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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Chapter 3 순혈의 아이(2)
“누굽니까?”
슈나비츠가 다가오며 물었다.
“정수.”
“호, 벌써 움직였다고 합니까? 누구누구 움직인 겁니까?”
“나도 몰라.”
“흠, 그림자들에게 너무 많은 자율권을 주신 것은 아닌가 생각되네요. 도대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전혀 알 수가 없으니 원.”
“할 수 없지. 그 정도의 자율권을 보장하지 않고서는 그들을 다룰 수 없다는 것을 알잖아.”
월의 말에 슈나비츠가 뒷머리를 긁적였다.
“하긴. 각각 괴물이 아닌 자가 없으니.”
월은 슈나비츠를 바라봤다.
그러더니 월은 갑자기 사레가 걸린 듯 콜록콜록거렸다.
슈나비츠와 다르게 얼굴의 표정이 거의 없는 월이 웃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슈나비츠는 월이 없는 곳에서 조이에게 ‘그는 돌로 만들어진 인간이야.
그렇지 않으면 일 년 내내 웃지 않는다는 것이 말이 안 돼’라는 말까지 할 정도였다.
그런 월이 슈나비츠를 보며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간신히 참고 있었다.
“왜? 왜요?”
“너 헤어샵 가서 머리 깎지 않았어?”
“아닌데요. 그냥 집에서 깎았는데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머리가 이게 뭐야?”
“제가 뭐 어때서요?”
슈나비츠는 월 옆으로 와서 거울에 자신의 모습을 비쳐 보았다.
보통 뱀파이어들은 거울에 비치지 않는다는 말이 있지만, 그것은 하급 흡혈귀에만 통용되는 경우였다.
슈나비츠의 모습은 선명하게 햇빛에 비치어 거울에 반사가 되고 있었다.
한데 거울에 비친 슈나비츠의 모습이 가관이었다.
그토록 아름답고 멋지게 늘어졌던 금발은 사라지고 없었다.
그리고 남은 것은 바가지를 대고 깎은 모양의 어정쩡한 모습뿐이었다.
“이상해요?”
“이상해.”
“망했다. 와우.”
슈나비츠는 이상해져 버린 머리를 쥐어뜯었다.
사실 옆머리와 뒷머리만 간단히 자를 생각이었다.
그런데 한쪽 머리카락이 조금 짧은 것이 아닌가.
슈나비츠는 반대편 머리카락을 가위로 잘랐다.
슬프게도 이번에는 반대편이 짧아졌다.
슈나비츠는 그것을 계속해서 반복했다.
그리고 그 결과가 바로 개그 프로에서나 나올 만한 지금의 머리스타일이었다.
자신의 머리를 잡고 흔들던 슈나비츠가 고개를 돌려 월을 노려봤다.
월은 자신보다 훨씬 깔끔했다.
이제껏 음침하게 눈을 가릴 정도로 머리를 길렀는데, 지금은 상당히 깨끗했다.
수염도 시원스럽게 밀어서 인상이 한결 부드러워졌고, 칼처럼 내뿜던 내기도 인상으로 인해서 많이 좋아졌다.
제기랄.
생각보다 잘생겼잖아.
갑자기 짜증이 밀려오는 슈나비츠였다.
무력은 몰라도 얼굴만큼은 자신이 훨씬 낫다고 생각했는데.
“그러는 월도 마찬가지거든요. 도대체 누가 이런 머리로 거리를 돌아다닙니까? 무슨 1970년대도 아니고.”
일부러 트집을 잡았다.
조금이라도 트집을 잡아서 자기 수준으로 끌어내려야 직성이 풀릴 것 같았다.
“이상한가?”
“이상하지요.”
“정말?”
“TV 좀 보시죠.”
“큰일이군.”
“쪽팔린 일이지요.”
월은 거울을 바라봤다.
나름 괜찮게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절대로 그렇게 믿게 놔둘 수는 없었다.
“최악이에요.”
“할 수 없지.”
“끝이에요?”
정말 쿨하다.
어찌 저리도 간단히 포기할까?
도대체 저 인간의 뇌는 무엇으로 만들어져 있는지 확인을 해 보고 싶었다.
“이미 자른 머리, 기를 때까지 참아야지 어쩌겠어.”
젠장.
어쩐지 월의 뒤통수에 주먹을 날려 버리고 싶은 슈나비츠였다.
그러나 그들이 모르는 일이 하나 있었다.
월과 슈나비츠가 가는 토이즈 국제고등학교는 두발 자유화라는 것을…….
***
“큭큭큭.”
조이는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억지로 참았다.
살다 살다 이런 광경은 처음 봤다.
눈앞에 있는 이들은 그가 알고 있는 월과 슈나비츠가 아니었다.
