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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화

Chapter 8 괴물들의 향연(1)


“헉헉헉헉.”
지희의 입에서 거친 숨이 먹구름처럼 흘러나왔다.
그녀는 뒤를 돌아보기가 너무도 겁이 났다.
20분 전까지만 하더라도 친구들과 부푼 꿈을 안고 즐거운 하루를 보내고 있던 그녀였다.
토이즈 국제고등학교.
사실 이런 외지에 그렇게나 유명한 학교가 있다는 것이 실감이 나지 않았다.
이 학교 학생들이 시내로 외박을 나오면 근처 고등학생들은 선망의 눈빛으로 바라봤다.
어쩜 교복도 그렇게 빛이 나는지.
지희가 알고 있는 남학생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토이즈 국제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들은 대부분이 명문가의 자식들이라고 들었다.
등록금도 엄청나서 어지간한 대학보다도 비싸다는 소문도 있었다.
생전 처음 보는 수많은 고급 승용차가 뻔질나게 드나드는 것을 몇 번이나 목격했다.
지희와 친구들에게 토이즈 국제고등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동경의 대상이나 마찬가지였다.
종종 교복을 입은 그들을 보고 있자면 연예인을 보는 것과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토이즈 국제고등학교는 시내에서 상당히 떨어져 있기에 버스도 하루에 한 번밖에 다니지 않았다.
그러나 일 년에 오직 한 번, 그런 것에 구애를 받지 않는다.
시내버스는 물론이고, 학교버스까지 동원되어 학교로 구경꾼들을 실어 날랐다.
저녁 10시까지 버스가 운용된다고 하니 지희에게는 토이즈 국제고등학교 남학생들과 사귈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했다.
그녀는 앞머리를 옆으로 찰싹 붙이고 한쪽 귀가 드러나게 했다.
그리고 앙증맞은 귀걸이를 붙여서 남학생들의 시선을 유도했다.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서울 학생들보다 더욱 치마를 줄여서 무릎에서 30㎝ 이상 짧아졌다.
2개의 계단만 올라가도 치마 속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물론 의도한 것이다.
그녀는 가장 아끼는 속옷을 입었고 가슴골이 보이도록 블라우스의 단추도 몇 개나 풀었다.
야해 보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토이즈 국제고등학교 학생들은 상당한 금욕생활을 한다고 들었으니, 이런 자신을 보며 혹하지 않을 남학생들은 없을 것이라고 자신하던 지희였다.
그것은 그녀의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지희의 부모님들이 입에 달고 사는 말이 그 학교 다니는 남학생하고 잘 좀 해 보라는 것이었으니, 그것도 은근한 스트레스였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다.
지희에 생각대로 토이즈 고등학교의 남학생들은 순진했다.
머리를 염색하거나 장발로 기른 아이들은 있었지만 그 정도면 양호한 편이었다.
그녀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껄렁껄렁한 남학생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과시를 하기 위해 팔과 다리 혹은 등에 온통 문신을 하지 않았던가.
그들의 비해서 이 학교에 학생들은 양반이다.
영양 섭취를 잘해서 그런지 신장도 상당히 컸고, 무엇보다 그들의 얼굴에서는 자신감이 넘쳤다.
생김새가 조금 떨어지는 남학생들도 있었으나 그것은 그것 나름대로 매력이 있었다.
워낙 자신감에 차 있다 보니 생김새 따위는 중요하지 않게 느껴졌다.
그녀와 친구들은 물풍선을 던지는 행사장으로 갔다.
천 원에 5개의 물풍선을 던질 수 있지만, 남학생들도 호감을 가졌는지 두 개의 물풍선을 더 던질 수 있게 해 주었다.
서로가 말을 주고받고 어느 학교 다니는지도 털어놓았다.
가장 중요한 전화번호도 알려 주었다.
토이즈 국제고등학교 학생들은 휴대폰을 사용할 수 없다고 했다.
참으로 규율이 엄격한 학교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정도는 돼야 명문이라는 소리를 듣겠다는 생각도 동시에 떠올랐다.
남학생들은 주말에 외박을 받아서 인제 시내로 놀러오겠다고 했다.
그들에게 핸드폰이 없으니 계속해서 기다려야 하는 입장이지만 개의치는 않았다.
