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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1(10화)
제2장 왕도 필리아딘(4)


타닷.
뻐억.
나는 골목 여기저기를 빠르게 뛰어다니면서 한 놈 한 놈 때려잡기 시작했다. 검날로 베면 죽으니까 검면으로 뺨을 후려쳤다. 놈들의 옥수수 강냉이가 털려 나갔지만 나는 그저 재밌고 즐거웠다. 나는 여섯 번째 놈을 찾아내고는 외쳤다.
“앗싸리 바라바라밤!!”
“뭐라고?!”
“별 뜻 없다!”
뻐억.
“흐겍.”
쉬리링.
그때 마침 루나 플레이트가 풀렸다. 그러자 남아 있던 두 놈의 도적이 골목의 앞뒤를 둘러싸고 내 앞에 나타났다. 나머지 놈들은 싸그리 이빨 옥수수가 털려서 기절해 있었다. 세그라는 놈이 증오스러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이 자식…… 죽여 버린다.”
“넌 배를 찔러. 난 눈을 찌른다.”
스스슥.
나는 골목 한가운데 있었다. 포위당한 셈이다. 그리고 좁은 골목에서 두 놈이 각자 단검과 슬링을 든 채로 한 걸음씩 걸어온다. 그것도 한 치 앞도 잘 보이지 않는 골목이다.
이런 곳이라면 대충 던지거나 쏴도 맞을 것이다. 내게 터무니없이 불리한 상황이다.
하지만 나는 훗 하고 웃었다.
녀석들은 한 가지를 깜박하고 있었다.
“위로 솟았노라!”
“뭐?!”
휘익.
내 몸이 담장을 뛰어넘어서 다른 집으로 넘어가는 것을 본 도적들이 재빨리 단검과 슬링을 던졌지만 맞지 않았다. 높이가 2.5미터나 되는 담장이었지만 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왜냐하면 검사 레벨이 오르면서 높이뛰기도 왠지 쉽게 할 수 있게 되었고, 이렇게 좁은 골목이라면 재빨리 양쪽 발을 디뎌서 뛰어넘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잡아!!”
벽을 사이에 두고 도적놈들이 악을 쓰는 소리가 들렸다.
철컹.
나는 이누타브 블레이드를 적룡의 검갑에 넣고 무작정 뛰었다. 지리는 저놈들이 더 잘 알 테니 나는 더 빨리 뛰어서 달아나야 한다. 숨이 턱까지 차올랐지만 나는 아까 가져온 물통을 벌컥 들이켰다. 달리기가 그렇게 자신 있는 건 아니지만 남들만큼은 뛸 수 있다.
타다다닷.
진짜로 더는 못 뛴다고 여길 정도로 뛰었다.
꾸불꾸불한 왕도의 길을 따라서 5km는 뛴 것 같다.
나는 어느 양복점의 벽 아래에 기대앉아서 숨을 몰아쉬었다. 속옷이 땀에 다 젖은 것 같다.
