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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1(8화)
제2장 왕도 필리아딘(2)
“크흐…… 흐흐…… 그 마녀한테서 살아난 거냐…….”
“뭐 운이 좋았지.”
나는 아예 존대도 하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망할 귀족 앞에 예의를 차려 줄 필요가 없다. 그것도 악덕 귀족인 바에는 더더욱. 내가 호밀빵 끝부분을 물어뜯고 있을 때 켈두스가 얼굴 살을 푸들푸들 떨면서 웃었다.
“크크크크…… 바보 같은 놈…… 좋아하지 마라…… 이제 나는 지위와 명예를 되찾을 수는 없겠지만 기필코 다시 살아날 것이다. 그때 네놈은 살아 있는 걸 후회하게 될 것이다!”
나는 픽 웃어 버렸다. 설득력이 없다.
“말은 누가 못 해요. 자.”
나는 호밀빵을 반절로 잘라서 켈두스에게 먹여 주었다. 이놈은 손발을 쓸 수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내가 굳이 먹여 준다. 켈두스는 호밀빵 냄새에 인상을 찡그리더니 이내 와구와구 먹어 치웠다. 나는 우유 컵을 들면서 킥킥 웃었다.
“성주님. 호밀빵에 고소한 우유도 꽤 맛있지?”
“……으음…….”
켈두스는 우걱우걱 호밀빵을 먹다가 우유를 급히 들이켰다. 이 자식 정말 식탐이 대단하다. 한 끼에 호밀빵 두 개씩은 먹는 것 같다. 평소 얼마나 호사스럽게 생활했으면 이렇게 위장이 큰 걸까. 내가 쓸데없는 생각을 할 때 켈두스가 입가에 묻은 빵 조각을 혀로 훑어내며 말했다.
“우유를 좀 더 다오.”
“없거든.”
“크윽.”
켈두스가 간절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지만 나는 무시했다. 이렇게 먹여 주는 것만 해도 감지덕지다. 이놈이 한 나쁜 짓을 알고 있으니 당장이라도 목을 베어 버리고 싶지만, 정도라는 게 있으니 참고 있을 뿐이다. 나는 턱을 괴고 하늘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아, 빨리 왕도에 도착했으면 좋겠다.’
“자.”
“……네놈은 후회할 거다.”
어쩔 수 없이 내준 따끈한 우유를 맛있게 먹다가 나를 희번득 노려보던 켈두스 백작이 말했다.
“그 마녀는 트위스티드의 10인방 중에서 밑에서 두 번째일 뿐이다. 그 마녀보다 강한 마인(魔人)들이 여덟 놈이나 더 있단 말이다. 이제 왕도에 도착하면 그들이 나를 구해 줄 것이다!”
“헉, 그래?”
나는 그만 입을 막고 깜짝 놀랐다. 켈두스 백작의 입가에 우유가 하얗게 묻어서 수염 같아서 웃을 뻔했다. 이 자식 개그의 재능이 있군.
이런 건 감춰야 좋은 비밀인데 나한테 말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아니, 그것보다 너 침 튄다고. 목 살이 두터우니까 발음이 잘 안 되나 보다. 켈두스가 끝내 자아도취 되어서 광소를 터뜨렸다.
“크하하하하하!! 왕도의 수비 따위로 그들을 막을 순 없어!! 쉐레드 왕세자 놈은 자신이 잘못 생각했단 걸 깨닫게 될 거다! 나는 그들로부터 신의 힘을 받아서 불로영생을 누릴 것이다!!!”
나는 그 순간 놈의 마음속을 읽어 보았다. 하지만 이놈은 방금 전에 떠든 그 말 이외에는 거의 아는 게 없었다. 신의 힘을 준다는 것도 트위스티드에서 켈두스를 끌어들일 때 한 말일 뿐이고 뭔지도 모른다.
나는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이놈이 광소를 터뜨리는 바람에 침이 내 얼굴에 다 튀었다. 아, 더러워…… 나는 잠시 얼굴을 감싸 쥐고는 조용히 말했다.
“백작님.”
“왜 부르나, 평민!”
기분이 더러워져서요.
