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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화
Chapter 7 광란의 축제(2)
교장은 뒷짐을 진 채 축제가 벌어지고 있는 운동장을 지켜보고 있었다.
어느덧 정오를 넘어서면서 상당수의 인원이 몰려왔다.
마을 사람들은 물론이거니와, 인제군 내에 존재하는 학교의 학생들까지 꽤나 많이 축제를 즐기고 있었다.
형형색색 온갖 교복을 입은 고등학교 학생들의 모습이 보였다.
토이즈 국제고등학교는 강원도 지역 사회에서 꽤나 인지도가 높았다.
대부분의 국제고등학교는 서울에 몰려 있다.
또한 서울에 비해 지방에 있는 국제학교는 꽤나 초라했다.
서울과 비견될 수 있는 국제학교는 제주도 정도가 다였다.
그러나 토이즈 국제고등하교는 달랐다. 엄청난 시설과 높은 수준의 외국인 선생들, 100퍼센트 지원하는 기숙사와 대학을 능가하는 첨단 시설은 토이즈 국제학교를 강원도의 자랑거리로 만들었다.
그렇기에 종종 TV에 나와 유명세를 타기도 한다.
당연히 토이즈 국제고등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주변 이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 학교에 다니는 학생만 잡으면 팔자를 고칠 수 있다는 소문도 심심치 않게 돌았다.
그리고 오늘 1년에 한 번, 베일에 싸인 학교가 문을 연다.
그 학교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이 기회를 놓칠 리가 없었다.
“후후후, 오늘이 무슨 날인지 전혀 모르겠지. 모두가 불나방처럼 불빛에 이끌려 이곳으로 모여드는구나.”
월과 슈나비츠를 대할 때의 할아버지처럼 인자한 모습을 보이던 교장 선생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그의 눈은 어떤 괴물들보다 탐욕스럽게 빛을 내고 있었으며 입술에는 더러운 침이 흘러내렸다.
그는 손등으로 침을 닦아 내고는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았다.
“낮이라고 방심하지 마라. 이곳에 곧 지옥의 문이 열릴 것이다. 너희들의 욕심으로 말미암아 헬 게이트가 열리고 그분들이 오실 것이다. 멍청한 것들, 아무렴 헬튼 로즈의 능력 때문에 그녀를 노릴까. 병신같은 것들, 그녀의 피와 심장을 먹으면 불사자가 될 수 있다고 아직도 믿고 있다니. 개라도 그 소문은 믿지 않겠다. 어쨌든 다행이야. 너희들이 멍청해서. 너희들이 멍청했기 때문에 그분들이 오실 수가 있는 거야.”
교장 선생의 날카롭게 음습한 목소리가 교장실 벽으로 스며 들어갔다.
뒷짐을 지고 있던 교장 선생은 반쯤 허공에 떠 있는 상태였다.
누군가 그 모습을 본다면 너무 놀라서 뒤로 자빠지고 말았을 것이다.
그의 무릎 밑 부분이 보이지가 않았으니 말이다.
피부를 벗겨 낸 인간의 근육이 교장 선생의 다리와 뒤섞여 있었다.
그리고 그 괴이한 근육은 대리석으로 된 바닥과 이어져 있었고.
교장 선생이 학교 본관인 독일식 고성과 일체화가 된 것이다.
“이제 시작이다, 멍청한 것들. 이미 마혈진(魔血陣)은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크크크크크. 즐겁구나, 너무도 즐거워. 그분들이 오신다면 내일 아침의 해가 뜰 때까지 과연 몇 명이나 그 자리에 서 있을 수가 있을까.”
교장 선생의 소름 끼치는 웃음소리가 계속해서 울려 퍼졌다.
***
점심시간이 지나니 사람들의 수가 굉장히 많이 늘었다.
근처 마을에 있는 사람들은 모조리 이곳으로 피서를 온 모양이었다.
노인들도 보이고, 아이들도 보였다.
그리고 그들은 데려온 중년층도 상당수를 차지했다.
그들은 각자 마음에 드는 행사를 보며 일과를 즐겼다.
어떤 이들은 축구장이나 농구장에서 돗자리를 깔고 앉아서 약주와 함께 수박을 먹었다.
종종 술에 취해 위태롭게 보이는 노인들도 있었지만, 봉사활동을 하는 학생들이 그들을 안전하게 모셨다.
타 학교의 학생들은 토이즈 국제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들의 숫자보다 훨씬 많은 듯했다.
