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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1(5화)
제1장 레벨 1(5)


부웅.
그는 어느새 품속에서 웬 그물채를 꺼냈고, 그 조그만 그물채 안에는 천둥석이 열 개도 넘게 들어 있는 것이었다. 채 놀라기도 전에 그 경기병은 그물채를 허공으로 쫙 뿌렸다. 그물채가 허공에서 풀려 나가며 천둥석이 사방으로 후두둑 떨어지기 시작한다.
만일 저걸 하나라도 맞으면 나는 당장에 마비되고 말 것이다. 뇌전 계열 마법은 경비병 훈련 과정 중에 맞아 본 적이 있다. 1레벨 뇌전 주문만 맞아도 팔다리가 후들거리는데, 2레벨 주문을 맞으면 심장이 멎을지도 모른다. 여러 개 맞으면 내장이 구워질지도 모르겠구만.
그때 내 머릿속으로 번개처럼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이누타브 블레이드는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 그것은 마력이 없는 사용자가 들고 있어도 마찬가지라는 뜻이 아닐까? 그렇다면 마법을 사용해서 이 위기를 모면할 수 있을 것이다.
‘루나 플레이트(Lunar Plate)?’
[시동어를 외쳐 주십시오.]
스악―
땅바닥을 튀기고 천둥석 하나가 머리를 노리고 솟구쳐 올랐다. 나는 엉덩방아를 찧으며 그걸 간신히 피했다. 시동어란 게 뭔지 모르지만 말하지 않으면 마법이 발동 안 되는 거 같다. 나는 급히 외쳤다.
“루나 플레이트!”
지잉.
그러자 내 전신을 둘러싸고 둥그런 은빛 막 같은 게 무수히 생겨났다. 그것들 하나하나는 쟁반 정도의 크기였는데, 놀랍게도 천둥석들은 쟁반에 닿자마자 튕겨 다니던 것을 멈추고 땅바닥에 떨어졌다. 루나 플레이트가 어떤 마법인지는 몰라도 천둥석보다는 마력이 윗줄에 있는 것 같다.
미드로엔이라고 하는 경기병 대장이 놀라서 외쳤다.
“6클래스 마법을 쓰다니! 쉐레드 왕자가 그 정도 마법사를 고용할 수 있던가!”
“헤헹, 집중하시지!”
까깡.
“크윽.”
기사들 중 두 명이 순식간에 미드로엔에게 달라붙어서 압박해 나갔다. 기사들은 2연속 찌르기라던가 점프 슬래쉬 같은 기술을 쓰면서 미드로엔이 다른 싸움에 가세하지 못하도록 했다. 미드로엔은 이 중 최고의 고수였지만 쉽사리 그들을 떨쳐 내지 못하는 것 같았다. 기사들도 상당한 실력자다.
나는 루나 플레이트의 효과가 아직 사라지지 않은 것을 깨달았다. 천둥석이 모두 잠잠해지자 나는 시험 삼아서 쟁반을 움직인다고 생각하고 손을 앞으로 쫙 뻗어 보았다. 그러자 내 주변에 방어막처럼 둘러쳐 있던 수백 개의 은빛 쟁반들이 경기병에게로 덮쳐 갔다.
핑핑. 핑.
“크오옷!!”
경기병은 급히 말로 후진하며 그 공격을 피해 내려고 했지만 은빛 쟁반들은 마치 암기를 던지는 것처럼 빠르게 그를 공격했다. 경기병이 이윽고 배와 가슴에 쟁반을 맞자, 그는 피도 나오지 않은 채로 기절하듯이 말에서 떨어졌다. 혼이 빠져나간 것처럼 눈이 비어 있다.
풀썩.
“좋았어!”
나는 쾌재를 불렀다.
이건 아무래도 공격용으로 쓸 때는 적중한 대상을 기절시켜 버리는 힘이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마법이란 건 태어나서 처음 써 보지만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나 같은 평범한 경비병도 훈련받은 정예를 쓰러뜨릴 수 있는 것이다.
눈앞에 다시 글자가 떴다.