이 정도면 90퍼센트 목적을 달성한 것이 아닌가.
오랜만의 미팅이다.
최대한 예쁘게 꾸며서 이들 중 한 명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 것이라 다짐하는 지희였다.
그렇게 한참 꿈에 부풀어 있을 때였다.
갑자기 비명이 들리며 수많은 사람들이 사방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밀물이 들어왔다 썰물인 양 빠져나가는 것 같은 광경이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거대한 괴물들이 사방으로 튀어나가는 것이 보였다.
그중 한 마리가 일행이 있는 곳으로 곧장 달려왔다.
문득 아주 큰 개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개라 말하기에는 뭔가가 맞지 않았다.
상대는 두 발로 뛰고 있었으니.
지희는 이제껏 두 발로 뛰는 개는 본 적이 없었다.
더군다나 양손에 커다란 칼을 쥐고 있지 않은가.
너무도 위험해 보였다.
여기서 벗어나야 한다는 경고음이 그녀의 뇌리를 마구 흔들었다.
순간, 그녀는 꿈에서라도 나오지 않았으면 하는 장면을 목격하고 말았다.
눈앞까지 다가온 괴물이 전화번호를 주고받은 남학생의 머리를 한순간에 뽑아냈다.
뽑혀진 척추가 괴물의 입속으로 흡입되듯 빨려 들어가는 모습은 공포 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시키기에 충분했다.
“아아아아악!”
목에서 피가 솟구쳐 오르며 사방으로 뿌려졌다.
뿌려진 피는 지희와 친구들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그제야 지희는 현실을 깨달았다.
그녀는 공포심에 사로잡혀서 마구 비명을 질러댔다.
어서 도망을 가고 싶지만 다리가 떨려서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친구가 그녀의 팔을 억지로 잡고 끌지 않았다면 그 자리에서 죽었을지도 몰랐다.
한창 물풍선 놀이로 흥이 달아올랐던 자리는 남학생들의 피로 가득 차고 말았다.
지희가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던 것은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몰려다니지 않은 덕분이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사람들은 떼로 몰려서 도망을 갔다.
당연히 괴물들은 그들을 쫓는다.
한 명씩, 한 명씩 사냥을 당하며 목숨을 잃었다.
지희와 친구들은 사람들과 떨어져 정문으로 향했다.
다행히도 그녀들을 쫓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정문이 보였다.
살았다.
정문만 벗어나면 살 수 있어.
지희는 그런 생각을 가졌다.
정문 앞에서는 아까 들어오면서 봤던 뚱뚱하고 머리가 벗겨진 수위가 등을 보이며 서 있었다.
“아저씨, 아저씨. 어서 문을 열어 주세요.”
지희는 수위를 향해서 애처롭게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를 들은 수위는 등을 돌렸다.
그리고 수위의 모습을 본 순간, 지희와 친구들은 얼음처럼 그대로 굳어 버리고 말았다.
“무슨 일인가, 학생들.”
수위는 들고 있던 칼에 묻은 피를 툭툭 털어 내며 말했다.
그가 입고 있는 하얀색 러닝셔츠는 온통 피로 시뻘겋게 물들어 있었다.
“저, 저기…….”
도저히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냥 주저앉아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수위가 자르던 것은 그녀보다 미리 한발 앞서서 왔던 학생의 팔과 다리였다.
팔다리가 잘리고 심장까지 밖으로 튀어나왔지만 아직도 살아 있는지 입술을 위아래로 벙긋거렸다.
자신의 살이 있는지도 모르고 입만 벙긋거리고 있는 횟감처럼 말이다.
“오랫동안 참아 왔어요. 오늘이 오기를 말이죠. 학생들.”
“도대체 당신들은 누구예요! 왜 이런 살육을 벌이는 거예요!”
도저히 믿기지 않는 현실에 지희는 악을 쓰듯 외쳤다.
“저희는 사람들에게 라이컨슬로프라고 불리는 종족이죠. 음, 지킬과 하이드라는 책을 봤나요? 그 사람이 우리와 같은 종족이에요. 알려지기로는 소설이지만, 사실은 실화를 바탕으로 쓰인 것이지요.”
“라, 라이컨슬로프? 늑대인간?”
