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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Chapter 2 카페 슬라브(1)
가끔 꿈을 꿀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어머니가 항상 보인다.
다른 무사 집안과 똑같이 나의 어머니도 무사가 된 나의 해진 옷을 꿰매어 줄 때가 있었다.
나는 깊은 상처를 입고 온몸이 난도질을 당했어도 기적적으로 살아나는 경우가 많았다.
비틀거리며 들어오는 나를 어머니는 화가 난 얼굴로 바라보곤 했다.
팔의 검상, 다리의 검상, 허리의 검상.
그런 사나운 경우가 열 손가락으로도 꼽을 수가 없다.
죽지 않은 것이 황당할 정도로 나의 생명력을 강했나 보다.
그 당시에는 화난 어머니의 표정이 사랑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저 문인의 길을 포기하고 무인의 길을 간 것에 대한 분노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당신의 하나뿐인 아들에 대한 분노가 아니라 아들을 그렇게 만든 자들에 분노였다.
어머니는 그런 나를 보며 마음으로 피눈물을 흘렸던 것이다.
왜 어머니의 사랑을 느끼지 못했을까.
왜 하늘만 바라봤을까.
가슴에 파묻히는 아픔이다.
부모님의 임종은 보지 못했고, 세월이 흘러 무덤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다였다.
불효로 이런 불효가 없었다.
아무리 울어도 부모는 돌아오지 않았다.
제발 한 번만 자신을 봐 달라고 하여도 넘어간 세월은 어쩔 수가 없다.
그렇게 그 시절에서 천 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내가 원치 않게.
“그만 자고 일어나요.”
마침 슈나비츠의 목소리가 들렸다.
월과 슈나비츠는 영등포에 있는 한 허름한 카페로 들어섰다.
네온사인이 빛나는 시내와는 조금 거리가 있는 카페였다.
건너편에 일흔은 넘은 할머니가 운영하는 허름한 칼국수 집이 하나 있고, 20여 미터 떨어진 곳에는 기름 냄새가 잔뜩 나는 공장 서너 개가 붙어 있다.
이런 곳에 카페가 있다는 것도 이상했고, 지나치는 사람들은 과연 이 가게가 잘될까라는 의문을 품었다.
칼국수 집 할머니가 하는 말이 카페가 생긴 지 20년은 지났다고 한다.
드나드는 사람을 거의 본 적이 없기에 아직까지 망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는 할머니의 말.
종종 주변 공장의 사람들이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카페 안으로 들어서기도 했다.
안에는 생각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곧 알 수 없는 위화감을 느끼고는 쫓기듯 후다닥 빠져나왔다.
카페는 지하에 위치했다.
들어가는 입구는 화려하지 않았고, 계단에서 시멘트 냄새가 확 풍겨 왔다.
“여기는 언제 와도 어둠침침하구만. 괴물들의 냄새도 진동을 하고. 그렇지 않습니까, 마스터?”
슈나비츠가 예의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월은 슬쩍 그를 바라보았다.
홍안은 여전히 매력적이었으며 훤칠한 신장과 잘 차려입은 정장은 누가 보더라도 모델처럼 빛이 났다.
일이 있어 압구정동에 나갈 때면 연예 기획사로부터 받은 명함만 수십 장이 넘을 정도였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팬티가 보일 정도로 짧은 원피스를 입고 명품으로 도배를 한, 잘 빠진 여성들이 대놓고 다가와 그에게 전화번호를 받아 가곤 했다.
여성에 대한 성적 욕구가 그다지 없는 월이라지만 그 모습을 보면 가끔 부러울 때가 있었다.
슈나비츠는 오는 여자 막지 않고 가는 여자 붙잡지 않았다.
그가 마음만 먹고 씨를 뿌렸다면 5세기가 넘는 동안 족히 1만 명이 넘는 아이들이 태어났을지도 모른다.
인류사를 통틀어 가장 많은 씨를 뿌린 인간일 것이다.
아니, 뱀파이어인가?
사실 뱀파이어도 아니다.
월과 슈나비츠의 모든 것이 공유되면서 슈나비츠의 피의 저주도 감쪽같이 사라졌다.
마력은 굳이 수련을 하지 않아도 세월이 지날수록 증폭했고 흑마법은 더욱 강력해져만 갔다.
변신술은 또 어떠한가.
500년 이상을 살아야만 가능한 변신술이 지금은 늑대와 박쥐, 안개, 부엉이를 비롯해서 7가지에 이르렀다.
한마디로 현대를 살아가는 괴물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슈나비츠는 월을 넘어서지 못했다.
그의 오랜 꿈은 월의 심장을 파먹고 영원히 봉인시켜 버리는 것.
슈나비츠가 보기에는 자신을 월등히 넘어서는 내력을 갖춘 월이 괴물이나 다를 바가 없을 터였다.
어쨌든 월과 슈나비츠는 인간도 뱀파이어도 아닌, 괴이한 존재였다.
