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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화
Chapter 9 피의 천사 강림(2)
라이컨슬로프의 입에서 침이 뚝뚝 흘러내렸다.
입에서는 역한 피 냄새가 쉬지 않고 뿜어져 나왔다.
그의 주변에는 찢겨진 교복과 심줄이 덕지덕지 붙은 뼈가 무더기로 쌓여 있었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잡아먹은 거야? 완전히 포식했군. 당신, 이러다가 한국 역사에 남을 살인마로 기억이 될지도 모른다고.”
슈나비츠가 눈앞에서 진하게 살기를 내뿜고 있는 라이컨슬로프를 보며 혀를 찼다.
한국뿐만이 아니라 세상에 퍼져 있는 모든 잠식자들은 이처럼 무차별적으로 인간들을 습격하지 않았다.
인간들이 경각심을 일으켜 라이컨슬로프와 뱀파이어가 멸종 위기까지 간 적이 몇 번이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인간은 그들에게 먹이인 동시에 최대의 천적인 셈이었다.
그렇기에 그들 사이에서는 인간들을 함부로 해치지 않는다는 불문율이 내려왔다.
하지만 지금 슈나비츠의 눈앞에 있는 라이컨슬로프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는 모양이었다.
지금까지 억눌렸던 식욕을 한꺼번에 채울 속셈인지, 닥치는 대로 인간들을 잡아먹고 있었다.
크르르르.
슈나비츠의 말에도 그는 대답이 없었다.
“흥, 피의 마성이 깨어난 것인가? 이성이 완전히 날아갔군.”
확실히 피의 저주는 무서웠다.
3m가 넘는 라이컨슬로프라면 그들 종족 내에서는 장로 급에 속한 존재일 것이다.
그런 대단한 존재도 피의 저주에 빠져들자 본인에 대한 존재도 망각한 채 탐욕스럽게 인간의 육신만을 탐하고 있었다.
이런 상태에서 다시 제정신으로 되돌리기란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다.
중간에서 멈추지 않으면 피의 마성이 폭발하여 완전한 괴물로 변하고 만다.
그전에 이자를 멈춰야 했다.
아마도 목을 잘라 버려야 할 테지만.
“좋아. 그럼 마스터가 오기 전에 끝내 볼까.”
슈나비츠는 허리를 반쯤 숙이며 마나를 끌어모았다.
그가 익힌 마나는 월의 내공과는 조금 달랐다.
본질은 같지만 사용 방법이 다르다고 보면 될 것이다.
월은 내기를 단전에 모아 육체 곳곳으로 보내 전체적인 능력을 급속도로 상승시킨다.
하지만 슈나비츠의 마나는 세상에 퍼진 생명력을 온몸의 세포와 뼈, 근육, 내부 장기들로 흡수해서 능력을 상승시키는 것이었다.
내공과 마나.
무엇이 더 뛰어나다고는 말을 할 수가 없다.
월과 슈나비츠처럼 자신의 몸에 맞게 익히면 되는 것이다.
“한 번 가 볼까.”
슈나비츠는 엄지발가락으로 몸을 지탱하며 거대 라이컨슬로프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슈나비츠가 상당히 키가 큰 편이라고 하더라도 3m가 넘는 라이컨슬로프 앞에서는 어른과 아이만큼이나 신장의 차이가 났다.
거대 라이컨슬로프가 흉포한 살기를 줄기줄기 뿌리며 슈나비츠를 향해서 주먹을 마구 휘둘렀다.
주먹에서 뿜어지는 풍압이 얼마나 강한지 주변에 있던 시체들이 마구 뒤섞여서 흩날렸다.
대부분의 라이컨슬로프는 내기를 사용할 줄 모른다.
물론 인간과 비슷한 사고방식을 가진 라이컨슬로프는 무예를 배워 내기를 쌓기도 하지만, 그런 자는 1퍼센트 미만이었다.
한데 이 거대 라이컨슬로프가 휘두르는 주먹은 1퍼센트 미만에 속하지 않아 보였다.
