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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화

Chapter 8 괴물들의 향연(2)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두 마리의 라이컨슬로프를 쓰러트린 슈나비츠는 판이하게 바뀐 상황을 보며 잠시 숨을 골랐다.
도망치던 구경꾼들을 일방적으로 사냥하던 라이컨슬로프들이 주춤했다.
구경꾼들 중에서 라이컨슬로프에게 반격을 가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인간이 라이컨슬로프와 맞상대를 할 수는 없다.
오래된 과거부터 라이컨슬로프, 뱀파이어, 팬텀, 목 없는 유령, 바다의 괴물, 인어 등과 인간이 맞서 싸울 수는 없었다.
월등한 전투력을 가진 그들과 맞서기 위해서는 또 다른 무엇이 필요했다.
그것이 바로 기사와 군대였다.
기사란 인간들과의 전쟁에서만 활약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
오랜 수련으로 인해 마나를 검속에 불어넣을 수가 있었고, 그들의 무기는 어떤 괴물들에게든 통하였다.
군대 역시 마찬가지다.
군대는 세월을 거듭해서 엄청나게 확장되어 왔다.
현실에서는 개인 소총뿐만 아니라 전차, 항공기, 전함 등 괴물들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무기들이 탄생되었다.
가공할 무기를 손에 넣은 인간들과 육체적인 강함만을 추구했던 괴물들은 그 차이를 좁힐 수가 없었다.
그러나 괴물들도 포기하지 않았다.
본연의 능력을 감추고 인간 세상에 파고든 것이다.
세계의 경찰이라 일컫는 미국 사회로, 영국으로, 중국으로, 러시아로, 중동의 부호로 변신을 하기도 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바로 유럽의 EEU였다.
세상은 EEU를 두고 핵실험 반대 및 자연보호운동을 목적으로 그린피스(Greenpeace)와 비슷한 국제기구라고 하지만, 실상은 전혀 달랐다.
그들이 바로 인류를 위협하는 잠식자들의 조직인 것이다.
하지만 인간들은 그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사실을 눈치챈 몇몇의 사람들이 EEU에 대해서 역설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어느새 그들은 사람들의 눈앞에서 자취를 감추고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으니까.
인간이 그들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하는 이상 세상의 주인이 언제 바뀔지도 몰랐다.
어쨌든 인간의 무력으로는 라이컨슬로프와 맞상대를 할 수 없다는 것이 정설이었다.
극한으로 단련된 이종격투기 선수라 해도 라이컨슬로프들이 휘두르는 손톱에 세 동강이 나고 만다.
근육이 총알 한 방을 막아 낼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그런데도 도망치던 사람들이 라이컨슬로프에게 덤벼들었다.
왜?
용기가 있어서?
절대로 아니었다.
저들의 움직임도 인간의 신체 능력을 월등하게 넘어서고 있었다.
“훗, 보름 동안 꼭꼭 숨어 있더니만, 다급하긴 했나 보네.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 것을 보니. 잠식자들.”
오랜 시간 적이었던 존재가 이럴 때 도움이 될 줄은 미처 몰랐다.
물론 잠식자들이 슈나비츠를 돕기 위해서 일부러 모습을 드러낸 것은 아니겠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되고 말았다.
잠식자들의 숫자는 10명이 넘었다.
아쉽게도 사이코패스는 보이지가 않았다.
이 변태 성욕자들은 잠식자들보다 힘은 약하지만 두뇌회전이 훨씬 빨랐다.
그러니 어지간해서는 자신들보다 강한 힘을 가진 라이컨슬로프와 직접적으로 맞붙지 않을 것이다.
차라리 날카로운 눈을 번뜩이며 저격을 준비할 확률이 높았다.
물론 잠식자가 된 후 사이코패스의 기질을 깨달은 놈들은 그렇지 않겠지만.
사실 그들이 가장 골치 아픈 놈들이다.
그놈들이 날뛰기 시작하면 아무리 슈나비츠라고 하더라도 손을 쓰기가 껄끄러울 정도였다.
그만큼 귀찮은 놈들이기도 했다.
쿠오오오!
“들개 놈들,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모조리 죽여!”
라이컨슬로프와 잠식자들이 맞붙으며 살벌한 전투가 점점 더 치열해져 갔다.
“괴물들을 괴물들에게 맡기고, 난 이곳에서 탈출할 방법이나 알아볼까.”
슈나비츠는 삼층짜리 건물을 타고 올라갔다.
해가 졌다면 박쥐로 변하거나 날개를 펼쳐 간단하게 올라갈 수도 있었겠지만, 지금은 해가 중천에 떠 있었다.
시계를 보니 대략 3시 반 즈음.
여름인 만큼 해가 질 시간은 오후 8시는 돼야 한다.
