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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화

Chapter 9 피의 천사 강림(3)


검붉은 피에는 인간의 얼굴이 각인되어 있었다.
출렁거리는 피의 물결이 일 때마다 수많은 인간들이 비명을 질러댔다.
여기서 나가게 해 달라고, 죽고 싶다고, 이곳은 도대체 어디냐고.
우오오오!
피의 형태를 한 인간들이 팔을 뻗어 라이컨슬로프의 몸으로 기어 올라갔다.
그렇지 않아도 숨을 쉴 수 없던 라이컨슬로프였다.
괴물의 눈이 뒤집혔다.
쿠쿠쿠쿵!
이윽고 라이컨슬로프의 몸 전체가 피에 잠기고 말았다.
피의 강물에 각인되어 있는 수많은 인간들이 탐욕스럽게 라이컨슬로프의 몸을 탐했다.
사각, 사각, 사각, 사각.
라이컨슬로프의 거대했던 몸이 조금씩 줄어들었다.
점점 줄어들던 라이컨슬로프의 몸은 이제 완전히 사라져서 보이지 않았다.
피의 강물이 조금씩 불어나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이미 1층 높이까지 차올랐다.
“이런 젠장.”
아직 밤이 오지 않았다.
밤이 온다면 이곳에서 벗어나는 일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박쥐로 변해도 되고, 부엉이로 변해도 된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아무리 빠른 속도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수백 미터나 되는 물위를 뛰어다닐 수는 없었다.
“이거, 정말로 위험한데.”
사방을 둘러봐도 탈출할 만한 곳은 보이지 않는다.
피의 강물이 사방을 꽉 메워 숨통을 조여 왔다.
[마스터, 마스터. 어디 계십니까?]
슈나비츠는 월과 전음을 시도했다.
하지만 월과의 전음은 성공하지 못했다.
둘의 영혼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어떤 상황에서도 전음이 통한다.
그런데 지금은 중간에 잡음이 섞인 것처럼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마스터!]
몇 번을 불러도 소용이 없었다.
“설마 이것 때문인가.”
쿠쿠쿠쿠쿠쿠―
학교 본관.
그곳을 중심으로 상상을 초월하는 요기가 치솟고 있었다.
동시에 검은 회오리가 본관 근처를 끊임없이 맴돌았다.
휘날리는 광풍 속에 뭔가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죽은 자들의 원념이다.
도대체 이곳이 어디이기에.
라이컨슬로프와 잠식자들에게 수백 명의 인간들이 죽임을 당했다.
죽은 그들이 원념이 방아쇠가 되어 이곳에 잠들어 있던 거대한 무엇을 꺼낸 것이다.
이제껏 느껴 보지 못한 가공할 요기였다.
어떤 상황에서도 고개를 숙이지 않던 슈나비츠의 온몸이 자신도 모르게 떨려 왔다.
“도대체 뭐냐? 어떤 괴물이 나타나려고 하는 것이냐?”

***

“저, 저, 저, 저것 좀 보세요.”
현우의 목소리가 마구 떨려 나왔다.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본 것처럼 그의 안색도 새파랗게 질렸다.
헬튼 로즈를 납치당하도록 방치했고, 교장도 놓쳤다.
자신의 안일함을 탓하던 월은 현우의 말에 정신이 들었다.
그는 현우가 가리킨 창문 밖을 바라봤다.
본관이 위치한 대지가 다른 건물에 비해서 높기에 운동장을 비롯해서 밖에 상황을 비교적 상세하게 확인할 수가 있었다.
자신이 잘못 본 것인가.
바닥을 뚫고 나온 핏물이 점점 불어나더니 강이 되었다.
피의 강물은 아직 살아남아 숨을 죽이고 있던 사람들은 닥치는 대로 덮쳤다.
몇몇 사람들은 수영을 해서 빠져나오려고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어푸, 어푸. 사, 사람 살려! 제발, 누구라도 도와주세요!”
핏물 속에 무엇이 있는 것일까.
헤엄을 치던 그들은 10m도 가지 못하고 물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잠시 후, 그들의 분리된 육체가 물 위로 둥둥 떠올랐다.
