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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화

Chapter 5 스쿨 오브 서바이벌(4)


이윽고 미정의 몸이 1/3만큼 먹혔을 때 박쥐들이 합쳐지면서 점차 사람의 형태로 변해 갔다.
달빛에 비친 사람의 형태.
그림자는 길고 긴 십자가와 같은 모양이었다.
팔과 다리가 모두 찢겨져 나간 미정은 십자가에 못 박힌 것처럼 허공에 끌려 올라갔다.
그리고 드러나는 검은 그림자의 정체.
공포스러운 홍안을 번들거리는 슈나비츠였다.
평상시의 장난스러운 모습은 전혀 보이지가 않았다.
쫘아악―
거대한 사신의 날개가 펴졌다.
깊은 무저갱으로 빠질 것만 같은 심연의 공포를 일으키는 어두운 날개였다.
날개가 펴지자 모든 빛이 그에게 흡수되는 것만 같았다.
하늘에서 내려온 공포의 사신과 다를 바가 없었다.
“으아아악! 너는 뭐야! 나를 놔줘! 도대체 너는 뭐야!”
제아무리 잠식자라 하더라도 인간과 똑같은 공포를 느낀다.
인간보다 자신들이 우월한 인종이라는 자만감이 있기는 하지만 보다 강한 상대를 만나면 똑같이 비굴해지고 두려움에 떠는 것이다.
미정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녀의 힘으로는 도저히 슈나비츠를 이길 수가 없었다.
아니, 상대의 힘이 얼마나 되는지 가늠조차 할 수가 없었다.
미정은 도대체 이런 괴물이 어디서 불쑥 나타났는지 이해가 가지도 않았다.
“시끄럽군.”
펄럭펄럭―
거대한 날개가 둘의 몸을 감쌌다.
괴기스럽고 이질적인 모습은 마치 그 두 사람만 다른 세상에 있는 듯했다.
태양이 사라지고 남은 자리에 블랙홀이 주변에 모든 것을 포악스럽게 먹어 치워 버리는 것과도 비슷했다.
그 가공할 광경에 헬튼 로즈와 민수마저도 숨을 죽인 채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우드드득― 우드드드득―
무엇을 먹어 치우는 소리인지, 그것이 아니라면 무엇이 압축되어 가는 소리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하지만 한 가지만큼은 확실했다.
미정은 검은 날개 안에서 살아 나올 수 없다는 것을.
“으아악! 살려 줘! 헬튼 로즈, 너희 힘으로…… 제발, 나를…… 부탁…….”
더 이상 미정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이 자리에 있는 자들이 모를 리가 없었다.
촤아악!
어둠의 날개가 다시 펴졌다.
뼈까지 모두 먹혀 버린 미정의 모습은 더 이상 보이지가 않았다.
그녀의 죽음은 영원히 미궁 속으로 빠지고 말 것이다.
잠식자의 피를 흡수해서인지 슈니비츠의 피부는 한층 빛을 발하고 있었다.
붉은 홍안이 더욱 이글이글 타오르며 주변을 훑어보는 슈나비츠.
그는 지금 압도적인 힘으로 주변을 짓눌러 버리고 있었다.
가공할 광경을 보며 헬튼 로즈는 마른침을 삼켜야만 했다.
온몸에 털이 곤두설 만큼 소름 끼치는 광경이었다.
이제껏 이토록 강한 자는 그녀가 살아오면서 몇 번 보지를 못했다.
“슈, 슈나비츠.”
자신을 보호해 주겠다더니, 약속을 지켰다.
월과 슈나비츠가 강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직접 두 눈으로 확인을 하고 나니 두려움이 생겨날 정도였다.
슈나비츠는 헬튼 로즈를 향해 빙긋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 순간, 헬튼 로즈는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릴 뻔했다.
저 압도적인 괴력의 모습과 머리스타일이 너무도 매치가 되지 않는 것이다.
헬튼 로즈는 혓바닥을 이빨로 깨물며 웃음을 참아야 했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저런 머리스타일을 한 것일까?
혹시 잠식자들에게 방심을 불러일으킬 생각이었을까?
자신의 생각이 맞다면 월과 슈나비츠의 작전은 완벽하게 성공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정말 무서운 정도로 치밀한 계략이었다.
그녀의 생각을 월과 슈나비츠가 읽지 못한 것이 참으로 다행이었다.
헬튼 로즈에게도.
월과 슈나비츠에게도.
“당신 혼자서 왔나요?”
헬튼 로즈가 슈나비츠에게 물었다.
슈나비츠는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그럼 월은 어디에?”
“뒤에.”
“뒤?”
그 말에 헬튼 로즈가 뒤를 바라봤다.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민수도 급히 뒤를 돌아봤다.
저 괴물과도 같은 자가 자신의 편이 아니라는 것을 조금 전의 대화로 알았다.
그는 헬튼 로즈의 지원군이다.
그리고 다른 한 명의 지원군이 더 있다는 것도 들었다.
정말 자신의 뒤에 헬튼 로즈의 지원군이 있다면 일은 심각해진다.
최소한 자신의 목숨은 보존해야 할 것이 아닌가.
불사자가 되기 위해서 나중을 기약할 수밖에 없다.
아직 죽고 싶은 생각은 없으니까.
민수는 1층에 문이 잠겼다면 2층으로 올라가 유리창을 깨고 탈출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뒤를 돌아보니 아무것도 보이지가 않았다.
복도의 끝이 보이지 않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복도 중간부터는 완전히 세상과 단절된 듯한 모습이었다.
“이게 무슨 느낌이지? 복도에서, 복도에서 엄청난 살기가 느껴진다.”
민수는 자신도 모르게 팔과 다리가 마구 떨려 오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헬튼 로즈도 같이 느꼈다.
그녀 역시 이토록 강렬한 귀기(鬼氣)를 느껴 본 적이 없었다.
그토록 두려움에 떨게 했던 슈나비츠를 능가하는 힘이었다.
“보, 복도에 도대체 무엇이 있기에…….”
헬튼 로즈의 목소리가 떨려 나왔다.
“그가 나타났다.”
“월?”
“명부의 왕. 자신은 그토록 죽음을 바라고 있는 것이 아이러니하지만.”
“명부의 왕이라니, 일개 처형자에게 무슨 그런 힘이…….”
“그게 바로 월이라는 사내지.”
그 순간이었다.
꽈지지지직!
어둠 속에서 수많은 이빨이 나타났다.
어둠을 뚫고 모습을 드러낸, 날카롭게 번뜩이는 하얀 이빨들은 공포를 심어 주기에 충분했다.
꽈지지직!
어둠이 민수를 향해서 빠른 속도로 다가왔다.
동시에 복도의 창문들과 천장의 현광등이 모조리 깨져 나갔다.
거대한 아가리와도 같았다.
어둠의 백상아리가 사나운 이빨을 드러내고 단숨에 다가왔다.
“으, 으익! 이게 뭐야!”
길지 않은 삶 동안 사람들을 잔인하게 죽여 온 민수였지만, 지금의 상황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해가 되지도 않았고.
그의 뇌리는 지금 오직 도망쳐야 한다는 경고음만을 마구 보내오고 있었다.
민수는 단검을 버리고 뒤를 돌아 뛰기 시작했다.
그의 앞에 슈나비츠와 헬튼 로즈가 있었지만, 그런 것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헬튼 로즈를 죽여서 불사자가 되겠다는 생각도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이곳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곳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저 괴물의 뱃속으로 들어가고 만다.
싫어. 싫단 말이야.
복도를 가득 채운 어둠은 순식간에 민수를 빨아들였다.
“안 돼!”
그의 처절한 외침이 공허하게 울렸다.
헬튼 로즈가 처음 도움을 요청했을 때처럼 아무도 밖으로 나와 그를 도와주지 않았다.