“어둠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없어서 안 될 고마운 존재지.”
“어둠을 살아간다라…….”
“그래, 어둠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그 말에 어떤 의미가 담겨 있다고 볼 수는 없었다.
그러나 슈나비츠에게는 그렇지 않게 들린 모양이다.
그는 내려가던 계단을 잠시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태양이 지고 붉은 노을이 넓게 퍼져 있었다.
예전과는 다르게 태양 밑에서도 주눅 들지 않고 살아가고 있지만, 살아간다는 의미를 명확하게 표현할 수는 없었다.
어떻게든 삶의 의미를 찾으려고 해 봤지만…… 그것도 어려웠다.
월과 슈나비츠.
두 불사자는 아직도 짙은 어둠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을 치며 싸우는 중이었다.
카페 문에는 영어로 슬라브(Slavs)라고 쓰여 있었다.
왜 그런 단어를 썼는지는 모르지만, 대충 짐작은 할 수가 있었다.
최초의 카페 운영자는 금발에 검은 눈동자를 가졌다고 했다. 아마도 슬라브 족과 연관이 있지 않나 싶다.
슬라브 족이란 동유럽과 북아시아의 주된 주민으로, 러시아, 폴란드, 체코, 슬로바키아, 유고, 슬로베니아, 불가리아의 기간 민족이다.
뱀파이어와 늑대인간들이 가장 성행한 곳이기도 하다.
그러니 최초의 카페 운영자는 그들 중 한 명이 아니었을까 예상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딸랑.
카페 문을 열자 촌스러운 방울 소리가 울렸다.
카페 안에는 담배 연기가 자욱했고 윙윙거리며 환풍기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마치 1980년대 프랑스 파리의 뒷골목에 위치한 음침한 카페로 타임 슬립을 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카페 가운데는 작은 홀이 있어 흐느끼는 듯한 재즈 음악에 맞춰 다섯 명의 남녀가 흐느적거리며 춤을 추고 있었다.
벽에 붙은 오래된 소파 대여섯 개에는 낡은 옷을 입은 중년의 사내들이 초점 없는 시선으로 등을 기댄 채 연신 담배를 피워댔다.
덩치로 보아 라이컨슬로프이리라.
라이컨슬로프들은 하나같이 기골이 장대하고 우람한 근육을 지녔다.
따로 운동을 하지 않아도 선천적으로 그런 기질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들과 함께 섞여 살아가는 존재라면 라이컨슬로프를 가장 구별해 내기 쉬울 것이다.
월과 슈나비츠는 카운터에서 컵을 닦고 있는 바텐더, 조이에게 다가갔다.
조이의 신장은 월과 슈나비츠보다도 훨씬 컸다.
둘의 신장이 185㎝에 가까운 것을 감안하면 2m는 충분히 넘지 않을까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너무 깡마른 탓에 옆에 직접 서서 비교를 해야만 ‘와우, 정말 크네’라고 말을 할 정도다.
이마에는 해골 마크의 두건을 걸쳤고 코와 입술, 귀에 피어싱이 가득했다.
어디서 샀는지 모를 해괴한 문양의 검은 티와 드러난 앙상한 팔에는 영어로 된 문신이 가득했다.
그가 바로 중개자 조이였다.
이 세계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
괴물과 인간을 연결시켜 주는 유일한 존재이기도 했다.
당연히 양쪽에 대한 지식이 해박했다.
언뜻 들은 말로는 미국 MIT를 졸업하고 특수부대에 자원을 해 이라크에서 2년 동안이나 있었다고 한다.
생긴 것만큼이나 괴짜 인생을 살아온 셈이다.
“헤이, 월, 슈나비츠. 일찍 왔네요.”
“일찍은 무슨. 맥주나 한잔 주쇼.”
슈나비츠가 허리까지 오는 높은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러고는 월을 보며 옆자리에 앉으라며 손바닥으로 쿠션을 팡팡, 친다.
누가 보면 아주 친한 친구로 알겠구만.
하긴 오백 년도 넘게 함께했으니 마누라보다도 깊은 사이라면 틀린 말일까.
실없는 생각에 월은 피식 웃고 말았다.
동시에 별 거부감 없이 슈나비츠의 옆자리에 앉았다.
“자, 일단 시원하게 목 좀 축여요.”
조이가 맥주가 가득 담긴 잔 두 개를 그들의 앞에 내려놓았다.
특이하게도 잔 안에는 얼음이 반쯤 채워져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이렇게 먹으면 싱거워진다고 하여 즐기지 않지만, 월과 슈나비츠는 얼음이 든 맥주를 즐겼다.
그들에게 취기란 큰 의미가 없다.
때문에 조금이라도 입안의 감각을 살려 주는 것이라면 어떤 것이라도 마다하지 않았다.
술에 취해 감각을 잃어버리는 것보단 얼음을 타서 엷게 먹는 맥주가 그들의 입맛에는 훨씬 잘 맞았다.
