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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Chapter 3 순혈의 아이(3)


월과 슈나비츠도 똑같이 느끼고 있었다.
상급 불사자들이 내뿜는 강력한 요기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하급 잠식자들이 흩날리는 약한 음기도 아니었다.
그렇기에 아주 묘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불길하고 역겨운 기운이 산 전체를 둘러싸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덜컹덜컹.
대낮임에도 조이는 라이트를 켰다.
라이트를 켠다고 해서 시야 확보가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맞은편에서 오는 차량은 그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재수 없게 이런 산길에서 정면 추돌이라도 일어난다면 답이 없었다.
다행히도 맞은편에서 오는 차량은 없었다.
“나원참, 서울이라면 등굣길 아니야. 그런데 무슨 등굣길이 이렇게 살벌해? 이래서 학교 다니겠어?”
조이가 쉴 새 없이 투덜거렸다.
하긴 만약 지금이 밤이었다면 이제껏 느낀 오싹함은 몇 배가 됐을 것이다.
“운전이나 조심해.”
슈나비츠가 그런 조이를 보고 핀잔을 줬다.
“네네, 알아 모시겠습니다. 내가 보호자로 쫓아가는데 반대였군요. 상전이 따로 없습니다.”
저 밉살스러운 말투는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월은 그저 한숨을 푹푹 내쉴 뿐이었다.
말로는 절대 이기지 못할 놈이다.
“안개가 걷힙니다.”
그토록 위험했던 길이 점점 넓어졌다.
그리고 길 양쪽으로 넓은 잔디밭이 깔려 있었다.
종종 노루와 산양들이 평화롭게 뛰어다니는 모습도 보였다.
숨도 못 쉴 정도로 죄어 오던 음기와는 차원이 다른 풍경이었다.
그런 평화로움의 끝에는 독일식 고성이 보였고, 주변에는 3층 이하의 건물이 상당수 들어서 있었다.
마치 유럽식 작은 마을이 강원도 산자락에 들어선 것 같았다.
강원도의 유럽식 마을이라…….
그 이질감은 직접 보지 않는 한 느끼기가 상당히 어려울 것이다.
그 이질감으로 인해 알 수 없는 공포감까지 밀려올 정도였다.
끽.
월과 슈나비츠를 태운 승합차가 교문 앞에서 정차했다.
교문은 높이가 3m 가까이 되었다.
방금 페인트칠을 한 것처럼 정갈해 보였지만, 동물들을 가두는 우리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내부는 훤히 들여다보였다.
옆으로는 족히 2미터는 될 법한 높은 담이 학교 전체를 둘러싸고 있었다.
탕, 탕, 탕.
순간, 무슨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는 교문 옆에 있는 수위실에서 나고 있었다.
아쉽게도 승합차가 있는 방향에서는 수위실 내부가 보이지 않았다.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조차 확인되지 않았다.
“저기요.”
탕, 탕, 탕―
“저기요.”
조이가 불렀지만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조이는 안전벨트를 풀고 밖으로 나와야만 했다.
수위실 쪽으로 다가가자 안쪽에서 누군가가 바닥을 내려치고 있는 것이 보였다.
대략 50살은 넘어 보이는 중년 사내였다.
머리는 모두 벗겨져 옆머리밖에 남아 있지 않았고, 몸도 상당히 비대했다.
너무 뚱뚱해서 제대로 쪼그리고 앉지도 못할 것 같았다.
그러나 그는 무릎을 바닥에 대고 능숙하게 칼질을 하고 있었다.
탕, 탕, 탕―
그의 손에는 시뻘겋게 피가 묻은 칼이 들려 있었다.
바닥에는 도마가 놓여 있는데, 토끼처럼 보이는 작은 생명체가 네 다리가 잘린 채 버둥거렸다.
신기하게도 저렇게 많은 피를 흘리고도 아직 살아 있는 모양이었다.
단순한 광경이지만 조이는 저 모습이 왜 이렇게 괴기스러운지 알지 못했다.
산을 오르면서 느꼈던 기분 때문인지, 고성처럼 보이는 토이즈 국제고등학교의 이질감 때문인지 정확한 느낌을 찾아내기 어려웠다.
그러나 분명한 점은 수위가 하는 작은 행동이 너무도 낯설게만 느껴진다는 것이었다.
“저기요.”
크게 심호흡을 한 조이는 다시 한 번 수위를 불렀다.
그제야 수위는 고개를 돌려 조이를 바라봤다.
이빨을 드러내며 싱긋 웃는 수위는 앞 이빨이 모조리 빠져서 너무도 볼품이 없어 보였다.
그는 피 묻은 손을 걸레로 대충 닦고는 조이에게 다가왔다.
