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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화
Chapter 5 스쿨 오브 서바이벌(3)
방문이 거칠게 망가지며 박살이 나고 말았다.
그 문틈 사이로 민수가 나타났다.
“왜 이래! 너!”
뒷걸음을 치던 헬튼 로즈가 그를 향해 소리쳤다.
몇 시간 전만 하더라도 그에게서 잠식자의 냄새를 맡지 못했다.
이제 잠식자로서 각성을 한 것인가.
하지만 잠식자란 라면을 먹는 것처럼 순식간에 이뤄지는 것이 아니었다.
오랜 시간 숙성시킨 와인처럼 피의 저주를 이겨 내고 능력을 키워야만 탄생하는 것이다.
물론 미국이나 영국 혹은 중국이나 일본처럼 인위적으로 만들어 낼 수도 있겠지만, 분명히 말해서 민수는 그런 종류가 아니었다.
그는 지금 피의 저주에 도취되어 있다.
아! 설마 사이코패스?
인간들 중에서 가장 이질적인 존재가 바로 사이코패스다.
세상은 오직 자신들을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하는 극단적인 이기심과 인간의 생명을 벌레처럼 여기는 불확정한 인격들.
웃기는 소리지만 그들의 그런 마인드가 인간의 한계를 벗어나게 해 주는 것이다.
그리고 어떤 계기가 있었는지 모르지만, 그는 지금 인간의 한계를 벗어나려고 하고 있었다.
사이코패스들에게 자비란 없다.
인격도 없다.
사랑도 없다.
그들 마음에 남아 있는 것이라고는 세상의 모든 것을 먹어치우고 싶은 포식자의 본능뿐이었다.
저자에게서 벗어나야 한다.
그 순간, 민수는 들고 있던 단검을 꺼내 혀에 가져다 댔다.
끈적끈적하게 번지는 피가 그의 혀로 파고들자 황홀한 표정을 짓는다.
“아, 헬튼 로즈. 우리 3학년 A반의 여왕이여. 모두가 너를 흠모하지. 나도 그랬던 것 같아. 그런데 말이야, 며칠 전부터 이상한 느낌이 들었어.”
“무슨…….”
민수와 거리를 벌린 채 헬튼 로즈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억지로 잠재우며 되물었다.
“누군가가 속삭이더라고. 너의 피와 살을 먹으면 난 영원히 살인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살인을? 혹시 사람을 죽인 적 있어?”
“아, 많지. 무지하게도 많지. 그리고 계속 죽일 거고. 이 학교에서는 네가 첫 번째다. 난 영원히 살면서 살인을 계속하고 싶어. 헬튼 로즈, 나의 피와 살이 되어 영원히 함께해 줘. 항상 너를 기억할 테니까.”
“빌어먹을 자식.”
“거절인 거야? 나의 피와 살이 되는 것이 싫어?”
“미친놈아, 너 같으면 그 말 같지도 않은 말을 듣고 싶겠냐.”
“왜? 좋은 조건이라고 생각하는데.”
미쳐도 완전히 미쳤다.
“제발, 꺼져 줘.”
“미안하지만 너의 유언은 들어줄 수가 없겠다.”
민수는 단검을 들고 빠른 속도로 헬튼 로즈에게 다가왔다.
그녀는 망설이지 않고 바로 등을 돌려 계단을 내려갔다. 한 칸씩 내려가는 것으로는 따라잡히고 말 것이다.
그런 마음이 들자 사내들처럼 한 번에 서너 계단을 한꺼번에 뛰어내렸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계단을 뛰어 내려가면서 몇 번이나 살려 달라고 외쳤지만, 공허한 메아리로만 돌아올 뿐이었다.
헬튼 로즈는 빠르게 1층까지 내려왔다.
고성으로 되어 있는 본관의 건물과는 다르게 여자 기숙사는 직선 복도로 되어 있어 어딘가에 숨을 수도 없었다.
“어디 가니? 로즈, 헬튼 로즈. 같이 놀자. 어디 가니?”
민수의 목소리가 넓게 울려 퍼졌다.
그는 장난이라도 치듯 단검으로 벽을 퉁퉁 치며 천천히 쫓아왔다.
그다지 빠르지 않은 속도지만 그가 조금씩 다가온다는 느낌만으로도 헬튼 로즈는 심장이 조여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1층으로 내려온 헬튼 로즈는 닫혀 있던 정문의 손잡이를 잡았다.
그리고 양쪽으로 강하게 밀었다.
덜컹덜컹.
“아, 안 돼.”
