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10화

Chapter 4 준동하는 악의 기운(1)


헬튼 로즈와 월, 슈나비츠는 난장판이 되어 버린 교실을 벗어나 건물 밖으로 장소를 옮겼다.
넓은 학교 부지의 비해 학생들의 숫자는 그리 많지 않았다.
1학년과 2학년, 3학년 모두를 합쳐도 300명이 채 되지 않았다.
임직원들의 숫자는 교장과 교감을 합쳐 45명이다.
반면, 학교 내의 건물은 거대한 고성 본관과 두 개의 실내 체육관, 기숙사 등을 비롯하여 10채에 달했다.
너무 많은 탓에 대체 어디에 쓰이는 건물인지 모르는 학생들이 대다수였다.
또한 학교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온통 산이다.
정문을 통하지 않고 다른 곳으로 학교에서 벗어난다면 조난을 당하기 십상이었다.
그렇기에 종례시간이 지나 땅거미가 내려앉으면 학교 내부의 인기척은 급격하게 사라졌다.
사람의 목소리도 잘 들리지 않을 만큼 정적이 깔리는 것이다.
학교 곳곳에 CCTV가 설치되어 있지만 그 넓은 부지를 모두 확인할 수는 없었다.
사각지대는 반드시 존재했다.
지금 그들이 서 있는 곳 역시 그러한 사각지대 중 한 곳이었다.
“당신들은 누구죠?”
헬튼 로즈는 의구심이 가득 섞인 눈빛을 거두지 않은 채 월과 슈나비츠를 바라봤다.
“의뢰를 받았다.”
“무슨 의뢰?”
“보름 동안 당신을 보호해 달라는 의뢰.”
“겨우 둘이서?”
헬튼 로즈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런 작은 행동마저도 상당히 아름다웠다.
본래 뱀파이어는 아름답다.
어둠의 귀족답게 하는 행동거지는 우아하고, 피부는 하얗고 창백하다.
보통 사람이라면 안색이 나쁘다고 여겨질 텐데 뱀파이어는 그렇지 않았다.
그 창백함이야말로 미(美)의 완성이었다.
한 예로 이런 적이 있었다.
과거 추녀였던 한 여인이 우연찮게 뱀파이어에 물렸다.
운이 좋았는지 그녀는 구울이 되지 않고 뱀파이어로 다시 탄생했다.
그런데 후에 그녀를 알아본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고 한다.
과거의 얼굴과 분명 똑같지만, 어딘지 모르게 몰라볼 만큼 아름다워진 것이다.
창백하지만 잡티 하나 없이 유리알처럼 깨끗한 피부는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게 했다.
머릿결 또한 비단처럼 아름다워졌고, 움직임은 우아하고 세련되어졌다.
분명 같은 사람이지만 완전히 다른 존재로 탈바꿈을 하게 된 것이다.
단지 그것뿐만이 아니다.
그녀를 바라보는 순간 묘한 이질감을 느끼며 사랑에 빠지고 만다.
그것이 바로 뱀파이어의 거부할 수 없는 마력.
어떤 인간도 뱀파이어의 마력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이유였다.
하나 헬튼 로즈의 아름다움은 보통의 것이 아니었다.
상식적인 뱀파이어의 마력을 월등하게 능가하는 것이다.
그녀를 보는 것만으로도 눈빛이 흔들리고 정신이 혼미해지며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월과 슈나비츠처럼 오랜 시간 수련을 한 강자의 심신마저도 흔들어 놓을 정도였다.
비정상적이란 말이 옳을 것이다.
그녀를 차지하기 위해서 수많은 잠식자들이 이곳으로 몰려드는 이유를 어렴풋이 짐작을 할 수가 있었다.
잠시 그녀를 바라보던 월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 둘이서. 뭐가 잘못됐나?”
“잘못됐죠. 이 학교의 잠식자들이 얼마나 있는지 아세요?”
“모른다.”
“제가 확인한 것만 하더라도 열 명이 넘어요. 잠식자들이 어떤 존재인지는 아시죠?”
월은 고개를 끄덕였다.
잠식자란 불사자가 되지 못한 준불사자에 속하는 자들이다.
언뜻 들으면 실패작처럼도 보이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뱀파이어는 불사의 생명력을 가졌지만, 라이컨슬로프는 그렇지 않다.
물론 인간들보다는 생명이 길기는 하지만 계속해서 교미를 하여 자식을 낳아야만 했다.
그런 라이컨슬로프를 보고 불사자란 말은 하지 않는다.
그들의 존재를 미국과 유럽은 수세기 전부터 이미 파악을 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은 그들의 힘을 군사적으로 이용할 수 없을까 고민하며 몇 백 년에 걸쳐 실험을 해 왔다.
