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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1(3화)
제1장 레벨 1(3)
웅성웅성.
내가 어리둥절하고 있을 때 8미터쯤 떨어진 곳에 놈들이 모였다. 나를 묶어 둬서 안심했는지 한 명도 경비를 서지 않았다. 다르게 말하면 내 실력을 얕보고 있다는 소리다.
저들끼리 뭔가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멀어서 잘 안 들렸다.
[듣기 스킬이 부족해서 들을 수 없습니다.]
아, 젠장, 또 눈가에 이상한 글자가…….
나는 신경질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는데, 그러자 이상한 글자가 연이어 떴다.
[축적된 경험치를 사용해서 스킬의 숙련도를 올리실 수 있습니다. 숙련도 상승은 되돌릴 수 없으니 주의하세요. 남아 있는 경험치 바를 띄우겠습니다.]
지잉―
그러자 내 눈앞에 웬 숫자와 능력치가 잔뜩 나왔다. ‘나’란 인간을 규정하는 수치들인 것 같다. 이렇게 선명하고도 세밀하게 보는 건 처음이라서 정신이 멍해졌다. 나는 무심결에 그것들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이름 : J. S.
성별 : 남자
나이 : 19
직업 병사 : 2
스킬 : 강베기
칼 손질
요리
숨기
듣기
…….
…….
힘 : 15
건강 : 16
민첩 : 16
지능 : 18
지혜 : 16
매력 : 10
…….
…….
그 외에도 뭔가 잔뜩 늘어서 있었다. 거짓말하지 않고 수백 개는 될 거다. 나는 하나하나 다 들여다보다가는 시간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호기심에 경험치란 걸 투자해서 듣기 스킬을 늘여 보았다. 생각만 하면 되는 거겠지? 지금까지 그랬으니까.
그러자 다시 눈앞에 창이 떴다.
[명령어는 Level up입니다.]
뭐 마법의 주문 같은 거겠지.
나는 별 생각 없이 말했다.
미친 듯이.
“레벨업!!!! 레벨업!”
재미 들려서 폭주.
한 백 번쯤 레벨업! 을 외쳤다.
그리고,
기적이 일어났다…….
‘저 녀석, 어떻게 하지?’
뇌 내로 들려온다.
‘몰라. 제1왕자님께서 우리들보고 잡으라고 한 건 탐관오리 켈두스 백작 아니었어?’
‘정보 잘못됐냐? 왜 이 외진 길로 저런 놈만 혼자 와?’
‘레드, 좀 가만히 있어. 입 냄새 나.’
녀석들끼리 나누는 대화가 들린다. 그것도 바로 옆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정확하게. 심지어 하품 소리까지도. 한 녀석이 머리를 긁적거린다.
‘정보대로라면 켈두스와 동행하는 다섯 명 정도만 상대하면 되잖아. 그래서 우리 1기사단의 정예 멤버가 차출되었잖아.’
‘어, 그래.’
‘휴가도 못 나가고.’
‘…….’
그러자 그들은 마음속으로 울기 시작한다. 뜻밖에도 나는 그들의 마음속까지도 들렸다. 그들의 생각, 감정 모든 것이 내 머릿속에 쑤셔 박힌다.
‘제기럴…… 기사를 동경해서 기사단에 들어왔는데 이름 더럽게 촌스러워.’
‘1기사단이 뭐냐, 1기사단이! 왕국 첫 번째로 만들어져서 1기사단이냐?! 뭐 이래?!’
‘우리 딸래미 마법학교 보낼 돈도 없어!’
‘마법학교가 뭐냐. 마누라가 식비가 없다고 바가지를 긁는다!’
‘짬이 안 되니까 맨날 이런 외박출장만 하는구나!’
아아아아아…….
이윽고 나는 삼라만상의 소리를 듣기 시작한다.
다람쥐가 교미하는 소리, 시냇물 흐르다가 올챙이가 알을 까는 소리, 연어가 불곰한테 잡아먹히면서 내지르는 비명, 불곰이 맛있게 뜯어 먹는 소리, 하늘에서 구름이 움직이는 소리, 라레인 성의 경비병들이 기지개 켜는 소리…….
두근.
나는 내 심장 소리와 심장 속의 혈관이 불뚝거리는 소리마저도 듣기 시작했다. 세상 전체가 내 청력의 범위에 들어간 것만 같다. 나는 심지어 그 소리로 부족해서 그들의 마음속마저도 [듣기] 시작했다.
이, 이것은……
대체 무엇인가?!
당황할 때 눈앞으로 글자가 떠오른다.
지금까지 본 적 없는 황금색 글자다.