“후아. 후아. 더는 안 오겠지. 더러운 도적놈들…… 붕대질이나 하라고.”
도적놈들이 잘하는 게 붕대질 아르바이트다. 다친 사람을 구조할 때 일손에 부족하기 때문에 가끔 거지들을 쓰는데, 도적들이 거기에 끼어들어서 돈을 벌고는 한다. 나는 이마에 땀을 훔치고는 웃었다.
그야말로 심장이 터져 나가도록 웃었다.
태어나서 최고로 기분 좋게!
“우하하하하하핫하?! 하하하하!”
재밌다!
인생이 이렇게 재밌는 거였나?
겨우 한두 달 전만 해도 나는 크렌도스 성에서 경비병 교대 근무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눈에 이상이 생기고, 신기한 능력이 생기고, 지금 와서는 왕도에서 도적들과 술래잡기를 하게 되었다. 왠지 모르게 보검도 생겼다.
이 모험의 끝에 뭐가 있든 간에 상관없다.
왜냐고?
난 지금 재밌으니까.
그거면 충분하니까!
나는 실실 웃으면서 어깨에 스친 상처를 옷자락으로 싸맸다. 그러고는 서서히 발걸음을 옮겼다. 도적놈들과 기사들 모두 나를 찾고 있을 것이다. 이 상황에서 왕도를 빠져나가는 건 불가능하니 어떻게든 은신처를 찾아야 한다.
“어디로 갈까나.”
내가 비틀거리며 걷고 있을 때였다.
어두운 골목의 전방에서 웬 어린 여자 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야. 겨우 이런 녀석한테 센마가 당한 거야?”
나는 휙 하고 고개를 들었다.
시야가 확보되지 않아서 어떤 생김새인지는 확인할 도리가 없었다. 하지만 센마를 언급한 것으로 보아서는 이전에 말했던 트위스티드의 멤버일 것이다. 나는 여기서 이 능력의 단점을 실감했다.
‘눈에 안 보이면 능력치랑 레벨이 안 보여!’
너무 당연한 이치지만 새삼 깨닫자 비참했다.
어둠 속의 적은 왠지 꼬리를 살랑거리는 듯한 소리를 내며 그르릉거렸다. 마치 입맛을 다시는 것 같았다.
“단숨에 잡아먹고 싶지만 넌 센마의 몫이지…… 일단 골치 아픈 놈들부터 떼어 내고 이야기하자, 마법사.”
위이잉.
위이이잉.
“……?!”
갑자기 빛이 환하게 떠올랐다. 나는 그것이 텔레포트의 마법진이란 사실을 알아챘다. 단지 현재 존재하는 마법진과는 완전히 다른 게, 진 전체가 룬(Rune)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룬은 많이 사라져서 지금은 27자밖에 남아 있지 않다. 그래서 룬만으로 마법진을 구성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나는 텔레포트로 사라지기 전에 얼핏 어둠 저편의 존재를 볼 수 있었다. 마법진의 빛 덕분이었다.