개중에 발생된 실패작이 소설로 유명한 프랑켄슈타인였다.
그것은 실패작이지만 메리 셀리의 경험담이었다는 말도 은연중에 전해진 것이다.
이와 같이 미국와 유럽의 강대국들은 고대부터 전해져 내려온 존재인 뱀파이어와 라이컨슬로프들을 이용해서 끊임없이 실험을 계속했다.
그리고 1세기 안팎을 전후로 오랜 실험의 결과가 빛을 보기 시작했다.
최첨단의 테크놀로지와 과거로부터 내려온 저주받은 괴물들을 합쳐 만들어 낸 것이 바로 합성 인간 혹은 초전도 사이보그였다.
인간과 이질적인 존재들.
인간의 힘을 월등하게 능가하는 존재들.
암세포처럼 인간사회에 급속도로 퍼지고 있는 존재들.
그들을 통틀어서 잠식자라고 하는 것이다.
엄청난 전투력과 믿기지 않는 재생력을 가진 잠식자들은 본인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혹은 상부의 명령에 의해서 사회 곳곳에서 인간들과 뒤섞여 살아가고 있었다.
그렇기에 위험도로 따진다면 불사자보다 잠식자가 더 윗줄에 있었다.
헬튼 로즈의 말이 이어졌다.
“분명 당신들을 고용한 사람들은 당신들의 능력을 잘 알고 또한 믿고 있을 거예요. 그러나 이곳은 일반적인 사회가 아니에요. 불리하다고 도망을 칠 수도 없죠. 사회와 완벽하게 차단이 된 곳. 이곳에서 도망칠 수 있는 길은 없어요. 끊임없이 잠식자들과 싸워서 이겨 나갈 수밖에 없죠. 하지만 과연 당신들이 그들을 모두 막아 낼 수 있을까요? 전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도대체 무슨 의도로 그런 말을 하는지 모르겠군. 그럼 당신 곁에 있는 저런 허약한 두 명의 사내가 잠식자들과 싸워서 이길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겠지?”
월은 헬튼 로즈 곁에 있는 두 명의 사내를 가리켰다.
한 명은 깡마르고 신장이 상당히 컸다.
대략 월과 비슷하거나 조금 더 큰 정도였다.
한데 원래 그런지 몰라도 눈썹 반쪽도 보이지 않았고 볼 살도 없었다.
눈은 까마귀가 날아와 파먹은 것처럼 퀭하여 강하다는 느낌을 전혀 받지 못했다.
다른 한 명은 반대로 신장이 작았다.
대략 165㎝ 정도?
헬튼 로즈와 비슷한 정도였다.
그러나 그는 작은 신장의 약점을 근육으로 보완한 모양이었다.
어깨의 넓이가 키와 비슷하게 보일 정도라 마치 통나무를 가져다 놓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두 명 모두에게서 강한 기(氣)의 느낌은 받지 못했다.
불사자와 잠식자들 모두 기를 바탕으로 육체를 단련한다.
기를 자유자재로 사용함으로써 지구력, 체력, 동체시력, 속도, 순발력, 악력 등이 보통의 인간들보다 월등하게 높아지는 것이다.
보통 체구의 사내가 오랜 시간 기를 사용할 수 있게 되면 헤비급 복서마저도 손쉽게 쓰러트릴 수 있다는 것만 봐도 기의 효용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가 있었다.
“신장이 작은 자는 현우, 신장이 큰 자는 명호라고 합니다. 제 호위병들이죠.”
“여왕벌이라 불리는 당신을 호위하기에는 너무 약한 것 아닌가?”
월의 도발적인 언행에 발끈한 현우와 명호가 앞으로 나섰다.
분노 때문인지 둘의 눈빛은 매우 호전적이었다.
“현우와 명호가 약해 보입니까?”
“약해 보이는 것이 아니라 약하다.”
월은 수많은 사투 속에서도 아직까지 살아남은 몇 안 되는 불사자다.
이제껏 불사를 얻기 위해 얼마나 많은 잠식자와 위정자들이 그의 목숨을 노려 왔던가.
때로는 힘으로, 때로는 술수로 그들의 위협을 물리치고 이 자리에 선 자가 바로 월이었다.
그렇기에 현우와 명호를 보는 순간부터 잠식자들보다 훨씬 전투력이 약하다는 것을 대번에 파악할 수 있었다.
“훗, 그럼 쓰러트려 보세요.”
“당신의 호위병들을?”
“네.”
“다친다.”
“죽여도 상관없습니다.”
“후회할 말을 하는군.”
헬튼 로즈는 고개를 끄덕인 후 조금 뒤로 물러났다.
그러자 현우와 명호가 앞으로 나서서 자세를 취했다.