“맞아요. 간단하게 생각하면 요즘 한창 유행했던 트와일라잇이라는 영화를 생각하면 되겠네요. 그거 보면 늑대인간들이 나오죠? 미국에서 라이컨슬로프 중 하나가 인간 작가와 인터뷰를 한 모양이더라고요. 그리고 그 소설이 출간되었죠.”
“영화에서 늑대인간들은 착했는데…….”
“하하, 물론 인간들 틈에 섞여서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지 않고 살아가는 라이컨슬로프도 상당수 있죠. 하지만 저희는 달라요. 저희는 오늘을 무척이나 기다려 왔거든요.”
“그게 무슨…….”
“빌어먹을 뱀파이어와 잠식자들을 모조리 죽이고 헬튼 로즈를 얻어 불사자가 되는 날을요.”
“무슨 소린지 모르겠어요.”
지희는 고개를 좌우로 마구 흔들었다.
“후후, 몰라도 돼요. 그동안 참고 있던 울분 때문에 잠시 저 혼자 주절주절 떠든 거니까요. 이곳에는 본래 아무도 없었어요.”
본래 아무도 없었다?
이곳에 아무도 없는 것이라 생각하고 말을 했다는 것인가.
아니야!
우리는 살아 있어!
제발! 우리는 살아 있다고!
지희와 친구들의 얼굴이 새카맣게 굳어 갔다.
그녀들의 머리 위로 점점 거대해지는 그림자가 비춰 들고 있었다.

***

헬튼 로즈의 손목을 잡고 달린 월은 고성 본관 1층에 도달했다.
그 뒤를 명호와 현우가 바짝 쫓고 있었다.
이제껏 잠식자들이 개별적으로 헬튼 로즈를 습격한 적은 있지만 오늘처럼 대규모로 습격을 해 온 것은 처음이었다.
축제이기 때문에 구경을 온 사람들만 수백 명이 넘었다.
한데 그 미친놈들은 수백 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모조리 죽일 생각인 걸까?
그런 일이 발생한다면 대한민국이 건국 이래 최대 참사가 될 것이 확실했다.
“일단 문이라도 잠가.”
월의 명령에 명호와 현우는 군말 없이 따랐다.
그들은 1층 현관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문을 닫아 버렸다.
라이컨슬로프 정도의 괴물이라면 창문을 깨고 들어오는 것은 순식간일 테지만 그 약간의 시간이라도 지금으로서는 귀중했다.
“다행히도 라이컨슬로프가 쫓아오지 않습니다.”
뒤를 돌아본 명호가 한껏 차오른 숨을 내쉬며 말했다.
“우리 입장에서 보면 다행이지.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악몽이고.”
“그게 무슨 소리죠?”
이해가 되지 않는 듯 헬튼 로즈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녀는 월에게 잡힌 팔목이 시큰거렸지만 아프다는 소리를 하지 않았다.
나름 상급 뱀파이어로서의 자존심일지도 몰랐다.
“이곳에 있는 것은 라이컨슬로프만이 아니라는 소리야.”
“그거야 당연하죠. 저를 노리는 것은 잠식자들이었으니까요.”
“그래. 이 학교에는 비정상적일 정도로 잠식자와 사이코패스들이 많지. 그들의 목표는 너고.”
“그래서요?”
“머리가 안 돌아가는군. 라이컨슬로프의 목표도 너야. 양 쪽에서 같은 목표는 노리는 셈이지.”
“그거야…… 아!”
“적의 적은 아군이 될 수 있다고 했다지. 비록 아군은 아니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다행이라고 할 수 있지.”
각성한 라이컨슬로프가 대량살상을 벌이고 있었다.
아직 피의 굶주린 그들이기에 인간들을 향해서 살상을 벌이고 있지만 배를 채우면 곧 목표를 찾기 시작할 것이다.
바로 불사의 열쇠라는 헬튼 로즈를.
하지만 그녀를 오랫동안 노려 왔던 잠식자들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곧 그들을 향한 대반격이 시작될 것이다.
어쩌면 헬튼 로즈보다 라이컨슬로프에 대한 살의가 더 강할지도 모른다.
아무래도 학교는 잠식자들의 근거지였으니.
학교에서 살육을 행하고 있는 라이컨슬로프들은 잠식자들에게 침략자와 마찬가지였다.
꽈지지직!
순간, 둔중한 파괴음이 터져 나왔다.