월은 그들을 보며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축제날은 분명 금요일이다.
토이즈 국제고등학교야 축제 당일이니 수업이 없겠지만, 다른 학교는 그렇지 않았다.
대부분이 수업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는 것은 여기 있는 학생들 모두가 땡땡이를 쳤다는 말과도 같았다.
“츳츳, 참으로 몹쓸 아이들이군. 부모들은 모두 학교에 있을 것이라 여기고 있을 텐데.”
월은 답답하다는 듯이 혀를 찼다.
그러자 옆에서 듣고 있던 헬튼 로즈가 고운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소리를 질렀다.
“이봐요, 월 씨! 지금 당신이 그럴 소리를 할 때야. 도대체 무슨 배짱으로 무전취식을 한 거야. 내가 그렇게 만만해 보여! 그리고 뭐라고? 그냥 말없이 핫바를 먹은 것도 화가 치밀어 오르는데 그걸 카드로 계산하라고? 3개월로? 나참, 기가 막혀서. 그동안 세상 어떻게 산 거야. 이런 식으로 살다간 돌 맞아요, 돌!”
아직도 화가 풀리지 않는 모양이다.
한 번 삭인 분노가 다시 폭발한 헬튼 로즈는 아직도 구석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월을 향해서 사정없이 악담을 내뱉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기가 센 마누라가 연약한 남편을 잡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헬튼 로즈의 잔소리가 듣기 싫었는지 월은 자세를 바꿔서 다리를 꼬고는 손바닥에 턱을 대고 조는 척을 했다.
이때만큼은 슈나비츠가 너무도 부러웠다.
이미 헬튼 로즈의 잔소리를 예상한 슈나비츠는 축구를 한다면서 엉덩이를 내뺐다.
이럴 때는 기가 막히게 눈치가 빠른 놈이다.
사실 월도 충분히 이곳에서 이탈하여 축제 준비를 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고질라와 같이 땀을 흘리며 탱고를 추는 것은 죽기보다 싫었다.
그런 이유로 공연 시간까지 여기서 죽 치고 있을 생각이었다.
차라리 헬튼 로즈의 잔소리가 훨씬 듣기 좋다고 월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렇게 안 봤는데. 월은 참으로 얼굴 가죽이 두껍네요.”
그러든지 말든지.
월은 팔짱을 끼고는 귀를 막아 버렸다.
헬튼 로즈는 몇 번 더 월에게 잔소리를 했지만, 이내 지쳤는지 제자리로 돌아갔다.
어느새 상당한 사람들이 몰려와서 더 이상 자리를 비울 수도 없었다.
새로운 손님이 헬튼 로즈 앞에 섰다. 190㎝가 될 정도로 키가 큰 사내였다.
언뜻 보기에는 앳되어 보이기도 하지만, 사복을 입어서 그런지 정확한 나이를 유추하기는 힘들었다.
일단 그 사내는 주변 어떤 사람들보다 눈이 갔다.
단지 키가 크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서울의 강남에서나 볼 수 있는 세련된 옷차림과 슈나비츠와도 견줄 수 있는 잘생긴 외모는 누가 보더라도 한 번 더 눈이 갈 수밖에 없었다.
확실히 말해서 이곳에서는 꽤나 이질적인 존재였다.
사내는 헬튼 로즈를 향해서 가지런한 치아를 드러내 보이며 미소를 지었다.
“음료수 두 캔만 주세요.”
“어떤 음료로 드릴까요?”
“시원한 것 아무거나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헬튼 로즈는 고객을 위한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일념하에 최대한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는 음료수 캔 두 개를 가지고 와서 사내에게 건넸다.
“삼천 원입니다.”
사내는 돈을 건네고는 받은 캔 하나를 그녀에게 주었다.
“아니, 이걸 왜 저에게?”
“수고하시는 것 같아서 나눠 먹으려고요.”
요상한 분위기를 느낀 현우와 명호는 사내의 기름기가 잔뜩 낀 말에 온몸에 소름이 돋을 뻔했다.
저런 낯 간지러운 소리를 저토록 자연스럽게 구사하는 것도 나름 능력이라면 능력이었다.
“아니, 괜찮습니다.”
다행히도 헬튼 로즈는 사내의 호의를 냉정하게 거절했다.
사실 그녀가 사내의 호의를 거절한 것은 다른 이유 때문이었다.
아까부터 느껴지는 불길함이 점점 강해지고 있었다.