꽈드드득.

더욱 처절하게.

꽈드드득.

더욱 공포스럽게.
민수는 사라지고 말았다.
이제 들리는 소리라고는 그의 육체가 어둠에 먹혀 낙엽처럼 바스라지고 있는 것뿐이었다.
그 소리마저 잦아들자 복도에는 정적이 찾아왔다.
꿀꺽.
헬튼 로즈의 마른침을 삼키는 소리만이 어두운 복도를 가득 메웠다.
카카카카―
순간, 복도의 어둠이 또 다른 소리를 질렀다.
“겁먹지 마. 주인이 부르는 소리에 응답하는 것이니까.”
“주인?”
“그래. 저 괴물의 주인이 월이다.”
복도를 가득 채운 어둠의 크기가 점차 작아졌다.
그러자 본래 그 모습이 드러나고 있었다.
검은 몸체를 하고 있지만 미끈미끈하여 커다란 뱀장어처럼도 보였다.
번들거리는 녹색 눈동자는 슬쩍 보기만 하더라도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그 검은 괴물은 누군가의 손바닥으로 순식간에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 괴물이 사라진 곳에는 한 명의 젊은 사내가 서 있었다.
월.
서늘한 브라운 아이즈를 빛내고 있는 존재.
괴물을 다스리는 자.
그 힘의 끝을 알 수 없는 자가 정녕 월이란 말인가.
헬튼 로즈는 월에게 다가가지 못했다.
같은 편임을 인지하면서도 너무도 충격적인 모습에 섣불리 그의 모습을 바라볼 수가 없었다.
강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강함에도 정도라는 것이 있다.
저 말도 안 되는 강함은 반칙이지 않은가.
헬튼 로즈의 목숨을 노리던 잠식자와 기괴한 힘을 얻은 사이코패스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아니, 정확히는 뼈까지 씹어 먹혀 버렸다는 말이 옳을 것이다.
누가 선(善)이고 누가 악(惡)인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과연 저들을 보고 선이라 칭할 수 있을까.
꿀꺽.
헬튼 로즈는 다시금 마른침을 삼켰다.
그녀는 자신이 월과 슈나비츠에게서 무의식적으로 떨어지고 있다는 것을 느끼지 못했다.