그럼에도 내기를 사용하는 것 이상으로 근력을 바탕으로 한 어마어마한 전투력을 선보이고 있었다.
쿠쿠쿵!
라이컨슬로프가 휘두른 주먹에 강타당한 전기 담장이 후두둑 무너져 내렸다.
전류가 몸을 휘감았지만 라이컨슬로프는 끄떡도 하지 않았다.
가려운 등을 긁어 준 꼴도 되지 않은 것이다.
“역시, 힘만큼은 대단하구만.”
라이컨슬로프의 공격을 이리저리 피해 내며 슈나비츠가 비릿하게 웃었다.
“그래도 말이야, 맞추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고. 일단 기어를 한 단계 올려 볼까.”
그렇지 않아도 빨랐던 슈나비츠의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
라이컨슬로프가 슈나비츠를 맞추기 위해 쉴 새 없이 주먹을 휘둘렀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주먹이 닿은 곳에는 이미 슈나비츠의 모습은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
쿠오오오오!
라이컨슬로프의 흉성이 더욱 강해졌다.
아마 화가 났으리라.
챙―
라이컨슬로프의 양주먹 끝에서 6개의 날카로운 손톱이 튀어나왔다.
이것으로 라이컨슬로프의 리치는 두 배 이상 길어진 셈.
아니, 단순히 길어지는 것만이 아니었다.
훨씬 더 위험해지고 목표의 숨통을 끊임없이 조일 것이다.
라이컨슬로프의 양팔을 빠르게 움직였다.
콰직! 꽈직! 꽈직! 꽈직!
마치 문어 다리가 사방으로 뻗어 나가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킬 정도였다.
시멘트 바닥은 모조리 부서지고 흙바닥은 움푹움푹 파였다.
시체들의 조각들은 더욱 잘게 나뉘어 사방으로 흩어졌다.
쿠오오오오!
그러나…….
그런 라이컨슬로프의 공격도 슈나비츠를 맞출 수는 없었다.
마치 양다리에 터보 엔진을 매단 것 같은 모습.
강력한 엔진을 바탕으로 눈에 보이지도 않을 만큼의 가공할 속도로 질주하는 슈나비츠.
뱀파이어의 능력과 흑마법을 쓰지 못해도 슈나비츠가 오랜 세월 동안 살아남을 수 있던 것은 바로 이것 때문이었다.
월이 세 가지 무예를 바탕으로 강력한 육체를 자유자재로 활용한다면, 슈나비츠의 육체는 질주하는 스포츠카가 된다.
스포츠카는 굉장히 예민하다.
약간의 조작 미스만으로도 생과 사를 오갈 지경.
하지만 슈나비츠는 최고 속도에서의 조작이 능숙했다.
폭풍처럼 달린다 하여 과거 풍신(風神)이라는 별명을 얻은 적이 있을 정도였다.
꽈직! 꽈직! 꽈직!
거대 라이컨슬로프가 미친 듯이 손톱을 휘둘러댔다.
그의 생활 공간이었던 수위실이 손톱에 맞아 속절없이 박살 났다.
“흥! 이봐, 그래도 되는 거야? 이제 어디로 출근하려고 직장을 박살 내?”
쿠오오오오!
“아, 상관없다고? 여기서 죽을 거니까? 나한테 죽는다고? 큭큭큭, 알았어. 당신의 뜻, 받아 주지. 운이 좋은 줄 알라고. 눈에도 보이지 않는 속도를 보여 주지.”
슈나비츠가 한 단계 기어를 더 올렸다.
파팡!
동시에 그가 있던 자리가 움푹 파였다.
라이컨슬로프는 피의 마성에 빠져 의식이 반쯤 날아간 상태에서도 놀라움과 두려움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슈나비츠가 있던 자리에 잔상이 남은 것이다.
전설 속에서만 내려오던 이형환위(移形換位)였다.
쿠오오오!
라이컨슬로프가 고통을 느끼며 뒤로 물러났다.
그의 온몸이 난도질이라도 당한 것처럼 쩍쩍 갈라졌다.