안타깝게도 1층 현관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그녀가 아무리 정문을 흔들어도 열리지가 않았다.
여자 기숙사의 현관은 안에서만 잠글 수가 있다.
밖에서는 잠그고 싶어도 잠글 수가 없었다.
그러나 지금 현관은 밖에서부터 잠겨 있었다.
그 말은 누군가 밖에서 이미 문을 잠궜다는 말과도 같았다.
민수, 이 미친놈이 정말 여자 기숙사의 모든 사람들을 죽일 작정이란 말인가.
그런 일이 혼자서 가능할 리가 없었다.
혹여 다른 공모자가 있다는 말인가.
끼릭―
민수가 내려오는 곳과는 다른 장소에서 바닥을 긁는 소리가 들렸다.
설마…….
심장이 심하게 뛰었다.
헬튼 로즈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심한 소음이 나는 곳을 바라봤다.
“박미정.”
박미정이란 아이는 상당히 곱상하게 생겼고 행동도 얌전했다.
다른 아이들처럼 시끄럽게 떠드는 편도 아니었다.
그저 묵묵히 앉아서 자기가 좋아하는 책을 읽고 음악을 듣는 것을 좋아했다.
친구도 비슷한 성향의 몇몇하고만 어울렸다.
헬튼 로즈는 그런 미정이 마음에 들었다.
아마도 그녀의 그런 분위기가 좋았는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둘이 친하다고 할 정도는 아니었다.
호감은 가지고 있지만 막상 어울려 다니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한데 그런 미정이 갑자기 나타나서 평상시와는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그녀가 지금 왜 이곳에 있는지는 헬튼 로즈도 어렵지 않게 짐작을 할 수가 있었다.
그녀는 잠식자일 확률이 높다.
잠식자들이 두려운 까닭 중에 하나가 바로 이것이었다.
평상시에는 인간들 속에 살아간다.
그동안에는 어떤 징조도 발견할 수가 없다.
본인이 직접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 한 말이다.
잠식자들 중에서는 상당한 확률로 사이코패스가 나타난다.
대부분의 인간들은 폭력적인 성향을 인성 교육과 사회 시스템에 의해 무의식적으로 봉인한다.
하지만 잠식자가 되는 순간부터 인간보다 상위 개체가 되어 그럴 필요가 없게 되는 것이다.
잠식자들은 가슴속 밑바닥에 있던 괴물을 꺼내 든다.
그리고 잠식자이자 사이코패스가 되는 것이다.
종종 TV를 보게 되면 일가족을 죽이고 달아난 살인마들이 나오기도 한다.
범인은 대부분 아버지이거나 어머니일 확률이 높았다.
그들이 바로 살인에 미친 잠식자 사이코패스였다.
가공할 능력만 있는 것이 아니라 반사회적 인격 장애까지 가지고 있다.
현대에는 상당수의 잠식자 사이코패스가 사회 속에 숨어들어 있었다.
그들은 어느 시점까지 평범한 가정을 이루다가 때가 무르익었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면 가족조차도 가차 없이 살해한 후 도주하기도 한다.
지금 다가오는 미정의 눈빛도 그들과 다를 바가 없어 보였다.
“네가 문을 잠근 거야?”
“그래.”
“잠식자지?”
“맞았어. 오랫동안 너를 지켜보고 있었다. 군침을 흘리면서 말이야. 하지만 너는 우리의 여왕. 반드시 지켜야 할 존재였지. 그러나 이제는 아니야. 모두가 너를 탐내. 모두가 너를 먹고 싶어 한다고. 나는 불사자가 되고 싶어. 너의 심장을 먹고 나는 영원히 살 거야.”
“나를 먹는다고 해서 불사자가 되진 못해.”
“호호호, 살고 싶으니 별말을 다 하는구나.”
미정의 눈빛이 어느새 검게 물들어 갔다.
맑게만 보였던 그녀의 눈동자는 이미 사라지고, 그 자리를 채운 것은 먹물과 같은 새카만 눈빛이었다.
끼릭끼릭―
그녀가 입을 벌리자 혀가 길게 축 늘어졌다.
단순히 눈동자가 변하고 혀가 늘어지는 것만이라면 괜찮겠지만, 곧 몸 전체가 기이하게 꺾였다.
팔이 180도 뒤로 젖혀져서 바닥에 닿았다.
고개 역시 마찬가지였다.
양발과 양팔을 바닥에 대고 있어 마치 네 발 달린 동물처럼도 보였다.
아니, 정확히는 거미와 비슷했다.
“미정이 너는 헌터 타입의 잠식자였구나.”
