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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
Chapter 4 준동하는 악의 기운(3)
그러나 단 한 번도 화장실 청소를 해 보지 못한 월과 슈나비츠에게는 곤욕이 아닐 수가 없었다.
조이가 봤더라면 또다시 배꼽을 잡고는 쓰러졌을지도 모른다.
월과 슈나비츠에게 가장 짜증나는 것은 왜 큰 것을 싸고는 물을 내리지 않느냐는 것이다.
화장실 문을 열고서 그것이 덩그러니 남아 있으면 아침에 먹었던 음식이 바로 올라올 것만 같았다.
“저녁도 안 먹고 이게 뭐 하는 짓이람.”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던졌던 빗자루를 다시 줍고는 열심히 청소하는 슈나비츠.
그러나 변기 옆에 가득 묻은 변을 보자 다시금 속이 뒤집혔다.
슈나비츠는 코를 막고서는 올라오는 욕지기를 간신히 버텨 냈다.
이건 잠식자들과의 전투와는 다른 또 다른 인내를 요구했다.
슈나비츠의 그런 모습에 월은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고 말았다.
과거 500년 전에 처음 만났을 때는 자신과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햇병아리였던 그다.
세상에 대한 원한이 깊어 뱀파이어가 되길 선택한 슈나비츠였으니, 만약 그가 월과 만나지 않았다면 지금쯤 어떻게 변했을지 알 수가 없었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슈나비츠의 전투력은 월도 쉽사리 승리를 장담하지 못할 정도였다.
그의 최종 목표는 월의 심장을 뜯어서 영원히 봉인하는 것.
최악의 적과 언제나 함께하는 셈이다.
그럼에도 그는 월과 떨어져 있기를 원하지 않았다.
지금과 마찬가지로.
그가 싫진 않다.
만약 자신의 목숨을 내준다면 그 상대는 슈나비츠가 될지도.
“마스터, 똥 다 치웠어요. 아오, 이제 다른 층으로 이동하죠.”
“그래.”
월은 그런 슈나비츠를 보며 여전히 미소를 지우지 않았다.
“뭐예요? 당신이 미소를 다 짓고. 오랜만에 보네.”
“난 기계가 아니야. 기쁘면 웃고, 슬프면 눈물도 흘린다고.”
“누가 뭐래요. 그냥 하도 오랜만에 그런 모습을 봐서 그렇지.”
“그랬던가. 그렇게 웃음을 잃어버리고 살았던가. 후, 그나저나 시간이 몇 시쯤 됐나.”
“시간이라…….”
슈나비츠는 손목시계를 바라봤다.
어지간한 사람은 찰 수 없는 롤랙스 시계가 황금에 뒤덮여 번쩍이고 있었다.
“8시가 조금 넘었네요.”
“8시라…….”
“왜요?”
“오늘은 보름달이 뜨는 날이잖아.”
“아!”
월과 슈나비츠는 화장실 창문 밖으로 비치는 보름달을 바라봤다.
1년에 두 번밖에 뜨지 않는다는 붉은 보름달이 그들의 눈 앞에 생생하게 떠올라 있었다.
붉은 보름달이 뜨는 날이면 만조가 개화하고 수많은 이종족들의 본성이 드러난다.
가장 많은 살인사건이 일어나는 밤이기도 하다.
“전학을 온 첫날.”
“네. 아주 엿 같네요.”
“잠을 잘 시간이 없을지도 모르겠군.”
***
“훅훅훅.”
민수는 크게 심호흡을 하고 있었다.
터질 것 같은 분노를 참지 못함이다.
어금니가 마구 갈리고 온몸이 뜨거웠다.
얼마나 강하게 악물었는지 턱이 아플 정도였다.
또한 왜 이렇게 몸이 뜨거운지 모르겠다.
차가운 물로 샤워를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크힉.”
민수는 컴퓨터 모니터를 머리 위로 들어 올린 후 바닥에 내던졌다.
