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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Chapter 1 어둠에 살다(2)


“흐읍, 흐흡.”
경태는 검은 비닐봉지에 넣은 본드를 콧속 깊숙하게 빨아들였다.
그렇게 1분 정도를 하고 나자 술을 마신 것보다 훨씬 더 기분이 좋아졌다.
뭐랄까.
구름 위를 붕붕 뛰어다니는 듯한 기분이다.
예전에 이런 영화를 본 적이 있었다.
초능력을 얻게 되어 하늘에서 공 차기를 하던 고등학생들이 벌이는 이야기.
지금만큼은 그때와 비슷한 기분일 것이다.
경태는 앞에 있는 친구들에게 검은 비닐봉지를 던졌다.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다 바닥에 떨어진 검은 비닐봉지를 주워서 코를 개처럼 박고는 연속으로 숨을 들이켰다.
세 명의 소년과 한 명의 소녀 앞에는 다섯 병의 소주와 두 병의 맥주가 놓여 있었다.
종이컵에는 소주와 맥주를 섞어 만든 소맥이 가득했고, 피우다 만 담배꽁초는 아무렇게나 버려져 있었다.
안주는 별다를 게 없었다.
한때 배고픈 대학생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던 새우깡과 양파링뿐이었다.
“자, 한잔들 더 하자. 이거 먹고 좋은 데 가자.”
“좋은 데 어디? 돈 없지 않아?”
“돈이 왜 없어?”
경태는 옆에서 청테이프에 몸이 감겨 신음을 흘리고 있는 20대 중후반의 사내를 바라봤다.
다른 아이들도 그의 고개를 따라서 움직였다.
“저런 새끼들은 넘치고 넘쳤잖아. 중학생하고 한 번 하려고 이곳까지 오다니. 병신 새끼.”
청테이프에 묶여 있는 사내는 대학교를 졸업하고 2년째 중견 기업에 다니는 건실한 청년이었다.
그러나 잠깐의 외도로 지금과 같은 꼴을 당하게 되었다.
회사 선배가 스마트폰 채팅 어플에서 많은 여자들을 꾀었다는 말을 믿고 어플을 깔아 채팅을 했던 결과가 지금 처한 현실이었다.
“오빠, 그럼 저 사람은 어쩔 거예요?”
소녀가 물었다.
“묻어야지.”
“묻어요?”
“그래. 우리 얼굴을 봤으니 이대로 놔두면 안 되잖아.”
“어디다?”
“다 생각이 있다. 저기 시멘트 있지? 그거 가지고 와.”
“어떡하려고?”
종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헤헤, 한 번 해 보고 싶었다. 일단 사람을 저기 폐드럼통에 넣고 시멘트하고 모래를 섞어서 위에 붓는 거야. 그럼 사람은 어떻게 될까?”
“내가 어케 알아.”
“고대로 굳는 거지 뭐. 우리는 역사에 중요한 증거를 남기는 거라고. 어디더라? 이집트? 그런 곳에서만 나오는 미이라를 남기는 거잖아.”
“하하하, 정말 그렇네.”
“오빠는 천재야. 그런 생각을 다 하고.”
아이들은 서로 맞장구를 치며 경태의 생각에 찬성을 구했다.
이렇게 청년의 삶은 결정이 되고 말았다.
아이들은 이내 폐드럼통을 가지고 왔고 한쪽에서는 시멘트와 모레를 섞었다.
고통에 겨워 깨어난 청년은 그 광경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지금 자신이 처한 상황이 어떤지 직감적으로 느껴야만 했다.
죽음.
저 어린 소년들은 자신을 장난 삼아 죽이려고 하는 것이다.
그는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청 테이프로 감긴 입으로 미친 듯이 비명을 질러댔다.
그러나 그의 목소리는 조금도 밖으로 새어 나오지 않았다.
“개새야, 조용히 해.”
경태가 삽을 들고 오더니 꿈틀대는 청년의 뒤통수를 강하게 내려쳤다.
깡!
청명한 쇳소리가 들리며 청년은 고개를 푹 숙이고 말았다.
깨진 뒤통수에 시뻘건 피가 꾸역꾸역 밀려나와 바닥을 적셨다.
“죽은 거 아냐?”
종수가 짐짓 겁이 난다는 표정으로 경태를 바라봤다.
경태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사람은 말이야, 그렇게 쉽게 죽지 않아. 작년에 봐서 알잖아. 그렇게 때려도 끝까지 숨을 쉬더라니까.”