피둥피둥한 모습이 우스꽝스러울 만도 하지만 전혀 그렇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수위는 흡사 공포영화에 나오는 집사처럼 보였다.
“무슨 일이슈?”
수위는 다시 한 번 이빨이 보이지 않는 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오늘 제 조카들이 이곳으로 전학을 와서요. 문 좀 열어 주십시오.”
“아, 전학생.”
늙은 수위가 월과 슈나비츠가 타고 있는 승합차를 바라봤다.
한데 그는 무엇인가를 찾고 있는 것처럼 차 안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그 모습이 마치 늙은 생쥐의 눈빛 같았다.
혐오스럽고 불쾌했다.
불쾌함을 참지 못한 슈나비츠는 아예 고개를 옆으로 돌려 버렸다.
“요즘은 전학생이 꽤나 많군요. 아무리 국제고등학교라고 하더라도 상당한 오지인데…….”
수위는 허리를 툭툭 치고는 중얼거리며 철문을 열었다.
끼이이이익.
깨끗하게 손질을 해놓은 것처럼 보이는 교문이지만 열리는 소리는 칠판을 손톱으로 긁는 것처럼 상당히 거슬렸다.
자신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릴 정도.
“들어가 보슈.”
“네. 그럼 수고하세요.”
조이는 수위를 향해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고는 차에 올라탔다.

교무실이 있는 고성까지 가는 동안 조이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것은 월과 슈나비츠도 마찬가지였다.
주변을 가득 채우고 있는 불길함으로 인해 머릿속이 복잡한 탓이었다.
이곳.
토이즈 국제고등학교라 이름 붙였진 곳에 대한 궁금증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해져만 갔다.
조이는 전학에 필요한 서류를 교무실에 제출하고는 서둘러 승합차에 올라탔다.
“들어가 보세요. 교장을 만나고 나서는 반 배정이 있을 겁니다. 미리 말해 두지만, 저와 회사는 이제부터 어떤 도움도 드리지 못할 겁니다. 오직 두 분의 힘만으로 이곳에서 살아남으셔야 합니다. 물론 헬튼 로즈도 반드시 보호해야 하고요.”
이제껏 장난기가 다분했던 조이가 안색을 바꾸더니 진지하게 말했다.
“명심하지. 혹여 학교 안에 우리 말고 다른 처형자들도 잠입해 있나?”
“모릅니다.”
“하긴.”
고개를 끄덕인 월이 가방을 메고 승합차에 내리자 그 뒤를 따라 슈나비츠도 움직였다.
둘은 분위기에 주눅 들지 않고 당당한 걸음으로 고성의 계단을 올라갔다.
월과 슈나비츠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조이의 입에서 조금 전과 달리 다시 한 번 웃음이 터져 나왔다.
“아오, 미치겠네. 월 님, 슈나비츠 님. 그 가공할 능력에 비해서 너무 귀여우신 것 같단 말이야. 도대체 저런 가방은 또 어디서 구했대?”
월이 멘 가방에는 초등학생들의 대통령이라는 뽀로로가 그려져 있었고, 슈나비츠의 가방에는 포켓 몬스터가 생생하게 살아 있었다.
월과 슈나비츠는 진심으로 그것이 잘못되었는지 조금도 생각해 보지 않았다.
그들이 인터넷에서 찾은 것은 ‘요즘 학생들에게 유행하는 가방’이었다.
그리고 두 번 생각할 필요도 없이 인터넷으로 주문했다.
조이의 시선이 뭔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시간이 촉박해서 그냥 그것을 쓰기로 했다.
요즘 학생들에게 유행하는 캐릭터라니까 그다지 거부감이 없을 것이라 착각을 한고 만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가 바로 지금 메고 있는 뽀로로와 포켓 몬스터였다.

***

교장은 아까 본 수위와 외모적인 면에서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같은 옷을 입혀 놓는다면 형제라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머리는 모두 벗겨졌고 옆머리만 남았는데, 그 옆머리를 길게 길러 벗겨진 가운데를 덮었다.
때문에 언뜻 보기에 머리털이 있어 보이지만 바람이 불기만 하면 한때 유행했던 대전 게임의 특정 캐릭터처럼 변하고 만다.
신장도 그다지 크지 않았다.
160㎝가 조금 넘을까?
작은 키에 넉넉한 살집으로 인해 굴러다니는 곰이 절로 연상되기도 했다.
“그러니까, 우리 학교의 전통은 꽤나 오래됐습니다. 많은 학자들을 배출했으며, 유명 정치인도 우리 학교에서 나왔죠. 그 사람 아시죠? 전대 국무총리. 그가 바로 우리 학교 졸업생입니다.”