언뜻 봐도 백 명 이상의 사람들이 남아 있었다.
건물 안으로 숨어서 목숨을 부지한 사람도 있을 것이고, 운동장에서 우왕좌왕하며 몰려다니다 간신히 목숨을 부지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제대로 피할 수가 없을 듯했다.
급격하게 불어나는 핏물에 의해 사람들이 통째로 삼켜지고 있었다.
그것은 비단 인간들에게만 한정된 것이 아니었다.
라이컨슬로프와 잠식자들까지도, 적과 아군의 피아를 구별하지 않고 모조리 먹혀 들어갔다.
“어쩌지요?”
현우가 물었다.
비록 헬튼 로즈가 그를 강렬한 존재로 만들어 줬다지만, 너무 경험이 일천했다.
지금과 같은 경우에는 아무리 재생력이 뛰어나다 하더라도 소용이 없을 것이다.
순식간에 온몸이 찢겨져 재생할 시간도 주지 않을 테니 말이다.
그리고 가장 큰 문제는 헬튼 로즈의 행방이었다.
악귀가 가득 섞인 핏물 속에 먹히는 것은 상관이 없었다.
하지만 생명의 은인인 헬튼 로즈가 저들의 뜻대로 되는 것은 두고 볼 수가 없었다.
현우와 명호는 작년까지만 해도 반의 왕따였다.
소위 셔틀 노릇을 하면서 근근이 생활을 이어 오고 있었다.
자살도 몇 번이나 생각했지만 겁이 나서 차마 그러지는 못했다.
그들이 괴롭힘을 당하는 이유는 별게 아니었다.
부자가 아니라는 것.
겨우 중산층 따위가 토이즈 국제고등학교와 같은 높은 레벨의 학교에 왔다는 것이 귀족 아이들의 심기에 거슬렸던 것이다.
현우와 명호의 부모는 아이들의 기를 죽이지 않기 위해 생활비의 반을 용돈으로 보냈다.
자신들은 라면으로 생계를 유지하면서도 말이다.
하지만 부모가 힘들게 보낸 용돈은 모두 다른 아이들에게 고스란히 뺏기고 말았다.
그런 탓에 현우와 명호가 쓸 수 있는 돈은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했다.
만약 돈이 떨어지기라도 하는 날에는 다른 아이들의 린치가 심각해졌다.
한 번은 현우의 눈에 촛농을 떨어트려 실명 위기에 처한 적도 있었다.
참다 못한 현우와 명호는 자정이 되는 시각, 학교 옥상에서 동반 자살을 선택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죽어 지옥에 갈 것이라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눈을 떠 보니 멀쩡하게 살아 있는 것이 아닌가.
그들을 살려 준 것은 다름 아닌 헬튼 로즈였다.
그녀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나의 팔과 다리가 되어 줄래? 대신 나는 너희들에게 힘을 줄게.”

그날 이후 현우와 명호는 막강한 힘을 얻었다.
그들과 맞상대를 해서 이길 수 있는 존재는 3학년 중에 없었다.
반의 일진인 민수조차 그들과 손을 섞기를 꺼려했다.
현우와 명호는 악몽과 같은 지옥에서 탈출한 것이다.
그들은 헬튼 로즈를 생명의 은인으로 여겼다.
이후 현우와 명호는 서로에게 맹세를 했다. 그녀를 위해서라면 목숨을 던질 것이라고.
어차피 한 번 죽은 목숨이다.
그녀를 위해서 다시 한 번 죽는다고 하더라도 여한이 없을 것이다.
그렇게 맹세를 했건만…….
이토록 무력감을 느끼기는 처음이었다.
헬튼 로즈의 행방도 모르고 이곳에서 탈출을 할 방법도 알지 못했다.
그들은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월, 제발 가르쳐 주세요. 저희는 어떡해야 하죠. 당신이라면 알 수 있잖아요.”
시시각각 헬튼 로즈에게 좋지 않은 일이 생긴 것은 아닐까 나쁜 생각만 떠올랐다.