작년에 벌어진 일.
훈계한다는 이유로 한 가족의 가장을 때려죽인 일을 말하는 것이다.
소년은 그때의 일을 전혀 후회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일로 인해 주변 아이들은 그를 두려워했고, 소년은 그것을 자신의 힘으로 받아들였다.
그 상황을 즐기고 있는 것이다.
소년은 점점 더 잔인해졌고, 지금 청년을 묻어 버리려 하는 잔인한 일도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저지를 수 있는 지경에 이르렀다.
법의 테두리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경태는 주변 또래 불량아들의 왕이었다.
“자, 빨리빨리 하자. 이 개새끼, 우리에게 용돈도 많이 줬는데 어서 편하게 해 줘야지.”
예의범절?
소년의 뇌에는 애당초 그런 말이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욕망과 이기적인 생각만이 가득 차 있을 뿐이었다.
자신은 왕이다.
자신에게 엇나가면 그것이 누구든지 징벌을 가해야 한다.
그 존재는 어른이라도 상관이 없었다.
그때였다.
“그쯤 해 두지.”
어둠 속에서 소름 끼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음인 목소리지만 아이들이 있는 공간 전체를 울려댔다.
포악한 맹수가 어둠 속에서 시퍼런 눈동자를 번뜩이는 것처럼 섬뜩한 목소리였다.

월은 지금까지의 상황을 모두 지켜보고 있었다.
성인과는 다르다.
이 아이들은 대한민국의 새싹이 될 수도 있는 존재였다.
자신의 잘못을 진심으로 반성하고 사죄한다면 용서해 줄 의향은 얼마든지 있었다.
월은 살인마가 아니다.
그는 많은 사람들의 짓밟힌 억울함을 대신 갚아 줄 뿐이었다.
하지만 그의 자그마한 소망은 소년들의 대화를 듣는 순간 무참하게 깨지고 말았다.
악의 새싹은 미리 잘라 놓지 않으면 하늘 높이 날아올라 씨를 뿌린다.
그 씨는 많은 사람들의 목숨줄을 쥐고 흔들어 나락으로 빠트린다.
수도 없이 많이 겪었고, 수도 없이 많이 봐 왔던 광경이다.
“씨발! 뭐야, 아저씨.”
소년 중에 한 명이 벌떡 일어나서 흐릿한 눈으로 월을 바라봤다.
자신이 대단한 무엇이라도 되는 것처럼 아주 거만하게 월의 주변을 천천히 돌았다.
월은 소년을 보며 웃지 않았다.
웃지 않을뿐더러 슬퍼하는 표정도 짓지 않았다.
그저 무덤덤하게 소년들을 바라볼 뿐이었다.
만약 이들에게서 잠식자들의 냄새가 난다면 이해하련만, 그렇지는 않은 것 같았다.
본래 싹이 추하고 더러운 것이다.
경태의 부모는 꽤나 잘사는 집안이라고 했다.
어디 가서 굶어 죽는 정도가 아니라 수백 명의 사원을 거느린 어엿한 사장님이었다.
그리고 소년은 저 인성 그대로 자라 부모의 재산을 물려받을 것이다.
엄청난 재산을 물려받고는 자신이 저질렀던 끔찍한 만행은 까마득하게 잊고 말겠지.
과연 소년이 사회에 어떤 해악을 끼칠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구역질이 밀려왔다.
“어이, 씨발! 아저씨, 도대체 뭐냐고?”
바닥에 아무렇게나 떨어져 있던 철골 구조물을 손에 들고 월의 주변을 슬슬 돌던 소년이 계속해서 욕설을 내뱉었다.
월이 아무런 말이 없자 소년은 철골 구조물을 머리 위로 들었다.
저런 것으로 맞으면 피부가 찢어지는 정도로 끝나지 않는다.
나선형으로 휘어진 철골로 인해 피부는 짓이겨지고 녹은 피부로 침투한다.
제대로 치료를 하지 않으면 파상풍에 걸릴 확률이 매우 높았다.
그런데도 소년은 아무렇지도 않게 저런 위험한 물건을 휘둘렀다.
월은 소년을 향해서 손바닥을 펼쳤다.
“오래 기다렸어, 식혼. 먹어 치워.”
그러자 손바닥에 쫙 갈라지며 월보다 몇 배나 크고 긴 촉수가 튀어 나와 소년을 한 번에 삼켜 버렸다.
“으, 으아아아악!”
