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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Chapter 3 순혈의 아이(4)


무너진 교권이라든지 왕따 같은 문제가 한창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데, 이 학교에는 그런 것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새로운 전학생이다. 각자 소개하도록.”
김상중 선생의 말에 따라 월과 슈나비츠는 자신을 소개했다.
그에 모두가 박수를 치며 반겨 주었다.
누군가 그들을 향해서 짓궂은 장난을 할 것이라 예상했지만, 그런 것은 일절 없었다.
김상중 선생은 만족한 웃음을 지으며 월과 슈나비츠의 자리를 정해 준 후 교실에서 나갔다.
그가 나가자마자 교실은 다시 시끄러워졌다.
몇몇은 월과 슈니비츠에게 관심을 두지 않는지 그대로 엎어져서 잠을 청했다. 하지만 나머지 학생들은 배를 잡고 웃어댔다.
“카하하하! 저 새끼들 뭐야? 머리 꼬라지하고는. 도대체 어디서 온 거야?”
“와, 미치겠다. 저 가방은 뭐래? 초딩도 저런 가방은 메지 않겠다.”
노골적인 비웃음이었다.
울컥한 슈나비츠가 자신들을 비웃는 학생들을 향해 한마디 하려 했지만 월이 급히 막았다.
“눈에 띄는 행동은 하지 마라. 우리는 헬튼 로즈만 찾아서 보호하면 된다. 그때까지는 아니꼬워도 참아라.”
“후, 알겠습니다.”
배알이 꼴렸지만 어쩌랴.
월과 슈나비츠는 심호흡을 하며 끓어오르는 짜증을 가라앉혔다.
그들은 담임선생이 지정해 준 자리로 걸어갔다. 다행히도 앞자리가 아닌 가장 뒷자리였다.
“큭.”
우당탕!
책상 사이를 걷던 월에게 누군가 발을 걸었다.
월은 자신과 맞서는 자를 그대로 내버려 둔 적이 없었다.
어떤 상태로든 짓이겨 버려야 속이 시원했다.
그렇기에 월은 누군가의 발을 그대로 밟아 버리려고 했다.
아마도 부러지겠지.
짧은 시간이지만 별의별 생각이 머릿속에 다 떠올랐다.
전학을 오자마자 사고를 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좋은 행동이 아니었다.
결국 마음을 비운 월은 그의 발에 걸려 앞으로 넘어지고 말았다.
“마스터!”
이제껏 월이 이렇게 황당하게 넘어지는 것을 처음 보는 슈나비츠.
놀란 마음에 급히 월을 부축했다.
“어떤 개새끼가…….”
슈나비츠는 자리에 앉아서 능글맞게 웃고 있는 한 학생을 노려봤다.
발을 건 학생은 머리가 짧았다.
짧은 옆머리에는 K라고 쓰여 있었다.
옆에는 뒷목까지 머리를 길게 기른 두 학생이 히죽대며 웃고 있었다.
“와우, 왜 화를 내고 지랄이야? 지가 내 발에 걸려 넘어지고서는.”
순간적으로 감이 왔다.
이들이 이른바 3―A반의 일진이리라.
다른 학생들이 그들의 눈치를 보는 것이 대번에 느껴졌다.
처음 이들을 봤을 때 순진할 것이라는 생각은 이미 안드로메다로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바지를 털고 일어난 월은 슈나비츠를 말렸다.
“됐어. 그냥 가서 앉자.”
“하지만…….”
“난 괜찮아. 괜한 사고를 일으키지 말자.”
“알겠습니다.”
두려울 만치 냉정하며, 두려울 만치 폭력적인 사내가 월이다.
그런 월이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간다.
그의 성격이라면 이대로 넘어갈 리가 없을 텐데.
슈나비츠는 월의 눈빛을 바라봤다.
여느 때와 다르지 않게 고요하다.
그제야 슈나비츠는 월의 의도를 파악할 수가 있었다.
슈나비츠 역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폭력적이지만 월의 의도를 깨달았으니 더 이상 나서는 것도 꼴이 우스웠다.
“알겠습니다.”
그는 월의 말에 따라 조용히 뒷자리로 가서 앉았다.
“카하하, 소심한 새끼들. 아무래도 새로운 셔틀이 하나 생길 것 같은데.”
머리에 K를 새긴 학생이 배꼽을 잡고 웃었다.
월은 그 학생의 비웃음에도 잠자코 자리에 앉아 필통과 책을 꺼냈다.

국제고등학교라 그런지 외국인 선생들이 많았다.
모두가 영어로 수업을 하고 학생들 대부분이 그것을 자유자재로 알아들었다.
