곧 샴시르를 들고 빠르고 예리하게 찔러 왔다. 마치 팔 자체가 섬광이 된 것 같다. 파공음이 귓가로 스쳐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