그들의 모습을 보자 월은 헛웃음을 참지 못했다.
단 한 수다.
그가 손바닥만 휘둘러도 현우와 명호의 목숨은 위험할 것이다.
그러나 현우와 명호의 태도로 봐서는 전혀 위험을 감지하고 있지 못하는 듯했다.
이럴 경우는 두 가지로 압축시킬 수가 있다.
어떤 존재를 목숨 걸고 지켜야 할 때와 어떤 비장의 수가 감춰져 있을 때.
지금은 비장의 수가 감춰져 있다고 보면 될 듯했다.
‘도대체 그것이 무엇이지?’
수많은 잠식자와 사이코패스들이 도사리고 있는, 상식적으로는 존재할 수 없는 학교에서 이제까지 살아남은 헬튼 로즈와 두 명의 호위병이다.
어떤 방식이든 자신들을 보호하는 방법이 있었을 것이다.
그것이 무엇인지 지금 드러날 것이고.
“덤벼.”
월은 뒷짐을 진 채 턱 끝으로 현우와 명호를 불렀다.
누가 보더라도 상당히 거만한 도발.
하지만 명호를 아는 자라면 절대로 그렇게 말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뒷짐을 지었다는 것은 어느 손으로 출수가 될지 모른다는 말과도 같았다.
자신의 일격에 대한 절대적인 자신감.
그것이 있기에 그런 자세로 상대를 도발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명호와 현우는 그것을 알지 못했다.
그들은 그저 놀림받았다는 생각에 광포한 움직임을 보이며 월에게 덤벼들 뿐이었다.
현우는 손끝을 창처럼 세우고 높은 타점에서 그것을 떨어트렸다.
반면, 명호는 코뿔소처럼 몸을 웅크려 밑에서부터 저돌적으로 덤벼들었다.
나름 좋은 합격술이다.
하나 그것이 통용되는 것은 어디까지나 일반적인 격투기일 때의 말이다.
잠식자들과의 싸움에서는 겨우 저 정도의 속도로는 어림도 없다.
저것보다는 두 배의 속도와 파괴력을 지니고 있어야 하고, 더해서 곧바로 이어질 기술도 필요했다.
월은 가볍게 한 발 물러났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현우와 명호의 공격은 너무 쉽게 빗나갔다.
그럼에도 둘은 멈추지 않았다.
그들은 오랜 시간 호흡을 맞춰 온 듯 바로 반격을 시작했다.
썩 나쁘지 않은 콤비네이션이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잠식자들에게는 차 한 잔 마실 동안의 시간이면 이들을 쓰러트리기에 충분했다.
월은 방금 전과는 다르게 두 사람 사이로 파고들었다.
독수리와 같이 위에서 내리꽂고 늑대와 같이 아래서부터 강한 이빨을 드러내며 달려들었지만, 그들 중심에 있는 약간의 공간을 차지한 것이다.
제아무리 강력한 태풍이 불어닥친다 하더라도 태풍의 눈만큼은 그것을 전혀 느낄 수 없을 만큼 화창하다.
지금 월은 바로 그런 위치에 있었다.
자리를 잡은 월이 양손을 휘둘렀다.
빠각!
겨우 손등이었다.
그것도 힘을 제대로 넣지 않고 달려드는 타이밍에 맞춰 휘둘렀을 뿐이다.
“크흑.”
“커헉.”
그럼에도 현우와 명호는 달려드는 힘을 이기지 못하고 좌우로 나자빠지고 말았다.
비틀거리며 일어서는 그들의 입술이 터져서 금방 부풀어 올랐다.
“와! 언제나 생각하는 거지만, 정말 천부적인 재능이란 말이야. 아무리 상대가 약하다고 하지만 단숨에 약점을 꿰뚫다니.”
월이 보여 준 한 수를 보며 슈나비츠는 탄성을 내질렀다.
지금 월은 내공을 쓰지 않고 있었다.
순수하게 상대방에 맞춰서 싸워 주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 이번 한 수를 통해서 여실히 드러났다.
“계속할 건가?”
월은 힐튼 로즈를 보며 물었다.
“저의 호위병들을 너무 얕보시는군요.”
“비장의 한 수가 있다는 말인가?”
“비장의 한 수라……. 그리 거창한 것은 아닙니다. 단지 당신은 절대 현우와 명호를 쓰러트릴 수가 없을 겁니다.”
확신에 찬 말이다.
대한민국 내에 존재하는 뱀파이어 중에서도 최상급에 속하는 그녀가 하는 말이다.
인간들에게는 악으로 치부될지 모르지만 그녀는 자신에 대한 프라이드가 강하다.
거짓말 따위는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말로 무엇인가 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곧 드러나겠지.
월은 다시 자리를 잡는 현우와 명호를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