뱀파이어와 인간의 혼혈이기 때문에 태양빛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 슈나비츠였지만 힘을 쓸 때는 그렇지 않았다.
뱀파이어의 능력과 유럽에서 배운 흑마법은 해가 져야만 그 힘을 온전히 발휘할 수가 있었다.
해가 떠 있는 동안만큼은 그의 전력이 반 이하로 뚝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래도 어지간한 괴물들은 능히 이겨 낼 수 있을 만큼 경험이 풍부한 슈나비츠였다.
건물 옥상까지 올라온 그는 주변을 이곳저곳 돌아봤다. 벌써 백 명 이상의 목숨이 사라진 것으로 보였다.
“교장이 미친 것이 틀림없어.”
생존자들이 가장 많이 몰린 곳은 길이 나 있는 정문이었다.
그런데 그곳에는 거대한 육식 괴물이 떡하니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 라이컨슬로프는 다가오는 인간들을 향해 닥치는 대로 손톱을 휘둘렀다.
그냥 죽이는 것이 아니었다.
반으로 잘린 인간들의 육체를 통째로 입안에 구겨 넣고 있었다.
기겁한 생존자들은 다른 길을 찾아야만 했다.
하지만 학교 전체는 전기 철조망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멋도 모른 생존자들이 철조망을 넘기 위해 손을 댔다가 새카맣게 타서 쓰러져 나갔다.
마치 육식동물들이 가득한 우리에 갇혀 있는 것 같았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제정신이 아니었다.
이성을 잃고 공포와 절망에 휩싸여 이리 뛰고 저리 뛰고를 반복할 뿐이었다.
라이컨슬로프들에게 있어 그런 인간들을 사냥하기란 식은 죽 먹기만큼이나 손쉬운 일이었다.
“사방이 꽉 막혔군. 전기 철조망을 넘는다고 하더라도 트랩이 가득해. 또한 한쪽은 까마득한 절벽. 우리들조차 위험천만한 곳인데, 인간들의 힘으로는 도저히 버틸 수가 없어. 이곳에서 나갈 수 있는 길은 하나뿐이야. 저 괴물이 서 있는 정문.”
슈나비츠는 정문에서 미친 듯이 인간들을 학살하고 있는 라이컨슬로프를 바라봤다.
처음에 느꼈던 비이성적인 느낌.
그가 수위였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3m 급에 달하는 괴물일 줄이야.
저 정도의 괴물을 잡으려면 어지간한 힘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전차라도 끌고 오지 않는 한에는.
“이제 돌파구는 찾았으니 마스터와 헬튼 로즈를 찾아야겠군.”
슈나비츠는 월을 향해서 전음을 날렸다.
둘은 영혼이 함께 묶인 이후로 자연스럽게 전음을 소통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이야 서로가 원하지 않으면 목소리를 들을 수 없지만, 처음에는 당혹감을 넘어 정신이 붕괴될 지경까지 이르렀다.
‘배고파’, ‘저 여자가 마음에 드는걸’, ‘인간의 피가 마시고 싶다’, ‘저 자식을 영원히 봉인시켜 버리고 싶어’ 등 중얼거리는 말과 속마음까지 모두 서로에게 보이는 상황이니 돌아 버리기 일보직전까지 몰린 것이다.
다행히도 티벳에서 만난 고승 덕분에 서로의 마음을 들키지 않는 수련법을 알게 되어 수행을 쌓아 해결할 수 있었지만, 당시에는 꽤나 고통스러웠던 기억이다.
그렇기에 지금도 어지간한 일이 아니면 두 사람은 전음을 쓰지 않았다.
[마스터, 어디십니까?]
[넌 어디냐?]
슈나비츠의 말에 월이 즉각 반응을 해 왔다.
평소 그의 성격으로 봐서 바로 반응이 오지 않을 터였다.
한데 그렇지 않은 것이, 아마도 꽤나 답답한 상황에 몰려 있는 모양이었다.
[저는 탈출구를 찾고 있었습니다.]
[찾았나?]
[아마도요. 하지만 시원스럽지는 않을 겁니다. 가장 어려운 탈출구일 수도 있으니까요.]
[다른 곳은?]
[위험을 감수하면 갈 수는 있겠죠. 하지만 뒷일은 책임지지 못합니다.]
[알았다. 어디로 가면 되지?]
[정문입니다. 그곳 외에는 다른 방도가 없어 보입니다. 얼마나 걸릴 것 같습니까?]
[모른다. 내가 갈 때까지 길을 터놓도록 해라.]
그 말을 끝으로 월의 전음이 끊겼다.
“뭐야? 전음이 전화기야, 뭐야? 왜 자꾸 제멋대로 끊어?”
슈나비츠는 입술을 삐죽거리며 불평을 터트렸다.