나는 공립학사 시절 돌주먹으로 불렸으며 일진 놈들 두셋 골로 보낸 두 손을 까드득까드득 다듬었다. 그러자 켈두스 백작의 얼굴이 공포로 물들었다. 사람이 잘 해 주려고 하면 좀 적당히 하지 그래.
“안경 벗고 어금니 꽉 깨물어요. 알겠죠?”
“……네…….”
나는 켈두스의 안경을 벗겼다.
뻐억.
내 주먹이 순식간에 날아가서 푸들거리는 볼 살을 출렁이게 했다. 켈두스 백작은 그래도 똑똑한 것 같다. 마지막에 대답을 잘 해서, 죽지 않을 정도로 때릴 생각이다.
뻐억. 뻑. 뻑. 뻑.
“끼에에엑!!”
밖에서 수상쩍게 여기는 목소리가 들린다.
‘뭐지? 웬 돼지 잡는 소리가…….’
‘신경 꺼. 마법사님이 저래 봬도 켈두스 놈을 잘 돌봐 주신다고.’
‘그렇군.’
뻑. 뻐벅. 뻐어억.
“께에에에에엑!!”
나는 그렇게 남은 기간 동안 스트레스를 풀었다.
우리가 왕도, 필리아딘에 도착한 것은 그로부터 사흘 후였다. 기사들이 이야기한 대로 딱 맞춰서 온 것이다. 나는 비교적 대도시인 크렌도스 성에 살고 있었지만 왕도에 오는 것은 처음이라서 가슴이 두근거렸다.
대륙에서 가장 번화한 도시 중 하나.
하라바인 제국에 뒤지지 않는 대왕국 폴커의 심장부가 눈앞에 있다. 그 사실만으로도 눈이 크게 떠졌다. 나는 환호성을 내질렀다. 촌놈 취급받아도 괜찮아!
“오오!!”
마차 밖으로 성의 전경을 바라보자 가슴이 쿵쾅거린다! 왕도가 어떻게 생긴 건지 보고 싶었지만 너무 멀어서 꿈도 못 꿨는데!
[모험 스킬이 상승했습니다.]
쓰잘데기없는 글자가 자꾸 눈앞에 뜨는 것만 빼면 정말로 기분이 좋았다.
와글와글…….
마차를 마구간에 돌려주고 나오면서 햇볕이 따가웠다. 나는 살짝 얼굴을 찌푸렸지만 이내 놀랐다.
“우왓!”
기사들과 함께 시장 바닥에 나오자, 태어나서 한 번도 본 적이 없을 정도로 커다란 시장이 서 있었다. 족히 육륜마차(六輪馬車) 두 대가 나란히 달릴 수 있을 정도의 도로에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그리고 하늘에서는 웬 페가수스를 타고 날아다니는 로브 입은 마법사들이 마법을 중얼중얼 시전하고 있었다. 그들 하나하나의 시전이 끝날 때마다 먼지가 풀풀 날리던 것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버리곤 했다.
촤르륵…….
도시 곳곳에는 수로(水路)가 정비되어 있어서 배를 타고 물놀이를 하는 귀족들도 더러 보였다. 평민들조차도 고급스러운 옷을 입고 있을 뿐만 아니라 공중에 둥둥 뜨는 풍선 같은 기구를 타는 어린아이들도 보였다.
마치 이 모든 게 한 폭의 거대한 그림 같다.
“…….”
그 광경에 넋을 잃고 바라보자 기사 하나가 말했다. 상당한 자부심이 느껴졌다.
“언제 봐도 대단하지. 이 필리아딘 정문 거리는 10년 전부터 하나도 달라진 게 없다고.”
“10년 전부터 말입니까?”
내가 반문하자 그 기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왕도(王都)의 마법 수준은 다른 지역에 비해서 십오 년 정도 앞서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소? 지금 페가수스를 타고 공기 정화 마법을 쓰는 왕궁 소속 마법사들은 모두 4클래스 이상이오.”
“4클래스!!”
나는 크게 놀랐다. 보통 4클래스면 뛰어난 수재라도 최소한 5년 동안 고련해야 도달할 수 있다고 여겨지는 경지였다. 뿐만 아니라 그 정도면 웬만한 마법학사나 학교의 사범 자격을 얻을 수 있다. 그런 사람들은 돈보다 마법을 더욱 중요시했다. 성욕이나 식욕보다 지식욕이 앞선다고 보면 된다.
