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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화

Chapter 7 광란의 축제(3)


쿠오오오오!
라이컨슬로프의 사자후가 터져 나왔다.
그러자 그의 사자후의 응답이라도 하듯이 곳곳에서 같은 늑대 울음소리가 울렸다.
쿠오오오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이제까지 토이즈 국제고등학교를 지원해 온 근처 마을 사람들이 모조리 라이컨슬로프로 변하는 것이 아닌가.
노인과 아이들, 그리고 그들과 함께 과일을 먹으며 축제를 즐기던 사람들이 인간의 모습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그 숫자는 어림잡아도 30마리 이상은 되어 보였다.
한 마리, 한 마리가 인간보다 수십 배의 힘을 가진 존재들이다.
개중에 가장 약한 라이컨슬로프라 하더라도 인간의 힘으로는 절대로 당할 수가 없었다.
괴물로 변해 버린 사람들은 놀라서 흩어지고 있는 인간들을 마구잡이로 학살하기 시작했다.
특히 축제를 즐기러 왔던 학생들의 희생이 너무도 컸다.
“벌써 일이 터졌군. 도대체 이런 일을 벌이는 꿍꿍이가 뭐야?”
월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는 한순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한 운동장을 보며 어금니를 강하게 물었다.
30마리 이상의 라이컨슬로프라…….
그야말로 엄청난 전력이었다.
30마리의 라이컨슬로프라면 1개 보병 대대가 와도 막기 힘들었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 중에서 몇 명이나 살아남을지 알 수도 없었다.
그만큼 나타난 라이컨슬로프들의 위력은 대단하다.
그런데…….
월은 아직도 위화감이 사라지지 않았다.
저들로 끝이 아니라는 소리.
훨씬 더 위험한 무엇인가가 학교 내부에서 꿈틀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로즈!”
월은 헬튼 로즈를 불렀다.
그녀가 이를 악문 채 버티고 있는 것이 보였다.
강한 척하지만 인간과 가장 가까운 뱀파이어라 할 수가 있는 그녀였다.
그녀의 몸이 두려움으로 덜덜 떨리고 있었다.
일단 그녀를 피신시켜야 한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수는 없지만, 헬튼 로즈를 중심으로 일어나고 있다는 것쯤은 금방 파악을 할 수가 있었다.
그녀를 보호해야 한다.
그러면 적의 음모가 자연스럽게 드러날 것이다.
“따라와!”
월은 헬튼 로즈의 팔목을 붙잡고 무작정 뛰었다.
그녀의 뒤를 따라서 명호가 달렸다.
그와 함께 현우도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세 토막이 나지는 않았지만 상당한 상처였다.
재생력이 강한 라이컨슬로프라고 하더라도 지금처럼 빨리 움직일 수는 없었다.
그런데도 현우는 헬튼 로즈의 뒤를 쫓아서 뛰어갔다.
몸이 세 토막으로 분리될 만큼의 상처가 빠르게 아물었다.
어느새 그의 상처는 처음부터 아예 없던 것처럼 완전히 사라져 찾아볼 수 없었다.
상상을 초월하는 재생력이었다.
“어디로 가는 거예요?”
헬튼 로즈가 월에게 물었다.
이곳에서는 도주할 곳이 마땅치 않았다.
아니, 아예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학교는 거대한 전기 철책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24시간 내내 감시하는 CCTV가 사방에서 눈을 희번덕거렸다.
또한 이들 중에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잠식자와 사이코패스들도 숨어 있었다.
모든 눈이 그들에게 향해 있고, 모든 괴물들이 이 틈을 타서 그들을 쫓을 것이다.
그들에게 도망을 갈 곳이란 어디에도 없었다.
“교장에게 갈 거야.”
“교장이요?”
“그래. 그라면 분명 무엇인가 알고 있을 거야.”
“모른다면요?”
“차라도 훔쳐서 달아나지 뭐. 걱정하지 말라고. 이렇게 보여도 난 꽤나 능력이 있으니까.”
월의 말에 헬튼 로즈는 한마디를 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그의 말대로였다.
월이 진정한 실력을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했다.
아니, 그때 보았던 가공할 능력도 그가 가진 능력 중에 일부분일 것이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하여 왔다고 했다.
그렇다면 믿자.
