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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1(6화)
제1장 레벨 1(6)
그렇게 사흘 밤낮을 마차로 가자 점차 피곤해졌다. 켈두스 백작은 이제 발광할 힘도 남지 않았는지 죽은 듯이 쓰러져 있었다. 나는 이 지루한 여행이 언제 끝날지 궁금했지만 어쨌든 내 황금을 찾아야 한다.
나는 간간이 켈두스의 입을 막은 솜을 빼 주고는 했다. 너무 막아 두면 기절하기 때문이다. 그러자 켈두스가 죽일 듯한 눈으로 나를 노려보다가 말했다.
“놈…… 네가 콘월의 성주를 능멸하고도 살기를 바라느냐?”
그래도 귀족이라고 박력은 있구만. 지위를 이용해서 압박을 해와도 나는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어차피 쉐레드 왕자한테 갖다 바치면 당신 몰락하잖아? 지금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잖아.”
“…….”
켈두스는 입을 열지 못했다. 그렇다. 마음을 읽어 보니 남은 켈두스의 신세는 암담 그 자체다.
원래 켈두스 백작은 쉐레드 왕세자와 반대 파벌의 인물이었다. 그래서 켈두스는 어렸을 때부터 쉐레드 왕세자를 줄창 암살하려고 했다.
그런데 어린 쉐레드 왕세자가 토르온 경의 도움으로 살아남아 장성하자 이제 최악의 상태에 놓인 것이다. 아마 수도에 도착하면 여죄가 낱낱이 까발려지고 일족 모두가 참수형에 처해지게 될 것이다. 허세가 안 통하는 걸 깨달은 켈두스가 필사적으로 말했다.
“지금이라도 날 풀어 줘라. 그놈들이 입을 막으려고 날 습격할 게 분명해. 너와 나만이라도 도망친다면 조금이라도 더 살 수 있단 말이다!!”
“그놈들?”
내가 그 말에 궁금해져서 마음을 읽으려고 할 때였다.
밖에서 큰 외침이 들려왔다.
“오오! 미녀다!!”
“엉?”
어디?!
미녀라는 한 마디에 눈이 번쩍 뜨여서 마차 밖으로 나갔다. 마차 행렬은 잠시 멈추어서 인기척 없는 관도에 서 있었다. 말들이 푸르륵거리며 땀을 식히고 있었고 기사들이 전방에 모여 있었다.
나는 기사들을 헤치고 나가서 정면을 보았다. 기사들은 도열해서 상대를 경계하면서도 헤벌레하고 시야를 고정시키고 있었다.
“무슨 일입니까?”
“웬 여자 한 명이 다리를 막고 있습니다.”
힐끗 바라보니, 약 40m 정도 떨어진 곳에 검은색 도적 복장을 한 여자가 서 있었다. 그런데 멀리서 보는데도 몸의 굴곡이 확실히 드러나 보일 정도인데다, 보이는 얼굴이 쉽게 볼 수 없는 미형(美形)이었다. 아마 가까이서 보면 억 소리 날 정도의 미녀일 것이다.
그녀는 샴시르(동방의 기형검) 같은 것을 어깨에 메고 터번 같은 것을 두르고 있었다. 머리칼이 검은색인 것을 보면 동방 사람인 것 같다. 게다가 입고 있는 복장이 활동성을 강조한 것인지라 노출이 제법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좀 더 가까이서 보려고 달려갔어야 정상이다. 병사 생활 하는 동안 여자 보기가 그리 쉽지 않다. 더욱이 저런 미녀라면 건강한 청년이니 발정이 났어야 정상이다. 하지만 나는 왠지 모르게 불안감이 들었다.
나는 듣기를 해 보았다.
쿵쾅. 쿵쾅.
기사들은 대개 미녀를 보았다는 흥분감에 심장이 크게 뛰고 있었다. 마음도 그다지 다를 게 없어서 웬 미녀가 나타났다는 식이었다. 개중 리더 격인 기사는 그나마 수상하게 여겨서 기사들을 제지시키고 있었다.
