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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라이징 폭렬마도 1권
1화

Intro


불사(不死).
과거 진시황제가 불로장생(不老長生)을 이루기 위해 세상 곳곳으로 동남동녀를 보냈고, 한민족 태고로 내려오는 고신도(古神道)들도 불로불사를 이루었다고 한다.
그 외에도 많은 이들이 엄청난 인력과 자금을 동원하여 불사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
불로불사란 인간의 영원한 화두다.
과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생명을 연장하고 젊음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은 한 번도 게을리된 적이 없었다.
하지만 난…….
불사가 병인 줄 알았다.
그 병을 고치기 위하여 가 보지 않은 곳이 없었고, 세상의 끝까지 나아갔다.
그럼에도 이 저주는 없어지지 않았다.
불사가 과연 신의 축복일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불사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최악의 저주, 신이 내린 형벌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늙어 죽어 가는 것을 지켜본다면 마음이 어떨까 상상을 해 본 적이 있는가.
사랑하는 아이가 자신보다 빨리 늙어 흙속에 묻히는 것을 본다면 심정이 어떨까 상상을 해 본 적이 있는가.
시간이 지나면 잊혀질 것이라고?
그래, 잊혀진다.
동시에 감정도 사라진다.
사람이 죽는 것을 봐도 아무렇지도 않고, 평생을 목숨 받쳤던 왕권이 힘없이 무너지는 것을 봐도 아무런 감흥이 일어나지 않는다.
감정이 사라진다.
그 두려움을 아는가.
그것은 치유할 수 없는 공포의 병이다.
손을 찢고, 눈을 찢고, 심장을 찢어 버리고 싶은 고통이다.
나에겐 불사란 축복이 아니고 병이자 저주이다.
그렇지만 불사를 이루기 위해서 목숨을 거는 종자들을 수없이 보았다.
저 거대한 미국도, 중국도, 러시아도, 일본도 모두 불사를 위해서라면 어떤 일이든지 한다.
넓은 우주에 우주선을 쏘아 보내는 것이 호기심에 충족과 인류의 번영을 위해서라고 생각하는가.
어림도 없는 소리다.
단지 위대한 권력자의 생명 연장의 꿈을 이뤄 주기 위한 일이다.
인류의 번영을 위한다는 말은 모두 개소리다.
믿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상식을 초월하는 존재들을 많이도 보았다.
불사를 이뤘지만 태양 밑에서는 살 수 없는 존재인 뱀파이어.
불사는 아니지만 현재의 의학으로도 밝혀낼 수 없는 치유력을 가진 라이컨슬로프.
인류의 기원인 사대문명을 세웠다고 주장하는 이계인.
미 육군 소속의 사이보그.
영국 SAS 소속의 합성 인간.
일본 자위대의 유전자 변이 인간.
모두가 불로불사를 궁극적으로 이루기 위한 존재들이다.
당신들은 그들을 만나 본 적이 있는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들이 당신 코앞에 있다고 하더라도 알아차릴 수가 없다.
하지만 그들은 점차 이 세계를 잠식하여 온다.
아무도 모르게.
은밀하고 매혹적이게.
최상의 포식자가 되어 인류의 위에 서려고 한다.
나는 그들을 잠식자(蠶食者)라고 부른다.
언제 어디서든 모든 감각을 열어 놓고 그들이 다가오는지 대비해야 한다.
잠을 잘 때도, 밥을 먹을 때도, 숨을 쉬고 있다면 그 어떤 순간에도 대비를 하라.
도대체 그들이 누구냐고?
도저히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그럼 죽을 수밖에.
나를 보라.
어서 나의 눈을 보라.

너와 나.
설마 친구라고 생각하나?