꽈직―
그의 졸병 중 한 명인 장발의 태호가 사다 놓은 것이지만 그 의미가 퇴색되고 말았다.
“왜, 왜 이래?”
민수의 졸병이자 룸메이트인 태호가 겁에 질려서 눈만을 껌벅였다.
종종 미친 짓을 하던 민수다.
그렇기에 오늘도 다른 때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지금은 뭔가 달랐다.
눈빛인가.
민수의 눈빛이 보통 때와는 달랐다.
알 수 없는 공포가 밀려왔다.
“으으윽.”
민수가 상의를 찢어 버리고는 상체를 손톱으로 마구 긁어댔다.
금세 손톱자국이 생기며 피가 흘러내렸다.
“왜 그래, 민수야?”
태호가 겁에 질려서 민수를 불렀다.
하지만 민수에게서는 대답이 없었다.
그는 벌컥 창문을 열었다.
여름이지만 밤이 되자 차가운 바람이 불어왔다.
불빛이 없는 탓에 어둠이 너무 짙게 깔려 있었다.
학교 주변을 둘러싼 산조차도 희미한 그림자만 보일 뿐이다.
붉은 보름달마저 떠 있지 않았다면 학교와 부속 건물들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의 피를 마시고 싶어. 그녀의 쫄깃쫄깃한 육질을 맛보고 싶어. 그녀의 뼈를 발라먹고 싶어.”
민수는 소름 끼치는 말을 남기고는 창문 밖으로 뛰어내렸다.
“야! 여긴 4층이라고!”
태호가 급히 창문으로 다가갔지만 민수의 모습은 이미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
민수가 중얼거리는 말을 분명히 들었다.
“그녀의 피를 마시고 싶어. 그녀의 쫄깃쫄깃한 육질을 맛보고 싶어. 그녀의 뼈를 발라먹고 싶어.”
“미친 새끼, 도대체 무슨 짓을 저지르려는 거야.”
태호는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
뭔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는 상황을 느낀 탓이다.
그렇지만 기숙사 사감에게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을 생각이다.
사감에게 보고한 것이 나중에 민수의 귀에 들어간다면 어떤 식으로 해코지를 당할지 알 수가 없었다.
태호에게 민수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차라리 이럴 때는 시치미를 떼고 잠을 자는 것이 최선이었다.
태호는 ‘저는 잠을 자느라 아무것도 보지 못했어요’라고 말을 할 참이었다.
그는 방 안에 널려 있는 부서진 물건을 대충 치우고는 침대로 올라가서 오지 않는 잠을 청했다.
Chapter 5 스쿨 오브 서바이벌(1)
민수의 나이 19세.
그리 많지 않은 나이임에도 이미 5건의 살인을 저지른 경험이 있다.
세상에 알려진 바는 단 1건이고, 나머지는 모두 은밀하게 처리가 됐다.
처음 살인은 12세 때였다.
그 당시에는 반사회적 인격장애[Antisocial Personality Disorder]란 말이나 사이코패스란 용어도 좀처럼 듣기 어려웠다.
그저 TV에서 연쇄 살인을 저지른 자를 살인마라고 부를 뿐이었다.
당연히 민수는 자신이 사이코패스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저 피를 보면 쾌감을 느낄 뿐이었다.
자신보다 나약한 자를 괴롭힌다는 느낌이 좋았을 뿐이었다.
처음에는 작은 동물로부터 시작했다.
아버지가 사 주신 고양이와 개 같은 작은 동물들로 말이다.
작고 귀여운 고양이의 목을 좌우로 꺾어 버렸을 때, 민수는 너무도 기분이 좋아서 오줌까지 싸고 말았다.
그런 후 앞마당에 죽은 동물의 사체를 묻었다.
부모님은 자꾸 애완동물들이 집을 나간다면서 혀를 찼다.
그들은 아들인 민수가 애완동물들을 죽였다는 것을 조금도 눈치채지 못했다.