축하합니다! 누적되어 있던 경험치 모두를 소모해서 ‘듣기’ 스킬의 숙련도가 50이 되었습니다! 이것으로 ‘마인드 리스닝’, ‘그랜드 리스닝’, ‘마스터 리스닝’, ‘마인드 멘토’, ‘전설의 천리이’, ‘리스닝 마스터리’의 스킬을 획득하셨습니다!
……엥?
동방 신(東方神) 아누타브의 사자 타이틀 소멸. 소비형 타이틀의 효과는 제거되었지만 패시브 효과는 유지됩니다.
아누타브의 권능으로 부여된 모든 경험치 소비.
초기 어드밴티지는 이제 2개 남았습니다.
뭐시라?
나는 그 순간,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깨달았다. 그건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새겨졌다.
마인드 리스닝.
내 근방 15미터 이내에 있는 모든 생물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굳이 생물이 아니라도 마음 있는 것이라면 내 [듣기]를 피할 수 없다. 마음을 감추는 마법으로 막거나 피할 수는 있겠지만, 내가 집중했을 때 내 랭크를 초월하지 못하면 역시 읽혀 버린다.
그랜드 리스닝.
더 잘 듣게 해 주는 능력이다.
마스터 리스닝.
그랜드 리스닝보다 더 잘 듣게 해 주는 능력이다.
덤으로 투시 능력도 생겼다.
마인드 멘토.
리스닝에 성공한 대상에게 영혼의 ‘멘토’가 되어서 정신연결을 할 수 있다.
물론 상대방도 동의할 경우이다.
전설의 천리이(千里耳).
마스터 리스닝보다 윗단계이다. 사방 4,500미터 이내에 있는 모든 동식물과 사물의 사소한 외적, 내적인 움직임 모든 것을 캐치해 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하나의 대상에 집중해서 사용하면 상대가 45km를 벗어나지 않는 한 그 대상의 숨소리와 심장 고동 소리, 눈 깜박거리는 소리까지 다 들을 수 있다.
리스닝 마스터리.
뭐 별로 의미 없고 투이 능력을 강화시켜 준다.
“우오오오오오!!!”
나는 환호했다. 엄청나게 좋은 능력이 생긴 것 같아아!! 그런데 다음 순간 나온 글자에 의욕이 팍 떨어졌다.
[이로써 경험치 23,958,736,182가 사라졌습니다. ‘이누타브의 예비’로 남겨진 84,292가 남았습니다.]
……뭔가 엄청난 숫잔데.
에…… 거시기, 그게 얼마나 많은 건지…….
[단일 최대 경험치 필요직업 ‘마스터 위저드’를 52레벨까지 올리고 28,582가 남습니다.]
“…….”
나는 할 말을 잊었다. 왠지 엄청나게 손해 본 느낌과 함께. 그때 패거리 중 한 놈이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
‘쉿! 조용히 해! 방금 신호가 왔는데 또 오고 있대!’
‘매복! 매복!’
‘이번에야말로 잡는다, 켈두스!’
사사사삿!
그들은 빠르게 나를 붙잡고 수풀 속으로 뛰어들었다. 나는 꽁꽁 묶인 채로 차가운 땅바닥에 뺨을 대고 있어야 했다. 물론 지금 이 순간도 왠지 모르게 지표면 아래에서 용암이 꿈틀거리는 소리가 들리지만 이 상황에선 전혀 쓸모없다.
‘뭐야, 이 상황…….’
난 할 짓이 없어서 누가 오고 있는지 듣기를 해 보았다.
거리는 대충 280미터? 신기하게도 거리도 알 수 있다.
그들이 말한 켈두스라는 귀족인 듯, 마차에 타고 있는 웬 사람이 말했다. 뚱뚱한지 말하는 동안 숨이 찼다.
‘빨리 가라! 아직 멀었느냐.’
‘나으리. 말이 지쳤습니다요. 쉬어야 할 것 같습니다.’
‘어서 라레인으로 가지 않으면 안 된단 말이다!’
그러자 마차 다른 쪽에 타고 있던 웬 여자가 이죽거렸다.
상당한 미성(美聲)이다.
‘왕자와 당신은 비교가 안 돼. 서둘러 주인님한테 도움을 청하지 않으면 죽을걸?’
주인님?
‘웃기는 소리 하지 마라! 라레인 성주는 나한테 꼼짝하지 못하니, 거기까지만 가면 돼! 라레인의 중갑병만 있으면 다시 재기를…….’
‘맘대로 하라고…….’
왠지 사이가 그리 좋지 않은 것 같다.
따그닥따그닥.
그들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 어느새 말발굽이 지척까지 올 정도가 되었다. 나는 일이 어떻게 될지 궁금해서 수풀 사이로 어거지로 눈을 가까이했다. 대기하고 있던 1기사단의 기사들은 예상했다는 듯이 그물을 쫙 들어 올렸다.
덜컥.
땅이 뒤엎어지고 흙먼지가 휘날린다.
히히히힝―!!