Chapter 1 어둠에 살다(1)


00:20, 5호선 막차.
월은 5호선 마곡역에서 내려 화장실로 들어갔다.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은 역이라 그런지 대체로 시설물들은 깨끗했다.
그는 소변을 보고는 세면대로 가서 거품이 잔뜩 일도록 손을 닦았다.
그러고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깔끔한 알마니 정장을 입고 고가의 손목시계, 넥타이는 반듯하고 와이셔츠는 구김살 하나 보이지 않았다.
이빨은 희고 가지런하여 절로 눈이 갔다.
그러나 앞머리는 너무 길었다.
머리카락을 옆으로 쓸지 않는 한 눈동자가 보이지 않을 것 같았다.
턱은 갸름하고 선이 확실하게 보인다.
약간의 수염이 거칠게 자랐지만, 결코 지저분하다는 느낌은 주지 않았다.
동물로 표현하자면 웅크리고 있는 맹수랄까.
크르르.
순간, 괴이한 소리가 들렸다.
월은 손목을 잡고 손바닥을 돌렸다.
그러자 손바닥이 갈라지며 수많은 이빨을 가진 입이 나타났다.
이빨이 아마존의 식인 물고기인 피라니아(Piranhia)를 연상시켰다.
그러나 이빨에서 나오는 음성은 파라니아와 차원이 다른 괴기함, 그 자체였다.
“식혼(食魂), 조금만 참아 줄래. 곧 먹잇감이 나타날 거야.”
월은 팔목의 힘을 주었다.
식혼이 심하게 날뛰자 팔목이 저릿한 탓이었다.
월의 말을 알아들었다는 듯이 식혼은 따딱거리던 이빨을 멈추고 손바닥 속으로 다시 사라졌다.
월은 팔목은 한 번 흔든 후 마곡역 3번 출구로 나갔다.
이제 막 아파트 단지가 조성되고 있어 곳곳에 커다란 덤프트럭이 서 있었고 자재들이 여기저기 방치된 것이 보였다.
이미 입주를 시작한 아파트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곳이 몇 배나 더 많아 보였다.
전체적으로 단지가 완성되지 않아 뭔가가 부족한 느낌이 강했다.
상가건물도 그다지 보이지 않았고, 밤이 되면 꽤나 황량한 벌판으로 변해 버린다.
월은 양복 속주머니에 넣어 둔 던힐 담배 한 개비를 꺼내서 입에 물었다.
입안에서 몇 번 굴리더니 이내 재미가 없는지 불을 붙여서 깊게 빨았다.
후―
흰 연기가 차가워지는 바람을 타고 어둠 속으로 흩어졌다.
중개자인 조이가 그렇게 자꾸 담배를 피게 되면 폐가 썩어서 죽는다고 겁을 주지만 월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고작 이런 것으로 죽는다면 자신은 이미 수백 년 전에 땅속에 묻혀 뼈까지 썩었을 것이다.
삶의 대한 희로애락 따위는 그에게 남아 있지 않았다.
자정이 넘어서 그런지 거리에는 지나가는 사람 하나 보이지 않았다.
몇 개의 술집이 보이지만 안에는 텅텅 비어서 주인이 자리에 앉아 TV 채널만 돌리고 있었다.
CCTV도 보이지 않는다.
사실 다른 처형자와 다르게 그는 CCTV를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CCTV에 비친 그의 모습은 기형적으로 일그러졌다.
외계인의 모습처럼 머리가 완전히 굴곡되어 도저히 현상을 복원시켜 확인을 할 수가 없었다.
다른 사람은 이유를 모르겠지만 월은 짐작할 수 있었다.
아마도 몸을 잠식하고 있는 아귀들 때문일 것이다.
그것이 아니라면 다시 태어난 육체의 생체열 때문일지도 모르고.
월은 품에 든 편지봉투 하나를 꺼냈다.
완벽히 밀봉이 되어 있어 누군가 엿보기 위해서 어떤 수를 쓰더라도 내용물을 확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월이 보게 된 이상 밀봉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봉투 안에 든 용지는 꽤나 고급스러웠지만 내용은 간단했다.

00:40. 천마 아파트 공사 현장.