헬튼 로즈는 어금니를 강하게 깨물었다.
잠식자들의 능력은 모두 차별화되고 개별화가 되어 있어 어떤 능력을 가졌는지 콕 짚어서 수치화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포괄적으로는 말을 할 수가 있었다.
미정과 같이 곤충이나 동물적인 능력을 가지고 인간을 사냥하는 잠식자들을 헌터 타입이라고 불렀다.
그들은 빠른 속도로 이동하고 공격력 또한 상당하다.
가장 문제인 것은 그들이 가진 곤충이나 동물의 능력을 그대로 가져와 사용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고대로부터 내려온 라이컨슬로프나 뱀파이어와는 완전히 다른 종자들이다.
이런 종류의 잠식자들이 생겨난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설도 있었다.
혹자는 그들은 731 생체 부대의 연구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유전자 변이 인간이라고도 하였다.
사실 그럴 가능성이 상당히 높았다.
당시 일본의 패망과 함께 유전자 변이 인간들이 모두 처리되었다면 모르지만, 사회에 섞여 살아가다 보면 반드시 자식을 낳았을 것이다.
유전자 변이 인간의 자식 또한 같은 능력을 가진 확률이 50퍼센트가 넘었다.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 유전자 변이 인간이 있을지 통계조차 나오지 않고 있는 상황이었다.
“카카카카, 네 고기를 먹고 싶어. 쫀득쫀득한 생살을 말이야.”
역겨운 소리를 내뱉은 미정이 네 발로 빠르게 다가왔다.
저런 해괴한 자세인데도 뛰는 것보다 훨씬 빠른 움직였다.
헬튼 로즈는 연신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층계 위에서는 미친 사이코패스 민수가 다가오고 있었고, 정면에서는 헌터 잠식자 미정이 있다.
그녀는 뒤를 돌아봤다.
일직선으로 나 있는 복도밖에 없었다.
중간에 있는 사감실의 문을 당겨 봤지만 꼼짝도 하지 않았다.
도저히 도망갈 길이 보이지가 않았다.
“어이고, 우리 여왕님께서 여기 계셨네? 조금 더 멀리 도망친 줄 알았는데.”
어느새 민수가 1층으로 내려왔다.
그는 또다시 단검을 혀에 가져다 댔다.
혀가 살짝 베여 피가 흘러나오자 그것마저 맛있게 목구멍으로 넘겼다.
“키키키킥. 걘 내 거야. 넌 빠져.”
다가온 미정이 입에서 끈적끈적한 거미줄을 내뱉었다.
그것은 순식간에 헬튼 로즈의 몸을 휘감았다.
거칠게 몸부림을 쳐 보지만 너무도 질겨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앞과 뒤에서 두 명의 괴물이 다가온다.
차라리 그들이 살인마라면 조금 마음이 편했을지도 모른다.
한데 저들은 자신을 먹이로밖에 보고 있지 않았다.
자신을 보며 입에서 줄줄 침을 흘린다.
마치 개가 고기를 보고 침을 흘리는 것처럼.
그 모습이 너무도 소름 끼쳤다.
제길, 아무나 좀 도와줘!
아무라도!
헬튼 로즈는 눈을 질끈 감으며 마음속으로 강하게 외쳤다.
그때였다.
콰콰콰콰쾅!
한쪽 벽면이 사정없이 무너졌다.
끼이익, 끼이익.
그와 동시에 틈새 사이로 수백 마리의 박쥐들이 날아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낸 박쥐들은 미정을 향해서 달려들었다.
“뭐야, 이것들은.”
미정이 박쥐들을 향해서 손을 마구 휘둘렀다.
하지만 전혀 맞지를 않았다.
그러자 미정은 박쥐들을 잡기 위해서 거미줄을 뱉어 냈다.
잠시 한두 마리가 잡히는가 싶더니, 모조리 빠져나갔다.
이어 박쥐들은 도망치지 않고 계속해서 미정의 머리 위를 날아다니며 공격을 퍼부었다.
끼리릭, 끼리릭.
점점 검은 박쥐들이 하나둘 미정의 몸에 달라붙었다.
박쥐들은 팔과 다리, 몸통을 조금씩 갉아먹었다.
손톱만큼의 살점이 계속해서 떨어져 나갔다.
“으윽! 뭐야, 이것들은! 다른 잠식자가 있는 것인가. 도대체 누구야!”
다급한 미정이 계속해서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박쥐들은 요지부동이었다.
작고 검은 괴물들은 미정의 몸을 끊임없이 갉아 먹었다.
“나오라고! 도대체 누구야!”
역시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