카라얀 세이실버드
Lv. 41 …….

레벨과 이름 외에는 볼 수 없었다. 카라얀이 빛과 함께 나타난 누군가에게 킬킬 웃으면서 말을 거는 소리가 마지막으로 들렸다.
“킥킥 트르온 경. 날 잡으러 직접 납시셨나?”

파앗!
쿠웅.
“으앗…… 뭐야, 이건.”
나는 느닷없이 하늘에서 떨어져서 헛간 바닥에 부딪혔다. 다행히 엉덩이부터 부딪혀서 크게 다치지는 않았다. 잘 보니 2층이나 되는 헛간이다. 동물의 배설물이나 냄새가 없는 걸로는 봐서 비워진 지 오래된 것 같다.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이누타브 블레이드가 웅웅거리기 시작했다. 마치 무언가를 경고하는 것 같았다.
‘뭐야, 이건?!’
불길하다. 알 수 없는 일투성이.
센마의 동료인 트위스티드의 멤버가 나를 텔레포트 마법진으로 이동시킨 것 같은데, 이곳이 어디인지는 모르겠다. 그리고 이누타브 블레이드가 울고 있는 이유도 알 수가 없다. 그때 눈앞에 글자가 떠올랐다.
[분기(分期) 시작. 키워드 ‘트위스티드의 멤버’.]
[해당 분기를 시작하기에 레벨이 낮습니다.]
[그래도 진행하시겠습니까?]
참나, 어이가 없다……
어쩌겠어.
나보고 어쩌라고. 그냥 살아갈 수밖에 없잖아. 선택권도 없는 상황이다. 진행하기 싫다고 표현할 방법이 없다.
나는 그 이름을 되새겼다. 내 눈이 이상해졌을 때 나타났던, 형체 없는 새하얀 [무언가]. 그때 이후로 GM이 내 눈에 보인 적은 없었다. 불러도 오지 않았다.
이 세계의 신(神)인가?
만일 신이라면 무엇 때문에 이런 짓을 하고 있는 건가? 생각이 복잡해졌지만 결론이 나오지 않았다. 나는 이를 악물고 레벨업을 얼마나 할 수 있는지를 보았다.
[레벨업 초과 경험치 달성. 올리실 레벨을 선택해 주십시오.]
……검사.
마법사를 올리고 싶지만, 이 상황에선 조금이라도 체력과 힘이 강한 쪽이 좋을 것 같다. 그러자 검사 레벨이 2 오를 수 있다는 메시지가 떴다. 나는 레벨업이라고 중얼거리면서 사방을 살폈다.
고요하다.
기분 나쁠 정도의 침묵.
창가로 노을빛이 들어오는 것 때문에 그렇게까지 어둡지는 않다. 기묘한 황혼이 얼굴을 비춘다. 하지만 곧 어두워질 것이다. 그때는 한 치도 분간하기 어려워질 것이다. 나는 헛간에서 나갈 곳을 찾기 시작했다. 2층으로 되어 있으니 계단을 따라서 올라가 보았다.
구획 하나를 돌아서 정면 난간까지 걸어갔을 때였다.
빠직.
낡은 바닥이 부서진다.
[……구우우우…….]
2층 복도 저만치에서 왠지 기분 나쁜 소리를 내면서 절뚝거리는 인형(人形)이 걸어왔다. 나는 그게 사람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사람이라면 머리에서 뇌수가 흘러내리는 소리가 나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이누타브 블레이드를 뽑은 채 돌격했다.
그리고 거리에 들어오자마자 좌에서 우로 휘둘렀다.
스각!
움직임이 느리다. 목을 베자마자 먼지가 되었다.
“좀비구만, 역시!”
나는 이를 악물었다. 좀비는 몸통을 베어 버리니 허무하게 재가 되어서 흩어졌다. 내가 듣기로는 좀비는 사령술사(死靈術師)들이 부리는 소환수로서, 좀비에게 당한 자는 좀비가 되어서 되살아난다. 사람들은 좀비를 약하다고 착각하고 있었지만 그렇지 않다.
좀비는 움직임이 보통 사람보다 조금 느릴 뿐, 가까이서 붙으면 공격 속도는 도리어 웬만한 검사만큼 빠르다. 게다가 두 팔로 황소 뿔을 잡아 찢을 수 있을 정도의 힘도 있다. 조금이라도 둘러싸이는 날에는 저세상 가기 딱 좋은 마물이다.
그렇다 해도 사령술사들은 성왕의 대토벌 때 대부분 죽음을 맞이해서 지금은 거의 남지 않았다고 들었다. 하라빈타로 도망치거나 사회의 어둠 속으로 은둔한 게 대부분이다. 이렇게 대놓고 공격해 오는 건 이상했다.
‘이누타브 블레이드에 성스러운 힘이 깃들어 있어서, 스치기만 해도 사라지는 건가?’
구우우우…….
구우우우…….
“쳇!”
헛간의 사방 곳곳에서 좀비들이 걸어 나오기 시작했다. 그 수는 얼추 보아도 50이 훨씬 넘었다. 나는 가뜩이나 체력이 떨어진 상태에서 이놈들을 일일이 상대하다가는 큰 부상을 입을 거라고 직감했다.
쾅!
나는 발로 차서 잠긴 문을 열어젖히고는 방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리고 문을 앞두고 검을 겨누었다. 한 놈 한 놈 처치하다가, 안 되면 헛간에서 뛰어내려 버리자!
이윽고 첫 놈이 들어오자마자 거세게 검을 내뻗었다.
검이 놈의 인중을 꿰뚫자 기묘한 소리가 났다.

[으어.]
한 마리 처치했다! 다음 와라!

[으어.]
두 마리 처치했다! 다음!