얼추 보아도 페가수스는 20마리도 넘게 날아다니고 있다. 고작해야 시장 거리의 공기 정화를 위해 투입되는 마법사만 그 정도라면, 정규 마법병단에는 얼마나 대단한 마법사들이 포진하고 있을까?
물론 예전에 만났던 그 센마라는 여자처럼 8클래스의 마법사는 드문 존재다. 7클래스부터는 마법사(Magician)가 아니라 마도사(Wizard)라고 칭했다. 마도사는 전 세계를 통틀어서 삼백 명도 되지 않는다고 한다. 성왕이 드래곤과 마물들을 몰아내어서 마법 문명이 극도로 발전한 지금에도 그렇다. 총 세계 인구가 2억 남짓이라고 하니 정말 희귀하기 그지없다.
8클래스를 대마도사(Archmage), 9클래스를 마스터(Master)라고 존칭하며 국왕조차도 대하기 힘든 자들이라고 한다. 나는 새삼스레 얼마 전 있었던 싸움이 얼마나 위험한 것이었는지 깨달았다. 8클래스 마법에 기사들을 혼자 상대할 정도의 무술 실력의 괴인이었다.
나는 기사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시장 거리를 걸었다. 기사들도 심심했는지 잡담을 많이 해 줬다.
멈칫.
왕궁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가던 중에 생각했다.
‘이대로 들어가도 되나?’
왕도를 구경한다는 목적은 그럭저럭 달성하고 있다. 중요한 건 금덩어리를 되찾는 건데, 만일 왕실 전속 마법사가 되어 달라거나 하면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그럴 수는 없다고 정중히 거절하고 나온다는 건 내 희망 사항에 불과하다. 잘못하면 이누타브 블레이드를 뺏기고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아, 생각 없이 와 버렸구나…….
나는 안절부절못하다가 좋은 생각이 났다.
“이봐요.”
“왜 그러시오?”
“나는 왕도가 처음이라서 조금 구경을 하다가 가고 싶은데, 기다리고 있을 테니 나중에 찾아와 주면 안 되겠습니까?”
기사가 무슨 말이냐는 듯 험상궂은 표정을 지었다. 윽, 역시 인상이 장난이 아닌데.
“무슨 소리요. 우리는 한시바삐 왕세자님께 보고를 해야 하오.”
“싫으면 난 그냥 가겠소. 금덩어리는 됐으니 잘들 계시오.”
그러자 기사가 크게 당황했다.
“아, 음. 잠깐만…….”
[허세 스킬이 상승했습니다!]
눈앞에 글자가 떠오르자 기분이 나빠졌다. 허세 부리는 건 알고 있지만 이렇게 들이대면 대체 어쩌자는 거야! 나는 대배우 뺨치는 가증스러운 연기력을 선보이기로 결심했다. 등을 돌리고 허허 웃으면서 노래를 불렀다.
“현자는∼ 거할 곳을 찾으나∼ 날아들∼ 자리가 없는데∼”
성왕의 책사가 남긴 유명한 노래다. 이름이 티마이오스 3세라던가?
숙덕숙덕.
그러자 기사들이 황급히 모여서 의논을 하기 시작했다.
물론 ‘듣기’ 스킬 하나만은 대륙제일인 내 귀에는 모두 들리고 있었다. 시장 바닥이라서 시끄러운데다 20미터나 떨어져 있어도 마찬가지다. 내가 원하면 왕궁 내궁 경비병이 코를 후비는 소리까지도 들을 수 있는 것이다.
‘야, 어떻게 하지? 저런 마법사를 놓칠 수는 없어!’
‘좋은 인재 등용했다고 하면 켈두스 백작 다리 잘린 것도 용서해 주실지도 모르지 말입니다. 왕세자님 성격 좋지 말입니다.’
‘야, 너 신참. 말입니다 말투 쓰지 말랬지.’
‘앗, 죄송합니다…….’
‘잡소리하지 말고 어떻게 할 거냐.’
‘어떻게든 잡아야 돼! 6레벨 마법사가 어디 흔한 줄 아냐?!’
