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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1(4화)
제1장 레벨 1(4)
나는 싸우고 있는 화이트 유니콘의 대장을 바라보았다.
미드로엔
Lv. 21 화이트 유니콘 부단장
직업 창술사 10
경기병 11
HP 574
MP 29
레벨이 21이나 된다. 레벨 2인 나와 비교하면 천지 차이다. 아까 확인했던 이쪽 기사들의 레벨은 평균 17. 개개인의 실력으로 저 미드로엔을 뛰어넘을 만한 기사는 없다. 단지 저쪽도 미드로엔을 제외하면 레벨이 15 정도이다. 전체적으로는 호각이라고 할 수 있다.
바둥바둥.
그것보다 지금 문제인 것은, 나는 전장과 떨어져 있지만 꽁꽁 묶여 있는 상태라는 것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싸움이 어떻게 끝나든 앞날을 장담할 수가 없다. 나는 어떻게든 이 상황을 타개하고 싶지만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
이러다가 눈 없는 칼에 맞아 죽으면 어떡하지?
나는 내 눈에 떠오르는 이상한 글자에 필사적으로 정신을 집중했다. 여기에 해결법이 있을 것 같다.
내 인생을 이렇게 만들어 놨으면 책임을 져!
뭔가 방법이라도 보여 달라고!
그러자 글자가 반응했다.
[도움말을 여시겠습니까?]
도움말?
어서 열어 봐!
예전에 보았던 스테이터스(Status)인가 하는 창이 쫙 열렸다. 현재 내 상태와 장비, 레벨, 스킬 같은 게 싸그리 다 나와 있었다. 그중에서도 [듣기] 스킬은 Master라고 표시되어서 경험치 바가 꽉 채워져 있었다.
[도움말 :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
에, 일단, 밧줄 푸는 법!
이것부터 풀어야 뭘 하지!
[밧줄을 푸시려면 ‘탈출’ 스킬을 찍으셔야 합니다. 남은 경험치를 소모하셔서 탈출 스킬의 레벨을 찍으시겠습니까?]
왠지 손해 보는 느낌이 든다.
다른 방법이 없는지 머릿속으로 생각하자 연이어서 글자가 나왔다.
[기본 스테이터스인 ‘힘’이 25 이상이 되면 탈출 스킬이 부족해도 밧줄을 끊으실 수 있습니다. 기본 스테이터스를 올리는 데는 스킬 레벨업의 1.5배만큼 경험치가 소모되니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힘’을 올리시겠습니까?]
생각할 것도 없다. 힘 세지면 좋은 거다!
나는 그만 또다시 외쳐 버리고 말았다.
“레벨업!레벨업!레벨업!레벨업!레벨업!레벨업!레벨업!레벨업!레벨업!레벨업!레벨업!!”
그리고 연이어서 뜨는 메시지. 얄밉지만 지금은 그 이상 고마울 수가 없다.
[힘이 26이 되었습니다. 잔존 경험치 293입니다.]
빠직!
전신에 힘을 주는 순간 밧줄이 뜯겨 나갔다.
나는 밧줄에서 풀려나자마자 재빨리 무기가 될 만한 걸 찾았다. 이럴 때일수록 침착해야 한다. 분명히 저 녀석들이 나한테서 뺏은 물건을 뒤편의 수풀에 놔두는 걸 발견했다. 풀숲을 헤치고 들어가 보자, 썩은 나뭇등걸에 붉은 비늘보검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나는 붉은 비늘보검을 잡고 칼을 빼어 냈다.
스릉∼
소리가 맑고 깨끗했다. 나도 명색이 훈련을 받은 몸인지라 어떤 무기가 좋은 줄은 알고 있다. 태어나서 이런 소리를 내는 보검은 처음 만져 본다. 놀라고 있을 때 눈앞에 글자가 스쳐 지나갔다.
[‘적룡(赤龍)의 검갑’과 ‘이누타브 블레이드’ 획득. 장비 완료했습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누타브 블레이드라고 하는 이 무기의 능력에 대해서도 알아보고 싶어졌다. 약간 정신을 집중하고 갈망하자 다시 글자가 스쳐 지나가다가 떠올랐다. 아무래도 이 글자는 내 의지에 따라 반응하는 것 같다.
이누타브 블레이드
장비 종류 : 롱소드
등급 레벨 : 12
마법부여 레벨 : 8
속성 : 냉기, 어둠, 속박
소유주 : J. S.