불길한 소리가 들려오는 건 저 검은 도적 여자 쪽이다. 옷 쪽에서 자꾸 샤르륵거리는 모래 소리가 난다. 게다가 입에서는 무언가를 자꾸 중얼거리고 있다. 그것도 마법사 지식이 있는 내게는 익숙한 룬(Rune)이다. 무언가 마법 주문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켈두스 백작의 말이 생각났다.
‘큰일 났네.’
거리가 멀어서 마음을 읽을 수 없다는 게 한스러웠다. 최소한 좋은 의도로 온 사람은 아니라는 생각에 외쳐서 물었다.
“당신은 누군데 길을 막습니까?!”
그러자 대답이 들려왔다. 약간 저음이었지만 허스키하다. 그러면서도 여자라는 걸 구분할 수 있을 정도의 미성(美聲)이었다.
“너희를 죽일 사람!”
덜컹.
나는 심장이 내려앉았다.
분명히 이 목소리는, 켈두스 백작을 잡기 전에 6클래스 주문인 프리 텔레포트로 공중에서 사라져 버린 그 여자의 목소리인 것이다. 마법사 레벨을 올리고 나서 알게 된 것이지만 주문과 동작 요소를 생략하고 주문을 쓰기 위해서는 최소한 원래 레벨보다 2레벨 높은 주문을 구사할 줄 알아야 한다.
저 여자는 최소한 8클래스의 마법사다. 그러니까, 대마법사라는 말이다. 이런 젠장?! 뭐 이런 빌어먹을 일이 자꾸…….
나는 급히 이누타브 블레이드를 뽑아 들고 아무 주문이나 생각나는 대로 외쳤다. 어떻게든 방어해야 해!
“필드 오브 아이스(Field of Ice)!!”
그와 동시에 여자도 주문을 외쳤다.
역시 타이밍을 노리고 있었다!
“룬 오브 사이로니드(Rune of Psyronid).”
키잉!
영창이 끝나자마자 냉기의 얼음벽이 사방에 둘러쳤다. 얼음벽 하나하나는 두께가 몇 미터나 되어서 웬만하면 뚫거나 부수려는 엄두도 내기 힘들 정도였다. 나는 경비병 일을 하며 눈을 치워 보았기 때문에 얼마나 단단한지 알고 있었다. 아마 인부 200명이 몰려와서 사흘 밤낮을 삽과 곡괭이로 깨도 안 될 거다.
게다가 마법적인 방어벽이기 때문에 웬만한 충격으로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공성용 발리스타를 수십 방 때려야 깨질까 말까?
내 시동어로 필드 오브 아이스 주문이 펼쳐지자마자 룬 오브 사이로니드라는 주문의 역장이 느껴졌다. 마법사끼리는 역장을 통해서 서로의 존재를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웅웅웅.
얼추 느껴지는 역장의 크기는 필드 오브 아이스에 비해 그리 크지는 않았다. 이건 마법의 세기를 말해 주기도 한다. 투명한 얼음벽을 통해 비쳐 보이는 미녀의 전신에서 붉은 영기가 흘러나왔다. 그 영기는 허공에 붉은빛의 창을 만들어 내더니, 이윽고 엄청난 기세로 쏘아져 왔다.
구웅.
땅에 스치지 않고 날아오는 것만으로도 대지가 녹아 버린다. 이윽고 화살처럼 쏘아진 적색의 창이 필드 오브 아이스에 꽂혔다. 나와 기사들은 미리 충격에 대비하고 있었지만 다음 순간 눈을 뜨지 못할 정도였다.
쉬잉쉬잉.