Chapter 6 월의 고민(1)


기숙사의 참살(慘殺)이 일어나고 난 후 벌써 일주일이란 시간이 지났다.
일주일이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다.
평화로운 일상생활이라면 일주일이란 마음에 여유를 가지고 아무렇지도 않게 흘러가겠지만, 누가 불사자인지, 누가 잠식자인지, 누가 사이코패스인지, 누가 일반 학생들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 상황에서 일주일의 시간은 극한으로 신경을 갉아먹기에 충분했다.
특히 헬튼 로즈에게는 하루하루가 긴장의 연속이었다.
수업 시간이라면 현우와 명호, 월과 슈나비츠가 항상 가까운 곳에 있으니 염려될 것이 없지만, 밤이 되면 사정이 달라졌다.
여자 기숙사는 원칙적으로 남성이 들어갈 수 없는 금남(禁男)의 장소였다.
그동안 현우와 명호가 몰래 들어가기 위해 수를 써 봤지만, 어찌 된 일인지 모조리 걸려서 정학을 당하기도 했다.
즉, 밤이 되어 여자 기숙사에 들어가는 순간 헬튼 로즈를 보호할 사람은 없어지는 것이다.
그녀에게 전투력이 있다면 모르겠지만, 혼자만의 힘으로는 괴물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란 매우 요원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일주일간 아무런 일도 터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계약은 보름간 헬튼 로즈의 보호.
그날만 지나면 더 이상 이 아름다운 여성을 보호할 필요가 없었다.
그녀가 잠식자들에게 먹히든 불사자들에게 잡혀 재생력을 무한히 쏟아 내는 꼭두각시가 되든 말이다.
뭐, 그러나 그렇게 내버려 두기에는 헬튼 로즈가 월과 슈나비츠의 심장을 마구 뒤흔들고 있었지만.
어쨌든 누가 도와주지 않는다면 그녀는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이다.
그 모습만 보면 지금껏 살아왔다는 것이 기적 같았다.
어쩌면 그녀는 재생력을 빼고 다른 능력을 가진 것이 아닐까.
그것도 아니라면 그녀가 지금까지 살아남은 이유는 철저한 선별력에 있을 것이다.
누군가에게 붙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지 알 수 있는, 약자들만이 가질 수 있는 눈.
강자는 절대로 가질 수 없는 능력이었다.
여왕벌이라 불리는 헬튼 로즈.
그녀의 삶이 얼마나 기구했을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학교에서 일어난 사건 중에 이해할 수 없는 일은 또 있었다.
네 명이나 죽었지만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수학 선생은 다른 곳으로 전근, 사감은 집에 급한 일이 있어 학교를 그만두게 되었고, 민수와 미정 역시 집안일로 전학을 갔다고 알려졌다.
친구들에게는 미안하다는 말을 꼭 전해 달라고 담임선생이 말했다.
웃기는 소리지만, 그들은 모두 죽었다.
그리고 그들이 죽은 것을 아는 사람은 헬튼 로즈와 월, 슈나비츠밖에 없었다.
그 말인즉, 보이지 않는 다른 곳에서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는 말밖에 되지 않았다.
그들의 모든 행동을 지켜볼 수 있는 사람은 학교를 통틀어 한 명밖에 없었다.
바로 교장.
뚱뚱하고 머리가 벗겨진, 인심 좋은 아저씨로 보이는 교장 선생의 의도는 무엇일까.
일주일이란 시간이 지났지만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러나 조급해할 필요는 없다.
숨겨진 진실은 보름이 지난 후 모두 드러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