교장의 연설은 10분 가까이 진행되었다.
짧다면 짧은 10분.
하지만 월과 슈나비츠에게 그 시간이 100분만큼이나 길게 느껴졌다.
슈나비츠는 여자 친구를 쫓아 쇼핑을 할 때보다 더욱 더 길고 힘든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결혼식 때의 길고 긴 주례사만큼이나 교장의 연설은 월과 슈나비츠로서 견디기 힘들었다.
이것만큼은 인내를 가지고 속으로 관세음보살과 아멘, 인샬라를 외쳐도 소용이 없었다.
차라리 그 시간에 목숨을 걸고 잠식자들과 전투를 벌이는 편이 낫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에헴, 그럼 우리 토이즈 국제고등학교에 대해서는 여기까지 하고…….”
휴, 이제 끝이 났나 보다.
어지간한 일에는 꿈쩍도 하지 않는 월조차도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김 선생, 들어오세요.”
교장 선생이 인터폰을 누르고 말하자 잠시 후 문을 열고 건장한 체격의 남자 선생이 들어왔다.
떡 벌어진 어깨가 인상적인 그는 붉은색으로 통일이 된 트레이닝복을 입고 있었다.
신장은 180㎝가 되지 않았지만 단단해 보이는 몸으로 인해 보기보다 훨씬 커 보였다.
“인사하게. 앞으로 남은 기간 동안 자네들의 멘토가 되어 주실 담임선생님이시네.”
교장의 말에 월과 슈나비츠는 고개를 숙여서 김 선생이라 불린 이에게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그래, 반갑다. 난 김상중이라고 한다. 체육 담당이지. 올해는 꽤나 전학생이 많구나. 우리 반에도 세 명이나 있어. 그러니 그들과 잘 지내 보길 바란다.”
담임선생은 거칠게 보이는 인상과는 다르게 부드러운 말투로 이야기를 했다.
“그럼 김 선생, 새로 온 전학생들 잘 부탁합니다. 기숙사도 안내해 주시고요.”
“알겠습니다, 교장 선생님. 너희들은 나를 따라와라. 반과 아이들을 소개시켜 주마.”
김상중 선생은 월과 슈나비츠를 데리고 교실로 향했다.
월은 김상중 선생의 등을 따라 걸으며 교장 선생의 눈빛을 되짚어 떠올렸다.
지나치게 낙관적이고 선한 눈빛.
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이곳에서는 괴이한 일이 벌어지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학교의 최고 우두머리인 교장이 모르고 있을 리가 없었다.
상당히 골치가 아파야 정상이다.
그런데 교장은 조금도 고민을 한 흔적이 없었다.
도대체 왜 그럴까?
월은 이제부터 그것을 하나하나 알아 나갈 계획이었다.
교실로 향하는 복도는 여느 학교와도 많이 달랐다.
길이 구불구불하고 창문이 적다.
더군다나 천장에 붙어 있는 것은 붉은 조명이었다.
이곳에 지리를 잘 알지 못하는 자라면 길을 잃어버리기 십상이었다.
도대체 누가 어떤 의도로 이런 학교를 지었는지 의구심은 더욱 증폭되어 갔다.
김상중 선생은 월과 슈나비츠를 데리고 고성의 최상층까지 향했다.
최상층에는 3학년 세 개 반이 줄지어 있었다.
이곳까지 이어진 복도와는 다르게 불빛은 밝았다.
월과 슈나비츠의 반은 복도 끝에 있는, 3―A라고 적힌 곳이었다.
점심시간이라 그런지 아이들이 복도에서 떠드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러다 김상중 선생을 보자 ‘선생님, 안녕하세요’를 쉴 새 없이 외쳤다.
김상중 선생은 그런 아이들의 인사를 귀찮아하는 기색 없이 일일이 대꾸해 주었다.
드르륵.
문이 열리고 세 사람은 교실 안으로 들어섰다.
책상의 숫자로 봐서 학생들의 수는 대략 30명 안팎.
대여섯 명의 학생들은 잠을 자고 있었고, 몇몇은 수능 준비를 하는 듯 공부에 빠져 있었다.
또 다른 몇몇은 유학을 위해서 SAT를 준비하고 있었다.
일부 남학생들은 교실 뒤에서 말뚝박기에 열중하는 중이었다.
김상중 선생이 들어오자 그제야 교실의 소란스러움이 사라졌다.
“모두 주목. 점심시간이지만 잠깐 자리에 앉도록 해라.”
담임선생의 말에 학생들은 군말 없이 자리에 앉았다.
모두가 초롱초롱한 눈빛이, 아직 어린 학생들임을 실감케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