얼음이 유리알처럼 깨지고 거침없이 룬의 문자가 떠오른다. 그 문자는 다섯 개의 세부 문자로 변화하더니 또다시 불꽃의 작은 화살이 되어서 폭발했다. 우리는 얼음벽 안에 있는데도 냉기는커녕 열기가 느껴지는 걸 알고 경악했다.
콰과과과광!!
“헉!”
“으…… 우와…….”
나는 황당해졌다. 얼음벽이 거의 다 뚫리고 고작해야 20cm 정도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금만 더 주문의 위력이 강했으면 우리 모두가 통구이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이런 위력의 마법이 있다는 건 태어나서 처음 보았다.
쉬익!
“훗.”
“조심하시오!”
카앙!
어?!
내가 당황하는 사이에 내 옆으로 기사 두 명이 와 있었다. 그들은 뛰어난 반사 신경으로, 프리 텔레포트로 내 옆에 나타나 옆구리에 샴시르를 찔러 넣으려던 검은 도적 미녀를 막아 낸 것이다. 두 명이 롱소드를 겹치고 있는데도 그들은 팔이 저린 것 같았다.
너무 빨라서 공방을 보지도 못했어! 기사들이 노성을 질렀다.
“암살자다!”
“마법사를 보호해!!”
난전의 기본은 주문 사용자를 보호하는 것이다. 마법사의 존재가 전투에 큰 비중을 이룬다.
뻐억.
“큭.”
그러자 그 여자가 터번을 휙 하고 휘두르며 기사 하나를 견제하곤 발차기만으로 장정을 두 걸음이나 물러나게 했다. 명백한 비웃음이 흘러나왔다.
“머저리들…… 너희 실력으론 힘들지!”
스가가강.
두 자루의 샴시르가 튕겨 나오듯 허공을 누빈다.
그녀는 우리가 채 포위망을 갖추기도 전에 가운데에서 현란하게 검무(劍舞)를 추기 시작했다. 마치 허공에 새하얀 궤적이 그려지는 것처럼 보일 정도다.
키리링.
샴시르는 롱소드보다 훨씬 짧았지만, 어떻게 된 건지 기사들은 그 검무의 소용돌이에 들어 있기라도 한 듯 쩔쩔매며 뒤로 물러났다. 마치 샴시르에 보이지 않는 칼날이라도 덧씌워져 있는 듯했다.
“큭!”
나는 급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눈에 힘을 주니까 이마에 핏줄이 서는 것 같다.
센마
Lv. 37
엘더 룬 마스터 24
광기의 서번트 5
어쌔신 6
트위스티드 멤버 2
……레벨 37?!
나는 순식간에 공황 상태에 빠졌다. 예전에 마주쳤던 레벨 21짜리 경기병 대장만 해도 기사들 중 두세 명이 합공해서 겨우 동수를 이루었다. 내가 포함되어 있다지만 이 인원으로는 레벨 37짜리를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할 수가 없다.
그때 눈가로 무언가가 스치고 지나갔다.
도움말 :
트위스티드 멤버는 ‘지위 레벨’입니다.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으로 일정한 직위를 가질 경우엔 지위 레벨이 상승합니다. 이 지위 레벨은 전투 레벨에 대해서 패널티로 작용하지 않습니다. 지위 레벨은 최대 10까지 상승시킬 수 있습니다.
아, 그러신가요!
‘……그딴 거 지금 필요 없거든?!’
그 순간 내 머릿속에 웬 불길한 상상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렇다면 레벨 10이 단체의 대장이다. 어떤 단체인지는 몰라도 최고 수준이 10이라면, 레벨 2인 센마라는 여자는 조직의 말단에 불과하다는 소리다.
나는 이 가까운 거리에서 마법을 쓰면 모두 휩쓸릴 것 같아서 쉽게 이누타브 블레이드에 저장되어 있는 마법을 쓸 수가 없었다. 그래서 혹시나 해서 대인 공격용 마법이 있는지 찾아보았다.
‘대인 공격 마법이 있나?!’