무엇을 의미하는 말인지는 오직 월만 알고 있었다.
월은 중개자 조이가 말한 상대방에 대해서 다시 한 번 머릿속에 떠올려 보았다.
이번 상대는 겨우 14세.
중학교 2학년의 나이지만 학교는 중퇴하여 다니지 않는다.
이름은 기억할 필요가 없으니 컴퓨터와 같은 그의 두뇌에 넣어 둘 생각은 없었다.
소년은 여느 또래와 같지가 않았다.
부모의 교육이 잘못되었는지, 아니면 본래부터 인성이 그러했는지도 알지 못한다.
1년 전, 소년은 또래 친구들과 함께 훔친 오토바이를 타며 여느 불량 청소년과 다를 바가 없이 행동했다.
한 동네에서 매일같이 시끄럽게 굴었고, 동네 주민들의 원성은 끊이지가 않았다.
경찰에 몇 번이나 신고를 했지만 재빠르게 도망을 치는 바람에 잡지는 못했다.
오히려 신고를 했다 하여 더욱 동네를 공포에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 여성의 핸드백을 날치기 하는가 하면, 또래 여중생들을 몇 번이나 강간했다.
그럼에도 만 14세가 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훈방 조치가 되었다.
물론 소년의 부모가 꽤나 큰 유지인 탓에 돈으로 피해자와 합의를 봤으니 가능한 일이었다.
어느 날 소년들은 편의점 앞에서 술을 마시며 큰소리로 떠들었다.
굴뚝에서 연기가 나는 정도로 담배를 피워대고 가래침을 바닥에 뱉어 지나치는 행인으로 하여금 심하게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보다 못한 30대 가장이 그들에게 다가가 아직 어리니 담배를 꺼 줄 것을 정중하게 요청했다.
하지만 30대 가장에게 돌아온 것은 욕설과 매타작이었다.
30대 가장은 수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매를 맞아 죽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 경악할 장면을 목격했지만 너무도 살벌해서 말릴 수가 없었다.
문제는 아버지가 죽는 것을 목격한 4살짜리 어린 딸이었다.
그날 이후로 어린 딸은 심한 충격 때문인지 다시는 입을 열지 못했다.
아이는 누군가를 만나기를 두려워했고 시간만 나면 자해를 행했다.
한순간에 가장을 잃어버린 가정은 풍비박살이 나고 말았다.
그러나 소년들에게 떨어진 벌은 겨우 보호 감찰 2년뿐이었다.
가장을 잃은 아내가 눈물로 호소하며 상고를 했지만, 오히려 소년의 부모가 맞고소를 자행했다.
참으로 개탄할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둘이서 작은 집을 마련하기 위해서 모아 두었던 돈도 모조리 재판으로 날렸고, 살던 전셋집에서도 나가야만 했다.
그렇게 1년이 지날 시점에서 고통을 이기지 못한 아내는 자살했다.
남은 돈은 모두 중개자 조이에게 남겨졌다.
모르긴 해도 가장의 아내는 죽는 순간까지 소년들과 그 부모를 저주했을 것이다.
제대로 눈도 감지 못했겠지.
월은 그녀의 분노가 손에 닿을 것처럼 생생하게 느껴졌다.
이 빌어먹을 법은 독일계 대륙법이기는 하지만 일본을 통해서 받아들여진 법이다.
만 14세 미만 아동을 처벌하지 못하는 것도 모두 일본의 법을 따라 한 것이다.
비록 조금씩 영미법을 도입한다고는 하지만, 아직 한국의 사법부는 갈 길이 멀었다.
법원은 이렇게 말을 했다고 한다.
소년이 저지른 짓은 사회에 큰 해악을 끼치고 충격으로 다가오나 본인이 충분히 반성을 하고 있는 점, 그리고 갱생의 여지가 충분한 점을 들어 보호 감찰 2년에 끝을 낸다고 하였다.
그럼 남겨진 피해자는 어쩌란 말인가.
미쳐 버린 4살짜리 소녀는 어쩌란 말인가.
피의자의 인권은 중요하지만 피해자의 인권은 중요하지 않은 것인가.
부모와 자식의 죽임을 방임해 놓고 ‘난 당신을 용서하겠소’라고 말을 하는 인권주의자들을 월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그가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는 단 하나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이 얼마나 아름답고 합리적인 말인가.
복수는 복수를 부른다는 말이 있지만, 그것은 나중에 생각해 볼 문제였다.
가족을 잃고, 부모를 잃고, 자식을 잃은 상태에서 복수는 복수를 부른다면서 강제로 화해를 종용하는 사회는 월로서는 이해할 수도, 이해되지도 않았다.
하지만 소년이 정말로 참회를 하고 있다면 조금이나마 용서해 줄 생각은 있다.
살아가면서 충분히 뉘우치고 평생 죄책감에 시달려야 할 것을 알기에.
담배를 모두 피운 월은 라이터로 봉투에 든 종이를 불태웠다.
그러고는 종이에 적혀져 있던 곳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밤은 길다.
그리고 이 밤에 이뤄질 피의 전주곡은 더욱 길어질 것이다.