월과 슈나비츠가 누구던가.
그들의 손에 사라진 잠식자들의 숫자는 손가락으로 셀 수가 없었다.
몇 트럭이 와도 그들의 시체를 모두 담을 수가 없을 것이다.
그들을 아는 사람들이라면 월과 슈나비츠의 이름을 듣는 순간 안색부터 바뀐다.
이제껏 어떤 잠식자도 그들과 붙어서 살아남은 이가 없었다.
불패(不敗)의 신화란 어줍잖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월은 인간으로서는 겪을 수 없는 지독한 인내로 지옥의 악귀인 아귀를 몸에서 키울 수 있게 되었고, 또한 무학 법사로부터 고려에서 내려오는 비전서(秘傳書)까지 전수받았다.
그뿐 아니라 불사자가 된 이후로 단 하루도 수련을 멈춘 적이 없었다.
조이가 알기로 월과 일대일로 붙어서 이겨 낼 수 있는 잠식자는 대한민국 내에서 얼마 없을 것이다.
슈나비츠는 또 어떠한가.
그는 인간과 뱀파이어의 사생아였다.
그렇기에 인간과 뱀파이어, 양측의 능력을 모두 사용할 수가 있었다.
월이 하지 못하는 변신술을 마음껏 사용할 수 있었으며, 동양의 술법과는 완전히 다른 서양의 흑마법을 자유자재로 뿌려댔다.
그의 저주와 흑마법에 걸려서 죽은 사람들 또한 월보다 많으면 많았지 결코 적지는 않았다.
한마디로 월과 슈나비츠는 어중간한 불사자와 잠식자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나 다름이 없었다.
한데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머리를 저렇게 잘랐을까?
설마 국제고등학교가 두발 자유화라는 것을 몰랐을까?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추리였다.
그렇기에 저렇게 머리를 자른 것이겠지.
단지 머리를 잘랐을 뿐인데 이렇게 분위기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월의 트레이트 마크와 같은 옅은 수염을 깎고 나니 인상이 훨씬 부드러워졌다.
나이도 아무리 많이 줘 봐도 20대 초반을 넘지 않을 것 같았다.
거기에 교복을 입혀 놓으니 영락없는 고등학생이다.
훤칠한 키에 보통 사람들이 낼 수 없는 묘한 분위기는 월의 또 다른 매력을 만들어 주었다.
문제는 바로 제대로 정신이 박히지 않은 슈나비츠였다.
정말 가관이다.
바람에 휘날리던 금발 머릿결은 온데간데없고 바가지 머리만 남았다.
그의 말로는 혼자서 자르다 보니 양쪽 머리의 균형이 맞지 않아 조금씩 더 자르다가 이렇게 됐다고 했다.
사실 그는 상당한 미남자다.
곱슬거리는 금빛 머릿결을 휘날리며 길을 걷다 보면 수많은 여자들의 눈빛이 그에게 꽂힌다는 것쯤은 몇 번이고 봐 왔다.
하지만 지금은 영락없는 왕따 스타일이다.
교복을 입고 가방을 메고 있는 그들을 아침에 봤을 때 조이는 기절하는 줄 알았다.
너무 웃어서 슈나비츠의 흑마법에 죽을 뻔도 했지만,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차라리 자신에게 저주를 뿌리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그만 웃었으면 좋겠군.”
이제는 화낼 기운도 없는지 월은 창밖을 바라보며 나직하게 말했다.
그는 아직도 조이가 자신의 머리스타일을 보고 웃는다고 생각했다.
슈나비츠의 거짓말에 홀랑 속아 넘어간 것이다.
“아, 죄송합니다. 이제껏 봐 왔던 월 님과 슈나비츠 님이 아니라서요. 아마 다른 중개자가 봤다고 하더라도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끙.”
월은 혀를 찼다.
거울을 봤지만 스스로 보기에 이상한 점을 못 느꼈다.
아무리 봐도 슈나비츠의 머리가 훨씬 웃긴데…….
부르릉.
월과 슈나비츠를 태운 승합차는 인제군으로 들어섰다.
북한과 가까워 양구, 원통과 함께 3군단이 방어를 맡고 있는 곳이다.
군사도시인 탓에 주말이 되면 외박을 하러 나온 군인들이 꽤나 많았다.
승합차는 인제군을 지나 어느 산속으로 들어섰다.
깊은 산속이지만 도로는 깨끗하게 닦여 있고 한쪽으로는 맑은 계곡물이 흘렀다.
월이 창문을 열자 도시에서는 절대 느낄 수 없는 시원한 공기가 폐부 속을 가득 채웠다.
승합차 반대편은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었다.