현재 사용가능 기술 : 소울 크러쉬(Soul Crush)
현재 사용가능 마법 : 필드 오브 아이스(Field of Ice)[6], 블루 크림슨(Blue Crimson)[7], 루나 플레이트(Lunar Flate)[6], 티마이오스(Timaeus)[9]
자동 소유 능력 : 냉기 관련 마법 스킬을 +20으로 판정한다. 사용자는 냉기에 면역
“뭔 말인지는 모르지만 겁나 좋은 검인 듯…….”
나는 중얼거리며 힐끗 전장을 바라보았다. 화이트 유니콘의 경기병들은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었으나 상대도 정규 기사단의 기사들이다. 수에서 딸리니 점차 기사들이 경기병들을 압도하고 있었다. 더욱이 넓은 곳이 아니라 협소한 계곡이라서 더욱 그렇다. 도리어 경기병들이 분전하고 있는 걸 칭찬해 줘야 할 것이다.
아무튼 보검을 얻었다지만 저기 끼어들어 싸울 필요가 없다. 괜히 목숨만 잃을 것 같아서 슬그머니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덥썩.
“헉, 헉, 거기 서라!”
“…….”
묶여서 기사에게 차인 채로 용케 여기까지 기어왔는지 켈두스 백작이 나를 붙잡았다. 내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있지만 한 손만 자유로운 듯하다.
아니, 그렇게 세게 묶은 걸 귀족돼지가 무슨 수로 풀었대? 나도 못 푸는 걸?
이내 나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켈두스의 한 손에는 마법 아이템으로 보이는 팔찌가 있었다. 아마 불꽃 계열의 마법이 인챈트 되어 있을 것이다. 그걸 이용해서 한쪽 손만은 푸는 데 성공한 것이다.
켈두스가 이를 바득바득 갈며 말했다.
그의 눈에 희망의 서광이 비쳐 보였다.
“네가 누군지 모르겠으나 너도 저놈들한테 붙잡힌 거 같군. 나는 콘월의 성주인 켈두스 비아로 시눈 백작이다. 내 밧줄을 풀어 준다면 네게 큰 상을 내리겠다.”
콘월의 성주.
그 말은, 폴커 왕국 내에서 최대의 기마병단을 지니고 있는 대도시의 성주라는 뜻이다. 성왕이 일으킨 대개혁 때문에 옛날과는 달리 성주의 권력이 그렇게까지 절대적인 건 아니다.
하지만 아직도 귀족들은 평민과는 비교할 수 없는 권세와 힘을 누리고 있었다. 원래라면 내가 올려다보지도 못할 귀한 몸이시다.
게다가 비아로 시눈이라면 개국공신 가문이다. 어떤 면에서는 왕세자조차도 함부로 건드리지 못할 정도의 대귀족인 것이다. 나는 그 이름값에 살짝 쫄아 버리고 말았다. 그 순간, 나는 아까 기사들이 나누던 말이 마음에 걸렸다.
‘탐관오리 켈두스를 잡는댔지?’
잘 생각해 보면 기사들도 나쁜 놈들은 아닌 것 같다. 나쁜 마음을 품고 있었으면 난 아까 말에서 낙마했을 때 목이 꺾여 죽었을 것이다. 내 황금을 뺏은 건 짜증나지만 분수에 맞지 않는 돈이었다고 생각하면 그만이다.
어느 쪽이 옳은 편일까?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켈두스의 마음을 읽기로 결정했다.
“백작님, 혹시 살아오면서 횡령하거나 나쁜 짓 한 거 있으십니까?”
백작은 잠시 우스운 걸 다 본다는 표정을 짓더니 당당하게 외쳤다.
“그런 일 없다! 난 천하에 결백해!”
나는 그 찰나에 무의식에서 떠오른 진심을 읽었다.
‘……우와.’
켈두스 백작이 행했던 수많은 짓들이 뇌리 속을 스치고 지나간다. 어린아이와 노인들을 위해서 양로원을 짓겠다는 마법사 단체를 탄압하고, 방해하는 마법사들은 도적 길드를 시켜서 암살했다. 미녀가 눈에 띄면 어떤 음험한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차지했다. 평민이나 노비들은 인간 취급을 하지 않았다.
악랄하게도 북방 하라바인 제국과 연계해서 몬스터 마법 실험까지 했다. 마법 실험은 곧 인체 실험이다. 시장 바닥을 떠도는 노비나 거지들을 돈을 주고 사들여서, 몬스터의 먹이로 주거나 해부했다. 심한 경우에는 몬스터와 합성시키기까지 했다. 이 이상 전형적인 악당이 없을 정도였다.
그리고 폴커 왕국의 왕세자인 쉐레드 왕자는 그런 켈두스 백작의 악한 짓을 눈치챘다. 왕세자는 켈두스의 모든 명예와 금전을 빼앗았고, 지금은 몰래 도망치려는 켈두스를 포박하려는 것이다. 단지 켈두스 백작이 콘월의 화이트 유니콘을 호위로 데리고 올 줄은 예상 못한 것 같다.
