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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화
Chapter 8 괴물들의 향연(3)
이렇게 위험한 상황에서 굳이 교장까지 만나러 가야 하는 이유를 도무지 모르겠기에 그의 질문은 일견 타당했다.
“확인을 해야지. 안 그러면 지금과 같은 악몽이 절대 끝나지 않아. 그리고 그자가 우리가 탈출을 하게 그냥 내버려 둘까? 이제껏 이렇게 큰일을 벌인 자는 본 적이 없어. 그러니 단순히 탈출을 하는 것만으로는 끝나지 않을 거야. 분명 뭔가가 있다. 상상도 못할 그 무엇이.”
“상상도 못할 그 무엇?”
“그래. 헬튼 로즈, 당신이라면 느낄 수 있겠지?”
월의 말에 헬튼 로즈는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약해졌던 요기들이 라이컨슬로프가 살육을 시작하면서 다시 강해지기 시작했다.
그 힘은 분명 고성을 중심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고성 본관에서 가장 의심이 갈 만한 사람은 교장이었고.
축제 날짜를 정한 것도 교장이고, 라이컨슬로프들이 잔뜩 모인 마을을 이곳으로 초대한 것도 그였다.
다른 때와 다르게 인제 시내까지 나가 토이즈 국제고등학교 축제의 홍보를 허락한 것도 그였다.
무언가 의도가 있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엄청난 살육이 진행되지 않았을 것이다.
“날 믿어라.”
월은 담담한 눈빛으로 헬튼 로즈와 현우, 명호를 바라봤다.
알 수 없는 박력에 그들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월의 능력이 엄청나긴 하지만 그것만으로 그를 따를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의 눈빛은 그들에게 확실한 신뢰를 심어 주었다.
이것은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더 이상 그들을 막는 잠식자들은 없었다.
뒤쫓아오는 라이컨슬로프도 보이지가 않았다.
남은 것은 교장실 문을 열고 들어가 교장의 의도를 확인하는 것뿐이다.
드르륵.
월은 교장실의 문을 열었다.
잠겨 있지는 않았다.
뭐, 잠겨 있다고 해서 변할 것은 없지만.
교장실 안에는 교장 말고도 두 명의 사내가 더 있었다.
상당한 신장에 눈초리가 매서웠다.
두 명 다 교복을 입고 있었지만 사뭇 분위기가 달랐다.
교장의 왼쪽에 서 있는 안경 쓴 자는 모범생 같아 보인다면, 오른쪽의 고양이 눈동자를 한 자는 꽤나 주먹 자랑을 하게끔 생겼다.
“저들도 잠식자였던가.”
헬튼 로즈의 두 명의 사내를 보며 미간을 찡그렸다.
“누구지?”
“학생회장 두진과 지도부장 로버트예요.”
“교장의 호위군.”
“상황으로 봐서는 그런 것 같네요.”
“그래도 변하는 것은 없어. 교장의 입을 찢어 놓고 사실을 들은 후 이곳을 나간다.”
단호하게 말을 뱉은 월은 앞으로 나섰다.
그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광포한 기운이 사방으로 휘몰아쳤다.
그 힘을 이기지 못한 헬튼 로즈와 현우, 명호는 두세 걸음 뒤로 물러나고 말았다.
하지만 학생회장 두진과 지도부장 로버트는 오히려 앞으로 나섰다.
월의 보여 주는 강력한 기운을 이겨 내려면 상당한 용기가 필요할 터였다.
아니면 그 정도쯤은 충분히 이겨 낼 수 있다고 생각하든지.
어느 쪽이든 학생회장 두진과 지도부장 로버트는 눈썹 하나 깜빡이지 않고 월에게 다가섰다.
“이런 애송이들로 나를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월은 다시 진각을 밟았다.
눈앞에 있는 잠식자들의 요기가 만만치 않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특별나지도 않았다.
전력으로 초력의 초식을 발휘한다면 단 일격에 전투 불능을 만들 자신이 있었다.
“너는 누구지?”
드디어 교장의 입이 열렸다.
처음 봤을 때의 부드러움은 조금도 남아 있지 않았다.
어둠 속에서 몸을 웅크린 채 으르렁대는 하이에나처럼 느껴졌다.
차라리 강한 힘을 내보이며 앞으로 나서는 자가 상대하기 쉽다.