이어 갈라진 근육 사이로 상당한 양의 피가 뿜어져 나왔다.
라이컨슬로프는 이해하지 못했다.
도대체 뭐가 자신의 근육을 찢은 것인가.
무엇으로?
상대가 도저히 보이지 않으니 궁금증을 풀 수가 없었다.
“카하하하하! 이 느림보, 조금 더 반항을 해 보라고!”
반면, 간만에 피를 맛본 슈나비츠의 움직임은 점점 더 빨라졌다.
홍안이 더욱 빛나며 피를 갈구했다.
피의 저주에서 벗어났다고는 하지만, 슈나비츠는 ‘피’ 자체를 싫어하지는 않았다.
아마도 부계 쪽에서 받은 유전인자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사사삭!
다시금 라이컨슬로프의 근육이 벗겨지기 시작했다.
한두 군데가 벌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순식간에 10군데 이상이 벗겨지며 피의 소용돌이를 만들어 냈다.
벌어지지 않을 것 같은 현실이 지금 눈앞에 나타났다.
거대한 라이컨슬로프의 육체가 온통 선혈로 뒤덮여 있는 것이다.
“큭큭큭. 느린 곰탱이, 너는 죽을 때까지 나를 볼 수 없을 거야.”
슈나비츠는 자신의 손가락을 툭툭, 털며 말했다.
그의 손톱은 어느새 3㎝ 이상 길어져 있었다.
라이컨슬로프가 날카로운 도검과 같은 손톱을 무기로 한다면, 슈나비츠의 손톱은 암살자의 단검인 더크(Dirk)와 비슷했다.
더크는 최초의 불사자라 불리는 하이랜더들이 주로 썼던 무기이기도 하다.
또한 슈나비츠의 손톱 끝에는 독 중의 왕이라는 시독이 맺혀 있었다.
인간이 시독에 중독되면 뇌와 심장이 파열되어 12초 안에 사망을 한다.
해독제가 있다 해도 독이 퍼지는 속도가 훨씬 빨라서 무용지물이었다.
웅장한 몸집의 황소라 하더라도 3분 내외.
저 거대한 라이컨슬로프라면 10분 안에 심장이 파열돼 죽고 말 터였다.
“큭큭큭큭. 재밌어, 재밌구나. 이렇게 죽어 가는 괴물딱지를 보니까, 내 발밑에서 개미처럼 발버둥치는 괴물딱지를 보니까.”
슈나비츠의 광기가 점점 강도를 더해 갔다.
반면, 거대 라이컨슬로프의 투기와 살기는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었다.
아무리 손을 뻗어도 상대는 잡히지 않았다.
재생을 하고는 있지만 고통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더군다나 찢어진 상처 사이로 몸속에 독이 들어왔다는 것이 느껴졌다.
결코 자신의 상대가 아니다.
이성이 남아 있었다면 일단 자리를 피했을 것이다.
그러나 본능이 앞선 상태라 라이컨슬로프는 끊임없이 손톱을 휘둘렀다.
푸식! 푸식! 푸식!
눈알 한쪽이 반으로 쪼개졌다.
그 사이로 시독이 들어가며 급속도로 부패가 진행되었다.
공기방울이 부글거리며 재생을 시작했지만, 부패되는 속도가 훨씬 빨라 보였다.
목젖도 갈라졌다.
갈라진 목젖 사이로 공기가 밖으로 새어 나왔다.
이제는 짖지도 못하는 모양이었다.
아킬레스건도 끊어졌고, 어깨의 심줄도 잘렸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움직일 수 있는 것은 본능 때문이었다.
크르르르르.
이윽고 거대 라이컨슬로프의 힘이 다했다.
라이컨슬로프의 무릎이 휘청거리더니, 서서히 뒤로 넘어가고 말았다.
쿠우우웅!
족히 1톤이 넘어가는 몸무게인지라 라이컨슬로프의 몸이 쓰러지자 바닥에 들썩거렸다.
“큭큭, 그대로 있어. 한 5분이면 뒈질 테니까. 충고하지만,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더욱 빨리 독이 퍼진다고.”