월과 슈나비츠 또한 수업을 받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오랜 시간 살아오다 보니 자연스럽게 터득한 외국어였다.
특히 슈나비츠는 독일어와 프랑스어, 스페인어, 아랍어, 중국어에 일본어까지 구사했다.
아무리 오래 살아왔다고 하더라도 대단한 언어 습득 능력이 아닐 수 없었다.
“분명 헬튼 로즈는 이 반이라고 들었는데 왜 보이지가 않는 걸까요?”
슈나비츠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조이가 로비를 해서 억지로 월과 슈나비츠를 3―A반으로 밀어 넣었다.
그런데 막상 찾아보니 헬튼 로즈는 보이지 않았다.
반의 학생 수는 모두 29명.
현재 세 자리가 비어 있었다.
그러니 그중 한 자리의 주인이 헬튼 로즈일 가능성이 높았다.
헬튼 로즈의 얼굴은 단 한 번 본 것만으로 뚜렷이 기억할 수 있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그만큼 여왕벌의 미모는 압도적이었다.
당연히 반 전체를 한 번 훑어본 것만으로도 그녀가 자리에 있는지 없는지는 판단할 수가 있었다.
“글쎄, 조금 더 기다려 보지.”
“이제 곧 종례 시간이라고요. 최소한 그녀의 얼굴은 확인해야 하지 않겠어요?”
“아직 시간은 많다.”
“재수 없게 오늘 당장 그녀가 당할 수도 있습니다.”
슈나비츠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어쨌든 목표인 헬튼 로즈를 확인하고 그녀의 활동 반경을 체크해야 한다.
그리고 언제 어디서라도 그녀를 도울 수 있도록 준비해야 했다.
“종례가 끝나면 그녀를 찾아보도록 하지.”
“그렇게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으면 좋겠지만…….”
슈나비츠가 말꼬리를 흐렸다.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고 월은 알 수 있었다.
학교 곳곳에서 감시의 눈길이 느껴졌으니.
물론 월과 슈나비츠만을 감시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아마도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는 전학생들의 행태를 알아보고 다른 학생들이 통제에서 벗어나지 않게 하려는 의도일 것이라 추측되었다.
그 외에도 어떤 숨은 의미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하여튼 월과 슈나비츠가 학교 곳곳을 마음껏 누비게끔 감시자들이 놔두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었다.

이윽고 종례가 끝났다.
청소를 할 몇몇 아이를 빼고는 모두 가방을 메고 어딘가로 향했다.
월과 슈나비츠는 담임선생인 김상중으로부터 교무실 호출이 있었다.
아마도 기숙사를 소개시켜 줄 모양이었다.
쾅!
월과 슈나비츠가 자리에서 일어나는 순간, 머리에 K를 새긴 학생이 다가와 월의 책상을 걷어찼다.
그 모습을 본 학생들은 재빠르게 교실 밖으로 나가 버렸다.
이제 교실에 남아 있는 이들은 월과 슈나비츠, 그리고 K와 장발의 두 학생뿐이었다.
“씨발, 어딜 그대로 내빼? 신고식은 해야지.”
“무슨 신고식?”
월은 담담하게 대꾸했다.
“이런 거!”
K는 갑작스럽게 월의 뺨에 따귀를 올려쳤다.
짝!
월의 얼굴이 옆으로 돌아갈 만큼의 큰 위력이다.
얼마나 세게 쳤는지 입술 끝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입술이 터진 것이다.
“무슨 짓이지?”
순간적으로 기를 끌어올려 K 학생의 목을 뽑아 버리고 싶다는 충동을 느낀 월이었다.
“개새끼, 노려보는 눈깔 봐라? 전학을 왔으면 나한테 신고를 하고 ‘이제부터 민수 님의 말을 잘 듣겠습니다’라고 말을 해야지. 알겠냐? 그게 우리 반의 법이야.”
“누가 만든 법인데?”
“내가 만든 법이다, 씹새야.”
옆머리에 K를 새긴 학생.
이름은 민수.
그는 양 손바닥을 펴고 사정없이 월의 뺨을 올려쳤다.
기를 사용하지 않고 맨 얼굴로 그대로 맞으니 월의 뺨은 금방 시퍼렇게 부어올랐다.
“이런 미친 새끼들이.”
슈나비츠가 앞으로 나서려고 하자 두 장발머리가 그의 어깨를 잡았다.
월은 그런 슈나비츠를 보며 고개를 흔들었다.
순간, 슈나비츠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그는 아이들을 보며 한쪽 입술 끝을 올렸다.
이 하룻강아지들이 감히!
