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레벨업1(9화)
제2장 왕도 필리아딘(3)


쏴아아아―
“이햐, 이게 뭐지?!”
나는 웬 길다란 막대에서 차갑고 따뜻한 물이 점점이 뿜어져 나오는 걸 보고 신기해서 외쳤다. 그 소리가 컸는지 밑에서 여관 주인이 뛰어 올라왔다. 여관 주인은 30대 중반 정도의 여인이었는데 코 옆의 큰 점이 인상적이었다.
그녀가 상황을 보고 알겠다는 듯 말했다.
“촌놈이구먼∼ 그건 샤워기(Shower hose)라는 거야!”
“샤워기?”
“모르면 보고 배워, 총각∼”
여관 주인은 나한테 물 조절하는 법과 수도꼭지란 것을 트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나는 어려워서 적지 않게 헷갈렸지만 두 번 정도 설명을 듣자 이해할 수 있었다. 수도에는 정말 대단한 게 많은 것 같았다.
‘옳지!’
나는 이 대단한 것을 뚝 떼서 고향으로 가지고 가기로 했다. 가만히 있어도 냉온수가 나오는 이 기계를 가지고 가면 고향 사람들도 기분 좋게 씻을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샤워기를 빤히 바라보자 여관 주인이 끌끌 혀를 차며 말했다.
“뭔 생각하는지 알겠는데 샤워기 떼 가도 물 안 나오니 알아서 하셔∼!!”
“…….”
나는 휙 하고 경악의 눈으로 아줌마를 바라보았다. 내 마음을 읽혔다! 설마 이 아줌마도 ‘듣기’ 스킬을 50까지 익혔단 말인가!
‘수도는 정말 대단해!’
샤워를 하고 난 다음에는 시내를 둘러보기로 했다. 여관 주인은 이런 일이 익숙한지 내게 이곳저곳 가 볼 만한 곳을 알려 주었다. 아줌마는 아예 시내 지도를 내어주면서 검은 점으로 관광명소를 집어 주었다.
내가 제일 먼저 가 본 곳은 스크롤 판매소였다. 마법 스크롤이 있으면 좀 더 쉽게 모험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내 예상과는 달리, 마법학교 학생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이리저리 문서를 들고 왕복하면서 바쁘게 일하고 있었다. 점장은 웬 노마법사였다. 점장이 외알 안경을 치켜 쓰면서 내게 말했다.
“스크롤 사러 왔소?”
“네. 2클래스짜리…….”
“여긴 정찰제(가격을 정해 놓고 파는 것)니까 깎을 생각은 하지 마시오. 따라오게.”
점장을 따라서 가게 안으로 들어가자 거대한 철통처럼 생긴 기둥이 5층도 넘는 건물 끝까지 뻗어 있었다. 점장이 웬 강철 단추를 누르자, 갑자기 문이 지잉 하고 열렸다. 내가 어리벙벙해하고 있자 점장이 짜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나는 마음을 읽어 보았다.
‘또 시골 촌뜨기 마법사가 올라왔군. 내 일은 스크롤을 파는 거지 엘리베이터가 뭔지 설명하는 일이 아니라고!’
엘리베이터?
나는 궁금해하면서도 그 원리 정도는 파악할 수 있었다. 아마도 큰 원통을 실린더 안에 넣어놓고 중력 마법과 강화 마법으로 왕복하는 것이리라. 하지만 그 발상이 놀라웠고, 무엇보다도 사람을 통 안에 넣고 위아래로 실어 나른다는 게 신기했다.
나는 200골드를 주고 두 개의 스크롤을 샀다.
하나는 마이너 힐링(Minor Healing), 다른 하나는 안티포이즌(Anti Poison)이었다. 2클래스 스크롤이 하나에 100골드씩이나 한다는 게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점장이 말하기를 원래 스크롤은 비싸다고 한다. 점장은 그 말을 하면서 싱글벙글 웃었다.
“다섯 번 오면 한 번 정도는 80%로 할인해 줄 수 있네. 자, 여기 배지 받게. 다섯 개 모으면 마이너 힐링완드 하나 공짜로 주지.”
“…….”
그건 다섯 번 오란 말이죠?
나는 폴커 왕국 최고의 마법사인 토르온 경의 멋쟁이 그림이 그려져 있는 배지를 받고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마법사란 건 틀어박혀서 연구만 하는 고고한 학자들로 알고 있었는데 환상이 깨지는 것 같았다. 이런 상술에 물들 줄이야!
왠지 세상이 점점 금본위로 바뀌어 갈 것만 같은 느낌에 불길해졌다.
나는 그날 시장을 돌아다니면서 온갖 것을 구경하고 여관으로 돌아왔다. 나는 이불을 덮으면서 생각했다. 수도는 정말 넓고 볼 것도 많았다. 게다가 마법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실감할 수가 있었다. 역시 마법사가 되기로 한 건 잘한 선택이다.
그때 눈앞에 웬 글자가 떠올랐다.