마치 날카로운 칼날이 어디선가 자신을 노리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것은 사내가 나타나면서 더욱 가중되었다.
눈앞의 사내 때문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주변의 공기가 달라진 것만큼은 확실해 보였다.
“그러지 말고 같이 한잔해요.”
부드러운 말투가 통하지 않자 사내는 헬튼 로즈의 팔목을 움켜잡았다.
잡는 힘이 얼마나 강한지 도저히 뿌리칠 수가 없었다.
아무리 전투력이 약한 헬튼 로즈라지만 일반 고등학생처럼 힘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서 오랜 시간 무도로 몸을 단련했고, 보통의 불량배라면 한두 명 정도는 너끈하게 상대를 할 수가 있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사내가 잡은 팔목을 뿌리칠 수가 없었다.
보통의 힘이 아닌 것이다.
“놔요.”
“미안하지만 얘기 좀 하자고. 그렇게 뻑뻑하게 굴 필요는 없잖아.”
이제는 노골적으로 헬튼 로즈를 자신 쪽으로 끌어당기는 사내였다.
보다 못한 현우가 다가와서 사내의 팔목을 잡았다.
그도 힘이라면 지지 않는다.
당연히 사내의 팔목을 쉽게 풀 수 있을 것이라 예상했다.
“뭐하는 추태야? 그 손 놓지.”
“싫다면?”
“팔목 하나는 이곳에 놓고 가야 할 거야.”
“웃기는 놈이군. 네놈이나 좋은 말 할 때 그 손을 놔. 그렇지 않으면 지옥을 만나게 될 거야.”
“말로 해서는 안 될 놈이군.”
현우는 사내의 팔목을 강하게 뒤로 꺾었다.
보통은 여기서 비명이 터져 나오며 상대는 잘못했다고 빌었다.
어라?
사내의 팔목과 어깨가 완전히 뒤로 꺾였다.
그런데 그는 오히려 웃고 있지 않은가.
조금만 더 꺾으면 어깨가 부러져 뼈가 살을 뚫고 밖으로 튕겨져 나올지도 몰랐다.
그 순간, 사내의 입이 점차 벌어졌다.
그의 이빨은 뱀파이어의 송곳니와는 완전히 달랐다. 그것은 흡사 늑대와 매우 충실하게 닮아 있었다.
‘이자는?’
순간, 사내의 정체를 알아차린 현우는 잡고 있던 그의 팔을 풀고 빠르게 뒤로 물러났다.
그러나 한발 늦고 말았다.
푸식!
사내의 주먹에서 튀어나온 거대한 손톱이 현우의 전신을 훑고 지나간 것이다.
두터운 살점이 양옆으로 벌어지며 엄청난 양의 피가 허공으로 솟구쳐 올랐다.
현우는 눈이 뒤집힌 채 뒤로 넘어가고 말았다.
“으아아악!”
“사, 살인이다! 사람을 죽였어.”
급작스럽게 일어난 일이었다.
현우가 피를 뿌리며 넘어갔지만 그들 옆에 있는 사람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잠시간 파악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피가 자신들이 몸에 튄 순간에서야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자각을 했다.
사람들은 동시다발적으로 비명을 지르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누군가는 다리가 꼬여 앞으로 넘어졌다.
그러나 누구도 그를 일으켜 줄 생각은 하지 않았다.
마구 밟고 지나칠 뿐이었다.
어떤 자는 넘어진 자의 머리를 밟아 버렸다.
머리를 밟힌 자는 이마를 바닥에 부딪쳤고, 동시에 사방으로 피가 튀었다.
죽었는지 살았는지는 모른다.
바닥에 힘없이 축 처져 경련을 일으키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다지 살아날 가망이 없음만을 짐작할 뿐이었다.
“쿠후후, 헬튼 로즈. 너를 잡기 위해 오늘을 기다렸다. 학교의 문이 열리는 오늘을 말이다. 나와 함께 가자. 영원히 나와 함께하는 것이다.”
사내의 몸이 점차 변이하기 시작했다.
연예인만큼이나 잘생겼던 그의 얼굴은 늑대의 모습으로 변했고, 몸에는 긴 갈색 털이 자라났다.
그렇지 않아도 컸던 몸집은 더욱 커져서 2m가 넘어섰다.
강철과 같은 근육은 심하게 부풀어 올랐고, 강렬한 살기가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라이컨슬로프.
뱀파이어보다 훨씬 강한 재생력과 전차와 같은 힘을 가진, 고대로부터 내려온 전설 속의 존재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