쓰러진 라이컨슬로프를 보며 슈나비츠가 히죽거렸다.
거대 라이컨슬로프가 쓰러진 것을 본 다른 라이컨슬로프들이 슬금슬금 자리를 피했다.
지금 쓰러진 놈은 덩치로 봐서 서열 3위 안에는 들 것이다.
크기는 작지만 엄청나게 강하다는 것을 느낀 라이컨슬로프들이 슈나비츠와 거리를 두었다.
“자, 이제 탈출구는 확보했고. 탈출로가 괜찮으면 좋겠는데.”
슈나비츠는 굳게 닫혀 있던 정문을 횡으로 그었다.
그러자 녹슨 철문이 힘없이 반으로 갈리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 문이 열리지 않아 수십 명이 넘는 사람들이 이곳에서 저 괴물에게 잡아먹히고 말았다.
겨우 10㎝도 되지 않는 얇은 문일 뿐인데.
“그럼 우리 마스터께서는 어디 있나 확인을 해 볼까? 왜 이리 안 오는 거야?”
슈나비츠는 월에게 전음을 날렸다.
아니, 날리려고 했다.
하지만 그 순간, 슈나비츠는 자신의 눈이 잘못된 것이 아닌가 손등으로 닦아냈다.
분명 땅이 움직였다.
그것도 일정 부분만 움직인 것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들썩거렸다.
“자, 잘못 본 거겠지. 내가 간만에 너무 스피드를 냈나?”
크르르릉.
아니다.
잘못 본 것이 아니었다.
정말로 땅이 움직이고 있었다.
쿠쿠쿠쿵!
그와 함께 이곳저곳에서 땅이 갈라졌다.
“지진? 아니야. 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갈라진 땅 곳곳에서 역한 냄새를 풍기는 무엇인가가 흘러나왔다.
붉은색 액체?
멀리서 보면 용암으로 착각할 수도 있겠지만, 분명 그것은 아니었다.
그것의 정체는 지금까지 슈나비츠가 많이 접한 것이었다.
피.
대지가 곳곳에서 갈라지며 피를 뿜어댔다.
“이, 이게 도대체 뭐야?”
오랜 시간을 살아온 슈나비츠도 지금과 같은 광경을 본 적은 없었다.
땅바닥이 울렁거리더니 숨을 뱉어내듯이 피를 뿜어댔다.
피는 이윽고 용암이 흘러내리는 것처럼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쿠오오오오.
넘쳐흐르던 피가 상처 입은 라이컨슬로프의 몸을 적셔 갔다.
굉장히 기분이 나쁜지 죽어 가던 라이컨슬로프가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대지에서 뿜어져 나온 피는 어느새 라이컨슬로프의 발목 근처에서 찰랑거렸다.
피를 보며 환장을 하던 라이컨슬로프는 알 수 없는 불길함을 느끼며 발목 근처에서 찰랑이는 피를 계속해서 발로 차냈다.
라이컨슬로프와 비슷한 감정을 느낀 것은 슈나비츠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주변을 살핀 후 가장 가깝게 있던 건물 위로 재빠르게 몸을 피했다.
건물 옥상으로 피해서 밑을 내려다보자 강물처럼 흐르는 핏물이 그냥 피가 아님을 짐작케 했다.
쿠오오오.
라이컨슬로프의 괴성이 점점 더 강해졌다.
슈나비츠에게 엄청난 살기를 뿌리며 미친 듯이 달려들던 그때의 모습이 아니었다.
피의 강물 속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몸부림을 치는 작은 들개의 불과했다.
라이컨슬로프의 몸이 점차 검붉은 피에 먹혀 들어갔다.
쿠오오오오!
코와 항문, 눈과 입, 숨 쉬는 피부를 통해서 검붉은 피가 스며 들어갔다.
“저럴 수가!”
그 모습을 보며 슈나비츠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과거 만주 사변 당시, 수만이 넘는 언데드가 되살아나는 광경을 목격했을 때보다 더욱 경악스러웠다.