그래, 참아 주마.
다만 이번 일이 끝날 때까지.
이번 일이 끝나고 나면 네놈들을 반드시 불사자로 만들어주겠다.
영원히 악몽에서 헤매는 좀비로 말이다.
“씨발, 이 새끼. 맷집 좆나 좋네.”
민수는 권투 선수 흉내를 내며 월의 복부에 자신의 주먹을 마구 꽃아 넣었다.
순간, 월의 손바닥에서 잠을 자던 식혼이 꿈틀거렸다.
잠을 깨워서인지 상당히 기분이 나쁜 듯했다.
월이 진정시키지 않는다면 식혼은 당장에라도 뛰쳐나와 민수의 머리를 뽑아 버릴 것이다.
월은 그런 식혼의 의지를 억지로 다스려야 했다.
저들을 죽이는 것은 너무도 쉽다.
하지만 그랬다가는 정체가 드러나 버리고 말 것이다.
임무를 완성하지 못한다는 것은 처형자로서 큰 실책.
어쩌면 조이가 속한 조직으로부터 징계가 내려올지도 몰랐다.
징계 따위야 신경도 쓰지 않지만, 맡은 임무를 해내지 못한다는 것은 월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수치였다.
드르륵―
바로 그때,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짓이지?”
그리고 옹달샘에서 지저귀는 꾀꼬리처럼 아름다운 목소리가 교실을 울렸다.
월은 고개를 돌려서 목소리가 들려온 곳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두 소년과 한 명의 소녀가 있었다.
하지만 두 소년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다만 이제껏 살아오면서 한 번도 느껴 보지 못한 봄바람의 기운이 월의 심장을 휘감았다.
그녀였다.
사진에서 봤던 그녀가 드디어 나타난 것이다.
헬튼 로즈.
대한민국 뱀파이어의 여왕벌.
월은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그녀의 앞에 있던 두 남학생이 앞을 가로막았다.
두 명 다 상당히 키가 크고 위압감도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신경이 쓰이지는 않았다.
월의 눈에는 오직 헬튼 로즈만이 보였다.
“이 개새끼가? 감히 내가 말씀을 하시는데 어딜 가?”
민수가 욕지거리를 내뱉면서 월의 어깨를 움켜잡았다.
그 순간, 번개가 번쩍였다.
쾅!
동시에 요란한 소리가 터져 나오며 민수의 몸이 날아가는 것이 아닌가.
민수는 족히 5m는 날아가 교실 벽에 부딪쳤다. 그리고 힘없이 바닥에 쓰러졌다.
코뼈는 옆으로 휘었고, 열댓 개의 이빨이 부러졌다.
완전히 망가진 얼굴에 이미 민수의 눈빛은 힘을 잃어 초점이 없었다.
상태로 봐서는 의식을 잃은 듯했다.
경악할 만한 사태에 정적이 찾아왔다.
교실 밖 창문 틈으로 상황을 구경하던 학생들도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슈나비츠를 잡고 있던 장발의 학생들도 놀랐는지 손아귀의 힘을 슬그머니 풀었다.
방금 민수를 날린 것은 월의 손등이었다.
그저 손등을 한 번 휘두른 것만으로 민수는 완전히 박살이 나고 만 것이다.
뿌드득.
월이 손아귀에 힘을 주자 뼈마디 부딪치는 소리가 교실 곳곳으로 울려 퍼졌다.
그 강력한 일격에 헬튼 로즈를 막고 있던 두 명의 학생도 긴장을 하는 모양이었다.
처음과는 다르게 안색이 완전히 변했다.
그럼에도 뒤로 물러나지 않는 것으로 보아 헬튼 로즈에 대한 충성심이 상당한 모양이었다.
저벅저벅.
월이 그녀에게 다가갔다.
헬튼 로즈도 뒤로 물러나지 않고 월을 똑바로 바라봤다.
둘의 눈빛이 마주하고 중간에는 약간의 거리가 있었다.
서로가 어떤 존재인지 어렴풋이 느끼는 두 사람.
순간적으로 뿜어져 나온 월의 가공할 공격력과 그것은 한꺼번에 일그러트릴 수 있는 소녀의 기운.
월이 내기를 밖으로 뿜어댔다.
그것은 상대를 억압하지도, 억누르지도 않았다.
생각보다 훨씬 따뜻한 기운이었다.
그 기운은 월과 헬튼 로즈, 두 명을 감쌌다.
마치 다른 세상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시끄럽게 울리던 세상이 고요해지며 둘만의 세상이 펼쳐졌다.
월은 그녀를 보며 물었다.
“당신이 헬튼 로즈가 맞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