귀족용 말이라서 강하고 체력도 좋았지만 그물에는 어쩔 도리가 없는지 엎어지거나 균형을 잃었다. 관성 때문에 달려오던 마차가 하늘을 날았다. 허공에서 바퀴가 부서지고, 백작과 마부를 포함한 인간들은 허공에서 허우적대었다.
그 순간 허공에서 무언가가 핏 하고 사라지는 걸 발견했다. 눈앞에 이상한 글자가 스쳐 지나갔다.
[대상 텔레포트 시전. 프리 텔레포트(Free Teleport). 6클래스의 주문요소와 영창 없이 시전.]
“응?”
6클래스?
마법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6클래스란 게 대단하다는 사실은 안다. 크렌도스 성에서 최고의 마법사도 7클래스이다. 크렌도스가 폴커 왕국에서 다섯 번째로 큰 도시라는 걸 생각하면 높은 레벨의 마법사는 드물다고 할 수 있다.
아마 허공에서 프리 텔레포트로 사라진 것은 그 여자일 것이다. 듣기만 해서 생긴 건 어떤지 모르지만 켈두스 백작과는 같은 편이 아닌 것 같다. 켈두스가 붙잡힐 때가 되니까 미련 없이 도망쳐 버린 모양이다.
부웅.
철썩.
“케엑.”
켈두스 백작은 볼품없이 그물에 잡혀 버리고 말았다. 마부도 마찬가지였다. 대기하던 기사들은 그들을 재빨리 잡아챘지만, 저편에서 마차를 호위하며 따라오던 다섯 기의 경기병들이 그 모습을 보고 말을 멈추었다. 그리고 각자의 창을 빠르게 빼 들었다.
경기병 다섯의 대장으로 보이는 자가 장창을 휘두르며 호령했다. 분노가 섞인 목소리였다.
“이놈들! 감히 귀족에게 무슨 무례를 저지르는 것이냐! 백작님을 풀어 주지 못할까!”
“싫은데!”
스릉.
기사들은 문답무용이라는 듯 칼을 뽑았다. 수적으로는 틀림없이 기사들이 여덟 명이나 되어서 우세하다. 하지만 경기병들은 말을 타고 있으며 조직적인 훈련이 되어 있기 때문에 빈말로라도 쉬운 상대라고 할 수는 없다.
전투를 피할 수 없다고 느낀 걸까?
경기병 대장이 노호성을 질렀다.
“돌격!”
다그닥다그닥.
두두두두.
다섯 경기병이 대열을 갖추고 달려왔다. 고작해야 12미터 정도의 거리가 떨어져 있을 뿐인데, 순식간에 그들은 보통 사람이 달리는 속도의 두 배까지 가속했다. 저것이 정규 경기병들만이 쓸 수 있는 기술인 차지 어택(Charge Attack)이라는 것이다. 나도 배우고는 싶었지만 기본 훈련만 3개월이나 걸리는 고급 기술이라서 포기했다.
꽈앙!
“크윽!”
기사 하나가 경기병 대장의 차지 어택에 얻어맞고 뒤로 날려갔다. 그가 정통으로 맞은 것도 아니고 칼로 창날을 막아 내었는데도 그 충격량을 이기지 못한 것이다. 저런 걸 맨몸으로 맞으면 상반신이 터져 나갈지도 모른다.
채앵!
챙!
철검이 부딪치며 검광이 난무한다.
“으랴압!”
그들끼리 치열하게 싸워 대기 시작했다. 상식적으로라면 수가 많은 기사 쪽이 말 사이에 뛰어들어서 진퇴를 어렵게 하면 당연히 이긴다. 하지만 저 경기병들은 얼마나 대단한 훈련을 받았는지, 말을 두 발 뜀뛰기 시키거나 발차기를 시키면서 공간을 만들며 치고 빠졌다. 심지어는 칼을 피해서 경기병이 말의 배에 매달리기도 했다.
나는 입을 벌리고 감탄했다.
‘우와. 대단하다.’
저런 마술(馬術)은 태어나서 처음 본다!
나는 순간적으로 경기병들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콘월 성(城)에 존재하는 특수 부대, 화이트 유니콘.
폴커 왕국에서도 숙련된 경기병들이 전국에서 모여서 지옥훈련을 거친 끝에 다시 선발된 100명의 최정예들. 화이트 유니콘은 다른 왕국과의 전쟁에서 예봉을 꺾는 최선봉의 역할을 맡고 있으며, 그들 하나하나의 실력은 정규 기사들을 압도할 정도라고 한다.
켈두스 백작이라는 자는 무슨 수를 썼는지 화이트 유니콘의 정예들을 자신의 호위로 거느린 채 라레인 성으로 도망치고 있었던 것이다. 콘월 성은 여기서 멀지 않으니까 이해는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