Chapter 9 피의 천사 강림(2)
라이컨슬로프의 입에서 침이 뚝뚝 흘러내렸다.
입에서는 역한 피 냄새가 쉬지 않고 뿜어져 나왔다.
그의 주변에는 찢겨진 교복과 심줄이 덕지덕지 붙은 뼈가 무더기로 쌓여 있었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잡아먹은 거야? 완전히 포식했군. 당신, 이러다가 한국 역사에 남을 살인마로 기억이 될지도 모른다고.”
슈나비츠가 눈앞에서 진하게 살기를 내뿜고 있는 라이컨슬로프를 보며 혀를 찼다.
한국뿐만이 아니라 세상에 퍼져 있는 모든 잠식자들은 이처럼 무차별적으로 인간들을 습격하지 않았다.
인간들이 경각심을 일으켜 라이컨슬로프와 뱀파이어가 멸종 위기까지 간 적이 몇 번이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인간은 그들에게 먹이인 동시에 최대의 천적인 셈이었다.
그렇기에 그들 사이에서는 인간들을 함부로 해치지 않는다는 불문율이 내려왔다.
하지만 지금 슈나비츠의 눈앞에 있는 라이컨슬로프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는 모양이었다.
지금까지 억눌렸던 식욕을 한꺼번에 채울 속셈인지, 닥치는 대로 인간들을 잡아먹고 있었다.
크르르르.
슈나비츠의 말에도 그는 대답이 없었다.
“흥, 피의 마성이 깨어난 것인가? 이성이 완전히 날아갔군.”
확실히 피의 저주는 무서웠다.
3m가 넘는 라이컨슬로프라면 그들 종족 내에서는 장로 급에 속한 존재일 것이다.
그런 대단한 존재도 피의 저주에 빠져들자 본인에 대한 존재도 망각한 채 탐욕스럽게 인간의 육신만을 탐하고 있었다.
이런 상태에서 다시 제정신으로 되돌리기란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다.
중간에서 멈추지 않으면 피의 마성이 폭발하여 완전한 괴물로 변하고 만다.
그전에 이자를 멈춰야 했다.
아마도 목을 잘라 버려야 할 테지만.
“좋아. 그럼 마스터가 오기 전에 끝내 볼까.”
슈나비츠는 허리를 반쯤 숙이며 마나를 끌어모았다.
그가 익힌 마나는 월의 내공과는 조금 달랐다.
본질은 같지만 사용 방법이 다르다고 보면 될 것이다.
월은 내기를 단전에 모아 육체 곳곳으로 보내 전체적인 능력을 급속도로 상승시킨다.
하지만 슈나비츠의 마나는 세상에 퍼진 생명력을 온몸의 세포와 뼈, 근육, 내부 장기들로 흡수해서 능력을 상승시키는 것이었다.
내공과 마나.
무엇이 더 뛰어나다고는 말을 할 수가 없다.
월과 슈나비츠처럼 자신의 몸에 맞게 익히면 되는 것이다.
“한 번 가 볼까.”
슈나비츠는 엄지발가락으로 몸을 지탱하며 거대 라이컨슬로프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슈나비츠가 상당히 키가 큰 편이라고 하더라도 3m가 넘는 라이컨슬로프 앞에서는 어른과 아이만큼이나 신장의 차이가 났다.
거대 라이컨슬로프가 흉포한 살기를 줄기줄기 뿌리며 슈나비츠를 향해서 주먹을 마구 휘둘렀다.
주먹에서 뿜어지는 풍압이 얼마나 강한지 주변에 있던 시체들이 마구 뒤섞여서 흩날렸다.
대부분의 라이컨슬로프는 내기를 사용할 줄 모른다.
물론 인간과 비슷한 사고방식을 가진 라이컨슬로프는 무예를 배워 내기를 쌓기도 하지만, 그런 자는 1퍼센트 미만이었다.
한데 이 거대 라이컨슬로프가 휘두르는 주먹은 1퍼센트 미만에 속하지 않아 보였다.