이누타브 블레이드에 내장된 9클래스 티마이오스(Timaeus)와 자체 사용 가능한 1클래스 매직 미사일(Magic missile)이 있습니다.
이왕이면 센 걸 쓰는 게 맞을 것이다.
왜냐하면……
카캉!
캉!
캉! 채앵!
“끄악!”
“레드!”
저 여자는 제1기사단의 정규 기사 8명을 상대로 혼자서 몰아붙이고 있다. 지금도 한 명이 배 쪽을 당해서 비명을 질렀다. 가죽 갑옷을 입고 있어서 창자가 쏟아지지는 않았지만 피가 꾸역꾸역 나온다. 센마의 샴시르에서 솟아오르는 투명한 기운을 간파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검술가끼리의 대결에서 저 차이는 치명적이다.
‘저건 대체…….’
[검기(劍氣). 서방에서는 소드 라이트(Sword Light)라고 부른다. 근접 계열 클래스가 최소한 25가 넘어야 사용 가능한 스킬입니다. 사용 가능까지 필요한 경험치 19,283,492입니다.]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검긴지 뭔지 모르겠지만 이대로 두면 다 죽게 생겼다. 검기라는 건 강철 갑옷도 찢어 버리는 위력이 있으니 당하는 것도 시간문제다!
나는 마음의 결정을 내리고 손을 내뻗었다.
최대한 빠르게 주문 집중과 수인, 영창을 끝내 버렸다. 기사 한 명이 또 당해서 무릎을 꿇는 모습이 보이자 마음이 조급해졌다.
“매직 미사일!!”
퍼억!
내 손에서 기습적으로 튀어 나간 새하얀 화살이 센마의 허리 쪽으로 스치고 지나갔다. 센마는 의외인지 순간적으로 내 쪽을 바라보았다. 살기 어린 시선에 전신이 마비되는 것 같다.
하지만 이를 악다물고 버텼다.
[레벨 차이에 따른 공포 체크. 성공입니다.]
부웅.
나는 몸을 바로잡고, 생각하고 있던 대로 이누타브 블레이드를 휘둘렀다. 센마는 가볍게 피했지만 일단 잠깐의 시간을 벌었다. 기사들이 위험하니까 일단 내 쪽으로 시선을 돌린 후, 필살기인 9클래스 주문을 먹여 주면 되는 것이다.
센마의 샴시르가 허공에서 선을 그리는 사이 내가 외쳤다.
“티마이오스Timaeus!!”
지이잉
눈앞이 녹아내린다.
주문의 영창이 끝나자마자 세계가 엄청나게 느려지기 시작했다. 어두운 극장 안에 홀로 서 있는 것 같다. 시간이 멈춘 건지 생각했지만 그건 아니었다. 단지 내가 현실 세계와는 전혀 다른 곳에 와 있는 것 같았다.
센마 또한 움직이고 있지만 엄청나게 느리게, 두둥실 떠오르듯이 존재감이 없었다. 인형극을 보고 있는 것 같다. 대체 이 상황은 뭐지?
이 9클래스 주문은 뭐지…….
눈앞에 글자가 떠오른다.
티마이오스Timaeus
9클래스 대인 공격 주문 ‘공간’.
주문의 이름은 세계 최초의 9클래스 마법사 티마이오스 3세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 티마이오스의 목적은 신에게 대항하기 위한 것으로, 시공간의 전위차(傳位次)를 이용해서 모든 공격을 회피할 수가 있다.
마법을 포함해서 어떠한 수단으로도 티마이오스 시전 동안은 시전자에게 해를 입힐 수가 없다. 시전자는 ‘물에 비친 달’과 같은 상태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전자는 티마이오스의 전개 시간 동안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으며, 상대에게 해를 입힐 수는 없다.
티마이오스의 시간은 시전자와 신적 존재만이 인식할 수 있다.
……어려워서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 요는 이 주문은 절대회피라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