“…….”
세 마리…….
좀비들은 움직임이 느렸다. 원래라면 머리나 팔다리가 베여도 계속 꾸역꾸역 몰려들어서 좁은 방 안에서 위기에 빠졌을 것이다. 하지만 찔리기만 해도 재가 되어서 흩어지는 덕분에, 나는 좁은 문 사이로 마치 연탄불 때우듯 꼬챙이질만 했다.
그렇게 몇 번을 반복했을까.
“흐암.”
머리를 긁적이면서 찔렀다 말았다를 반복하니 하품이 나왔다.
더 이상 좀비가 들어오려고 하지 않자, 나는 서서히 밖으로 걸어 나가면서 좀비를 찔러 없앴다. 좀비들은 허우적대면서 나를 공격하려 했지만 이누타브 블레이드가 훨씬 길었다. 스치기만 해도 소멸되었다.


“…….”
…….
…….
…….

날이 밝아 오고 있었다.
끼이익.
나는 헛간의 문을 두 손으로 열고 아침 햇빛이 눈부시다는 걸 깨달았다. 내 등 뒤에는 재가 되어 버린 592마리의 좀비들이 영혼의 상태가 되어서 돌아다니고 있었다. 좀비들은 너무 순식간에 당해 버려서 자신들이 소멸됐다는 것도 모르는 것 같았다. 나는 기지개를 켰다.
“흐암.”
나는 하품을 하며 입을 쩝쩝 다셨다.
머리를 긁적였다.
“그래서, 이건 결국 뭐였지…….”
나는 곧 단순명쾌한 결론을 도출했다.
손바닥에 주먹을 탁 하고 내려쳤다.
“그래! 레벨업 했어!!!”
……실상, 나를 절망과 고통 속에서 죽이려고 트위스티드의 센마가 좀비 굴을 소환했었다는 것을 알게 된 건 훗날의 일이었다. 이때의 나는 그저 좀비들을 무쌍하게 물리친 기쁨과 레벨업의 환희에 떠는 초보 마검사일 뿐이었다.
헛간에서 나오자 사방이 확 트여 있었다. 아마 수도 근처의 헛간인 듯, 저 멀리에서 수도 경비병이 하품하는 소리가 들렸다. 대략 1km 정도 떨어진 곳인 것 같았다. 나는 헛간 주변에 웬 해골이나 마법진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게 좀비들을 소환한 매개체인 것 같다.
“그럼 가만 놔둘 수 없지!”
시험 삼아서 이누타브 블레이드로 마법진의 중심을 찔러 보았다.
파아앗!
마법진은 맥없이 부스러지고 말았다. 신검에 담겨 있는 힘을 견뎌 내지 못한 것이다. 척 보아도 보통 마법사가 설치할 수 있는 건 아닌데도 쉽사리 부서졌다. 나는 새삼 이누타브 블레이드의 위력을 알게 되었다.
[레벨업 초과 경험치 달성. 총 2,849,892의 경험치가 있습니다. 투자할 방법을 선택해 주십시오.]
흠.
나는 좀비들 하나하나가 Lv 16에 이르렀던 걸 생각했다. 나는 너무 쉽게 해치웠지만 실제로는 기사 하나가 용을 써야 해치울 수 있는 놈들인 것이다. 그런 걸 600마리 가까이 학살했으니 엄청난 경험치가 쌓여 버렸다.
이렇게 되자 한 번에 확 레벨을 올리는 것보다는 조심스럽게 하나하나 쌓아 올릴 필요성이 느껴졌다. 나는 마법사에 올인할 경우 마법사 레벨이 18에 이르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레벨 18이 되면 5클래스의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 어디 가서 무시당할 마법 실력은 아니다.
하지만 또 드는 생각은 이누타브 블레이드가 있는데 굳이 5클래스 마법을 쓸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다. 지금 당장 근접전 능력이 딸려서 도적들도 물리치지 못하는 상태였다. 그래서 검사에 투자하게 된다면 검사 레벨이 19가 된다.
나는 결국 하나하나 레벨업을 시키기로 했다.
마법사.
“레벨업!”
검사.
“레벨업!”
그런 식으로 마법사와 검사 레벨을 각각 10으로 만들고 나자, 그제야 새로운 직업이 나타났다. 나는 눈앞에 떠오른 글자를 신중하게 바라보기로 했다. 이건 앞으로 내 운명을 결정할지도 모르는 중요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