그들에게 민수는 잘을 잘 듣고 공부도 잘하는, 하나뿐인 외동아들이었으니까.
그리고 12살 때, 오랫동안 연습을 해 왔던 인간에 대한 살인을 실행하였다.
상대는 일주일에 세 번씩 집안일을 도우러 오는 도우미 아줌마였다.
민수는 그 아줌마가 너무도 싫었다.
항상 비굴한 웃음을 지으며 엄마, 아빠 앞에서 허리를 굽실거렸다.
왜 그렇게 비굴한지 민수는 전혀 알지 못했다.
후에 안 이야기지만, 그 아줌마에게는 백혈병에 걸린 딸이 있었다고 한다.
엄청난 병원비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무슨 수를 쓰든 돈을 벌어야 했던 것이다.
부모님은 그 아줌마를 딱하게 여겨 상당한 액수의 월급을 주었던 것 같다.
아줌마는 다른 일보다 이곳이 월등하게 보수가 높으니 잘리지 않기 위해 비굴해질 수밖에 없었고.
뭐, 그 사실을 나중에 알든, 먼저 알든 상관은 없었다.
민수가 그 아줌마를 상대로 살인을 저지를 것은 변함없는 사실이었으니까.
민수는 아줌마의 배에 여덟 번의 칼 구멍을 냈다.
그리고 심장을 두 번 찔렀고 목에도 세 번이나 찔러댔다.
아줌마를 찌른 때의 생생한 느낌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그때 피를 보며 처음으로 사정을 했던 것 같다.
그만큼 살인 행위가 전해 주는 쾌감은 민수의 전신을 지배했다.
불쌍하게도 아줌마는 즉사하지 않았다.
그 상태로 1시간 이상 살아 있었다고 한다.
민수는 아줌마가 죽어가는 것을 보며 태연히 라면을 끓여 먹었다.
아줌마가 너무도 애처로운 눈빛으로 민수를 바라봤다.
그 눈빛은 애완동물들이 죽기 전에 보였던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애완동물과 인간이라고 해서 큰 차이가 없던 것이다.
민수는 현장에서 체포가 되었다.
그러나 만 14세가 되지 않는 나이였기 때문에 불기소가 되고 말았다.
또한 아직 어리고, 충분한 반성을 하고, 이제까지 동종 범죄 경력이 없었고, 당시 학업 스트레스로 인하여 심리적인 불안감이 있었다 하여 정상참작이 되었다.
민수는 그때 느꼈다.
성인이 되면 다시는 이런 맛을 볼 수 없겠구나.
그 이후로 민수는 철저하게 자신을 감췄다.
네 건의 강간 살인을 저질렀지만 아무도 그것을 알지 못했다.
그리고 어느 날 검은 정장을 입은 사내가 민수를 찾아왔다.
그는 민수에게 한 장의 사진을 보여 주었다.
사진 속에 존재하는 여자는 헬튼 로즈였다.
겨우 사진이지만 그녀에게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향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민수는 그녀를 보며 입맛을 다셨다.
그녀의 옷을 벗기고 심장을 두 손을 꺼내 씹어 먹는 상상만으로도 미칠 것 같은 쾌감이 밀려왔다.
민수는 사내의 제의를 받아들였다.
그녀를 산 채로 납치하여 학교 밖으로 빼내 오는 것.
대신 헬튼 로즈에 상응하는 많은 여자들을 그에게 제공하기로 하였다.
제의를 받아들이기는 했지만, 사실 민수는 전혀 그럴 생각이 없었다.
어서 하루라도 빨리 강원도로 가서 그녀의 심장을 자신의 손으로 파헤치고 싶었다.
약속 따위는 개나 줘 버리라고 말을 하면서.
그리고 오늘이 D―Day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몰라도 머릿속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그녀를 취하라고 강하게 울려대고 있었다.
오늘이 바로 그날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강하게 느꼈다.
어느새 민수는 여자 기숙사 앞에 다다랐다.