그럼에도 내기를 사용하는 것 이상으로 근력을 바탕으로 한 어마어마한 전투력을 선보이고 있었다.
쿠쿠쿵!
라이컨슬로프가 휘두른 주먹에 강타당한 전기 담장이 후두둑 무너져 내렸다.
전류가 몸을 휘감았지만 라이컨슬로프는 끄떡도 하지 않았다.
가려운 등을 긁어 준 꼴도 되지 않은 것이다.
“역시, 힘만큼은 대단하구만.”
라이컨슬로프의 공격을 이리저리 피해 내며 슈나비츠가 비릿하게 웃었다.
“그래도 말이야, 맞추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고. 일단 기어를 한 단계 올려 볼까.”
그렇지 않아도 빨랐던 슈나비츠의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
라이컨슬로프가 슈나비츠를 맞추기 위해 쉴 새 없이 주먹을 휘둘렀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주먹이 닿은 곳에는 이미 슈나비츠의 모습은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
쿠오오오오!
라이컨슬로프의 흉성이 더욱 강해졌다.
아마 화가 났으리라.
챙―
라이컨슬로프의 양주먹 끝에서 6개의 날카로운 손톱이 튀어나왔다.
이것으로 라이컨슬로프의 리치는 두 배 이상 길어진 셈.
아니, 단순히 길어지는 것만이 아니었다.
훨씬 더 위험해지고 목표의 숨통을 끊임없이 조일 것이다.
라이컨슬로프의 양팔을 빠르게 움직였다.
콰직! 꽈직! 꽈직! 꽈직!
마치 문어 다리가 사방으로 뻗어 나가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킬 정도였다.
시멘트 바닥은 모조리 부서지고 흙바닥은 움푹움푹 파였다.
시체들의 조각들은 더욱 잘게 나뉘어 사방으로 흩어졌다.
쿠오오오오!
그러나…….
그런 라이컨슬로프의 공격도 슈나비츠를 맞출 수는 없었다.
마치 양다리에 터보 엔진을 매단 것 같은 모습.
강력한 엔진을 바탕으로 눈에 보이지도 않을 만큼의 가공할 속도로 질주하는 슈나비츠.
뱀파이어의 능력과 흑마법을 쓰지 못해도 슈나비츠가 오랜 세월 동안 살아남을 수 있던 것은 바로 이것 때문이었다.
월이 세 가지 무예를 바탕으로 강력한 육체를 자유자재로 활용한다면, 슈나비츠의 육체는 질주하는 스포츠카가 된다.
스포츠카는 굉장히 예민하다.
약간의 조작 미스만으로도 생과 사를 오갈 지경.
하지만 슈나비츠는 최고 속도에서의 조작이 능숙했다.
폭풍처럼 달린다 하여 과거 풍신(風神)이라는 별명을 얻은 적이 있을 정도였다.
꽈직! 꽈직! 꽈직!
거대 라이컨슬로프가 미친 듯이 손톱을 휘둘러댔다.
그의 생활 공간이었던 수위실이 손톱에 맞아 속절없이 박살 났다.
“흥! 이봐, 그래도 되는 거야? 이제 어디로 출근하려고 직장을 박살 내?”
쿠오오오오!
“아, 상관없다고? 여기서 죽을 거니까? 나한테 죽는다고? 큭큭큭, 알았어. 당신의 뜻, 받아 주지. 운이 좋은 줄 알라고. 눈에도 보이지 않는 속도를 보여 주지.”
슈나비츠가 한 단계 기어를 더 올렸다.
파팡!
동시에 그가 있던 자리가 움푹 파였다.
라이컨슬로프는 피의 마성에 빠져 의식이 반쯤 날아간 상태에서도 놀라움과 두려움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슈나비츠가 있던 자리에 잔상이 남은 것이다.
전설 속에서만 내려오던 이형환위(移形換位)였다.
쿠오오오!
라이컨슬로프가 고통을 느끼며 뒤로 물러났다.
그의 온몸이 난도질이라도 당한 것처럼 쩍쩍 갈라졌다.