J. S.
레벨업 경험치 초과.
현재 가능 레벨업 ― 병사 5
혹은 마검사 2
레벨업 방식을 선택해 주십시오.

‘레벨업이라고 외치면 강해진다 이거냐? 병사 5가 되거나 마검사 2가 되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 이거겠지?’
나는 이제 이 시스템에 대해서 감을 잡을 수 있을 것 같다. 개별적인 능력치, 혹은 스킬은 레벨을 올리지 않아도 따로 경험치를 투자해서 늘일 수 있다. 레벨의 상승은 스탯에 따라서 전직 가능 직업이 생긴다. 병사로서 성장할 것인지, 아니면 마검사로서 성장할 것인지를 내게 묻고 있는 것이다.
나는 검과 마법을 다 쓰는 마검사에 크게 끌렸지만 일단 단념했다. 왜냐하면 스탯의 상승과 상태에 따라서 전직 가능 직업이 생긴다면, 좀 더 스탯을 올리고 기술을 강화시켜서 얻을 수 있는 직업이 있을 것 같았다. 대신에 나는 생각했다.
‘마법을 배우고 싶어.’
[마법사 전직 조건이 충족되지 않았습니다.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지능’이 20에 도달해야 합니다.]
그러면 올리면 되지!
‘지금 경험치로 지능을 20으로 만들 수 있어?’
[명령어를 외쳐 주십시오.]
“레벨업! 레벨업!”
[마법사 2로 레벨을 올리시겠습니까?]
“레벨업!”
단조로운 글씨가 흘러나왔다.