맨발에 짧은 하의만 입고 있는 민수의 상체에서는 아직도 피가 흘러내렸다.
서울이었다면 당장에 난리가 날 법한 모습이다.
하지만 이곳은 외부와 완벽하게 단절된 학교.
설사 수십 명이 죽는다고 하더라도 누군가 밖에 나가서 도움을 청하지 않는 이상은 절대로 드러날 일이 없을 것이다.
“헬튼 로즈.”
민수는 헬튼 로즈가 있는 방을 눈으로 확인한 후 기숙사 벽을 기어올랐다.
***
헬튼 로즈는 의자에 앉아 음악을 듣고 있었다.
이런 보름달이 떠오르는 날이면 그녀 역시 피가 끓을 때가 많았다.
아무리 상급 뱀파이어가 되어 피의 저주에서 어느 정도 벗어났다고 하더라도 음기를 최고조로 올려 주는 붉은 보름달에서는 벗어날 수가 없었다.
이럴 때는 음악이 최고다.
특히 클래식을 듣고 있노라면 끓던 마음은 조금씩 가라앉았다.
그녀가 듣고 있는 음악은 바하의 오르간 곡.
바하라…….
그를 처음 만났을 때가 1708년 바이마르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는 당시에도 굉장한 음악가로 이름을 날렸기에 귀족이라면 모르는 자들이 없을 정도였다.
바하의 음악을 논하고서야 지식이 풍부한 것으로 인식이 될 정도였다.
그러나 그 화려한 명성과는 다르게 바하는 소박하고 검소했다.
신물이 날 정도로 귀족들의 악행을 봐 왔던 헬튼 로즈로서는 그런 바하에게 끌렸는지도 모른다.
비록 그와 좋은 인연으로 맺어지지는 못했지만.
이미 그가 죽은 지 수백 년이 넘어간다.
인간들의 문명은 끝없이 발전을 해서 신의 영역이라고 여겼던 우주로 유인 우주선을 쏘아 올리기에 이르렀다.
Chapter 4 준동하는 악의 기운(3)
그러나 단 한 번도 화장실 청소를 해 보지 못한 월과 슈나비츠에게는 곤욕이 아닐 수가 없었다.
조이가 봤더라면 또다시 배꼽을 잡고는 쓰러졌을지도 모른다.
월과 슈나비츠에게 가장 짜증나는 것은 왜 큰 것을 싸고는 물을 내리지 않느냐는 것이다.
화장실 문을 열고서 그것이 덩그러니 남아 있으면 아침에 먹었던 음식이 바로 올라올 것만 같았다.
“저녁도 안 먹고 이게 뭐 하는 짓이람.”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던졌던 빗자루를 다시 줍고는 열심히 청소하는 슈나비츠.
그러나 변기 옆에 가득 묻은 변을 보자 다시금 속이 뒤집혔다.
슈나비츠는 코를 막고서는 올라오는 욕지기를 간신히 버텨 냈다.
이건 잠식자들과의 전투와는 다른 또 다른 인내를 요구했다.
슈나비츠의 그런 모습에 월은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고 말았다.
과거 500년 전에 처음 만났을 때는 자신과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햇병아리였던 그다.
세상에 대한 원한이 깊어 뱀파이어가 되길 선택한 슈나비츠였으니, 만약 그가 월과 만나지 않았다면 지금쯤 어떻게 변했을지 알 수가 없었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슈나비츠의 전투력은 월도 쉽사리 승리를 장담하지 못할 정도였다.
그의 최종 목표는 월의 심장을 뜯어서 영원히 봉인하는 것.
최악의 적과 언제나 함께하는 셈이다.
그럼에도 그는 월과 떨어져 있기를 원하지 않았다.
지금과 마찬가지로.
그가 싫진 않다.
만약 자신의 목숨을 내준다면 그 상대는 슈나비츠가 될지도.
“마스터, 똥 다 치웠어요. 아오, 이제 다른 층으로 이동하죠.”