이어 갈라진 근육 사이로 상당한 양의 피가 뿜어져 나왔다.
라이컨슬로프는 이해하지 못했다.
도대체 뭐가 자신의 근육을 찢은 것인가.
무엇으로?
상대가 도저히 보이지 않으니 궁금증을 풀 수가 없었다.
“카하하하하! 이 느림보, 조금 더 반항을 해 보라고!”
반면, 간만에 피를 맛본 슈나비츠의 움직임은 점점 더 빨라졌다.
홍안이 더욱 빛나며 피를 갈구했다.
피의 저주에서 벗어났다고는 하지만, 슈나비츠는 ‘피’ 자체를 싫어하지는 않았다.
아마도 부계 쪽에서 받은 유전인자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사사삭!
다시금 라이컨슬로프의 근육이 벗겨지기 시작했다.
한두 군데가 벌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순식간에 10군데 이상이 벗겨지며 피의 소용돌이를 만들어 냈다.
벌어지지 않을 것 같은 현실이 지금 눈앞에 나타났다.
거대한 라이컨슬로프의 육체가 온통 선혈로 뒤덮여 있는 것이다.
“큭큭큭. 느린 곰탱이, 너는 죽을 때까지 나를 볼 수 없을 거야.”
슈나비츠는 자신의 손가락을 툭툭, 털며 말했다.
그의 손톱은 어느새 3㎝ 이상 길어져 있었다.
라이컨슬로프가 날카로운 도검과 같은 손톱을 무기로 한다면, 슈나비츠의 손톱은 암살자의 단검인 더크(Dirk)와 비슷했다.
더크는 최초의 불사자라 불리는 하이랜더들이 주로 썼던 무기이기도 하다.
또한 슈나비츠의 손톱 끝에는 독 중의 왕이라는 시독이 맺혀 있었다.
인간이 시독에 중독되면 뇌와 심장이 파열되어 12초 안에 사망을 한다.
해독제가 있다 해도 독이 퍼지는 속도가 훨씬 빨라서 무용지물이었다.
웅장한 몸집의 황소라 하더라도 3분 내외.
저 거대한 라이컨슬로프라면 10분 안에 심장이 파열돼 죽고 말 터였다.
“큭큭큭큭. 재밌어, 재밌구나. 이렇게 죽어 가는 괴물딱지를 보니까, 내 발밑에서 개미처럼 발버둥치는 괴물딱지를 보니까.”
슈나비츠의 광기가 점점 강도를 더해 갔다.
반면, 거대 라이컨슬로프의 투기와 살기는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었다.
아무리 손을 뻗어도 상대는 잡히지 않았다.
재생을 하고는 있지만 고통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더군다나 찢어진 상처 사이로 몸속에 독이 들어왔다는 것이 느껴졌다.
결코 자신의 상대가 아니다.
이성이 남아 있었다면 일단 자리를 피했을 것이다.
그러나 본능이 앞선 상태라 라이컨슬로프는 끊임없이 손톱을 휘둘렀다.
푸식! 푸식! 푸식!
눈알 한쪽이 반으로 쪼개졌다.
그 사이로 시독이 들어가며 급속도로 부패가 진행되었다.
공기방울이 부글거리며 재생을 시작했지만, 부패되는 속도가 훨씬 빨라 보였다.
목젖도 갈라졌다.
갈라진 목젖 사이로 공기가 밖으로 새어 나왔다.
이제는 짖지도 못하는 모양이었다.
아킬레스건도 끊어졌고, 어깨의 심줄도 잘렸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움직일 수 있는 것은 본능 때문이었다.
크르르르르.
이윽고 거대 라이컨슬로프의 힘이 다했다.
라이컨슬로프의 무릎이 휘청거리더니, 서서히 뒤로 넘어가고 말았다.
쿠우우웅!
족히 1톤이 넘어가는 몸무게인지라 라이컨슬로프의 몸이 쓰러지자 바닥에 들썩거렸다.
“큭큭, 그대로 있어. 한 5분이면 뒈질 테니까. 충고하지만,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더욱 빨리 독이 퍼진다고.”