그들의 다급함이 생생하게 전달되었다.
그러나 아무리 월이라 하더라도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마땅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가 하늘을 날 수 있지 않는 한에는.
잠시만.
하늘을 날 수 있다면?
하늘을 날지 않더라도 하늘을 날 때처럼 정보를 얻을 수는 있었다.
“크흑, 핏물이 학교 안으로 들어오고 있습니다.”
현우가 놀라서 외쳤다.
핏물이 사람을 잡아먹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그들 역시 핏물에 휩싸이는 순간, 아무런 힘도 써 보지 못하고 뼈만 남을지 몰랐다.
“일단 옥상으로 가자.”
“옥상요?”
“그래. 서둘러.”
월이 앞서서 뛰기 시작하자 현우와 명호도 뒤를 쫓았다.
그들은 미로처럼 얽힌 고성 본관을 올라갔다.
학교 내부에 있던 전등에 불이 나가 복도는 어둠에 휩싸여 있었다.
중간 중간에 보이는 창문으로 빛이 들어오지 않았다면 조금도 앞으로 전진하지 못했을 것이다.
계단을 올라가던 월은 뭔가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잠시 감각을 끌어 올리자 뭐가 이상한지 대번에 잡아 낼 수가 있었다.
지옥과 같은 곳이지만 그래도 태양이 밝게 떠 있어 어느 정도 두려움을 이겨 낼 수 있었다.
그것은 생존해 있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태양과 어둠은 인간의 심리를 반영한다.
인류에게 최고의 신은 태양과 함께하고, 최악의 신은 어둠과 함께한다.
어둠이 닥쳐들면 인간은 극도로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고, 움막과 동굴에 틀어박혀 숨을 죽였다.
그것을 최초로 이겨 내게 해 준 것이 바로 불의 발견이었다.
불이 발견되고 인간의 생존력은 상당히 높아졌다.
생태계 최하위에 위치했던 인간이 이제는 다른 종족을 핍박할 수 있는 수준까지 올라섰다.
그리고 전등이 발명되었다.
이제 밤이 되도 인간은 겁내지 않았다.
어둠을 몰아내고 얼마든지 빛을 낼 수 있을 정도로 인류는 발전한 것이다.
하지만 다시 빛이 없어진다면?
감춰졌던 인간의 두려움이 다시 눈을 뜰 것이다.
만약 피의 축제가 저녁에 벌어졌더라면 지금까지 살아남은 생존자들은 한 명도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빛이 사라지고 있었다.
시간을 보니 5시가 채 되지 않았다.
아무리 산악 지형이라지만 벌써 태양이 진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뭔가가 벌어지고 있다.
“서둘러.”
복잡한 미로를 통과한 월은 옥상 문을 열었다.
다행히도 옥상 문을 열려 있었다.
옥상에 올라온 월과 현우, 명호는 돌이 된 것처럼 그 자리에서 얼어붙고 말았다.
학교를 중심으로 거대한 검은 회오리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회오리는 주변을 맹렬하게 돌 뿐, 움직이지 않았다.
“저, 저것이 도대체 뭡니까?”
명호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나 지식이 풍부한 월이라 해도 지금 명호의 질문에는 대답을 해 줄 수가 없었다.
그 역시 지금과 같은 상황은 처음 겪어 보았기에.
피부를 찢어 버릴 듯한 강렬한 요기.
그 요기는 회오리를 향해서 맹렬하게 돌진을 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요기는 점점 더 강해져만 갔다.
[슈나비츠! 슈나비츠!]
월은 슈나비츠에게 전음을 보냈지만 대답이 없었다.
그에게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이 아니라 저 검은 폭풍으로 인해 중간에서 차단되었다는 것을 느꼈다.
구오오오오!
“뭔가 벌어지고 있어요. 아주 무서운 것이.”
현우와 명호가 자신도 모르게 몸을 덜덜 떨었다.
아까부터 월도 느끼고 있었다.
단지 그것이 무엇인지 모를 뿐이다.
하지만 이제 곧 그것이 무엇인지 드러날 것이다.
구오오오오오!