“그래.”
월은 그런 슈나비츠를 보며 여전히 미소를 지우지 않았다.
“뭐예요? 당신이 미소를 다 짓고. 오랜만에 보네.”
“난 기계가 아니야. 기쁘면 웃고, 슬프면 눈물도 흘린다고.”
“누가 뭐래요. 그냥 하도 오랜만에 그런 모습을 봐서 그렇지.”
“그랬던가. 그렇게 웃음을 잃어버리고 살았던가. 후, 그나저나 시간이 몇 시쯤 됐나.”
“시간이라…….”
슈나비츠는 손목시계를 바라봤다.
어지간한 사람은 찰 수 없는 롤랙스 시계가 황금에 뒤덮여 번쩍이고 있었다.
“8시가 조금 넘었네요.”
“8시라…….”
“왜요?”
“오늘은 보름달이 뜨는 날이잖아.”
“아!”
월과 슈나비츠는 화장실 창문 밖으로 비치는 보름달을 바라봤다.
1년에 두 번밖에 뜨지 않는다는 붉은 보름달이 그들의 눈 앞에 생생하게 떠올라 있었다.
붉은 보름달이 뜨는 날이면 만조가 개화하고 수많은 이종족들의 본성이 드러난다.
가장 많은 살인사건이 일어나는 밤이기도 하다.
“전학을 온 첫날.”
“네. 아주 엿 같네요.”
“잠을 잘 시간이 없을지도 모르겠군.”
***
“훅훅훅.”
민수는 크게 심호흡을 하고 있었다.
터질 것 같은 분노를 참지 못함이다.
어금니가 마구 갈리고 온몸이 뜨거웠다.
얼마나 강하게 악물었는지 턱이 아플 정도였다.
또한 왜 이렇게 몸이 뜨거운지 모르겠다.
차가운 물로 샤워를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크힉.”
민수는 컴퓨터 모니터를 머리 위로 들어 올린 후 바닥에 내던졌다.
꽈직―
그의 졸병 중 한 명인 장발의 태호가 사다 놓은 것이지만 그 의미가 퇴색되고 말았다.
“왜, 왜 이래?”
민수의 졸병이자 룸메이트인 태호가 겁에 질려서 눈만을 껌벅였다.
종종 미친 짓을 하던 민수다.
그렇기에 오늘도 다른 때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지금은 뭔가 달랐다.
눈빛인가.
민수의 눈빛이 보통 때와는 달랐다.
알 수 없는 공포가 밀려왔다.
“으으윽.”
민수가 상의를 찢어 버리고는 상체를 손톱으로 마구 긁어댔다.
금세 손톱자국이 생기며 피가 흘러내렸다.
“왜 그래, 민수야?”
태호가 겁에 질려서 민수를 불렀다.
하지만 민수에게서는 대답이 없었다.
그는 벌컥 창문을 열었다.
여름이지만 밤이 되자 차가운 바람이 불어왔다.
불빛이 없는 탓에 어둠이 너무 짙게 깔려 있었다.
학교 주변을 둘러싼 산조차도 희미한 그림자만 보일 뿐이다.
붉은 보름달마저 떠 있지 않았다면 학교와 부속 건물들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의 피를 마시고 싶어. 그녀의 쫄깃쫄깃한 육질을 맛보고 싶어. 그녀의 뼈를 발라먹고 싶어.”
민수는 소름 끼치는 말을 남기고는 창문 밖으로 뛰어내렸다.
“야! 여긴 4층이라고!”
태호가 급히 창문으로 다가갔지만 민수의 모습은 이미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
민수가 중얼거리는 말을 분명히 들었다.
“그녀의 피를 마시고 싶어. 그녀의 쫄깃쫄깃한 육질을 맛보고 싶어. 그녀의 뼈를 발라먹고 싶어.”
“미친 새끼, 도대체 무슨 짓을 저지르려는 거야.”
태호는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
뭔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는 상황을 느낀 탓이다.