인간은 드래곤의 마법을 빼앗았다……
서둘러 와 줘…… 이누타브의 샘물의 동쪽……
시간이 별로 남지 않았다…….

간절하고 선명한 목소리.
“……?!”
나는 벌떡 침대에서 일어났다.
이번엔 좀 더 그 글자가 선명하게 보였다. 스쳐 지나가는 것도 아니고 똑똑히 보인다. 나는 이제 룬(Rune) 어를 해독할 수 있기 때문에 나머지 내용도 알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이 글이 나한테만 보이는 이유에 대해서 알 수가 없었다.
‘……가 볼까.’
어차피 왕궁에는 들어가 봐야겠지만, 이누타브의 샘물 핑계를 대고 동쪽으로 여행을 가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금덩어리만 찾고 모험을 떠난다고 하면 될 것이다. 나는 앞으로의 방침을 정한 채로 잠을 청했다.

다음 날은 바람이 선선해서 나들이하기 좋았다.
하지만 나는 약간 불안한 마음에 방 안을 서성였다. 마법사라고 어떻게든 사기를 치긴 쳐야 하는데, 왕궁에는 7클래스 이상의 마도사도 있을 것이다. 그들이라면 한 눈에 이누타브 블레이드의 정체를 간파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검을 뺏기게 될 수도 있다. 결국 나는 내 마법 실력을 어떻게 숨기느냐에 관건을 두기로 했다.
생각을 해 보자.
생각을……
…….
‘……불가능해! 걍 튀자!’
내가 뭔 수로 대륙 제일을 다투는 대마법사들의 눈을 속여?! 5초 만에 포기.
나는 잽싸게 이누타브 블레이드와 적룡의 검갑을 챙겼다. 아이템 설명으로는 이누타브 블레이드에는 극랭(極冷)의 힘이 잠들어 있기 때문에, 보통 검집을 차고 다니면 사용자가 얼어 버린다고 한다. 그 때문에 적룡의 화염이 깃들어 있는 검갑을 씌워서 이누타브 블레이드의 힘을 봉인하고 있는 것이다.
금덩어리가 아깝긴 하지만 별수 없다.
뭐 설령 왕세자가 욕심이 없어서 검을 빼앗지도 않고 포상을 했다고 치자. 그러나 이런 대단한 신검(神劍)을 노리는 자들은 줄을 이을 것이다. 기사들은 내가 마법을 쓰는 모습을 직접 보았기 때문에 내가 마법검사라고 착각하는 모양이었지만, 그게 아니고서야 들킬 게 뻔하다.
내 실력으로 그런 자들에게서 살아남을 방도가 없다. 지금 내 실력이면 크렌도스 성의 십인장 두 명과 겨우 맞상대할 정도다. 물론 이누타브 블레이드를 들면 다르겠지만 어쨌든 위험한 건 변함이 없다.
‘동문으로 나가야지.’
나는 마구간을 이용하지 않고 도보로 튀기로 했다. 마구간을 이용하면 마법사 길드에 기록이 다 남는다. 말들도 전부 위치 추적 마법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속도는 느리겠지만 걸어가는 게 안전하다.
그때였다.
저벅저벅.
막 짐을 다 챙기고 내려가려고 할 때, 저만치에서 제1기사단의 기사들이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별로 집중하지 않아도 반경 4.5km 이내의 소리는 다 들을 수 있다. 신경이 예민해져 있었는데 딱 걸린 것이다.
거리는 얼추 500미터쯤.
철그럭거리는 소리가 나는 걸로 봐서는 정식 기사로서 풀 플레이트(Full Plate) 갑옷과 예장, 망토까지 다 갖추고 오는 모양이다. 거의 행렬처럼 해서 시장 사람들이 주목하는 소리도 들린다.
‘크어어어어억!!’
잡히면 안 된다!
나는 필사적인 기세로 여관을 뛰쳐나갔다. 선불로 계산했기 때문에 후환은 없다. 나는 뒷골목을 따라서 점차 좁은 곳으로 빠지기 시작했다. 왕도 필리아딘은 뭐가 그렇게 넓은지, 도심에서 조금 뛰었을 뿐인데 사람도 보이지 않는 어두운 골목까지 오게 되었다.
타다닷.
“헉…… 헉…….”
나는 점차 지치는 것을 느꼈다. 힘은 좋아졌지만 체력은 별개의 문제다. 병사로서 단련한 기본이 있어서 잘 버텼지만 더는 한계였다. 하수도 근처에서 숨을 몰아쉬면서 조금 쉬려고 할 때였다. 어두운 골목 뒤쪽에서 킬킬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이∼ 뭐야? 칼 좀 쓰는 놈이냐? 뭐한다고 이런 외진 골목까지 왔어?”
“어이, 화내지 마. 우리 돈 주려고 왔지∼”
“킬킬. 그래 안 그래, 우리 이쁜아?”
저벅…….
나는 고개를 들어서 올려다보았다.
골목 여기저기에서 비루먹은 차림을 한 남자들이 서서히 걸어 나왔다. 차림새는 노비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더러웠다. 하지만 그들의 손에 슬링(Sling)이나 단검이 들려 있는 것을 보자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인원은 여섯 명 정도.
하지만 청력으로 감지해 보니 저만치 뒤쪽에서 세 명 정도가 더 대기하고 있다. 나는 눈에 힘을 주어서 재빨리 그들 전체의 레벨을 살펴보았다. 그러면서 이누타브 블레이드를 뽑아내었다.