J. S.
현재 레벨 ― 병사 2 마법사 2
MP가 생성되었습니다.

나는 이제 내가 마법이란 걸 쓸 수 있게 됐다는 걸 알아차렸다. 뭔가 똑똑해야 마법을 배울 수 있는 건가 보다. 내 머릿속에 순식간에 온갖 마법의 지식이 들어차기 시작했다. 나는 그것들 중에서 내가 쓸 수 있는 최고의 마법을 골라내서 외쳤다.
“매직 애로우!!”
피잇.
“어림없다!”
날아가던 1클래스의 매직 애로우는 미드로엔의 창 휘두르기 한 번에 사라지고 말았다. 나는 그 광경을 허무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여유가 생긴 기사 하나가 실망스러운 듯 내게 외쳤다.
“거기 마법사! 좀 고레벨의 마법을 써 주시오! 10살짜리도 쓰는 매직 애로우는 갑자기 왜 쓰시오?!”
“…….”
아. 그런가요…… 죄송. 몰랐어요.
채앵. 챙.
격렬한 전투 도중 경기병이 둘이나 쓰러지자 미드로엔은 고민을 하다가 갑자기 외쳤다. 심란한 표정이었다.
“퇴각! 즉각 증원을 불러온다!”
“네!”
투두두두.
말이 급격히 후진을 시작했다. 증원을 불러와 봤자 그 때는 이미 켈두스 백작은 죽고 없을 것이다. 그걸 뻔히 알면서도 저런 말을 하는 것은 간단하다. 켈두스 백작 때문에 목숨까지 걸긴 싫은 거다. 그리고 승산 없는 싸움 때문에 부하들의 목숨을 버리기도 싫을 것이다.
다그닥다그닥.
“이랴!”
미드로엔과 남은 두 경기병은 사상자들을 재빨리 챙겨서 저 너머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말을 타고 있어서 이쪽에서 쫓아갈 수는 없었다. 전투가 일단락나자 나는 겨우 한숨을 내쉬었다. 태어나서 변변한 싸움도 못 겪어 봤는데 이렇게 대단한 전투를 하다니 놀라웠다.
앉아서 쉬고 있자 기사들 중 한 명이 내게 다가와서 말했다. 아까 점프 슬래쉬를 쓰던 기사다.
“6클래스의 주문을 사용할 수 있는 마법사셨으면 좀 더 정중하게 대접해 드렸을 것을. 도와줘서 고맙소. 실례지만 성함을 알 수 있겠는지…….”
“에, 그러니까.”
나는 대답을 하려다가 내 병사 복장 옷차림이 눈에 띄었다. 기사들의 시선도 동시에 거기로 향했다. 윽, 이 녀석들 크렌도스 성의 경비병 복장을 알려나? 나는 이 상황에서 대마법사로 행세하는 게 뻘쭘해져서 그냥 본명을 말해 버리기로 했다.
“……J. S.라고 합니다.”
“그렇구려. 저희는 왕국 1기사단의 기사들입니다. 왕세자님의 명으로 탐관오리 켈두스를 잡으러 왔소.”
나는 힐끔 켈두스가 있던 풀숲을 보았다.
기사들의 시선도 거기로 쏠렸다.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걸음을 옮겨서 켈두스가 있는지 없는지 확인했다. 켈두스는 아니나 다를까, 다리가 잘린 채로 피를 너무 많이 흘려서 기절해 있었다. 빨리 지혈하지 않으면 죽을지도 모른다. 기사들이 놀라서 외쳤다.
“아니, 이럴 수가! 켈두스의 다리가 잘리다니!”
“끔찍하군! 대체 누가 이런 짓을!”
“악인에게도 인권은 있거늘!”
나는 순간 그들의 마음을 읽었다.
갑자기 기사들의 얼굴에 귀면상이 씌었다. 켈두스 하나 때문에 타지에서 죽도록 고생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저 빌어먹을 자식 잘됐구만!’
‘저 마법사가 베었나 보네. 우린 책임 없어!’
‘목을 못 잘라가는 게 한이다, 크흐흐!’
“…….”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사람은 정말 겉 다르고 속 다른 것 같다. 나는 이 자리에서 물러나기로 했다. 그래서 실실 웃으면서 손을 내밀었다.
“아까 가져간 내 금덩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아, 그거 말입니까.”
앳되 보이는 얼굴의 소년 기사가 고개를 번쩍 들더니 말했다. 당당한 말투다.
“텔레포트 마법진으로 수도 행정과에 보냈습니다.”
“……어?”
“뭐시기…… 뭐라고요?”
순간 모두가 벙쪄 버리고 말았다. 농담하지 않고 최소 일만 골드는 나갈 금덩이다. 그걸 고스란히 왕궁에 갖다 바쳤다고 하니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 그런 심정은 나만이 아닌지, 기사 하나가 소년 기사의 멱살을 잡았다.
“야, 이 자식아!! 금은 그렇다 치더라도 그 마법진 일회용이잖아!! 너 진짜 마법진 전송했냐!!”
“켁…… 그렇습…….”
“아으으으!! 왕궁까지 걸어가게 생겼구만!”
기사들은 다들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그들은 금은 어찌 되든 상관없지만, 왕궁까지 걸어갈 생각에 막막한 것 같았다. 나는 금을 잃어버린 충격에 정신이 혼미해졌다. 도대체 그게 얼마짜린데…….
일만 골드.
1골드가 만 개 모이면 일만 골드.
1골드로 이틀 동안 숙식 걱정 없이 살 수 있다.
30년 동안 먹고살 수 있다.
…….
“크아아아아아아아!!!”
“으악! 마법사가 화났다!”
“진정시켜!! 주문 못 외우게 해!”
“가라 1호!”
“누가 1호래!”
철푸덕.
내가 분노의 괴성을 지르자 기사들이 기겁을 해서 사방에서 덮쳐 왔다. 나는 그들에게 깔려서 숨도 못 쉴 정도로 눌렸다. 안 그래도 무거운 장정들이 몇 겹씩 겹친 데다 갑옷까지 입고 있으니 죽을 것만 같았다.
“으겍…….”
나는 엎드린 상태에서 웬 메시지가 눈앞에 떠오르는 걸 보았다.

공격당했습니다!
HP 45/65…… 44/65

……어쨌든 나는 기사들을 따라서 왕궁으로 가기로 했다.
그들의 말로는 켈두스를 포박하는 데 큰 도움을 줬기 때문에 포상을 준다고 한다. 귀족 작위를 받을 수도 있고 마법병단에 소속될 수도 있다고 한다. 그 외에도 기사들은 갖가지 말로 나를 꼬셨다. 아마 고클래스 마법사는 드문 인재기 때문이겠지.
하지만 나는 무엇보다도 확실한 하나의 목표가 있었다.
나는 이누타브의 검을 꽉 붙잡고, 왕궁으로 향하는 마차에서 달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애수에 잠긴 눈으로 중얼거렸다.
“내 금덩어리…….”
작위든 뭐든 상관없지만 그건 꼭 찾아야 해!