그렇지만 기숙사 사감에게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을 생각이다.
사감에게 보고한 것이 나중에 민수의 귀에 들어간다면 어떤 식으로 해코지를 당할지 알 수가 없었다.
태호에게 민수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차라리 이럴 때는 시치미를 떼고 잠을 자는 것이 최선이었다.
태호는 ‘저는 잠을 자느라 아무것도 보지 못했어요’라고 말을 할 참이었다.
그는 방 안에 널려 있는 부서진 물건을 대충 치우고는 침대로 올라가서 오지 않는 잠을 청했다.
Chapter 5 스쿨 오브 서바이벌(1)
민수의 나이 19세.
그리 많지 않은 나이임에도 이미 5건의 살인을 저지른 경험이 있다.
세상에 알려진 바는 단 1건이고, 나머지는 모두 은밀하게 처리가 됐다.
처음 살인은 12세 때였다.
그 당시에는 반사회적 인격장애[Antisocial Personality Disorder]란 말이나 사이코패스란 용어도 좀처럼 듣기 어려웠다.
그저 TV에서 연쇄 살인을 저지른 자를 살인마라고 부를 뿐이었다.
당연히 민수는 자신이 사이코패스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저 피를 보면 쾌감을 느낄 뿐이었다.
자신보다 나약한 자를 괴롭힌다는 느낌이 좋았을 뿐이었다.
처음에는 작은 동물로부터 시작했다.
아버지가 사 주신 고양이와 개 같은 작은 동물들로 말이다.
작고 귀여운 고양이의 목을 좌우로 꺾어 버렸을 때, 민수는 너무도 기분이 좋아서 오줌까지 싸고 말았다.
그런 후 앞마당에 죽은 동물의 사체를 묻었다.
부모님은 자꾸 애완동물들이 집을 나간다면서 혀를 찼다.
그들은 아들인 민수가 애완동물들을 죽였다는 것을 조금도 눈치채지 못했다.
그들에게 민수는 잘을 잘 듣고 공부도 잘하는, 하나뿐인 외동아들이었으니까.
그리고 12살 때, 오랫동안 연습을 해 왔던 인간에 대한 살인을 실행하였다.
상대는 일주일에 세 번씩 집안일을 도우러 오는 도우미 아줌마였다.
민수는 그 아줌마가 너무도 싫었다.
항상 비굴한 웃음을 지으며 엄마, 아빠 앞에서 허리를 굽실거렸다.
왜 그렇게 비굴한지 민수는 전혀 알지 못했다.
후에 안 이야기지만, 그 아줌마에게는 백혈병에 걸린 딸이 있었다고 한다.
엄청난 병원비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무슨 수를 쓰든 돈을 벌어야 했던 것이다.
부모님은 그 아줌마를 딱하게 여겨 상당한 액수의 월급을 주었던 것 같다.
아줌마는 다른 일보다 이곳이 월등하게 보수가 높으니 잘리지 않기 위해 비굴해질 수밖에 없었고.
뭐, 그 사실을 나중에 알든, 먼저 알든 상관은 없었다.
민수가 그 아줌마를 상대로 살인을 저지를 것은 변함없는 사실이었으니까.
민수는 아줌마의 배에 여덟 번의 칼 구멍을 냈다.
그리고 심장을 두 번 찔렀고 목에도 세 번이나 찔러댔다.
아줌마를 찌른 때의 생생한 느낌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그때 피를 보며 처음으로 사정을 했던 것 같다.
그만큼 살인 행위가 전해 주는 쾌감은 민수의 전신을 지배했다.
불쌍하게도 아줌마는 즉사하지 않았다.
그 상태로 1시간 이상 살아 있었다고 한다.
민수는 아줌마가 죽어가는 것을 보며 태연히 라면을 끓여 먹었다.
아줌마가 너무도 애처로운 눈빛으로 민수를 바라봤다.