하지만 교장처럼 뱀의 눈빛을 보이는 자는 왠지 위험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독이 든 송곳니를 치켜 들고 있을 확률이 높았다.
“보름 전에 이 학교로 전학을 왔지.”
교장은 이곳에서 왕과 다름이 없었다. 어떤 학생도, 임직원도 그를 거스를 수 있는 존재는 없었다.
그런데 월은 그를 향해서 자연스럽게 말을 놓았다.
그것이 교장의 심기를 거슬리게 한 듯했다.
“나를 두고 장난하는 것인가?”
“내가 왜 장난을 하겠는가. 혹여 반말을 해서 그런 표정을 짓는 것인가? 그렇다면 기분 나빠할 필요가 없다. 당신은 나보다 한참이나 연배가 낮으니까.”
월이 한 말은 사실이지만 교장이 보기에는 자신의 심기를 흔들기 위한 수작으로밖에 보이지가 않았다.
“말장난이 심하군. 애송이 놈이.”
“내가 과연 애송이일까?”
월이 빙긋 웃으며 교장을 향해서 빠르게 파고들었다.
어차피 시간이 지날수록 피해는 기하급수적으로 커질 게 빤했다.
마음을 먹었으면 신속하게 교장을 제압해야 한다.
동시에 학생회장과 지도부장도 월을 막기 위해 몸을 움직였다.
그들의 양팔이 갑자기 부풀어 올랐다.
순식간에 거대한 근육 덩어리로 변하더니 월을 향해서 꽂아 넣었다.
하지만 그들의 공격은 월의 옷자락도 스치지 못했다.
월이 몸을 좌우로 흔들며 어렵지 않게 피해 낸 것이다.
그와 동시에 월의 왼손이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뻗어 나갔다.
월이 가진 가장 빠른 기술 중 하나인 섬광(閃光)이라는 초식이었다.
얼마 전, 명호와 현우의 팔목을 자른 기술은 섬광을 응용한 것이다.
파파파파팡!
연속적으로 공간이 찢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달려들던 두진과 로버트의 몸이 사정없이 찢겨져 나갔다.
피가 튀며 살점이 튕겨졌다.
견디지 못한 두 사람이 뒤로 물러나고 말았다.
그것을 지켜본 교장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설마 자신의 호위들이 이렇게 쉽게 물러날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한 것 같았다.
잠깐 놀라는 표정을 짓기는 했지만, 교장은 이내 본래의 안색을 되찾았다.
“도대체 네놈의 정체가 뭐야? 인간은 아닌 것 같은데. 그렇다고 잠식자도 아니야.”
“그냥 네놈과 같은 괴물들을 잡아서 먹고사는 자라고 해 두기로 하지.”
“그런가. 하긴 예전부터 우리들을 노리는 인간들은 부지기수로 많았지.”
“알면 됐군. 그나저나 궁금한 것이 있어서 말이야.”
“궁금한 것이라……. 무엇이 말인가.”
교장은 능글거리는 미소를 지으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노리는 것이 뭐지?”
“노리는 것이라니?”
교장이 되물었다.
“말장난은 당신이 하는군.”
“큭큭큭, 알았어. 어차피 시간도 다 됐으니 간단하게 설명을 해 주지. 아마 가장 궁금한 것은 불사의 열쇠라 불리는 헬튼 로즈를 이제까지 가만히 내버려 뒀느냐 하는 것이겠지.”
월은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자들이 나에게 속았기 때문이야.”
“속다니?”
“그 말 그대로야. 모두가 나에게 속았어. 불사의 열쇠? 저 여자의 피와 살을 먹으면 불사가 될 수 있다고? 웃기는 소리 하지 말라고 그래. 물론 그녀가 가진 능력은 탐이 나. 아마 전 세계를 뒤져도 저런 재생력을 가진 자는 열 명도 채 되지 않을 거야. 탐이 타는 능력이지만 그것보다 훨씬 더 훌륭한 일을 해내야 하지.”
“그것이 무엇이지?”
“봉인의 열쇠. 저 여자는 그분들을 불러낼 열쇠야. 인류의 지배자가 될 그분들이 곧 우리의 머리 위로 강림하게 될 거란 말이다.”
역시나.
라이컨슬로프들을 끌어들여 무차별적인 살육을 행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런데 교장이 말하는 그분들이란 무엇을 말하는 거지?