왕도까지는 무려 편도로만 500km가 된다. 아무리 빠른 마차 편을 타고 가도 최소한 열흘은 걸린다. 말들의 체력은 5일 동안 풀로 버틸 수 있다지만, 마부의 체력이 따라 주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인원이 많으니 최고 속도를 내기는 힘들었다. 그 때문에 예상 시간을 보름 정도로 보아야 했다.
기사들은 마차를 타고 가기 전에 내게 말했다.
상당히 내게 조심하는 말투였다.
“부탁이 있습니다, 마법사님. 켈두스 백작과 같은 마차에 타서 감시해 주셨으면 합니다.”
나는 어리둥절해졌다.
“네? 왜 제가…….”
“켈두스 백작은 마법 아이템을 가지고 있는데, 저건 주인에게 착용되는 순간 죽을 때까지 빠지지 않는 일체형이라서 곤란합니다. 마법역장을 억제해서 저자가 아티팩트를 사용하지 못하게 해 주시면…….”
“…….”
마법사 레벨을 올렸기 때문일까, 나는 그 말이 뭔지 대충 이해할 수 있었다.
마법사들끼리는 마법역장(Magic Force)이라는 걸 지니고 있는데, 마법을 사용할 때는 그 역장이 발동하게 되어 있다. 이 역장은 어지간히 큰 차이가 나지 않는 이상 서로 간에 간섭하지 않고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게 되어 있다. 그래서 마법사들은 역장을 전문적으로 제어하는 기술을 배우게 되는데, 그것을 디스필드(Disfield)라고 한다.
보통 정식 마법사로 인정받는 최소한의 기준이 1클래스의 주문을 디스필드 하는 것이다. 백작의 팔목에 달려 있는 아이템도 1클래스의 파이어 링(Fire ring)에 불과하기 때문에, 그들은 내가 충분히 디스필드 할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있는 듯했다.
나는 의혹이 생겼다. 뭘 귀찮게 사람한테 이것저것 시키고 있어. 어차피 동정할 건덕지도 없는 인간인데.
“그냥 손 자르면 안 되나요?”
“왕세자님 지시가, 애초에 최대한 상처 없이 데려오라는 거라서……. 지금 다리 잘린 것도 어떤 문책을 받을지 전전긍긍하고 있습니다. 제발 부탁드립니다.”
기사의 애절한 표정을 보자 마음이 흔들렸다. 나도 경비병이라서 하급자의 애환은 알고 있다.
“그러죠 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디스필드 정도라면 무난하게 할 수 있을 거 같다.
쿠오오.
마차 안에 들어가자마자 켈두스 백작이 넘어지듯이 돌진해 왔다. 커다란 얼굴이 시뻘겋게 용을 썼다. 이 자식 언제 밧줄 풀었어!
“크오오오!”
파이어 링을 전개시킨 상태였다. 나는 당황했지만 이내 카운터 펀치를 때려 줬다.
뻐억.
“커윽.”
손발이 강철 사슬에 묶이고 부자연스러운 상태니까 반격하는 건 일도 아니다. 켈두스 백작은 얻어맞고 마차 안에 쓰러졌다. 약골인지 한 대 맞고 기절해 버린 것 같았다.
“깜짝 놀랐잖아, 자식이.”
나는 투덜거리면서도 정신을 집중해서 디스필드 기술을 쓰기 시작했다. 디스펠과 다르게 디스필드는 약간의 요령만 있으면 쉽게 쓸 수 있다.
[디스필드 스킬이 상승했습니다.]
아마도 이건 주문이 아니라 스킬로 보는 것 같다. 한 번 디스필드에 성공하면 2시간 동안은 발동되지 않기 때문에, 나는 켈두스의 입을 솜으로 틀어막고는 한숨 붙이기로 했다. 슬슬 잠이 들려고 할 때 다시 켈두스의 괴성이 들려왔다.
“웁. 우웁. 웁. 웁.”
돼지 우는 소리 같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갑자기 배가 고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