“그리고 길을 터놓으라고? 태양빛이 작렬하는 이 시간에 저 괴물과 붙어서 쓰러트리라는 말이잖아. 말은 쉽지. 지가 와서 한 번 해보지. 만날 힘든 것만 날 시켜.”
슈나비츠는 피부가 저릿저릿할 정도로 살기를 뿜어대고 있는 거대한 라이컨슬로프를 보고는 있는 대로 얼굴을 찡그릴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어쩌랴.
까라면 까야지.
슈나비츠는 건물 옥상에서 뛰어내려 거대 라이컨슬로프를 향해서 달려 나갔다.

***

월은 진각을 밟으며 빠르게 앞으로 뻗어 나갔다.
흑마법을 주된 무기로 사용하는 슈나비츠와 달리 월은 전신을 움직이는 기술을 좋아했다.
어쩌면 고려 시절 무사로서의 기억을 잃지 않기 위해 그런 것인지도 몰랐다.
오랜 시간을 살면서 전설 속에 등장하는 많은 무예를 익힌 월이었다.
그러나 그가 가장 즐겨 쓰는 무예는 고려 시절에 익혔던 본국검법과 무학 법사에게 배운 태진심결과 삼재권법이었다.
처음 무학 법사에게 전수받은 삼재권법은 당시에 있어서는 기이할 정도로 파격적이었다.
거의 모든 초식이 일격필살인 탓이었다.
몇 가지 방어 초식이 있기는 하지만 공격력에 비해서 초라한 느낌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1900년대로 넘어오면서 그와 비슷한 초식이 있는 스포츠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바로 권투라는 스포츠다.
월은 삼재권법과 비슷한 권투에 대해서 호기심을 느끼고 더욱 파고들었다.
그리고 권투의 뿌리가 어디에 있는지 알게 되었다.
바로 로마 시대부터 내려온 판크라티온이라는 실전 무예였다.
판크라티온 역시 삼재권법과 마찬가지로 일격필살에 가까웠다.
그리고 삼재권법에는 없는 라운딩 기술이 풍부했다.
타격 기술은 삼재권법이, 라운딩 기술은 판크라티온이 뛰어난 것이다.
완전히 뿌리가 다른 동서양에서 이토록 비슷한 무예가 발전되어 온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그 점을 파악한 월은 두 무예를 섞었다.
그리고 수십 년에 걸친 연구 끝에 완성하기에 이르렀다.
월의 무예를 본 슈나비츠는 그 가공할 파괴력에 놀라서 말하길, 상식적인 힘을 넘어섰다고 하였다. 그렇게 이름 붙여진 월의 무예는 초력(超力)이었다.
진각을 밟은 월의 초력이 헬튼 로즈를 노리던 잠식자의 턱을 노리고 쏘아졌다.
어퍼컷과 비슷한 모양새였으나 파괴력은 일반적인 권투의 어퍼컷을 월등하게 넘어섰다.
양팔로 방어를 한다고 하더라도 어기간해서는 버틸 수가 없었다.
빠가각!
내공을 담은 월의 주먹은 잠식자의 팔을 부러트리고 뾰족한 중지는 턱을 완전히 끝장냈다.
마치 드릴이 통나무를 뚫고 들어가는 것 같았다.
팔과 아래턱이 박살 난 잠식자의 고개가 뒤로 젖히더니 힘없이 바닥에 쓰러졌다.
월의 살벌한 초식을 본 헬튼 로즈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보통의 잠식자들은 기술을 쓰지 않는다.
강화된 육체를 최대한 이용할 뿐이다.
잠식자들은 육체를 변이시킬 수 있었고, 변이된 육체의 파괴력은 오랜 시간 수련을 하여 단련한 자들보다 훨씬 강했다.
그렇기에 잠식자들은 내공을 쌓지도, 수련을 하지도 않았다.
한데 월이 보여 준 한 수는 헬튼 로즈의 상식을 깨트리기에 충분했다.
잠식자의 두개골을 일격에 뚫고 들어가다니, 엄청난 기술이 아닐 수 없었다.
“그, 그게 뭐예요?”
일주일 전에 봤던 가공할 식혼의 능력.
사실 그것만으로도 주변에 있는 모든 잠식자들을 쓸어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럼에도 또 다른 능력을 보여 주는 게 아닌가.
도대체 이자는 누굴까.
믿을 수 있는 사내라는 것은 안다.
그러나 월에 대해서 아는 것은 하나도 없는 듯했다.
헬튼 로즈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어보자 월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놀라고 있을 시간이 없어. 우리는 교장을 만나고 나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확인하고는 바로 탈출을 한다.”
“꼭 교장을 만나야 합니까?”
헬튼 로즈 대신에 현우가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