주그
Level 8 도적

레그

Level 7 도적

세그
Level 8 도적
…….
…….

나는 헛웃음을 흘렸다.
‘그 자 돌림? 개성도 없네. 싸그리 도적이구만! 평균 레벨은 8 정도…… 어렵겠네.’
도적이란 건 도시의 뒷골목에서 기거하면서 사람들을 위협해서 등쳐먹는 폭력배나 도둑들이다. 대개 굶다 못해 생계를 위해 도적질을 하는 평민들이었지만, 개중에는 전문적으로 단검술이나 암살을 익힌 전문가도 있었다. 가끔 퇴역 군인도 도적질을 하긴 했다.
요는 얕볼 수 없는 놈들이다. 특히 저 슬링 같은 경우에는 적중률도 높은데다가 머리에 맞으면 그대로 기절해 버릴 수 있다. 투구를 쓰고 있는 기사들에게는 잘 통하지 않지만 나처럼 방어 장비 없는 전사나 마법사들에게는 무서운 존재다.
뭐, 내가 전력을 다하면 한 방에 쓸어버릴 수 있다.
필드 오브 아이스 주문만 써도 근접해 온 도적놈들은 얼음덩이가 되어 버릴 것이다. 역시 마법이 최강이다. 하지만 나는 도심지에서 마법을 쓰면 마법사 길드의 추적조들이 쫓아온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시내에서 허가받지 않고 공격용 마법을 사용하는 것은 중죄(重罪). 빼도 박도 못하고 감옥에 갈 것이다.
나는 다 털릴 위기에 처했다는 걸 깨닫자 허리에 식은땀이 흘렀다. 그러고는 이 위기를 벗어날 방법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래!’
묘수가 떠올랐다. 나 왜 이렇게 똑똑하지?
나는 재빨리 이누타브 블레이드를 들고 외쳤다.
“루나 플레이트(Lunar Plate)!”
지이이잉.
수백 수천 개의 은빛 마법 쟁반이 내 주변을 둘러쌌다. 루나 플레이트는 6클래스에서도 상위에 속하는 방어마법이다. 지속 시간 동안에는 온갖 종류의 타격과 마법에서 나를 보호해 주고, 공격용으로 쓸 수도 있다. 효율이 좋아서 마도사들이 애용하는 마법이었다.
“방어 주문이야!”
“흩어져!”
도적들은 마법을 보자 당황한 듯했으나, 이내 도심의 어둠 속으로 몸을 숨겼다. 그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그림자가 튀는 것 같다. 이런 상황을 많이 겪었나.
‘젠장!’
저놈들은 마법의 지속 시간이 그리 길지 않다는 걸 알고 있다. 마법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풀리자마자 슬링을 쏘거나 단검을 던질 생각이다. 이래서 공격 마법을 쓰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저 녀석들이 하나 간과한 게 있다.
나는 이누타브 블레이드를 뽑아 들고 거침없이 어둠 속으로 몸을 날렸다. 골목의 사각에 숨어서 안 보인다고 생각하던 레그라는 녀석이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나는 거침없이 레그의 뺨을 검면으로 후려쳤다.
뻐억!
검으로 베지 않아도 철괴 덩어리가 턱을 으스러뜨린다. 놈은 처절한 비명 소리를 내며 나가떨어졌다.
“크억!”
한 놈 잡았다.
나는 씨익 웃으며 외쳤다.
“나는 세계에서 제일 귀가 좋은 사나이라고!!”
잘못 걸린 거 알고 있냐?! 아무리 어두워도 ‘들으면’ 어디에 있는지 정도는 알 수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