현관의 창문이 부서지는 것이 아니었다.
아예 현관 자체가 박살이 나며 뭉개진 것이다.
부서진 현관은 복도 벽에 부딪친 후 바닥에 떨어졌다.
크르르르릉.
그리고 한 마리의 라이컨슬로프가 모습을 드러냈다.
신장이 2m가 넘었다.
인간의 입장에서 봤을 때 엄청난 크기지만 라이컨슬로프의 입장에서는 소형 급에 속했다.
가장 크게 자란 라이컨슬로프는 3m가 넘기도 했다.
대형 급의 라이컨슬로프는 가히 괴물이라 칭해도 아깝지 않은 괴력을 지녔다.
소형 급의 라이컨슬로프라고 해서 약한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상상을 초월하는 각력를 이용해서 단거리 육성 선수보다 배나 빠른 속도를 자랑했다.
어지간한 인간이라면 라이컨슬로프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눈치도 채지 못하고 목이 잘리고 말 것이다.
“아, 벌써 쫓아왔군. 먼저들 가.”
월은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그의 힘이라면 라이컨슬로프 한 마리 잡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지구력이 문제였다.
수십 마리가 넘는 라이컨슬로프와 잠식자들.
또한 그들과는 다르게 은밀하게 헬튼 로즈를 노리는 사이코패스들이 도처에 깔려 있었다.
밤이 새도록 그들과 사투를 벌어야 하는 입장에서 월은 최대한 힘을 아끼고 싶은 심정이었다.
꽈지직!
“이 개새끼, 도대체 여기가 어디라고 와서 난리야, 난리긴.”
그때, 누군가가 갑자기 나타났다.
그는 라이컨슬로프의 등에 매달렸다.
놀란 라이컨슬로프가 상체를 마구 흔들었지만 딱 붙은 거미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라이컨슬로프 등에 매달린 사람은 3―A반의 김상중 담임선생이었다.
정말 놀라울 따름이다.
갑작스런 전개에 월을 비롯해서 헬튼 로즈는 굳은 채 서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지켜봐야만 했다.
“이 새끼! 이 개만도 못한 새끼! 어디서 수작질이야, 수작질은!”
김상중 선생은 날카롭게 날을 세운 단검으로 라이컨슬로프의 목덜미를 마구 찔러댔다.
라이컨슬로프의 피부는 질긴 고무와도 비슷했다.
약간의 상처를 날지 모르지만 깊숙하게 파고들 수는 없었다.
과거의 사람들이 현재보다 훨씬 날카로운 검과 창을 가지고 있음에도 라이컨슬로프 사냥을 매번 실패했던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
물론 은탄환이 발명되어 라이컨슬로프를 사냥할 수 있게 됐지만, 그것은 400년도 채 되지 않는다.
한데 김상중 선생의 단검은 라이컨슬로프의 목덜미를 마구 찢어 내고 있었다.
엄청난 피가 튀어나와 선생의 얼굴을 마구 적셨다.
그가 가진 단검에 어떤 주술이 담겨 있든지 내기를 이용할 줄 알든지, 둘 중 하나일 것이다.
김상중 선생이 처형자일 확률은 10퍼센트도 되지 않는다.
한데 겉모습으로 봐서는 잠식자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결론은 하나뿐.
지금까지 숨을 죽이고는 헬튼 로즈의 활동 반경을 면밀하게 체크를 해 온 사이코패스란 소리였다.
소름 끼치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온몸에 피를 뒤집어쓴 김상중 선생이 헬튼 로즈를 보며 손짓을 했다.
“로즈, 어서 도망가. 이런 들개 따위한테 먹히면 안 되잖아. 그러니까 지금은 도망가. 선생님이 곧 갈게. 선생님이 고귀하고 우아하게 먹어 줄게. 그때까지 살아 있어야지.”
라이컨슬로프의 난폭함보다 그의 말이 더욱 소름 끼쳤다.
“신경 쓸 것 없어. 우린 이곳에서 탈출을 할 생각만 하면 돼.”
바위처럼 굳어져 버린 헬튼 로즈의 손목을 잡고 월은 다시 뛰기 시작했다.
그들의 등 뒤에서는 라이컨슬로프와 김상중 선생의 잔혹할 정도로 피 튀기는 싸움이 계속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