소년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영화에서나 보던 거대한 괴물이 갑자기 나타나 자신을 공격하는 것이 아닌가.
소년은 놀라서 철골을 바닥에 버리고 등을 돌려 도망치려고 했다.
하지만 이미 늦고 말았다.
그의 몸은 수백 개가 넘는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아귀의 입속으로 빨려들고 말았다.
우드득.
식혼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 소년의 몸이 허리부터 반으로 접혔다.
우습지만 지금 상황만큼은 예전에 유행했던 폴더라는 핸드폰을 생각나게 한다.
우드득.
식혼의 입에서 엄청난 양의 피가 흘러나와 바닥에 떨어졌다.
혈향이 바람을 타고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소년의 머리는 반쯤 잘려서 식혼의 입안에서 덜렁거렸다.
얼굴의 반쪽이 씹혀 눈알이 튀어나왔지만 아직도 살아 있는 것처럼 입을 뻐끔거렸다.
남은 소년들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눈을 비볐다.
제아무리 약물에 취해 있다고는 하지만 지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정도는 알고 있었다.
지금 친구가 죽었다.
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는 죽음으로.
“다, 당신, 뭐야?”
경태가 언성을 높여서 물었지만 월이 대답할 리 만무했다.
“이 씨발.”
분위기가 최악이다.
갑자기 나타난 저 꼰대는 지금 자신들을 죽이려 하고 있었다.
이제껏 갑의 위치에만 있던 소년이다.
지금처럼 을에 입장에서는 서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을의 기분을 알 것 같았다.
두렵고, 무섭고, 심장 박동이 빨라지며, 입안에서 침이 말랐고, 등줄기에서는 식은땀이 마구 흘러내렸다.
“저 꼰대 죽여 버려! 어서!”
경태가 종수의 등을 밀었다.
“내, 내가?”
“그래. 어서 가라고!”
“시, 싫어.”
“새끼가…… 뒈질래?”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상관 없는 것이 아니다.
차라리 경태한테 죽는 것이 낫지, 괴물에게 씹혀 먹고 싶지는 않았다.
“씨발, 나도 몰라.”
종수는 등을 돌려서 달아났다.
일단은 이곳에서 벗어나는 것이 중요했다.
나중에 경태에게 죽더라도 여기서 죽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하지만 종수는 월의 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어느새 다가온 월이 종수의 목을 잡더니, 그대로 한 바퀴를 돌려 버렸다.
뿌드득.
머리가 180도로 돌아갔다.
종수는 아주 기이한 경험을 했다.
세상이 위와 아래가 뒤바뀌는 현상이었다.
너무 아파서 비명을 지르고 싶었지만, 혀가 축 늘어져서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다.
월이 손바닥을 펴자 종수의 크지 않은 몸통이 통째로 빨려 올라갔다.
종수의 발이 마구 요동을 쳤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가 없는 상황.
손바닥이 인간을 먹어치우고 있는 것이다.
“으아아아악! 살려 주세요! 제발 살려 주세요!”
경태와 함께 서 있던 소녀는 두려움을 참지 못하고 오줌을 지리고 말았다.
짧은 치마 밑으로 노란 액체가 흘러 바닥을 적셨다.
소녀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이제껏 살아오면서 이렇게 공포스러운 광경은 본 적이 없었다.
겨우 13세.
보통의 소녀라면 중학교에 다닐 나이였지만 그녀에게 학교란 존재하지 않았다.
9살 때 부모님이 이혼한 후 어머니와 함께 살았다.
하지만 소녀가 알고 있는 어머니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시도 때도 없이 동거하는 남자가 바뀌는 것도 모자라 술만 먹으면 폭력까지 휘둘렀다.
진저리가 난 소녀는 12살이 되기 전 겨울에 집을 뛰어나오고 말았다.
처음에 만났던 사람은 채팅 사이트를 통해 알게 된 남자였다.
그는 소녀에게 불쌍하다고 말을 하면서 자리를 잡을 때까지 잠자리를 제공해 준다고 하였다.
소녀는 참으로 좋은 사람이라 여겼다.
그녀에게 잠자리를 제공해 준다고 한 사내는 40대 초중반의 머리가 벗겨진 아저씨였다.
아버지보다도 나이가 많아 보였다.
그 탓에 왠지 모를 거부감이 들었다.
그럼에도 그녀가 그의 집에 함께 갈 수밖에 없던 이유는 너무도 춥고 배가 고팠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