이 남자를 믿어 보자.
헬튼 로즈는 월의 손을 꼭 잡고 고성으로 된 본관을 향해서 쉴 새 없이 걸음을 옮겼다.

***

슈나비츠는 보름간의 고등학교 생활을 충분히 즐기고 있었다.
이제껏 그는 유럽에서 대학 생활을 주로 해 왔다.
하지만 착실한 학생이 아니었다.
시간이 많다 보니 이것저것 잡다한 지식을 얻은 수준이다.
당연히 공부에는 별 취미가 없었고, 여학생의 뒤꽁무니를 쫓아다니는 것에 모든 시간을 할애했다.
덕분에 많은 씨를 뿌렸는지는 몰라도 단 한 번도 대학 졸업장을 받은 적이 없었다.
그는 월에게 ‘이젠 지긋지긋해. 대학 따위는 다신 안 가’라고 화를 내서 죽도록 맞은 적이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수십 년 전부터는 아예 학교 생활과는 거리를 두었다.
즉, 고등학교 생활을 오랜만에 하는 셈이다.
과거에 다녔던 학교와는 완전히 달랐다.
일단 학생 수가 과거에 비해서 1/3 수준밖에 되지 않았다.
예전에는 60명도 넘는 학생들이 한 반에 바글바글하게 있었는데 지금은 겨우 서른 명 안팎의 학생이 한 반을 유지했다.
이렇게 학생 수가 적은데도 교권이 무너지고 사교육이 성행하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 슈나비츠였다.
그가 교육부장관이었다면 나라의 기틀마저 휘청거리게 만드는 사교육 따위는 뿌리부터 뽑아 버렸을 것이다.
물론 정치권에 얽힌 복잡한 실타래부터 풀어야겠지만.
“슛! 골!”
3학년 A반이 한 골을 더 넣었다.
이번에 골을 넣은 자는 도수라는 아이로, 꽤나 운동을 좋아했다.
쉬는 시간만 되면 축구공이든 농구공이든 가리지 않고 밖으로 갖고 나가서 종이 칠 때까지는 절대로 들어오지 않았다.
그 덕분인지 다른 친구들에 비해서 월등한 운동신경을 자랑했다.
그 외에도 꽤나 마음에 드는 친구들이 많았다.
기회만 된다면 반년의 학창 생활을 이곳에 남아서 하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하지만 그것은 희망일 뿐이다.
그는 늙지 않고 나이를 먹지도 않는다.
월과 마찬가지로 한곳에 머무를 수 없는 처지였다.
지금껏 단 한 번도 한곳에 오래 머무르지 않았고, 수많은 위험을 피해야만 했다.
아무리 그들이 잠식자들과 싸움을 벌인다고는 하지만, 인간들 입장에서는 잠식자나 슈나비츠나 똑같은 괴물일 뿐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잠식자들과 본격적으로 싸움을 벌이는 집단이 있다는 것이다.
수천 년 전부터 유럽에서는 불사자와 잠식자들의 존재를 눈치채고 조직적으로 그들과 맞서 왔다.
반 헬싱이나 바티칸의 ‘침묵의 기사단’이 대표적이었다.
근래 들어 일본과 중국, 하다못해 태국에서도 잠식자들과 맞서기 위한 조직이 있었지만, 오직 한국만이 그것을 외면했다.
한마디로 정보가 깡통이다 보니 오컬트적인 면에 대해서는 아예 귀를 막고 있던 것이다.
그래도 40년 전부터는 그런 걱정이 조금씩 사라졌다.
중개자가 생기고 잠식자들과 맞서 싸우는 처형자들이 나타났다.
아직 미미하지만 그들이 있음으로써 잠식자들이 한국을 집어삼키는 것을 간신히 막아 낼 수는 있었다.
잠식자들.
인간이면서 인간이길 포기한 존재들.
과거로부터 유전학적으로 내려온 존재도 있었고, 각국의 이기심에 따라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존재들도 있었다.
과연 그들이 지향하는 최종 목적은 무엇일까.
항상 입버릇처럼 말하는 불사가 최종 목적일까?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은 소리지만 그것은 커다란 그림을 가리기 위한 은폐로밖에 보이지가 않았다.
슈나비츠는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축구 중에 갑자기 너무 깊은 상상 속에 헤맸다.