그 눈빛은 애완동물들이 죽기 전에 보였던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애완동물과 인간이라고 해서 큰 차이가 없던 것이다.
민수는 현장에서 체포가 되었다.
그러나 만 14세가 되지 않는 나이였기 때문에 불기소가 되고 말았다.
또한 아직 어리고, 충분한 반성을 하고, 이제까지 동종 범죄 경력이 없었고, 당시 학업 스트레스로 인하여 심리적인 불안감이 있었다 하여 정상참작이 되었다.
민수는 그때 느꼈다.
성인이 되면 다시는 이런 맛을 볼 수 없겠구나.
그 이후로 민수는 철저하게 자신을 감췄다.
네 건의 강간 살인을 저질렀지만 아무도 그것을 알지 못했다.
그리고 어느 날 검은 정장을 입은 사내가 민수를 찾아왔다.
그는 민수에게 한 장의 사진을 보여 주었다.
사진 속에 존재하는 여자는 헬튼 로즈였다.
겨우 사진이지만 그녀에게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향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민수는 그녀를 보며 입맛을 다셨다.
그녀의 옷을 벗기고 심장을 두 손을 꺼내 씹어 먹는 상상만으로도 미칠 것 같은 쾌감이 밀려왔다.
민수는 사내의 제의를 받아들였다.
그녀를 산 채로 납치하여 학교 밖으로 빼내 오는 것.
대신 헬튼 로즈에 상응하는 많은 여자들을 그에게 제공하기로 하였다.
제의를 받아들이기는 했지만, 사실 민수는 전혀 그럴 생각이 없었다.
어서 하루라도 빨리 강원도로 가서 그녀의 심장을 자신의 손으로 파헤치고 싶었다.
약속 따위는 개나 줘 버리라고 말을 하면서.
그리고 오늘이 D―Day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몰라도 머릿속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그녀를 취하라고 강하게 울려대고 있었다.
오늘이 바로 그날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강하게 느꼈다.
어느새 민수는 여자 기숙사 앞에 다다랐다.
맨발에 짧은 하의만 입고 있는 민수의 상체에서는 아직도 피가 흘러내렸다.
서울이었다면 당장에 난리가 날 법한 모습이다.
하지만 이곳은 외부와 완벽하게 단절된 학교.
설사 수십 명이 죽는다고 하더라도 누군가 밖에 나가서 도움을 청하지 않는 이상은 절대로 드러날 일이 없을 것이다.
“헬튼 로즈.”
민수는 헬튼 로즈가 있는 방을 눈으로 확인한 후 기숙사 벽을 기어올랐다.
***
헬튼 로즈는 의자에 앉아 음악을 듣고 있었다.
이런 보름달이 떠오르는 날이면 그녀 역시 피가 끓을 때가 많았다.
아무리 상급 뱀파이어가 되어 피의 저주에서 어느 정도 벗어났다고 하더라도 음기를 최고조로 올려 주는 붉은 보름달에서는 벗어날 수가 없었다.
이럴 때는 음악이 최고다.
특히 클래식을 듣고 있노라면 끓던 마음은 조금씩 가라앉았다.
그녀가 듣고 있는 음악은 바하의 오르간 곡.
바하라…….
그를 처음 만났을 때가 1708년 바이마르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는 당시에도 굉장한 음악가로 이름을 날렸기에 귀족이라면 모르는 자들이 없을 정도였다.
바하의 음악을 논하고서야 지식이 풍부한 것으로 인식이 될 정도였다.
그러나 그 화려한 명성과는 다르게 바하는 소박하고 검소했다.
신물이 날 정도로 귀족들의 악행을 봐 왔던 헬튼 로즈로서는 그런 바하에게 끌렸는지도 모른다.
비록 그와 좋은 인연으로 맺어지지는 못했지만.
이미 그가 죽은 지 수백 년이 넘어간다.
인간들의 문명은 끝없이 발전을 해서 신의 영역이라고 여겼던 우주로 유인 우주선을 쏘아 올리기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