그들은 한참이나 숙덕이더니 이내 내게로 다가왔다. 물론 나는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훤히 다 알고 있었다. 일단은 모르는 척 시치미를 뗐다.
“무슨 일이오?”
“저…… 마법사님. 그러면 딱 하루만! 왕도에서 기다려 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때까지는 어떻게든 보고를 마치고 모시러 오겠습니다.”
상당히 비굴한 말투다. 보통은 이 정도에서 넘어가겠지만 나는 사악한 웃음을 지었다. 입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싫은데요?”
“…….”
그러자 기사들 얼굴이 썩어 들어갔다.
후후후후후, 어리석은 것들. 가학적 쾌감 최고다!
나는 흠, 하고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뭐…… 하루 정도라면 그리 오래 걸리는 것도 아니고. 이 근처에서 제일 큰 여관이 어디요?”
기사 한 명이 잘됐구나 하면서 손을 들었다. 그는 근처 여관이나 술집에 대해서 빠삭한 것 같았다.
“5거리 6번 출구에 있는 켈호르 여관임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난 관광을 하며 거기서 묵고 있을 테니 찾아와 주세요.”
“오, 감사합니다.”
기사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뒤로 돌아서 왕궁으로 걸어가려 했다. 나는 그때 재빨리 그들의 앞을 가로막으며 손을 내밀었다. 기사들의 시선이 내 손에 꽂혔다.
나는 압박하듯이 손바닥을 쫙 폈다.
“음!”
“……무슨 뜻이신지…….”
나는 더욱 거세게 콧김을 내뿜었다.
“음! 내 돈을 내야 하나?”
“…….”
기사들의 표정이 다시 한 번 썩어 들어갔다. 나는 잠시 후 그들에게서 뜯어낸 580골드를 챙겨서 필리아딘 관광에 나섰다. 임무 수행용으로 받은 거금이리라.
하늘은 따뜻하고 기분은 좋았다.
[협박 스킬이 상승했습니다!]
……이상한 글자가 뜬 것만 빼면.
나는 제일 먼저 여관을 찾아가서 씻기부터 하기로 했다. 몇 날 며칠을 말만 타고 오다 보니 몸에서 냄새가 난다.
고작해야 오십 년 전까지만 해도 세간에는 병균이 들끓고 비위생적인 토사물이 넘쳐 났지만 수로를 만들고 각 도시의 시설을 정비하게 되자 자연히 역병이 줄어들었다. 그게 모두 성왕의 업적이다.
그리고 놀라운 발명품 [비누(Soap)].
세계 최고의 발명가인 블라스팅 자작이 발명해 낸 것이다. 식용유와 가성 소다, 대야나 철망을 이용해서 만드는 방법은 매우 획기적이었다. 초기의 비누는 품질이 안 좋고 피부에도 그리 좋지 않았지만 비누를 쓰자 서민들도 위생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블라스팅 자작은 뿐만 아니라 생산 공정이라는 것을 단축시켰다고 한다. 신생 직업인 연금술사나 기계술사들이 말하기를, 원래는 상당히 복잡한 마법적 공정이 있어야 생산을 할 수 있다고 한다. 그 공정을 체계화시켜서 수공업에 들어가는 노력을 단축시켰다. 뿐만 아니라 대규모 천일염에서 간수를 만들어 내어서 소다를 다량으로 만드는 데도 공헌했다.
아, 이런 말 해도 보통은 잘 모른다.
잠깐 연금술사의 조수로 일한 적이 있어서 조금 알고 있을 뿐.
블라스팅 자작에 대해서 이토록 자세하게 알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니라 우리 에서론 자작님이 골든프릭스 용병단에 있었을 때의 동료이기 때문이다. 자작님은 블라스팅 자작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도 하셨다.
골든프릭스 용병단.
지금은 사망한 용병왕이 이끄던 세계 최고의 용병단. 거기에 소속된 멤버는 용병왕을 포함해 총 여덟 명이었다. 용병왕은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면서 수많은 위업을 남겼다. 에서론 자작님은 용병왕의 왼팔로 활동했으며, 폴커 왕국에서 유일하게 골든프릭스의 살아 있는 전설로 불리는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