켈두스 백작이 외쳤다.
“빨리 안 풀고 뭐하느냐!”
마음속에서 뭔가 끓어오른다. 이런 걸 보고 의협심이라고 하는 걸까?
“음, 갑니다. 가요.”
나는 이누타브 블레이드를 번쩍 치켜들었다.
그러고는 입을 쩍 벌리는 켈두스의 모습을 지켜보며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한쪽 다리를 잘라 버렸다.
푸슉!
“크아아아아아!!”
켈두스 백작이 비명을 내질렀다. 사실 나는 일격에 사람의 팔다리를 끊어 낼 정도의 실력은 되지 않는다. 마치 두부 자르듯이 다리를 잘라 낸 건, 아마 내 힘이 무지막지하게 강해지고 이누타브 블레이드가 명검이라서다. 켈두스 백작이 땅에 업어져서 구르고 있자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아, 저질러 버렸다.”
사실 나는 성격이 그리 좋은 편도 아니고 생각도 많이 안 한다. 뭐랄까, 인간의 마음을 읽는다는 건 그다지 좋은 게 아닌 것 같다. 읽다 보니 당한 자들의 원념(怨念)이 머릿속에 박힌다. 다리를 자른 것도 켈두스에게 당한 자들의 감정에 동화되어서 폭발해 버린 것이다.
나는 칼에 묻은 피를 떨쳐 내며 말했다.
“이러면 도망 못 가겠지?”
나는 전장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순식간에 뛰어들었다. 발에 힘이 실리더니 폭발한다.
나한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확실한 건 있다. 세상에 나쁜 놈들은 있고, 착한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악한 일을 보아 넘기지 못하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자존심이다. 나한테 힘이 생겼다면 내가 생각하는 정의를 위해서 쓰면 된다.
그렇게 에서론 자작님께 배웠으니까!
스각.
카앙!!
경기병 하나가 기사의 목을 찌르려는 것을 중간에 막고 나섰다. 경기병은 내 검에 실린 힘이 너무 강해서 몸을 비틀거렸다. 기사가 놀라서 외쳤다. 밧줄을 어떻게 끊었는지 궁금할 것이다.
“너는!!”
부웅.
나는 대답하는 대신에 거세게 강베기를 했다. 내가 경비병으로 살면서 배운 유일한 기술이다. 횡으로 휘둘러지는 검을 피하려 했으나, 나도 놀랄 정도로 빠르게 휘둘러지는 검이었다. 게다가 이누타브 블레이드에서 뿜어져 나오는 검기가 더욱 강력해져 있었다.
서걱.
경기병 하나가 순식간에 내 손에 최후를 맞이했다. 특수 부대라고 해도 허를 찔리면 어쩔 도리가 없지!
저편에서 싸우던 기사가 외쳤다.
“너, 뭐하는 거야!!”
나는 검을 치켜들며 대답해 줬다.
“레벨업 중인데요!!!”
“…….”
이해 못하겠지? 나도 그래. 경기병들은 한 명이 죽자 더욱 사납게 날뛰기 시작했다. 동료가 죽은 분노가 생생하게 느껴진다.
“이 자식!”
그들 중 한 명이 노갈성을 터뜨리며 품속에서 웬 새파란 돌멩이 하나를 꺼내서 내게 던졌다. 나는 그게 뭔지 몰랐지만 보고 쳐 낼 실력이 되지 않으므로 옆으로 피했다.
파직!
바닥에 튕긴 돌멩이가 전기를 튀겼다. 그러더니 땅에 두 번 더 튕기더니 다시 나를 향해 날아오는 것이었다. 나는 엎드리듯이 앞으로 뛰어서 간신히 그 돌멩이를 피할 수 있었다. 돌멩이가 제멋대로 튄다고?!
옆에서 싸우고 있던 기사가 내게 외쳤다.
“조심해! 천둥석이다!”
‘천둥석?’
생각한 순간 눈앞에 글자가 스치고 지나간다. 이거 꽤 편리한데!
천둥석(Thunder stone) ― 가격 평균 240골드
2레벨의 부여 마법이 깃들어 있는 아이템. 최대 5회까지 튕기며 적을 유도 추적한다. 5미터 이내에서 쓸 수 있으며 적중당한 대상은 2레벨 주문 마이너 라이트닝(Minor Lightning)에 적중당한 것과 같다.
‘마법 아이템이군! 피했으니까 됐…… 우왓!’
나는 눈앞의 경기병을 바라보며 기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