“골!”
역시.
슈나비츠가 뛰지 않으니 수비수가 한 명 없는 상태에서 한 골을 먹고 말았다.
이제 남은 시간은 10분 남짓.
스코어는 2:2였다.
이번 반대항 축구 결승에서 이긴다면 봉사활동 점수를 1점 더 준다고 하니 남학생들은 죽기살기로 뛰고 있었다.
“야, 인마. 힘들어? 서서 뭐해.”
도수가 헐떡이며 다가와 슈나비츠의 엉덩이를 철썩 때렸다.
깜짝 놀란 슈나비츠였다.
자신의 엉덩이를 이렇게 대놓고 칠 수 있는 인간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그나마 인간들 중에서 가장 친하다고 할 수 있는 조이도 이렇듯 엉덩이를 칠 수는 없을 것이다.
이것이 학교생활의 묘미인가.
슈나비츠는 빙그레 미소를 짓고는 공을 쫓아 뛰기 시작했다.
하지만 슈나비츠는 몇 걸음을 가지 않고 멈췄다.
얼굴이 심각하게 일그러지며 학교 본관 쪽을 바라봤다.
엄청난 살기가 솟구쳐 오르고 있었다.
마치 수십 마리의 맹수들을 양 떼가 있는 곳에 한꺼번에 풀어놓은 것만 같았다.
학생들도 불길한 기운을 느꼈는지 모두가 축구를 멈추고 본관 쪽을 바라봤다.
그것은 축구 경기를 응원하고 있던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모두가 한곳을 바라보았다.
고오오오오―
살기가 점차 강해지더니 축구장이 있는 쪽을 향했다.
거대한 아가리를 가진 육식동물이 인간들을 향해서 이빨을 드러낸 것이다.
이곳에 그대로 있으면 모두 죽는다.
“모두 뒤로 물러나! 죽을 각오를 하고 뛰어!”
슈나비츠가 축구를 하던 학생들을 향해서 소리쳤다.
그들은 어리벙벙한 표정을 지으며 슈나비츠를 바라봤다.
“멍청이들아, 어서 뛰라고! 그대로 서 있으면 죽어!”
몇 번이나 외쳤지만 학생들과 구경꾼들은 자리에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슈나비츠를 향해 비난을 퍼붓는 자들도 있었다.
“답답한 놈들.”
슈나비츠는 급히 마나를 끌어 모았다.
그래도 그동안 함께 생활을 한 정이 있으니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고 싶었지만, 이들은 자신들의 손으로 명줄을 잘라 버리고 말았다.
슈나비츠가 외친 순간에 도망을 갔더라면 50퍼센트라도 살아날 확률이 있었지만, 지금은 20퍼센트까지 떨어졌다.
“온다!”
사방에 뻗어 있던 살기들이 엄청난 속도로 다가와 슈나비츠와 주위 인간들에게 향했다.
쿠오오오!
그와 함께 강철의 육체를 가진 거대한 라이컨슬로프들이 축구장을 넘어 뛰어오르기 시작했다.
“괴, 괴물이다!”
그제야 사람들은 놀라서 등을 돌리고 달아났다.
하지만 그들보다 라이컨슬로프의 움직임이 배는 빨랐다.
인간들은 양 떼처럼 우르르 몰려다니며 라이컨슬로프의 목표로 전락했다.
연약한 인간의 육신이 사정없이 잘려 나갔다.
팔다리가 잘려 나가는 것은 그나마 운이 좋은 편이었다.
배가 반으로 갈라지며 내장이 뿜어져 나와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들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보이지가 않았다.
사방에서 사람들이 울부짖자 라이컨슬로프들이 다가와 그들의 목을 사정없이 물어뜯었다.
육식동물의 습성처럼 일단 생명을 끊고는 내장부터 차근차근 입안으로 밀어 넣었다.
누구 하나 그들을 말릴 수 없었다.
“사람 살려요! 제발 살려 주세요!”
“으악! 문을 열어! 제발 문 좀 열어 줘!”
지옥이 따로 없다.
“개자식들, 한 번 붙어 볼까.”
전신에 마나를 불어넣은 슈나비츠가 드디어 움직였다.
그의 신형은 살육을 벌이고 있는 라이컨슬로프를 향해서 엄청난 속도로 쇄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