“내가 이렇게까지 오랜 공을 들인 이유는 두 가지다. 먼저 그분들을 불러내기 위해서는 엄청난 재물이 필요하다. 백 명 이상의 재물이. 재물이 모아지면 그분들이 응답을 한다. 그리고 그분들이 오실 길을 만드는 것이 바로 헬튼 로즈다.”
너구리 같은 교장.
그의 말대로라면 이곳에 있는 모든 자들이 그의 손아귀에서 놀아났다는 소리였다.
“그분이든 나발이든 여기서 당신의 목이 잘리면 모든 것은 끝나겠지.”
“푸하하하! 그래, 잘라 보아라. 내 육체를 분쇄시켜 보아라.”
교장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월의 주먹이 번개처럼 날아들었다.
일격에 끝장을 내기 위해 내기를 가득 담은 주먹이었다.
퍼펑!
월의 주먹에 맞은 가슴이 종잇장처럼 찢겨지며 교장의 안색이 시커멓게 죽었다.
그럼에도 그는 연신 웃음을 흘렸다.
“카하하하하! 좋구나. 이제 시작이다. 신이여, 강림하소서. 신이여, 나의 몸에 강림하여 인류의 지배자가 되게 하여 주소서!”
가슴이 찢겨진 채 교장은 광기의 웃음을 흘려댔다.
두두두두두두―
동시에 고성 본관이 좌우로 사정없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천장의 형광등이 깨지고 책상 위에 물건들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마치 거대한 지진이 일어났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또한 흔들림과 비례하여 광대한 요기가 어마어마하게 높아져만 갔다.
그 순간이었다.
쩌쩌저저적.
학생회장 두진과 지도부장 로버트의 몸이 반으로 쪼개지는 것이 아닌가.
반으로 갈라진 그들의 내부에는 인간이라면 당연히 있어야 할 것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척추 외에는 내부 장기가 하나도 없는 것이다.
반으로 갈라진 그들은 월을 지나쳐 헬튼 로즈에게로 다가갔다.
놀란 헬튼 로즈가 뒤로 물러났다.
그녀의 옆에서 굳건히 지키고 있던 현우와 명호가 반으로 갈라진 그들을 막으려고 했다.
하지만 이미 한발 늦고 말았다.
네 방향에서 헬튼 로즈를 감싼 두진과 로버트가 그녀의 몸을 감쌌다.
푸확!
순간, 눈부신 빛이 뿜어져 나오며 두진과 로버트가 한 몸처럼 녹아 들어갔다.
“월―!”
비명에 가까운 헬튼 로즈의 목소리가 사라졌다.
헬튼 로즈를 감싼 두진과 로버트의 몸이 대리석 바닥에 흡수되어 갔다.
“안 돼!”
명호와 현우가 황급히 본 네일을 휘둘렀지만, 흡수되고 있는 두진과 로버트의 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온몸을 내질러도 소용이 없었다.
어느새 헬튼 로즈는 그들의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고작 눈 한 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명호와 현우는 헬튼 로즈가 사라진 바닥을 계속해서 내려쳤다.
설마 그런 식으로 헬튼 로즈를 납치할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한 실책이었다.
“카하하하! 시작이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소용없다. 오늘로서 너희 인류는 나에게 무릎을 꿇어야 할 것이다!”
그 와중에도 광기 섞인 교장의 목소리가 밖으로 계속해서 뻗어 나오고 있었다.
Chapter 9 피의 천사 강림(1)
라이컨슬로프로 변한 수위는 더 이상 인상 좋은 아저씨가 아니었다.
일단 신장만 하더라도 일반적인 라이컨슬로프를 훌쩍 넘어섰다.
아무리 적게 잡아도 3m는 넘어갔다.
라이컨슬로프는 오랜 시간 살아올수록 육체가 커지고 강화된다.
대부분의 라이컨슬로프가 2m 남짓한 것을 생각하면 3m가 넘는 신장은 반칙이나 다름없었다.
과거 라이컨슬로프가 4m까지 자랐다는 기록이 있기는 하지만, 현실에서는 불가능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부분의 라이컨슬로프가 인간 사회에 섞여 살며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다.
하지만 그 정도까지 육체를 키우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 살아오는 것과 더불어 끊임없이 단련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현대 사회에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3m가 넘는 라이컨슬로프는 충분히 위협적이었다.
2m 급에 비해서 파워나 속도도 차원이 다르기에.
140㎝의 초등학생이 170㎝의 성인을 절대로 이길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크르르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