도로는 잘 닦여 있지만 폭이 좁아서 승합차 한 대 정도만 겨우 지나다닐 수 있을 듯 보였다.
만약 반대편에서 다른 승합차가 나타난다면 꽤나 난처할 것이다.
빵빵―
“이런.”
그런 생각을 하자마자 앞쪽에서 고급 외제 승용차가 나타났다.
조이는 인상을 찌푸리며 차를 절벽 쪽으로 바짝 붙였다. 그러자 고급 외제 승용차가 아슬아슬하게 옆으로 지나갔다.
20㎝만 더 옆으로 밀렸어도 고급 외제 승용차는 계곡으로 떨어지고 말았을 것이다.
“흠.”
월은 습관처럼 턱을 쓰다듬으며 옆을 지나친 고급 외제 승용차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슈나비츠 역시 무엇인가 느꼈는지 승용차를 바라봤다.
“이상하죠?”
“그래.”
슈나비츠의 말에 월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의 대화를 들은 조이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뭐가 말입니까? 창문이 너무 진해서 보이지도 않던데.”
“인간의 기운이 없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말 그대로다. 차 안에서 어떤 기운도 느껴지지 않았다. 흡사 차가 혼자서 움직이는 것처럼.”
“그게 말이 됩니까?”
“말이 안 되지. 물론 내가 잘못 느꼈을 수도 있다. 빠르게 지나쳤으니까. 하지만 꺼림칙하군.”
월은 이미 사라진 검은 고급 세단이 지나간 방향을 바라봤다.
과연 그의 이목을 속일 수 있는 존재가 학교 내에 존재하는 것일까.
세상 어떤 존재라 해도 자신만의 기운을 가지고 있다.
풀도, 나무도, 곤충도, 동물도, 인간들도 말이다. 그것은 인간의 지문과도 비슷하다.
본연의 기운은 절대로 바꿀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기운을 가지지 않는 존재란 있을 수가 없었다.
인간들이 두려워하는 죽은 자들 역시 마찬가지다.
비록 살아 있는 인간처럼 양기를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죽은 자들 역시 확실한 음기를 지니고 있었다.
그렇기에 월과 슈나비츠는 사라진 검은색 고급 세단을 괴이하게 본 것이다.
“월 님의 말이 사실이라면…… 오싹하군요.”
조이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세상에 기운을 가지지 않는 존재가 있을까?
지구상의 존재가 아니거나 신이라면 그럴 가능성도 있다.
그런데 과연 그런 존재가 있기는 할까?
월도 가끔 실수를 한다.
그러니 조이로서는 그가 잘못된 느낌을 받았다고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얼마나 가야 하지?”
조금은 지루한지 월이 물었다.
“이제 조금만 더 가면 됩니다. 마음 편하게 먹으세요.”
조이가 월과 슈나비츠를 데리고 이곳에 올 수밖에 없던 이유는 극히 단순했다.
월과 슈나비츠는 신분을 숨긴 채 헬튼 로즈를 보호해야 한다.
즉, 현재 그들은 미성년자인 셈이다.
당연히 미성년자들이 승합차를 몰고서 학교 내부로 진입을 할 수는 없는 노릇.
그렇기에 조이가 월과 슈나비츠의 보호자가 되어 운전대를 잡은 것이다.
좁은 산길을 벗어나자 갑작스럽게 안개가 찾아왔다.
맑던 하늘이 보이지 않았고, 깜깜한 어둠 속으로 들어온 것처럼 시야가 제한되었다.
콸콸콸, 세차게 흐르던 계곡의 물소리도 들리지가 않았다.
동시에 음기가 치솟아 올랐다.
밝은 태양을 벗 삼아 살아가는 생명들과는 정반대의 속성을 가진 것이 바로 음기를 가진 생명체다.
주로 구울, 좀비, 뱀파이어, 나이트메어, 레이스, 스켈리톤 등이 그와 같은 범주에 속한다.
그들의 존재는 다른 잠식자나 불사자들과 다르게 인간들에게 치명적이다.
평범한 인간은 가만히 같이 서 있는 것만으로도 양기를 그들에게 뺏겨 말라 죽고 말 정도였다.
그런 음기가 안개와 더불어 급격하게 상승하고 있었다.
학교 내에 대부분이 일반적인 학생이라면 아마도 컨디션이 그다지 좋지 않을 것이다.
아픈 사람도 속출할 것이고.
“안 좋아, 안 좋아. 내가 비록 오래 살지는 않았지만, 이제껏 이렇게 불길한 기분을 느끼게 하는 것은 처음이야.”
산전수전을 다 겪은 조이마저 등줄기에서 식은땀을 흘릴 정도였다.
그의 팔에는 본인도 모르게 작은 털들이 하늘을 향해서 곤두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