약간의 긴장도 풀어 주면서 정신을 번쩍 들게 해야 한다고 할까.
그렇기에 월과 슈나비츠는 얼음을 탄 맥주를 즐겨 마셨다.
월과 슈나비츠가 시원하게 맥주를 들이켜자 이내 조이가 본론으로 들어갔다.
“어떻게 됐어요?”
“클리어.”
월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호, 그 어린애들을 먹어 치우는 데 양심의 가책은 일어나지 않던가요?”
조이는 어린애 같은 눈빛을 반짝이며 월에게 물었다.
빌어먹을 악담이군.
“네가 넘겨준 일거린데 말이지.”
월의 눈빛이 사나워졌다.
뒤틀린 심사를 알았는지 포식을 하고 잠들어 있던 식혼이 밖으로 튀어나오려 했다.
손바닥이 쩍 갈라지며 이빨을 딱딱거리는 식혼.
월의 내력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식혼의 힘도 강해졌다.
처음에 식혼을 길들일 때는 지옥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아귀였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월은 목숨을 걸고 식혼을 길들여야 했지만.
그런 결과, 지금은 보통의 아귀가 아니었다.
칠백 년간 피의 저주를 자신이 직접 받아 내며 수많은 인간과 괴물들을 먹어 치웠다.
모르긴 해도 백두산 천지에 산다는 이무기와 비견될 만한 힘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만약 이놈이 월의 몸에서 해방된다면 카페 슬라브에 있는 모든 이들이 순식간에 먹이로 변하고 말리라.
식혼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자신과 슈나비츠뿐이다.
혹은 저기서 실실 쪼개고 있는 조이라든지.
“오우, 농담이에요, 농담. 식혼에게 안부 좀 전해 주세요. 이거 원, 살벌해서 살 수가 있겠어요.”
조이는 깜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래도…….”
월을 바라보는 조이의 눈빛이 살짝 변했다.
어떤 내용일지 몰라도 월의 속을 뒤집어놓으려 한다는 것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사람을 먹는 재미는 있었죠?”
월은 말없이 조이를 바라봤다.
이 청년의 나이는 겨우 30세.
월이나 슈나비츠와 같은 괴물도 아니고, 다른 유전자 조작이 된 돌연변이도 아니다.
그럼에도 그에게서는 묘한 위화감이 느껴졌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여러 사람을 상대한다.
겉은 출중하지만 속은 아무것도 없는 놈, 속은 능구렁이지만 겉은 누구라도 얕보게 생긴 놈, 겉과 속이 완벽해서 대화하기 껄끄러운 놈.
크게 이렇게 세 분류로 나누면 된다.
조이는 세 번째 분류다.
이놈이 무슨 의도로 이런 말을 하는지 알아내야 하지만, 그것이 쉽지 않았다.
감정에 격해지면 안 된다.
그렇다고 냉철하게 이성에 매달려 대답하기에는 이놈의 수 싸움이 너무 강했다.
답이 없을 때는 폭력이다.
폭력이 최선의 선택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하다.
아마도 최하.
그럼에도 월은 그것을 선택해야만 했다.
압도적인 폭력은 어떤 이성도 마비시키는 것을 알기에.
쿠와아아아!
순간, 월의 손바닥에서 세 마리의 칠흑처럼 검고 번들거리는 거대한 뱀이 튀어나와 이빨을 번뜩이며 조이의 곁을 맴돌았다.
벌려진 식혼의 입안에서는 썩은 시체 냄새가 났다.
이빨에는 어젯밤 먹어 치웠던 어린 청소년들의 살점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끈적끈적한 액체가 세 마리 뱀의 몸통에서 흘러내렸다.
그들은 스르륵거리며 조이의 몸을 감쌌다.
놀란 조이가 뒤로 빠지려고 했지만 이미 늦고 말았다.
“그 아이들이 자네도 먹고 싶어 하는군.”
진심일까.
살벌한 소리다.
“아아아, 죄송합니다. 실례가 많았어요. 저는 그저 당신이 사람들을 먹을 때 어떤 느낌일까 알고 싶었던 것뿐이거든요.”
끝까지 울림이 있는 말은 내뱉는 조이.
빌어먹을 자식.
조이의 몸을 죄고 있던 뱀들이 순식간에 월의 손바닥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아이고, 겁나라. 이래서 중개자 노릇을 하겠어요.”
조이는 투덜거리며 자신의 몸에 묻은 끈적끈적한 액체를 털어 냈다.
그러나 그는 다시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어느새 슈나비츠의 손끝이 그의 목에 닿아 있었기 때문이다.
슈나비츠의 손톱 끝에서는 괴상한 냄새가 났다.
썩은 하수구 냄새 같기도 하고 폐수 처리 시설에서 나오는 오수(汚水) 같기도 했다.
손톱 끝에는 한 방울의 액체가 고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