쓰러진 라이컨슬로프를 보며 슈나비츠가 히죽거렸다.
거대 라이컨슬로프가 쓰러진 것을 본 다른 라이컨슬로프들이 슬금슬금 자리를 피했다.
지금 쓰러진 놈은 덩치로 봐서 서열 3위 안에는 들 것이다.
크기는 작지만 엄청나게 강하다는 것을 느낀 라이컨슬로프들이 슈나비츠와 거리를 두었다.
“자, 이제 탈출구는 확보했고. 탈출로가 괜찮으면 좋겠는데.”
슈나비츠는 굳게 닫혀 있던 정문을 횡으로 그었다.
그러자 녹슨 철문이 힘없이 반으로 갈리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 문이 열리지 않아 수십 명이 넘는 사람들이 이곳에서 저 괴물에게 잡아먹히고 말았다.
겨우 10㎝도 되지 않는 얇은 문일 뿐인데.
“그럼 우리 마스터께서는 어디 있나 확인을 해 볼까? 왜 이리 안 오는 거야?”
슈나비츠는 월에게 전음을 날렸다.
아니, 날리려고 했다.
하지만 그 순간, 슈나비츠는 자신의 눈이 잘못된 것이 아닌가 손등으로 닦아냈다.
분명 땅이 움직였다.
그것도 일정 부분만 움직인 것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들썩거렸다.
“자, 잘못 본 거겠지. 내가 간만에 너무 스피드를 냈나?”
크르르릉.
아니다.
잘못 본 것이 아니었다.
정말로 땅이 움직이고 있었다.
쿠쿠쿠쿵!
그와 함께 이곳저곳에서 땅이 갈라졌다.
“지진? 아니야. 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갈라진 땅 곳곳에서 역한 냄새를 풍기는 무엇인가가 흘러나왔다.
붉은색 액체?
멀리서 보면 용암으로 착각할 수도 있겠지만, 분명 그것은 아니었다.
그것의 정체는 지금까지 슈나비츠가 많이 접한 것이었다.
피.
대지가 곳곳에서 갈라지며 피를 뿜어댔다.
“이, 이게 도대체 뭐야?”
오랜 시간을 살아온 슈나비츠도 지금과 같은 광경을 본 적은 없었다.
땅바닥이 울렁거리더니 숨을 뱉어내듯이 피를 뿜어댔다.
피는 이윽고 용암이 흘러내리는 것처럼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쿠오오오오.
넘쳐흐르던 피가 상처 입은 라이컨슬로프의 몸을 적셔 갔다.
굉장히 기분이 나쁜지 죽어 가던 라이컨슬로프가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대지에서 뿜어져 나온 피는 어느새 라이컨슬로프의 발목 근처에서 찰랑거렸다.
피를 보며 환장을 하던 라이컨슬로프는 알 수 없는 불길함을 느끼며 발목 근처에서 찰랑이는 피를 계속해서 발로 차냈다.
라이컨슬로프와 비슷한 감정을 느낀 것은 슈나비츠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주변을 살핀 후 가장 가깝게 있던 건물 위로 재빠르게 몸을 피했다.
건물 옥상으로 피해서 밑을 내려다보자 강물처럼 흐르는 핏물이 그냥 피가 아님을 짐작케 했다.
쿠오오오.
라이컨슬로프의 괴성이 점점 더 강해졌다.
슈나비츠에게 엄청난 살기를 뿌리며 미친 듯이 달려들던 그때의 모습이 아니었다.
피의 강물 속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몸부림을 치는 작은 들개의 불과했다.
라이컨슬로프의 몸이 점차 검붉은 피에 먹혀 들어갔다.
쿠오오오오!
코와 항문, 눈과 입, 숨 쉬는 피부를 통해서 검붉은 피가 스며 들어갔다.
“저럴 수가!”
그 모습을 보며 슈나비츠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과거 만주 사변 당시, 수만이 넘는 언데드가 되살아나는 광경을 목격했을 때보다 더욱 경악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