핏물의 강에서 수많은 원령들이 손을 뻗었다.
마치 종교인들이 자신의 신에게 구원을 원하는 것과 비슷한 형태였다.
핏물의 강 수위가 점점 더 높아졌다.
다른 건물들은 2층 높이까지 차올랐고, 본관 역시 1층 창틀까지 넘실거렸다.
구오오오오오!
핏물의 강에서 들려오는 원령들의 염원이 하늘 끝까지 치솟고 있었다.
푸확!
그 순간, 핏물 속에서 교장이 튀어 나왔다.
온통 시뻘건 피가 그의 몸에서 뚝뚝 떨어졌다.
하체는 보이지 않았고, 대신 긴 섬유질의 근육들이 핏물과 연결되어 있었다.
“드디어 마혈진이 완성됐다! 드디어 나의 염원이 이루어졌다! 그분들이 강림하신다! 오라! 나에게 오라!”
광기에 눈이 먼 교장의 음성이 학교 전체를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푸화화하하학!
교장과 함께 피의 강물이 하늘로 치솟아 올랐다.
그 높이는 눈으로 확인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핏물이 검은 폭풍우를 뚫고 들어가자 하늘에서 괴이한 음성이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그리고 검은 구름 사이로 무엇인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거대한 인간의 발이었다.
매끈하고 잔털 하나 보이지 않는 아름다운 발.
그것과 함께 전체적인 윤곽이 조금씩 나타났다.
거대한 인간이 무릎을 가슴에 웅크린 채 태곳적 아기처럼 잠들어 있었다.
거대한 등에는 검은 날개가 달려 있어 생존자들로 하여금 그 아름다움에 숨을 멎게 했다.
“처, 천사?”
현우가 중얼거렸다.
누가 보더라도 하늘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것은 신의 대리자인 천사로 보였다.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기록서에 쓰여진 것처럼 하얀 날개를 가진 천사는 아니라는 것이었다.
“천사가 아니야. 악마다.”
월은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아름답게만 보이던 천사의 눈과 귀, 입이 모두 꿰매져 있었다.
신의 징벌을 받은 천사는 보지도, 듣지도 못하고 아무것도 없는 무한한 공간에서 영원히 떠돈다고 하였다.
그리고 그들의 영혼은 타락하여 신과 대립하게 된다.
그것이 악마의 시초였다.
“보이느냐! 저것이 바로 피의 천사 타르칸! 나에게 강림하여 인류를 지배할 모습이다.”
하늘로 치솟고 있는 교장은 미친 듯이 웃고 있었다.
고고고고고고―
불사자인 월도 이토록 강한 요기를 느껴 본 적이 없었다.
신의 천사 타르칸이 모습이 드러나면 그간 S급이라 불렸던 불사자들의 명단은 모조리 지워질 것이다.
진정 저것이 최강, 최악 악마의 모습이었다.
저 괴물이 교장의 몸에 강림한다면 어떤 지옥이 펼쳐질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핵전쟁 발발, 인류의 멸망, 지구의 오염, 화산 폭발, 해일과 지진 등 수많은 재앙이 인간들에게 덮칠 것이다.
고오오오오오오―
피의 천사 타르칸의 날개가 천천히 펴졌다.
동시에 주변에 있던 공기가 찢어지며 광포한 폭풍우를 만들어 냈다.
학교 건물들이 대부분 파괴되고 그 여파는 끝도 없이 퍼져 나갔다.
“말도 안 돼. 저런 괴물이, 저런 괴물이 존재하다니. 우리는 끝이야. 한국은 끝장이라고…….”
더 이상 참지 못했는지 현우는 바닥에 주저앉고 귀를 막아버렸다.
절망.
저 괴물이 완전히 되살아남과 동시에 한국은 다시는 일어날 수 없는 깊은 나락 속으로 빠져들 것이다.
그야말로 절망적인 상황.
하지만 아직 포기하지 않은 이가 있었다.
월은 피의 천사 타르칸을 보며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아직 끝나지 않았어!”


<『다크 라이징 폭렬마도』 제2권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